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1. 21. 셋째 일요일

정기 산행일이지만 어디 다른 곳으로 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기가 못가니 대신 지마눌을 데리고 갔다오라구

그러마고 대답하고 기다리니 잠시만에 친구 부인이 전화가 오고 이윽고 도로 위에 나타난다. 둘이 차를 타고 가곡 고수부지를 보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삼문동을 지나면서 또 다른 친구 욕쟁이 한테 전화를 해보니 가곡동 고수부지라 하여 차를 돌렸다.

가곡 고수부지에는 나의 친구 욕쟁이를 비롯 멋쟁이 종철이, 육척 거구에 근육질의 사나이 관해, 공포의 삼겹살 대영이 그리고 대영이 부인이 나와있는데 제수씨는 내일 제사장을 봐야한다며 빠지고 결국 오늘 산행인원은 나와 친구 부인, 욕쟁이, 종철이, 관해, 대영이 이렇게 여섯명이다.

대영이 운전대를 맡자 운전하던 친구부인이 내 옆에 와서 품에 안긴다. 이런 횡재가?

우리가 의기투합하여 전국의 명산을 순례하던 역전의 용사 중에서 광률이하고 진기, 병규하고 강양이 빠졌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우리 팀은 화기애애하다. 차는 삼문동으로 가서 세광아파트에 들러 코큰 두영이를 싣자 한차 가득이다.

늦가을이지만 날씨는 화창하고 하늘은 새파랗고 서늘하여 산행에 더 없이 좋은 기후, 모두들 온갖 얘기꽃을 피우면서 잘 포장된 국도 24호선을 달린다.

오늘 산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산내면 남명리에 들어서자 아랫재를 향해 차를 몰아 오르니 경사가 하도 급해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목적지인 출발점에 도착했다.

얼핏보아 출발점인지 잘 알 수도 없게 되어있지만 자세히 보면 붉고 노란 표지기가 제각각 속삭이며 바람에 나풀나풀 산꾼들의 마음에 유혹의 손짓을 하고 있다.

항상 그렇지만 산행 초입에서 느끼는 기분은 마치 연애하는 듯한 설레임이 있다.

소설 돈 주환을 줄거리로 한 모차르트의 가극을 보고 우리시대의 가장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던 아인시타인은 주인공의 경이적인 여성편력에 대하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라 하였다던가?

산에 병이 들면 아름다운 산을 찾아 헤메는 것이 마치 위와 같은 심경이라 생각된다.

산에 미친 산꾼들은 제아무리 멀다해도, 그 어떤 역경이 있다해도 밤잠을 자지 않고 산행계획을 세우고 장비를 사들이고 여행계획 시간계획 경비계획을 세운다.

차를 주차하고 막 출발하려는데 코큰이 전화를 받더니 가까운 친척 결혼식에 가야한다며 내려가 버린다.

아랫재를 향해 올라가는 길도 만만찮다.

남명리에서 아랫재까지 거리가 거의 4킬로미터이고 아랫재에서 가지산 정상까지가 또 약 4킬로미터, 가지산 정상에서 석남 터널까지 3킬로미터이니 오늘 산행거리는 대강 11킬로미터이다.

가지산 북릉을 따라 오르는 길은 경사가 그래도 석남터널 보다는 낫다.

오늘 길은 구십킬로가 넘는 대영이 가장 힘들어하고 팔십킬로를 오버한 나도 비슷한데 다른 사람들은 날씬하여 산을 오르는 것이 마치 평지를 가는 것같고 다만 막내인 관해가 평소 내공이 충실하여 거구에도 불구하고 산오름에 있어 나는 듯이 나아간다.

그런 관해를 보고 일행은 앞에 예쁜 처녀 있을까봐 빨리 간다며 헐뜯는다.

하지만 이런 경사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로 등산을 할 것인가?

오랜만에 가지산 종주를 하게되니 기분도 뿌듯하다.

근래엔 이렇게 산행다운 산행을 해본 것이 오래기 때문이다.

여하튼 산을 오르는 것은 행복하다.

땀을 흘리다 무덤이 있기로 그 앞에 가서 덧옷을 벗어 배낭에 달고 물 한모금하고는 또 산을 오른다. 지리산에 비하면 거의 아스팔트 고속도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길이 좋다.

그런 길을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오른다.

아랫재에 도착하여 이정표를 보고 사람들이 많이 있어 일행과 사진을 찍고 가지 북릉에 올라붙으니 간밤에 야영을 한 듯한 팀이 4명이 있어 부럽게 한다.

그들이 거의 100리터에 가까운 대형 배낭을 메고 막 출발하려는 것을 보면서 올라가니 다리에 가득 실리는 체중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이 운동이 행복하다.

급한 경사를 올라서니 먼저 올라갔던 욕쟁이가 또 한마디 한다.

