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의상봉길/ 포토 에세이
           (구파발-산성매표소-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청수동암문-대남문/ 2004.12.6/우리 아내 남편과)


전철 3호선을 타고 가다가 지축역 근처에 이르면 언제나 북한산을 바라보는 것이 커다란 낙이었습니다.
산은 멀리서 보는 것이 좋을까요, 가까이서 보는 것이 더 좋을까요?
멀리서 봐도 좋고 가까이 가서 봐도 좋은 것이 '산(山)'입니다.
그 북한산 고양시 산성매표소 앞입니다. 오른쪽의 가파른 뾰죽한 산이 의상봉입니다.
서울에는 71개의 산이 있습니다. 그중에 36.4㎢로 가장 넓은 산이 북한산이고, 836.5m로 가장 높은 봉이 백운대입니다.


 





오늘 일만은 북한산 의상봉을 가고 있습니다. 육산 같은 길을 벗어나면 바윗길입니다.  그 바윗길이 시작되는 곳에 위험지역 안내판이 있습니다. "의상봉~나월봉 구간은 암벽 등반길로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위험지역이오니 안전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 바위를 오르다가 낑낑 소리가 나기에 돌아다 보니 주인 잃은 발발이 개 한 마리가 허기에 지쳐 얼음을 핧고 있습니다. 낭떠러지에 추락하였는지 벌겋게 등 한쪽의 살이 드러나 있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싶어서 아무리 불러도 그냥 도망만 갑니다. 이렇게 네 발 가진 개도 오르내릴 수 없는 위험한 바윗길입니다. 
그래서 의상봉 오르는 능선 길을 '북한산의 용아장성'이라고도 한답니다. 작년에 다시는 또 못올 길이라고 하던 곳을 대롱대롱 매달리며 일만은 왜 또 의상봉을 오르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위험한 그만큼 북한산 '의상능선'은 어디서도 보기 드문 환상적인 세계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기묘하기도 하고 기기괴괴한 바위가 벼랑끝 바위 위에서 속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름이 없다면  이 사람이 추상석(抽象石)이라 지어 주고 싶습니다. 보세요, 저 짐승바위, 도사바위 등등 눈을 황홀하게 하여 주는 저 기암 괴석들을-.












      

의상봉을 마주 보고 있는 저 건너 둥그스럼한 봉이 원효봉입니다.  원효봉과 의상봉은 어느 봉이 더 높을까요? 원효봉은 509m, 의상봉은 503m로 원효봉이 6m가 더 높습니다. 신라에서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다 가신 두 분은 나이로도 의상보다 원효대사가 9살이 더 높은 선배였습니다. 
의상대사는 화엄종의 시조입니다. 당나라에 가서 지엄(智儼)의 문하에서 수학 후 돌아와서 전국에 화엄종의 사찰 10개를 건립하신 고승입니다. 그의 문하에서 오진, 지통, 표훈, 진정, 진장, 도유 등 신라 10 대덕의 고승을 길러낸 스님기도 하구요.






 산에 와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산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입니다.
옛날에 살던 고향을 대하듯이 갑자기 멀어진 까마득한 세상. 거기서 그렇게 커 보이고, 좋아 보이고, 부러워 하던 것들이 보일락 말락하는 하나의 점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다 하나의 티끝입니다. 그 작은 것들이 들과 강과 하늘과 어울려 고요한 소리없는 교향곡을 들려 줍니다.  






드디어 의상봉 정상, 503m라는 의상봉 푯말이 있는 헤리콥터 장입니다.

