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드문 깊은 산중에 아주 착한곰이 한마리 살고
있었대네 .
어느날 약삭빠른 나무꾼이 그만 부지불각중에 착한곰과
마주치고 말았다.    나무꾼은 이솝우화 정도는 충실히
읽었고 또 그 묘미도 터득한 터수인지라 재빨리 죽은체
나자빠지니 착한곰은 일부러 뒈진  나무꾼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양지바른  명당 자리에 정중히 장사 지내 주었대나
뭐래나.


뭔말인고하니 신년들어 만사형통이 아니라 만사가 얽힌
실타래처럼, 놀부의 비틀어진 심사처럼 꼬이기만하는
머피의 법칙이  화성의 연쇄 살인범처럼 객의 주위를 맴돌면서
이래저래 힘들게 하기에 푸념이 떨어질 날이 없다.
한번 늘어놓아 볼작시면 같은 장소에서 직원들과 운도
시험할겸해서 단체로 로또인지 노또인가를 구입했는데
다들 최소 본전은 건졌노라며 희희낙낙 인데  유독 객만
헛탕이고 점심내기 족구라도 한판 벌일 량이면 판판히
지기만 해 점심을 책임지더니 결국은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으니...


10시가 넘어 친우넘들의 술자리에 빈객으로 섭외되어 호기롭게
풍도를 자랑하다가 급기야는 도가 지나쳐  남의 못고지(연회)에
계배를 몽땅 객이 덤터기 쓰고는 상추밭에 똥싼 개꼴로
집으로 들어서다 문턱도 못넘고 곁에게 쫓겨나 졸지에
노숙자 신세로 까지 몰렸으나 다행히 두예삐의 훈수를입어
엄동설한에 강시날일은 겨우 면케 되었더라.


오늘 산행도 그랬다.
한양에서 요원처럼 번지는 불수사도북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우리 향골의 매화 가야 악견 금성  황매산  연계  종주를
개척 하고픈 욕심에 우선 일차 정지 작업으로 금성 악견 허굴
황매산을 종주차 나섰으나 결과는 등창에 왕소금을 비빈듯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니 이 아픈날 콩밭 먹은 놈처럼
그런 쓰린 아픔이 없다.


계모임으로 늦잠을 잤나부다.
불불이 허수아비 마고자 걸치듯 대충 줏어 입고는 마당으로
나서니 코끝에 풀풀거리는 바람이 찌푸린 하늘에 고춧가루를
풀어 놓은듯 시원해 석삼년이 다된 만성 코막힘이 순식간에
뻥 뚷려 시원하기 이를데 없다.
간밤 모임에서 후배들의 과한 대접(?) 을 받은 곁은 치마를
뒤집어 쓰고 여즉 한밤중인지라 예삐들의 조막만한 새콤한
귤 몇개와 빵 두어낱으로 보따리 얕게 꾸려 발새 익은 길을 나선다.


오늘은 순서를 조금 바꿔 금성  황매  허굴 악견순으로 오르기로
작정하고 대원사 입구 노둣돌에 난테를 안돈 시키고는 물장사
궁둥이 짓으로 갈짓자를 지으며 허적허적 기어 오른다.
늘상 다니는 길인지라 눈감고도 오를수 있으나 산 4개를 올라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우선은 컨디션 조절에 신경 쓰며 서두름을
억제한다.


하늘은 심통난 방자처럼 볼이 잔뜩 부어서는 들숨 날숨이 강팔라
사나운 기세가 자못 중중하다.
바람 가득한 정상을 곧바로 내려와 휴게소 매점에 들러 어묵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는데 매점 누님이 이런 날씨에 웬 산이냐며 걱정
섞인 퉁박을 준다.
따끈한 국물로 대강 어한을 하고는 선불맞은 멧톹처럼 모산재로
달려간다.


난테를 노둣돌에 묶고 문을 열려고 하니  어찌나 바람발이 거센지
차문이 선뜻 열리지가 않네 .
감발에 짚신을 단단히 죄고 돈피배자와 털토수를 깊숙히 껴입고는
거보를 내디뎠으나 천려일실 그만 양휘항(털모자)을 빼먹었으니
항차의 일이 어찌될꼬 ?