"야 이 ***아! 언놈은 땀이 식어 응달포수 롁 떨 듯 떨고 있는데 퍼뜩 안올라오고 뭐하노!"

큁큁큁큁 내가 저런 교양이 없는 인간을 친구로 두고 있으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나를 저자와 함께 도매금으로 넘길라!

처음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남명리가 환하게 마치 바둑판처럼 보인다.

오전 열한시의 화창한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쪼이는 마을과 구불구불한 국도 24호선, 거기서 가지쳐 나간 거미줄같이 가느다란 시골길, 그리고 온 계곡을 물들인 유명한 얼음골 꿀사과나무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밭의 물결

잠시 얼음골 꿀사과에 대해 한마디 언급해야겠다.

우리 밀양의 명물인 얼음골꿀사과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기가막힌 맛을 지니고 있다.

원래 과일의 당도를 높이는 기후적인 특성이 기온의 일교차가 커야 한다고 하는데 얼음골의 기후가 다들 아시듯이 가지산과 능동산 재악산 구천산 운문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겨울의 많은 눈과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조화에다 더불어 얼음골의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특이한 기후로 인하여 이곳 사과엔 꿀이 박혀있다.

사실 사과를 칼로 잘라보면 높은 당도의 집적으로 인한 꿀이라 불리는 부분이 박혀있는데 이런 얼음골 사과는 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싱싱하고 입안 가득 넘치는 사과액의 달콤향긋한 싱그러움은 맛보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다.

맛이 그러하니 이 사과의 가격 또한 만만찮다.

선물용은 오만원이 기본이고 칠팔만원짜리도 있는데 선물용이 아닌 하품의 경우는 삼만원 안팎에 살수도 있다. 이런 얼음골 사과를 위한 얼음골 사과축제가 얼마 전에 있었고 지금도 도로변에는 농민들이 직접 내다파는 얼음골 사과 가판대가 즐비하고 사과를 사려는 차량들이 도로변에 빈틈이 없을만치 많다.

그리고 이 얼음골꿀사과들은 희망할 경우 택배로 보내고 싶은 집으로 배달해 주기도 해 친한 사람이나 귀한 손님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안성맞춤이다.

사과장사는 고만하고

능선길은 힘이 들지 않는다.

다들 밥을 먹고 가자기에 눈앞에 보이는 너럭바위위에 자리를 잡았다.

농사를 짓는 친구 부인이 찹쌀밥 4인분과 맵싹한 딱배추에 진짜 한국된장이며 고추 상치를 갖고왔기로 먹는 것 자체를 사랑하는 나의 미각이 온갖 호사를 다한다.

황제처럼 걸판지게 점심을 즐기고 있는데 울산에서 왔다는 열명 가량의 혼성팀이 와서 점심을 편다. 우리 욕쟁이 또 큰목소리로 맛있는 배추 고추 상치 있다며 갖고 가라고 인심작전을 펴니 저들도 아나고 회를 두도시락이나 가져다 준다.

두 팀이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는데 저쪽 팀이 체했다며 손가락 딸 만한 바늘이 없냐고 묻기에 우리 멋쟁이 종철이 맥가이버칼에 달린 뾰족한 병따개를 내밀고 내가 갖고간 찹쌀떡을 욕쟁이가 울산아지매한테 주려길래 빼돌렸더니 울산아지매 나를 비난하다 산아래 가면 커피 사준다며 기달리란다.

지천명에 또 여자복이라? 큁큁큁큁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음식냄새를 맡은 가마귀떼를 보면서 산아래 한없이 펼쳐진 경사진 산비탈에 잎이 없는 앙상한 나무들을 바라본다. 아름답다.

산죽 숲이 길 좌우에 널려있고 능선길은 완만한 오르막으로 변한다.

한참을 가는데 멀리 뒤에서 욕쟁이가 나를 찾는다.

나 앞에 가고 있다니 웬일이냐고

한 십여분 갔을까 먼저 출발했던 나를 찍은 울산 아줌마 마주치자 또다시 날더러 커피 사준다며 석남터널에 기다리라고 한다. 허허 참 오늘 큰일났네?

그러마고 약속하고 앞질러 나아간다.

그러다가 쉴만한 바위가 나타나 잠시 기다리니 일행들이 나타난다.

이 몸이 내공이 늘었다고 치사하고 자기들은 밥을 먹었더니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날더러 소 구시통(구유)만한 그릇에 밥먹는다고 놀릴 땐 언제고 저들만 밥먹었나?

일행은 나와 대영이더러 두 곰이라고 부르는데 억울하다.

지금 이 몸도 두달내로 살을 십킬로 뺀다고 목표를 잡고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말끝마다 곰이니 미련하다니 하니......

