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장딴지가 너무 부어올라 무릎을 구부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으니 하는수 없이 집안에서 제일 조그마한 막둥이의 초등학교 시절 책상의자를 욕실 안으로 밀어 넣고 등산화의 외피에 묻은 먼지를 물로 씻어 대충 제거하고 샴푸를 묻힌 솔질을 시작한다.
방수막이 손상될까 싶어 부드러운 솔로 가볍게 살살 솔질을 하던중 기브스한 새끼 손가락끝이 세숫대야에 부딪쳐서 움찔한다.

"뼈가 완전히 굳으려면 최소 4주 동안은 불편하셔도 잘 참으셔야합니다."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기구운동은 해도 될까요?"
"기구..??"
"아! 제가 헬스클럽에 다니거든요.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체력단련운동은 할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건 선생님의 상태로는 건강을 해치는 행윕니다."
노의사의 단호한 한마디에 앞으로 견뎌야할 지리한 구속의 시간들이 더 멀리로 달아난다.

-추락-
머리에서 부터 온몸에 이르기까지 시퍼런 멍과 타박의 상흔을 남기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골절시킨 그 산과 암릉과 심연처럼 깊어만 보이던 계곡을 생각하곤 소스라치게 몸을 떤다.
손잡이가 만만치 않아 왼손이 불안한 상태로 로프에 의지하여 암릉에 오르는 순간, 때마침 잠깐 맑아진 푸른하늘 위로 흡사 살얼음 처럼 차갑던 구름을 가로질러 내게로 뻗혀진 로프는 이미 결속부위 바로 아랫부분이 3분의2 이상 날고 헤여져 마치 하얀 비둘기의 날갯깃 처럼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위태롭게 펄럭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순간 너무도 어이없게 눈앞에서 맥없이 끊어져 버리는 로프, 너무도 또렷이 머릿속 깊이 인화된 분리되는 로프의 모습에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큰일났다." 싶음과 동시 언젠가 TV에서 본듯한 암벽에서 추락한 끔찍한 형상이 생각나고 이내 무엇인가 붙잡으려고 필사적으로 팔을 버둥대었다. 온몸에 생긴 상처의 정도를 비교하여 곰곰히 생각해보니 로프가 끊어진후 4~5m를 추락하다가 맨처음으로 오른쪽다리의 장딴지부위와 배낭의 오른쪽 그물주머니에 넣었던 보온병이 어느 나무와 1차 충격하였고 이어 1~2m를 다시 추락하다가 소나무 가지에 오른쪽 머리 귀의 윗부분과 오른손을 2차 충격하였다. 그때 무엇인가를 버둥대던 왼손에 잡긴했는데 이내 미끌어지고 다시 추락하여 누워 하늘을 보는 자세로 머리는 계곡쪽을 향하고 땅에 3차충격하였는데 그때에 다시 왼손에 손가락 정도의 가느다란 나무줄기가 잡혔다. 다행스럽게도 그 작은 나무줄기의 도움으로 계곡으로 향해 추락하던 몸의 자세가 90도 정도 회전하고 오른손목에 걸고 있던 스틱과 길게 가로 뉘어진 몸이 작은 돌부리와 나뭇가지등에 걸리며 미끌어짐을 멈췄다.

-탈출-
2차 충격을 머리로 받아내서인지 멍한 상태로 잠시 누워있는데 벼랑위에서 일행의 다급한 외침과 "박수한씨!"라는 부름이 들려오는데 말을 할수가 없었다. 머리만 살짝 들었는데도 몸이 계곡쪽으로 미끌어지는 위태로운 상태라보니 말한마디가 무서울 정도였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발 아래로 1m 정도 떨어진 거리에 계곡쪽으로 어른 정강이 정도 굵기의 소나무가 두그루가 있어 여차직하면 그놈만 죽어라 붙잡아도 목숨을 구할수 있을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왼손에 잡힌 나뭇줄기가 단단하여 상체부위는 안정이 되었는데 발쪽으로는 돌부리라도 찾으려고 이리저리 살살 발을 휘저어보아도 걸리는게 없으니 다시 미끌어질까 불안하다. 다시 오른손쪽으로 잡을것을 찾아 눈을 돌리는데 허공에 들려있는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이 우측으로 85도 정도 꺽여있다. 마침 오른쪽에 키작은 떡깔나무 가지가 있어 그줄기를 붙잡고 몸을 조금씩 이동하면서 발딛을 자리를 찾아 몸을 안주한후 젖혀진 손가락을 제자리로 당겨 놓는데 아무런 감각도 느낄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간신히 불안하게 소리치며 나를 찾아 계곡을 내려오는 일행들에게 내 위치를 알리고 탈출로를 찾기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10여m정도 위로 어른거리는 사람그림자가 보여서 우선 몸을 뒤집어 업드린후 바위밑으로 기어가며 올라갈 길을 물으니 벼랑 오른쪽으로 기어올라올 만큼의 통로가 있다고 한다.
탈출로가 확보되니 그제서야 안경이 벗겨져나간걸 알게되어 주위를 살펴보니 핸드폰도 안경도 바로 근처에 고스란히 있다. "이게 어찌 손상도 없이 바로 근처에 있었는가?"싶게...
안경을 쓰고 벼랑의 오른쪽으로 기어올라 다시 암릉에 오르니 서너명의 일행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

