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간월산-신불산-영취산 종주기

 

               *산행일자:2004.11.20일
               *산높이  :간월산 1,083미터/신불산 1,209미터/영취산 1,059미터
               *소재지  ;경남 양산시/울주군/울산시
               *산행코스:배내고개-간월산-신불산-영취산-죽바우등-백운암-통도사주차장
               *산행시간:4시48분-12시 40분(7시간 52분)

 

작년 11월 능동산-천황산-재약산등 서쪽의 영남알프스를 종주한 지 일년만에 어제 다시 영남알프스를 찾은 것은 아직도 오르지 못한 동쪽의 연봉들인 간월산-신불산-영취산을 밟고 싶어서였습니다. 지난해에는 사자평에 안개가 자욱히 끼어 억새 밭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하산해서 아쉬움이 진했기에 맑은 날씨에 종주를 하는 이번 산행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어제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영남알프스의 연봉들을 오르내렸습니다.
그제 밤 10시에 고교동창인 이 규성교수의 환송을 받으며 사당을 출발,  새벽 4시 18분 언양 톨게이트를 빠져 나왔습니다.  30분 가까이 지방도로를 더 달려 해발 640미터대의 배내고개에 도착, 짐을 챙겨 산행준비를 끝내고 아침 4시 48분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혀 배내봉으로 올라서는 들머리에 들어섰습니다. 출발 30여분 후 해발 966미터의 배내봉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왼쪽의 산밑에 자리한 언양읍의 야경만 눈에 잡힐 뿐 칠흑 같은 어둠이 조금도 가시지 않아 사방이 캄캄했습니다. 다행히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포진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밝게 빛냈습니다.

 

6시26분 해발 1,083미터의 간월산에 올라섰습니다.
작년 7월 강원도의 청옥산을 올라 통산 100산을 등정한 후 꾸준히 새로운 산을 찾아  200번째 오른 산이 바로 여기 간월산입니다. 제게는 200산 등정이 맥주라도 마시며 자축을 하고 싶을 만큼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912봉을 트래파스해 안부로 내려섰다 치받이 길을 치고 올라서 배내봉 출발 1시간만에 간월산 정상에 이르렀는데 고현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정확한 산 높이를 알려주어 고마웠습니다. 산악회에서 이곳에서 일출을 볼 수 있도록 산행시간을 조정했다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한참을 기다려야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동안 동해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땀이 식어 체온이 급강하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간월재로 발걸음을 옮겨 몸을 데웠습니다. 놓칠세라 해 오름 직전의 동해의 붉음을 카메라로 연신 잡았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멈칫하는 사이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둔 영업본부장을 만났는데  서울에서 한 차를 타고 왔다 하니 좁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간월재에 내려서자 가슴팍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매서웠습니다.
아직은 가을인가 싶었는데 등산로에 얼음이 얼어 있어 앞으로는 겨울산행을 제대로 채비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울주군에서 설치한 탐방로가 간월재에서 신불재까지 이어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느라 황폐해진 등산로를 정비해 다시 내고자 이곳 간월재에 알루미늄자재를 상당량 쌓아 놓았는데 당국의 환경보존에 대한 열의를 읽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산마루에 올라서 지나온 간월산과 그 주변의 억새 밭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간월산의 허리를 동강낸 도로가 보기에 흉해 도로의 용도가 과연 무엇일까 알고 싶었습니다. 천성산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고속전철의 통과를 결사 저지한 환경운동가 들은 허리를 짤라내고 도로를 낼 때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기에 막지 못했는지 궁금했습니다.

 

7시 40분 영남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 1,209미터의 신불산에 도착했습니다.
신불산 정상에 도착하기 10여분간은 길이 평평하여 걷기에 아주 편했습니다. 정상에 쌓여 있는 제법 높은 케륜이 이 산을 찾는 산 꾼 들의 소원을 모두 수리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 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배내고개에서 시작된 주 능선의 동쪽 사면은 야간산행이 매우 조심스러울 만큼 급경사의 낭떠러지인데 반하여 그 반대사면은 경사가 완만한 고원에 군락을 이룬 억새 밭이 장관이었습니다. 아직도 정상에서 약주를 찾는 산객들이 많이 있어 장사가 될만 하기에 주인 아주머니가 이 산상에로 땀흘려 등짐을 지어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8시8분 신불산 정상을 출발, 해발 980미터대의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동쪽으로 내려서면 가천 마을입니다. 마을주위의 산골짜기를 가득 채운 안개가 한 폭의 동양화와 같아 주변의 작은 저수지와 함께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이번 산행 중 만나는 최고의 억새 밭은 신불산-영취산 사이의 광활한 평원입니다. 몇 개의 커트만으로는 드넓은 억새 밭을 전부 잡을 수 없어 사방을 둘러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이곳의 억새들은 명성산의 억새보다 키는 낮은 듯 하지만 식생하는 넓이는 그 산에 비교할 바가 아닐 정도로 광활했습니다. 그런데도 신불산에서 영취산까지의 2.95키로의 거리에 펼쳐진 이곳의 억새평원이 사자평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지도에 나타나 있어, 그렇다면 도대체 사자평의 억새 밭은 얼마나 넓을까 궁금했습니다.