여기서는 삼각산인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99.5m)가 아주 잘 보입니다.
영조21년에 승려 성능(聖能)이 지은 '북한지(北漢誌)'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가 부아악(負兒嶽: 인수봉)에 올라 살만한 곳을 살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수봉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아이를 업은(負) 모습의 바위가 붙어 있어서 업을 '負'(부), 아이 '兒(아)' 부아악(負兒岳)라 했다는 것이지요.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에 이조를 세울 때는 무학대사가 인수봉에 올라가서 태조의 명으로 도읍지를 찾아 맥을 찾아 만경대에 이르렀다 합니다. 국망봉(國望峰)이라는 별명은 그래서 얻은 것이지요.
북한산은 이외에 한산(漢山), 화산(華山) 등의 이름이 더 있습니다. 
국망봉 앞에 있는 저 하얀 바위봉이 노적봉(716m)입니다. 마치 노적을 쌓아 놓은 모양이라 해서 이름하였다 합니다. 이 노적봉에는 임진왜란 때에 이곳에 보살이 현신해서 왜구를 물리치게 했다는 설화가 전해 오기도 하는 곳입니다.
임금이 곧 나라였던 옛 시절에는 불암산(509.7m)이 돌아가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었듯이, 북한산은 현재의 살아있는 임금을 지키는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숙종 때에 백제 개루왕 때 쌓았다는 토성 터에 원효봉, 의상봉, 용혈봉, 증취봉, 문수봉 등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성이 지금의 북한 산성입니다. 남한산성보다 뒤에 쌓은 성이라서 북한산성이라고 하였구요. 그래서 이 산의 이름도 한강북쪽의 산이라 하여 북한산(北漢山)이라 이름하게 된 것입니다.
의상대에서 하산 길로 조금 내려오니 가사당암문이 있습니다. 거기서 원효봉 쪽으로 조그마한 산봉우리 같은 크기의 대석가좌불동상이 있는 곳이 국녕사(國寧寺)입니다. 높이가 무려 33m가량으로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설악산 신흥사 좌불동상 다음으로 큰 동불상을 모신 곳입니다. 공사비만도 150억원이고, 수백톤이나 하는 동(銅)을 이 깊은 산중까지 헬기를 이용해서 날랐다는 대공사였습니다. 
나라 '국(國)', 편안 '녕(寧)'이란 뜻처럼 화엄 신앙의 대선각자이신 의상대사가 선(禪)을 하였다는 의상봉 영지에다가, 사명대사가 국난에 대비하여 창건한 호국불교의 실천 도량이 바로 국녕사(國寧寺)입니다. 국녕사는 설립 당시에는 89칸이나 되었다는 유서 깊은 절입니다. 그 동안의 불교의 고질이었던 무속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을, 현대에 맞도록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호국 불교로 세워 부처님의 위력으로써 나라의 안녕과 발전과 통일을 빌기 위한 능인선원이 바로 국녕사입니다.
 
증취봉을 지나서부터는 계속 성벽 위를 걸어 갑니다. 이 성은 축성 당시에는 21리 60보로 현재는 12.7km가 됩니다.
'부왕동암문'입니다. 암문(暗門)이란 성벽에 다락집이 없이 만들어 놓은 작은 문입니다. 성곽에서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든 비상출입구입니다. 북한산에는 부암동암문, 서암문, 동암문, 백운동암문, 용암 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 암문 등이 더 있습니다.

나월봉은 험준하여 등산객의 출입을 막고 있습니다. 

우회로를 따라 오르다보니 공같이 둥그스름한 봉이 나한봉인가 본데 어느 못난이 짓인가 표지를 떼어버렸습니다. 

청수동암문 위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올라온 봉들이 모두 일곱이라서 7봉이라고 합니다. 의상능선 산행은 의상봉(503m), 용출봉(571m), 용혈봉(581m), 증취봉(593m), 나월봉(638m), 나한봉(665m)로 조금씩 조금씩 높아져 가는 봉들을 오르는 즐거움입니다. 그리곤 715.7m 청수동암문 위 전망대에서 지나온 곳을 한 눈으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름답고 후회없이 보낸 나의 소중한 인생을 뒤돌아 보는 그런 조용한 행복을 주더군요.
문수봉 구간은 너무 지형이 험준하고 위험하여 우회 등산로를 이용하라는 안내판 따라 가다 보니 드디어 대남문(大南門)입니다. 14개의 문 중 대성문, 대동문, 보국문과 함께 복원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있는 문이 대남문입니다.  
 이제는 하산길입니다. 이 길은 우리 장인이 생전에 오르내리시던 길이요, 처가와 동서가 사는 동네입니다. 하산하여 나에겐 하나뿐인 우리 동서에게 공술을 얻어먹고 갈 생각입니다.세상에 동서보다 더 가까운 우리가 어디에 더 있겠습니까.
오늘은 종일 혼자 산에서 살았습니다. 바위와 나무와 얼어붙은 산에서 재냈습니다. 꽃들이 꽃 밭에서 모여 살듯이 이 아름다운 북한산은 명산답게 아름다운 봉우리에 갖가지 모양의 수려한 바위를 품고 있더군요. 그 속에서 하루 내내 일만은 이런 생각을 줄곳 하였습니다. 





아름다움 머문 자리 
찾아 헤매다 
이제야 다시 보니
여기가 거기로다
북한산
이름 깊숙히 
품고 있는 하나 하나가
 -북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