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에 취하고 산죽에 마음 빼앗기고.. 덕유산에서.

 

산행지 : 덕유산(안성매표소-설천봉)

산행일 : 2005. 01. 23(일)흐리고 가끔 눈

산행자 : 꼭지(아내)와 둘이서

교   통 : 자가운전 
 

08:00 안성매표소

10:10 동엽령

11:15 송계삼거리(백암봉)

11:50 중봉

12:20-13:10 향적봉대피소

13:15 향적봉

13:40 설천봉(산행끝) 
 

총 산행시간 : 5시간40여분(10km)

무주리조트-안성매표소 택시요금 20,000-25,000원

 

 

산하 가족들의 산행기를 보며 그 환상적인 설경에 매료 되어

일주일 내내 꼴깍꼴깍(침넘어가는 소리)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어!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만다. 
 

어디로 가든지 가긴 가야겠는데 어디로 갈까?

태백산.. 덕유산.. 지리산.. 백운산..

그중에서 환상적인 설원의 덕유산종주기가 당연히 마음을 자극한다. 
 

“그래 덕유산으로 가자. 그것도 육십령에서 삼공리까징 함 엎어져 보자”혼자 중얼거리며

꼭지에게 출발 선언을 하는데 꼭지 왈

“나도 같이 가자”

“후~~~웅, 머라꼬? 당신 누구 결혼식 때문에 산에 못 간다고 했잖아?” 
 

따라 나서겠다는 꼭지를 만류할 수 없어 결국 종주를 포기하고 육십령대신 안성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덕유산에만 가면 오늘은 태워주나.. 오늘은 태워주나..

칭얼대며 노래 부르는 꼭지의 소원이 있으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설천봉에서 곤도라 타고 하산하는 것이라는데..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어디 산 사람 소원하나 못 들어주랴 싶어

오늘은 꼭 들어주기로 속으로 다짐 한다.

“사랑방도 꼭지 덕분에 한번 타보고 싶기도 하고~~@@“


 

새벽 5시 대구를 출발, 88고속도로 거창을 지나니 어둠속으로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리기 시작하는데 도로는 곳곳이 빙판으로 변해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

제설차가 다니긴 해도 이른 새벽이라 제설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늘 그렇듯이 꼭지는 밤새도록 자고도 모자라 또 잠에 열중이다.

ㅋㅋ~ 미인은 잠이 많다? 헐~진짜 미인 들으면 엄청 섭섭할 긴데.. 어쨌거나

도로가 빙판이던지 자동차가 미끄러져 곤두박질치던지 잠든 꼭지는 알 수가 없을 테지만

운전하는 본인은 아찔아찔 산행도 하기 전에 벌서 진이 다 빠지는 꼴이다. 
 

오늘따라 해병대부부도 혼자 고생 좀 해보라며 쏙 빠지니

어쩌랴~ 혼자 빙판길을 새가슴 조이며 운전할 수밖에..

하지만 88을 지나 대진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제설작업이 잘되어 도로가 말끔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함양휴게소에 도착하니 하얀 눈이 사르륵사르륵 더욱 많이 내리고 있다.

정원의 나뭇가지에는 눈꽃이 만발해있고 주위 산들 또한 백설에 덮여

마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운무 속에서 보일락 말락

하얀 이불을 끌어당기는 듯 한 산야의 풍경이 더욱 애간장을 태워 가슴을 설레게 하니

마음이 다급해 우동을 먹는둥마는둥 휴게소를 빠져나온다. 
 

덕유산I.C를 빠져나와 좌회전하여 안성읍내에서 우회전하여 안성매표소를 향해

좁은 지방도로에 접어드니 이곳부터는 도로가 또 온통 빙판이다.

벌써 승용차한대가 미끄러져 노견 수로에 빠져있다. 
 

조심조심~@@

안성매표소에 도착해 안도의 한숨을 지으니 멀리 가야할 산야는 운무 속에 가려

더욱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안성매표소>

 

미리 스패츠를 착용하고 간간히 날리는 눈발 속으로 초입에 이르니 등로엔

이미 눈이 2-3센티 쌓여있고 잘생긴 적송위에도 하얗게 쌓여 그 위엄을 더해준다.

고고하면서도 부드럽고 고운 자태의 쭉쭉 뻗은 적송은

하얀 설경과 더불어 휑하니 텅 빈 가슴에 선선함을 불어넣어주니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미끈하게 잘빠진 적송의 엉덩이>

 

행여나 그 신선함 다시 날려갈까 길게 심호흡을 한다.

칠연계곡의 비경과, 여인을 닮은 곡선미 이쁜 적송과, 상쾌한 산죽의 어우러짐이 좋고

앞서가는 꼭지의 발자국소리까지 뽀드득 뽀드득 감미로운 음률로 다가온다.