-응급조치와 하산-
그중 함께 동행한 일행이 아님에도 부목을 대고 고무줄을 찾아내어 손수 손가락을 고정시켜주신 이름모를 산우님과 산행이 끝난후 스프레이파스로 응급조치를 취해주신 분, 석고붕대를 찾아주셔서 마무리 조치를 취하도록 도움을 주신 여러 산우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 얼굴을 대신하여 기억에 생생하다.
가까스로 탈출한 낭떨어지의 벼랑위에서 추락지점으로 다시다가서서 내려다보니 아득하니 어두운 계곡이 입을 벌리고 아쉬운 눈길을 보내는것 같아 등골에 서늘한 바람이 인다.
몸을 추스리고 다시 하산을 코스를 어림잡으니 저 뒷편으로 백지마재의 753m 봉우리가 보이고 전방으로는 서원리방면의 들판이 봉우리 사이로 언뜻보인다.
다행스럽게도 하산지점이 멀지 않은것 같아 마음이 놓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쪽 장딴지의 1차 충격부위가 부어올라 걸음이 불편해진다.
처음 한동안은 상처가 있는줄도 모르고 걸었는데 뭔가 장딴지에 걸리는 느낌이 있어 몇번인가 바지위로 쓰다듬다보니 상처부위가 닿아 쓰라리고 아프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지를 걷어보니 검붉은 핏멍이들고 나뭇가지에 찟긴 부위에 피가 배여있는데 충격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장딴지 윗부분이 팽팽하게 부어올라 걸음이 불편할 정도가되었다.
스틱을 왼손으로 바꾸어 들고 불편한 왼발에 쏠리는 하중을 분산하며 조심스레 걷다보니 일행들과의 행보가 맞이 않아 뒤쳐지기 시작할 즈음 저만치 산아래로 우리를 기다리는 대형버스가 보인다. "하산지점이다." 기쁨의 탄성도 잠시 긴장이 풀리며 온몸 여기저기 생겨진 상처의 쓰라림이 엄습한다.
6시간30분간의 산행의 끄트머리엔 고즈넉한 산골마을의 어둠과 구수한 버섯찌게와 곁들인 달콤한 저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추락에서 오는 통증과 긴장과 상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음은 저 먼 북서쪽 검붉은 낙조가 퍼덕거리는 인천의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흡사 상처입은 짐승의 "귀소본능" 그것처럼...

 

물기를 빼기위해 욕실 한쪽 벽에 등산화를 기대어 놓고 서재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앉으니 창밖 산자락에 잔설이 어른거린다.
충북의 알프스, 구병산 능선에서 만난 서설처럼 신비로운 흩날림의 뒷편에서 부터 다시 내 마음 한 자락에 성큼 들어오는 산...
조용하고 다정하게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너 조심해!" "다음번엔 국물도 없어!!" 라고 말하는것 같다.

 

[산행 초입에서]
 

[가느다란 눈발에 가려서 뒷편 봉우리는 보이지도 않고]
 

[정상의 표석에서 이은필님과]
 

[이은필, 박창호님]
 

[이진택, 이한복님]

[이철재님 부부]

 

[소나무에 핀 설화]
 

[설화가 곱게 핀 소나무를 배경으로]
 


[이은필님의 한 폼]




[이 사진을 찍고 얼마안가서 추락사고 발생...ㅠ.ㅠ]

이제 산행일기를 작성하면서 카메라에 담긴 이미지를 정리하다보니 놀랍도록 아름다웠던 구병산의 절경이 눈앞에 생생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산을 함께 종주하신 부평산악회 산우님들과 산하사랑 가족들의 건투를 빌고
이 지면을 빌어 어려운 순간,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신 이름도 모를 고마운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리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