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 강건하세요!


             푸른 물결 넘실대는 섬산 적대봉


 하루쯤 시간을 내어 배를 타고 바다 물결을 가르며 섬산을 찾아 산행을 즐기고 횟감을 먹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럴만한 산이 바로 전남 고흥의 적대봉(積臺峰)이다. 이 산은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巨金島)에 위치한 해발 592m의 섬산이다. 녹동 선착장에서 금진이나 신평까지 금산농협철선을 타고 가서 적대봉에 올라 푸른 물결 넘실대는 다도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연락선 배는 수시로 있지만 출발 시간과 섬 안에서의 차시간을 알고 산행을 해야한다. 필요하면 승용차를 배에 싣고 가 편리하게 이용해도 좋다. 배에 올라 뱃전에 부서지는 흰 물결을 바라보며 일행과 한담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선창가에 다다른다.


 그러니께, 거 뭐냐. 옛날 옛적에 북한강에 처녀 뱃사공이 있었제. 그런디 어느날 시골 선비 한나가 이 처녀 나룻배를 타고 가다 무료하고 심심헝께 슬쩍 음심을 깔고 수작을 걸었제.


 "어허, 강바람도 좋코 처녀 뱃사공의 배 위에 올라타니 거 참 기분이 좋쿠나. 배 위에서 배를 타면 금상첨화요 정말로 좋을텐디…"


 선비는 처녀를 살짝 곁눈질해 보았제. 처녀 뱃사공은 그 말을 듣자 선비의 마음을 알아채고 속으로 괘씸히 여겼제. 처녀는 그저 아무 대꾸도 없이 노만 저으며 강을 건너가고 있었제. 반응이 없어 그렁께 또 선비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말을 내뱉었제.


 "어허 좋쿠나. 좋아 처녀 뱃사공의 배 위에 올라타니 거 참 좋쿠나. 이렇게 미끄러지듯 배 위에서 배를 타면 얼마나 좋을꼬."


마침내 배가 뭍에 당도해 선비가 내리자 아무 말도 않고 있던 처녀가 한 마디 했제.


 "에이 좋쿠나, 뱃속에서 그렇게 속썩이던 못난 놈이 뱃속에서 나가니 참으로 좋고 시원하구나."


 거금도 섬은 꽤나 큰 산으로 바다에 떠있는 고래등같은 산이다. 이 산은 고흥군에서 팔영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며 해안선 길이만도 53.5km나 된다. 이 섬은 조선시대에 도양목장(道陽牧場)에 속한 목장의 하나였던 관계로 '절이도'(折爾島)라고도 불렀다. 이 곳은 기후가 좋고 군말을 쓸 순종을 보존하는 데 적합하여 적대봉을 중심으로 30리 가량 돌성을 축조해 116마리의 방마를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섬 안에 큰 금맥이 뻗어있어 거금도라 하였는데 조선조 중기에는 거억금도(巨億金島)라고도 하였다. 지금도 산자락 마을 지명에 고락금(古羅金), 욱금(旭金), 전막금(箭幕金), 진막금(眞幕金), 청석금(靑石金) 등 금맥과 관련있는 이름이 남아있다.


 그리고 지형적 특성인 섬산이기에 높은 봉우리를 갖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비상연락을 할 수 있는 봉화대가 있다. 그래서 지금도 정상에는 원형에 가까운 봉수대가 남아있어 이 곳이 옛날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게 해준다. 섬산 등산은 시간과 교통편이 잘 어우러져야 실수하지 않고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섬산의 독특한 낭만과 넘실대는 바다의 해풍을 맞으며 넓은 마음을 활짝 펼쳐 심호흡을 하면서 하루를 즐길 수 있다.


 산행은 성치(城峙)마을에서 시작한다. 마을을 지나 임도를 타고 파산재에 이른다. 여기서 이 고개를 넘어가면 금장마을과 금장해수욕장까지 갈 수 있는데 이 섬의 유일한 남북 횡단도로이다. 고갯마루에서 좌측으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한다. 자꾸 바다를 내려다보며 발아래 펼쳐진 바다 풍경을 만끽한다. 가슴이 확트인다. 땀을 흘리며 능선 지맥 마당목치 등성이에 올라선다. 이마에 흘린 땀을 씻으며 물병에 담긴 녹차물을 꿀꺽 꿀꺽 마신다. 역시 바다가 연접한 산은 바다의 정취에 맛을 느끼기에 좋다. 