 

8시54분 영취산에 올랐습니다.
해발 1,059미터의 정상에 올라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거칠게 바람이 불어댔습니다. 정상을 조금 비껴 바람이 잔잔한 곳을 찾아 짐을 풀고 김밥을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정상 옆의 작은 웅덩이에 고인 물이 얼어 있어, 이제 가을의 기도를 그만 접고 셀리의 서풍부를 읊조려야  하는 겨울이 왔음을 실감했습니다. 안내산악회에서는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꺾어 하산할 것을 1차 적으로 권해 왔습니다만 바로 하산을 하면 통도사에 너무 일찍 도착해 13시 30분까지는 시간이 남아 돌 것 같기에 남서쪽으로 3키로 떨어진 시살등을 오른 다음 한피기고개로 다시 내려와 통도사로 하산하기로 마음을 먹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9시5분 영취산을 내려서자 억새 밭은 끝나갔고, 여름 내내 푸르렀던 활엽수들이 그 잎들을 떨어내고 남은 회색의 나목 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능선을 이어갔습니다. 어제 하루 영남알프스를 종주하는 동안 3색의 산 군들을 만났습니다. 배내고개에서 간월산까지는 모든 색을 삼켜버린 밤이 지배하는 시간이어서 검은 색의 산을 만났고, 간월산에서 신불산까지는 억새 밭의 주황색이 평원을 뒤덮었으며, 영취산에서 남서쪽으로 내닫는 능선에는 전형적인 겨울 산의 회색이 주를 이루어 극명하게 대조되었습니다.

10시1분 함박등을 트래파스해 함박재를 지났습니다.
한피기고개까지 1.5키로 남아 있고 왼쪽으로 꺾어 하산하면 백운암에 다다르는 갈림길인 함박재에서 시간을 체크한 후 내쳐 시살등으로 내달렸습니다. 청수중앙능선이 시작되는 체이등을 트래파스해, 푸르른 산 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 가다가 우뚝 서있는 큰 바위의 암봉을 만나 카메라에 그 전면을 담았습니다.

 

10시 31분 시살등으로 생각되는 암봉에 올라섰습니다.
표지석이나 표지봉이 없어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산행시간이나 시계에 나타난 고도로 보아 시살등이 거의 틀림없다고 믿고, 짐을 풀어 휴식을 취했습니다. 울산에서 왔다는 한 젊은이에 이곳이 시살등이냐고 묻자 어정쩡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해왔습니다.

 

10시42분 주변의 경관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함박재로 되돌아갔습니다.
체이등을 우회하는 중  한 쌍의 부부를 만났는데 그 분들로부터 방금 다녀온 암봉이 시살등이 아니고 죽바우등임을 확인했습니다만 다시 돌아가 시살등을 오를 만큼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아 백운암으로 바로 하산했습니다.

 

11시35분 백운암에서 잠시 쉬면서 시원한 약수를 들이 마셨습니다.
이 겨울에 백운암 바로 밑의 대나무 숲이 그 푸르름으로 빛을 발했습니다. 그 동안 제대로 작동되었던 시계가 고장이 났는지 고도가 엉터리로 나타나 다음 산행이 걱정되었습니다. 얼마 후 산 중턱에 설치된 간이 주차장에 도착, 이곳에서 시작되는 차로를 따라 편하게 하산하여 영취산을 완전히 빠져 나왔습니다. 삼거리에서 안내원을 만나 통도사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오른 쪽 길을 알려줘,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으니 통도사로 넘어가는 고개가 나타났습니다. 별 수없이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터덕터덕 걸어 고개 마루에 거의 다 올라섰는데 반대편으로 택시가 지나가 불러 세웠습니다.

 

12시 40분 8시간의 산행을 전부 마치고, 택시에 올라타 통도사 주차장으로 옮겼습니다. 덕분에 시간 전에 주차장에 도착, 점심을 들고 13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3대 사찰의 하나인 통도사를 들러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시간을 충분히 내 관찰할 절이지 잠시 들러 보는 것으로 족한 그저 그런 절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통산 200산 등정을 마쳤습니다.
작년 7월 100번째로 오른 청옥산에서 100산을 추가해 금년 말까지 200산을 마치기로 목표를 정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가능한 한 그 동안 남기지 못한 산행기를 제대로 기록하고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했고, 나름대로 착실히 이를 실천해왔습니다. 산행기를 제대로 써 보고자 국어사전을 새로 장만하였으며, 야생화 및 나무도감도 마련했습니다. 뿐더러 주머니에 들어 갈만한 크기의 작은 디지털카메라도 새로 구입해 부담 없이 수많은 사진들을 찍어 댔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산을 오르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 가 고심도 했습니다. 저 같이 심지가 굳지 못한 사람들에는 목표를 정하고 뛰어야 계속해 산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자 합니다. 그 목표는 다름 아닌 백두대간 종주입니다. 이마저 달성한다면 그때 가서 저는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과정 하나 하나가 바로 삶이기에 목표를 제 인생에서 빼버릴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저는 얼마간은 부지런히 백두대간을 밟을 것이며, 산행기도 계속  써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