 

 


겨울에는 언제나 능선 내내 흰 눈을 밟을 수 있고 유난히 산죽이 많은 덕유산

산죽을 좋아하기에 사철 내내 덕유산의 능선을 잊을 수 없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구간구간 등로 좌우엔 하얀 눈을 이고선 산죽이

무거움에 고개를 숙이고 반겨준다.

 

동엽령이 가까워질수록 등로에 쌓인 눈도 깊이를 더해가고

바람도 잠잠하고 날씨도 봄날같이 포근하여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꼭지를 스틱으로 잡아당기며 마지막 나무계단에 땀을 쏟으니 동엽령이다.

 

 <동엽령>


제법 살살한 찬바람이 눈보라와 함께 온몸을 휘감으며 달려들고

운무는 끝없이 이어진 마루금을 숨겨놓은 체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덕유의 그 넓은 품을 두루 조망할 수 없어 아쉬움이 따른다. 
 


 <설경에 취한 꼭지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젖어든다.>

 

적막의 고요가 흐르고

산죽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눈의 무게가 태산일 텐데

산죽은 허리가 고꾸라지도록 온몸으로 받아드리며 그 무게를 지탱하고 서있다.

 

 <백암봉 가는 길의 엷은 상고대>

 


한 줌 바람에도 금방 쏟아져 내릴까

행여나 산죽을 시기하는 솔바람이 춤을 추며 불어오지 않을까

걸음걸음 안타까움이 앞선다.


세상의 모든 시름이 눈 속에 녹아드니 또 종주의 유혹이 다가온다.

산불경방이 시작되기 전에 온몸을 던져 마음 것 뒹굴고 싶은 설원의 풍경 속으로

육십령에서 하루 종일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백암봉오름길.. 약간의 돌너덜이 이어진다.

작년 봄 해병대와 육십령에서 종주 할 때는 백암봉과 중봉이 무척 힘들었던 구간으로 기억되지만

오늘은 별로 힘든 줄 모르고 오르는데 꼭지는 여전히 힘이 든 모습이다.

 

 <백암봉에 세워놓은 이정목>

 

 <중봉 가는 길1>

 


 <중봉가는 길2>

 

 <중봉가는 길3>

 

상고대가 활짝 피어있는 중봉

이곳은 애처로울 정도로 삭풍에 몸을 맡겨 피운 상고대가 고운 빛깔로 객을 맞이한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아름다운 산죽과 엷은 상고대가 피어있는 능선길

 

 <중봉의 상고대>


“매화야! 너도 화사한 꽃이지만 상고대 앞에선 꽃이라고 뽐내지 마라”라는 말이 있듯이

상고대의 그 전설적인 빛깔이야 말로 조물주가 아니고서는

창조할 수 없는 자연의 대 서사시가 아니겠는가.

 

 

포근한 날씨 때문에 상고대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망하지 않고 따뜻함에서 여유를 부리는 나무들이 좋아 보이고

하늘을 찌를 듯이 하얀 설원에 뾰족이 솟아있는 고사목이 된 주목 또한

많은 산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준다.

 

 <천년의 억겹에 몸을 맡기고 있는 주목.. 그것을 담는 렌즈속의 그림은 어떠할까 자못 궁금해진다.

  하지만 혼신을 다해 바라보는 저분의 마음에서 그림이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산죽길을 걸어오는 꼭지의 평온한 모습에서 자연의 고마움을 느낀다.>

 

 <헬기장을 향한 문으로 산죽이 산들바람에 눈꽃을 털어내며 객의 눈길을 끈다.>

 

봄에는 철쭉으로

여름에는 원추리군락으로

겨울에는 하얀 설원과 상고대로 등산객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덕유평전

그 사철 갈아입는 옷도 예쁘지만 그 옷을 디자인하는 자연의 섭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향적봉 대피소를 향한 풍경>

 

대피소에 도착해 나무 탁자에 느긋하게 폼 잡고 앉아 라면을 끊인다.

라면 두개를 먼저 끊여 반쯤 먹고 햇반을 넣어 또 끊이면 라면 죽(?)이다.

그 맛이란~~@ 산정에서 먹어 본자 만이 알뿐..

대피소에 컵라면을 팔긴 하지만 그 맛이 어디 라면죽(?)에 비길 손가.


 

마지막으로 커피까지 한잔.. 세상에 부러울 것이 뭐 있으랴.

향적봉에 오르니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정상석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어

꼭지의 뒤모습을 담고는 설천봉으로 내려선다.

 

 <덕유산 향적봉>

 

 <칠봉을 향한 능선을 독차지하고 있는 스키장의 슬로프>

 


한 번도 곤도라를 타보지 못한 우리부부 오늘 그 소원을 풀며

비록 6시간여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산죽에 마음 빼앗기고

설경에 취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끝-


~ 감사 합니다. 산사랑방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