 특히 이 곳은 가을이면 억새가 우거져 그 사잇길을 달리며 날 잡아봐라 장난치면서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억새꽃 핀 가을날에 다시와서 바다의 낭만을 맛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행을 즐긴다면 오늘의 기분보다 더할 것 같다. 북동쪽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이르면 숨이 찬다. 마치 벽돌을 쌓은 것처럼 잘 축조된 이 봉수대는 지름이 7m 정도요 둘레는 34m, 높이는 3m 가량 된다. 이것은 조선 중기 연산군 8년(1502)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봉수대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북쪽으로 천등산과 마복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완도와 천관산, 남쪽으로 거문도, 동쪽으로 여수 일대의 바다와 섬들이 보이며 날씨가 좋으면 제주도도 보인다. 겨울바람이 세차다. 여기서 아늑한 곳을 찾아 일행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맛있는 김장 김치와 풋고추나 마늘에 된장을 찍어 먹어도 좋다. 따끈한 유자차 맛이 뱃속에 싸르르 전해진다. 식후에는 감귤도 까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마음은 상쾌하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날아갈 듯하다.


 시간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휴식하고 서서히 하산 길에 이른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좌측으로 길을 접어든다. 길을 따라 어느 정도 내려오면 벌목을 하여 만든 길이 훤히 뚫려있다. 오천마을 금산동중학교가 있는 곳으로 100분 정도 걸려 하산한다. 이 곳 오천리 바닷가는 해안을 따라 둥근 조약돌이 펼쳐져 해변의 정취를 더해주는 곳이다.


 하산 길을 파산재로 내려와 송광암과 면소재지 중촌 마을이 있는 곳으로 잡을 수도 있다. 그럴러면 남쪽 금장 쪽으로 고갯마루를 넘자마자 우측 임도를 따르다 능선 날등으로 올라 조그마한 능선을 하나 넘어야 한다. 한참을 가다 산죽이 우거진 곳을 지나 잔디가 잘 자란 능선 고갯마루를 지나 갈림길에서 좌로 접어들면 암자까지 갈 수 있다. 암자부터는 마을과 연결된 시멘트 포장도로다. 여기는 섬산이고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정상에서 하산하면 여유롭게 2시간 남짓 잡아야 하고 배 시간과 여러 형편을 고려해야 한다. 하산 후에 솔잎향나는 막걸리나 소주 한 잔에 횟감을 먹는 맛은 산행인들만이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이 산자락에 있는 송광암은 송광사의 말사로 고려 신종 3년(1200)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이후 9차례 중수한 암자인데 현재의 모습은 1989년 원공화상의 불력과 모기업체의 정재 그리고 면민들의 불심으로 복원되었다. 대나무 숲과 고목으로 둘러쌓인 이 암자는 바다와 자연이 어우러져 그 풍광이 아름답다. 이 곳은 옛날 보조국사가 모후산에 올라 터를 찾기 위하여 나무로 조각한 새 세 마리를 날려보냈는데 한 마리는 송광사 국사전에, 한 마리는 여수 앞바다 오금도에, 그리고 또 한 마리는 이 곳 송광암에 앉았다고 하여 삼송광이라 부른다.


 이 거금도에는 그 경치가 아름다워 남해바다와 송강암, 적대봉을 중심으로 '거금팔경'이라고도 하는 금산팔경(金山八景)을 일컫는 말이 있다. 
 
  積臺歸雲   적대봉 흰구름은 때때로 돌아와 비를 뿌린다.



  松庵暮鐘   해가 지면 송광암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蓑峰落照   지는 해가 사봉에 비치면 노을이 아름답다.



  蓮沼秋月   옥룡 연소산 위의 가을달은 맑기만 하다.



  竹島觀魚   대나무 그늘 아래 물고기는 유유히 헤엄친다.



  輞川春雨   봄비에 잠이 깬 냇물은 휘돌아 흘러간다.



  石橋落雁   금산 돌다리에 기러기는 가을을 알린다.



  月浦歸帆   달빛 비치는 바다에 돛단배가 돌아온다.


 여름에는 적대봉 산행과 해수욕을 생각하고 준비해 아예 1박 2일 정도로 계획하면 남쪽 바닷가 익금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이 곳의 수심은 2-3m로 바닷속이 훤히 내다보인다. 이렇게 맑은 물과 울창한 방풍림을 배경으로 길게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 은빛백사장에서 하루쯤 즐겨도 좋을 성싶다. 잠시 속세를 떠나와 자연과 더불어 숨쉬면 진정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정말 사람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구나. (2004.01.10) *





▣ 김정길 - 항상 그리운 남도의 명산을 소개하시는 박욱규님의 산행기 빠짐 없이 탐독하고 있습니다. 2002년 3월 14일 온종일 비오고 차가운 강풍, 비옷을 입고 덜덜 떨며 올라 봉수대에서 카메라가 비에 젖었던, 사방중에 한방도 조망을 하지 못하고 여객선 속에서 몸을 녹이며 소록도 옆을 지나온 기억이 떠오릅니다. 다시 가 봐야 할 산입니다. 박욱규님의 산행기를 복사하겠습니다. 건강하신 가운데 남도의 좋은 산 많이 다니시며 산행기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 본인 - 졸필을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수필 형식으로 좀 더 보완 정리하려고 합니다.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