山行 閑談 21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거룩한 이름이여! 
 

 

 어느새 올해 달력도 딸랑 한 장 남았기에 아쉬움이 더해 삭연(索然)함이 밀려든다. 그리움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다더니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날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그리워하는 맘이 깊어져 알 수 없는 고독감에 휩싸여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포근했던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 울적한 마음을 더욱 옥죄어 버럭 찜부럭이 일어나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럴 때는 팍팍해진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삶의 활력소를 되찾기 위해서는 멋스러운 고독과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산행이 최선의 방법이기에 오늘도 산으로 간다. 
 

 겨울비가 찬 기운을 몰고 왔는지 자꾸만 콧물이 흘쩍거려 초겨울의 정취가 느껴진다. 설상가상으로 괴팍스럽게 삭풍이 몰아친 산길은 너무나 황량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사람들로 붐비던 산길에 인적이 뜸해서 사색하며 걸어가니 상연(爽然)함에 젖어든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겨울바람이 한데 어울려 빚어낸 대자연의 오케스트라가 심금을 울린다. 그동안 귓전을 맴돌았던 익숙한 소리가 아니고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원초적 화음이기에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우리니 그 소릿결에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머니”라는 낱말처럼 부드럽고 정이 흐르는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무리 불러도 싫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머니”란 단어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 내리고 살아 숨쉬면서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에 언제나 친밀하게 가슴에 와 닿는 한마디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맨 처음 입에 올리는 말이 “엄마“라고 한다. 마치 열 달 동안 뱃속에 넣고 고생하며 길렀던 모성(母性)에 대하여 따스한 정을 느끼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된 출산의 노고에 감사하는 본성으로 엄마를 부르는 것은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영국문화원이 비영어권 102개국 4만여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가 무엇이냐고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어머니”(mother)가 1위로 선정됐다고 한다. 이처럼 인종, 언어, 풍습 등이 다르더라도 사람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모두가 한결같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혀진다. 자식들 걱정으로 온갖 희생을 감수하고 평생을 가슴앓이하며 그늘에서 지내셨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지 못해 내리 딸 여섯을 낳으시고 늘그막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번에도 딸을 낳으리라 짐작하고 할머니가 미역도 준비하지 않아 뜨끈한 미역국도 드시지 못하고 해산의 아픔을 견디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농경사회인 그 당시에는 남아(男兒)선호 현상이 팽대했기에 아들을 낳으려고 아기를 여럿이 낳은 것이 남세스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자손이 귀한 집으로 시집와서 아들을 낳지 못했기에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그러나 무슨 행운인지 늦둥이로 막둥이가 생겨 우리 형제는 8남매가 되었다. 평범한 농투성이 집안이었기에 모두 훌륭하게 키우지는 못했지만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강건(剛健)하고 번듯하게 길러주신 헌신적 희생을 어찌 필설(筆舌)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가급적이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인정신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라고 강조하셨기에 그 가르침에 힘입어 평범한 보통사람으로 자신이 처해있는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면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우리 형제들은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엄격한 가부장적인 가풍(家風) 때문에 잘못을 저질러도 큰소리로 꾸지람도 못하고 어미닭이 병아리 감싸듯 보듬어 안으시며 항상 우리 편이 되어주었기에 무슨 일만 생기면 언제나 넓디넓은 어머니 치마폭에 숨어버렸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먼저 기뻐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방학이 끝나고 객지로 떠날 때, 정류장까지 따라와서 배고프면 굶지 말고 맛있는 것 사먹으라면서 차곡차곡 접어진 손때 묻은 돈을 허리춤에서 꺼내주고 자동차가 멀어질 때가지 손을 흔들면서 그 자리에 서계시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다시 떠오른다. 
 

 젊은 혈기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던 시절 “이런 아들 낳으려고 그렇게 고생했는지” 혼잣말을 내뱉으시며 눈물을 보이실 때, 무엇에 한방 얻어맞은 기분에 휩싸여 정신을 바싹 차리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가다듬어 다시 제자리에 서는 계기가 그 한마디였다. 
 

 또한 온갖 세파(世波)에 시달려 일이 뜻대로 안 풀리고 의기소침해 있을 때, 어머니의 잔잔한 미소와 넉넉하고 너그러운 품속은 언제나 새로운 용기와 활력을 불러일으켰으며 심한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때, 부드러운 격려의 말씀은 어둠 속의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불철주야(不撤晝夜) 자식들 때문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한평생을 보내셨기에 손등은 노송(老松)껍질처럼 변해버리고 굴곡진 얼굴의 주름살은 우리들 걱정으로 잠 못 이룬 세월의 흔적이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인고의 철적(轍迹)이기에 그 모습을 떠올리면 울컥 서글픔이 복받쳐 오른다. 
 

 연만(年晩)하여 모시고 살려고 했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면서 끝내 사양하고 고향에서 아버지와 함께 오순도순 지내다가 팔순(八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어느 겨울날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살아생전에 그리도 원하시던 꽃상여를 타고 홀연히 떠나셨기에 두고두고 한스러울 뿐이다. 
 

 곤핍(困乏)한 삶을 섧디 섧게 살다 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래전에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지만 아련하게 펼쳐지는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 품속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까? 
 

 남들처럼 한번도 호강시켜드리지 못했기에 불효막심(不孝莫甚)함을 금할 길 없어 가슴에 사무치는 사모곡을 부르면서 회한(悔恨)의 눈물 흘려보지만 모두 다 부질없기에 목이 멥니다. 가까이 계실 때, 살아계실 때, 잘 해주는 것이 만고(萬古)의 진리(眞理)인 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