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산행>북 카페(Book Cafe)도 들려보고 - (홍천 공작산)

 

북 카페에서 바라본 공작산

 

고개 절개지를 올라 능선 길을 찾아서

 

 한 달 전쯤인가. 이형숙, 김종헌님 부부가 쓴 <빵 굽는 아내와 CEO 남편의 전원카페>라는 책을 읽다가 홍천 공작산 산행도 하고 그들이 운영하는 북 카페 (Peace of mind)도 들려 보기로 작정을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공작산을 12월 첫 산행지로 정하고 K형 부부와 함께 길을 떠난다.  어제 비가 내리고 난 후라 그런지 오늘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다. 양평, 홍천 44번 국도를 따라가다 구성포에서 서석/양양 방향으로 10여 km 진행하다 공작골 공사 중인 포장도로를 만난다.

 

 공작골 입구 도로가 공사 중이라 우회하도록 지시하는 공고문을 무시하고 산 길 도로를 계속 올라가니 고개부터 비포장도로로 지금 아스팔트 공사 중이다. 산 고개에 주차하고 절개지 능선을 탄다. 잡목 숲 사이로 눈발이 날리고, 낙엽이 켜켜이 쌓인 능선 길을 오르니 미끄럽다. 산객이 다니지 않은 길을 앞장서서 길을 만든다. 잡목 길 능선을 30여분 오르는데도 공작산은 저 멀리 안개 속에 묻혀 좀처럼 길을 내주지 않는다.

 

  깊은 산 속 기암괴석 절벽에 늙은 소나무 한그루는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채 독야청청 서서 명상을 하고 있다. 숲 속 저 편에는 산 새 몇 마리가 제 모습을 살짝 숨기고 산의 적막을 깨트리며 지져 긴다. 산 능선에서 걸음을 쉬고 땀을 닦는 나그네는 방금 구름타고 하강한 신선인가, 산의 적막을 깨는 침입자인가. 아니면 속세를 등지고 싶은 철부지인가.

 

 아내는 능선 길을 버리고 공작골 정문 들머리로 산행을 하자며 돌아가자고 한다.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 길은 미끄럽고, 잡목은 발목을 붙들고, 하는 수 없이 원점으로 조심조심 회귀한다. 다시 차를 몰고 공작골로 들어서니 산불감시인이 입산통제로 차를 막는다. 공작산 휴양림까지만 갔다가 산에 오르지는 않겠다고 약속하고 산을 들어선다.

 

 숲 속에 들어서니 머리가 상쾌하고 모든 세속의 이기심이 사라진다. 맑은 숲 향이 자연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켜 주나보다. 우주적 존재의 신령스런 기운이 내 몸을 순환하며 바른 생각을 갖게 한다. 나는 산에 오면 자주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마음을 잃어버렸다가도 금방 마음을 찾으면, 화를 내었다가도 바로 접을 수 있다. 마음은 성품의 근본자리이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본인을 위시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잃어 버려도 곧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리면 아파트 게시판이나 동네 어귀 가로수에도 개 찾는 공고문을 게시한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숲길을 걸으며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자주 하기로 자신과 약속을 한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공작산 휴양림에 들어서니 마음은 벌써 공작산 정상에 선다. 약속대로 휴양림에서 산봉우리만 바라보며 산세의 아름다운 모습을 머릿속으로만 그린다. 정상에 서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차라리 약속을 하지 말고 몰래 능선 길을 다시 탈 걸하고 후회도 해본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지난 가을 단풍 든 산이 무척 아름다웠을 것 같다. 이름처럼 공작의 모양을 한 산일까.

 

 휴양림 관리인에게 인사를 건네니 관리인 할아버지(70세)는 외로운지 자꾸 쉬었다 가라며 관리실로 안내한다. 할아버지는 말벗이 그리웠던지 다정하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가족들의 얘기를 풀어 놓으신다. 점심때가 되어 우리는 할아버지와 가져간 컵라면과 과일과 백세주를 나누어 먹고 마시며 서로 정을 건넨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노래 가락 한자리 할 테니 들어보란다. 육자배기 가락에 흥이 나신 할아버지는 둥실 둥실 춤을 추시며 멋들어진 가락을 뽑아대는데 보통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산속의 관객이 되어 신나게 박수를 친다. 정상을 못 밟은 대신 할아버지의 세상사는 얘기와 노랫가락을 무료로 감상하는 행운을 얻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 차를 돌려 북 카페로 향한다. 북 카페에 들어서니 만 여권의 장서와 서화 그리고 음반으로 실내를 꽉 메우고 있다. 카페 주인 부부가 40년간 모아온 책들과 소품들이 주인의 품격과 소양을 나타내듯 적절한 공간을 차지하고 객을 맞는다.

 

 책에서 본 주인장 내외가 반갑게 맞이한다. 허브 차를 주문하니 재료가 다양한 허브 빵을 맛보라며 스펙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몇 마디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감정이 소통되고 나니 아예 세상사 얘기며 삶의 철학들이 쉴 새 없이 교환된다. 아마 한 시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음악이 조용히 흐르는 카페엔 낭만이 넘쳐난다. 유럽풍 카페모습이다. 아내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여길 와 보고 전원생활로 돌아갈 것을 결심 해줄까? 제발 결심해 주면 좋으련만. 30년 교직생활을 청산할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어렵게 승진한 교감자리가 아까운걸까? 왜 시골로 들어가는 걸 싫어할까? 내 설득이 부족한 탓이리라.

 

 카페 주인장 부부는 1년 반 전, 서울 생활을 접고 그 동안 꿈꾸어 오던 전원생활에 인생 2막의 장을 홍천 공작산 아래에 열었다.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이다. 나도 서울 생활을 훌훌 털고 후반생을 조용한 시골,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곳에서 조그만 텃밭이나 일구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소망을 오래 전부터 가졌었다.

 

  철없던 경쟁의 30년을 청산하고 후반생 30년은 여유를 갖고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 산과 벗하며, 자연과 벗하며... 진정 나 자신을 위한 삶의 양태는 무엇일까? 하고 상념에 잠긴다.

 

 카페에서 바라본 공작산은 한 폭의 그림이다. 산이 산을 가리고 저 멀리 우뚝 솟은 공작산 정상을 바라보니 오늘 정상을 밟지 않고 미답으로 남겨두길 잘 한 것 같다. 입산통제가 풀리고 눈이 적당하게 내리는 날 아내와 단 둘이 다시 와 할아버지의 노랫가락도 다시 청해 듣고, 공작산 정상도 경건한 마음으로 오르기로 마음속에 다짐해 두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2004.12.05)

 

공작골 입구 이정표

 

공작골 휴양림

 

북 카페 (Peace of Mind)

 

북 카페 실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