초입의 등로는 사찰이 소유권을 주장해 두어발 안쪽의 지계곡으로
새로이 길을 내어 놓았다.
길은 만들었으되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어디로 가라는 겐지..
험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관광차가 어른거리더니 장마통에
악마구리 끓듯 한다리로 몰려들 온다.
어찌하다보니 콩나물 무침에 장아찌  끼듯 묻혀가게 되었는데
객과 비슷한 컨츄리풍의 입성이 어울렁 더울렁으로 맘에 대단 흡족하다.


바쁜 군자 소로행이라고 연신 미안하단 소리를 콩심는 시늉으로 주억
거리며  그들을 지나쳐 황포돛대에 닿으니 허 .. 이무신 괴변이란
말인고 ?
쓰나민가 뭔가하는 동남아 해일의 영향인가 아님 태풍 매미의 후유증
인가 뻣뻣이 서서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강풍이 사정없이 몰아쳐
발길에 채인 남생이 목처럼 잔뜩 움추러 바위 등걸에 착 달라붙어 우선
급한불을  모면한다.


장골이랍시고 자처하는 객의 꼬락서니가 이정도이니  노약자나 여자분은
두말할 나위도 없어 대부분 불불이 발길을 돌려 하산을 서두른다.
어찌어찌 무지개 터에 닿으니 천하명당의 영향으로 바람이 조금 눅고
선객 두어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앉아있다.
숨을 돌렸다가 정상으로 오르니 사정없이 밀려드는  강풍...
원망스레 황매산을 한번 쳐다보고는 자신이 없어 발길을 돌린다.


순결바위쪽은 무인지경의 북사면이 그대로 바람에 노출되는지라 다시
온길로 방향을 다잡는다.
아까 잠깐 언급이 있었지만 양휘항을 놓고 온탓에 드는 칼로 귓볼을
잘게 다지듯 끊어지듯 아프다.
연신  비비고 주무르며 온기를 붙여보려 했으나 선자령의 바람과
어금버금 하는 형중이고 보니 별무효과더라.
황포돛대로 주춤주춤 내려서니 또다시 가늠키 힘든 강풍이 몰아쳐
까딱하면 바위 아래로 밀려 낭패보기 십상이더라.


개비리 특공의 경험을 살려 오리걸음으로 뒤뚱거리며 내려서니
되돌아서는 수많은 발길이 엎치락 뒤치락 어울려 좀체 보기 힘든
정체가 이어진다.
모다들 바람 때문에 산행을 포기하기는 첨이라며 요런 쬐끄만 산이
웬 행짜가 그리도 자심하냐며 한마디씩 인사를 잊지 않는다 .
비맞은 중처럼 혼자 궁시렁 숭시렁 거리며 내려선길이 어느덧
주차장에 닿으니 삭풍에 갈기털이 뭉청 빠진 난테의 황량한 목자가
을씨년스럽다.


아쉬운 맘에 허굴산과 한판 더 겨뤄 볼까 생각 했으나 이미 김이 빠져
대세가 기울었고 용바위 (허굴산 제1경) 에서 바람에 자빠지기라도
한다면 먹성좋은 두예삐와 몸피 좋은 곁은 어이할꼬 싶어  그토록
간절했던 양휘항을 깊숙이 눌러쓰고는  하릴없이 징을 쳐 퇴군령을
내린다.
목욕재계하고 서방의 큰꽤와 안위를 걱정해  정화수 받쳐놓고 간절한 치성에
여념이 없는 곁에게 손폰으로 원효의 도를 얻어 해골물 들고 하산한다고 하니
곁은 화돌짝 놀라 어디 다친게 아니냐며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난테 재촉해 끄덕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나 아직  중화참이 겨울 뿐이더라
후담이지만 다음의 월요일은 어찌나 따뜻하고 날이 좋은지 ..
복 많은 년은  자빠져도 가지밭에 엎어지고 복없는 년은 봉놋방에 누워도
고자옆에 눕는다는 말이 참말이지 희언만은 아닌지 알겠더라.
시간은 한낮이나 객의 어수룩한 마음은 벌써 저녁이 늦었더라.


         2005년 1월16일          진맹익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