내가보기엔 아름답기 그지없는 몸매인데 지들 눈엔 곰으로 뵈는 모양이다.

앉아 쉬고 있는 바위 위로 두릅나무가 두 줄기 올라 있는데 가시가 송송하니 있는 모양이 옛날 생각이 난다.

군에서 야간산행을 하다 해뜰 녘에 눈 속에서 일렬 횡대로 서서 정상을 향해 돌격 앞으로! 하는 구호에 경사진 산을 뛰어오르다 미끄러지고 엎어지고 하면서 나뭇가지를 잡고 오르는데 그 나무가 두릅인 때가 자주 있어 실장갑 안 손가락 가득 두릅가시가 박히던 일....

봄날 붉은 빛을 띄며 올라오는 두릅순은 살짝 데쳐 탁주 한사발에 향기를 탐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가지산 정상은 사람들로 붐빈다.

영남알프스의 주봉이기도 하지만 능동터널 까지 차량이 올라오므로 접근성이 좋고 발품을 덜 팔고도 높은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으니 그럴 것이다.

어림잡아 삼백은 더 되어보인다.

온 산이 울긋불긋 등산객 꽃으로 물들어있다.

우린 산 정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쪽으로 눈앞에 있는 능동산, 그 건너에 있는 배내봉, 그 다음에 있는 간월산, 그리고 칼바위능선으로 유명한 신불산의 웅장한 자태 그 우측으로 끝없이 펼쳐진 신불평원의 억새

그 너머에 있는 취서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를 우측으로 돌리면 능동산에서 서쪽으로 달려나가는 능선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재악산 사자봉이요 수미봉이다. 흔히들 말하는 천황산인데 이 산의 본시 이름은 재악산이다.

在(재)藥(약)山(산)이 아닌 載(재)岳(악)山(산)이란 말이다.

이 재악산 아래엔 우리 고장의 자랑인 천년 고찰 표충사가 있다.

아름다운 경내와 은은한 풍경소리도 멋있지만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였던 그 시절에 의연히 일어나 승병을 조직하여 왜적을 무찌르고 도요또미와 담판하여 포로를 귀환시키는 대활약을 하였던 사명대사의 얼이 살아숨쉬는 표충사!

그 곳에 있는 대사의 유품을 대하노라면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리고 그 옆으로 칡밭이란 계곡이 있고 화전민이 살았던 흔적도 있고 그 곳을 따라 나가면 향로봉이 나온다. 향로봉에서 백마산 항로산 금오산 천태산 만어산 산성산 용두산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줄기는 구천산, 정각산, 승학산으로 이어지며 그 옆에는 조그만 경주산도 있다.

이곳 가지산에서 바로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은 운문산, 그 뒤로 억산, 구만산, 육화산, 낙화산, 보두산, 그리고 마지막에 긴늪 솔밭머리에있는 비학산까지 연결된다.

산 북쪽으로는 상운산, 쌀바위, 귀바위, 쌍봉, 문복산, 옹강산

건너편엔 고헌산, 고헌산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찾는이도 별로 없지만 무릎아픈 사람 걷기엔 정말 좋다.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정상에 자리하고 앉아 산 이야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노는데 울산의 커피 아줌마 또 등장했다.

하산을 재촉하며 나서면서도 아줌마한테 눈인사를 하고 산아래서 기다릴테니 빨리 내려오라 헛소리

터널 쪽에서 오르다보면 가지산 등산로에 오밀조밀 박힌 사람들을 조망하는 기회가 생기는데 그 사람들을 보면 사람 몸에 기생하는 이가 생각난다.

어릴 때 양지바른 대청에서 따뜻한 햇볕아래 어른은 없고 아이들끼리 모여 앉아 내의를 벗어 뒤집으면 내의 솔기를 따라 큼직한 이가 피를 빨아 발갛게 된 통통한 배를 안고 꼬물꼬물 기어다니는데 고놈을 양쪽 손톱으로 터뜨리면 톡! 하면서 손톱 위에 빨간 피가 묻는다.

가지산 등산로에 박힌 등산객들이 마치 이처럼 뵈인다고?

한참을 내려오다 자연농원 가는 갈림길에 도착하자 욕쟁이 또 갑자기 객기 발동하여 안가본 길로 가자고 우긴다. 그것도 확실한 등산로가 있는지도 모르는 이정표도 없는 능선길을 따라가자고

나는 여러 번 당해본 경험이 있어 거절하고 그냥 내려갈 것을 주장했다.

욕쟁이 회장할 때 전라도 영암월출산에 갔는데 일박하면서 술을 얼마나 먹었던지 월출산 종주하는데 물한병 음식하나 안가지고 출발시킨게 그다.

다섯시간을 물한모금 못마시고 음식하나 없이 걷는 고통이란......

터널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출발하고나서 전화를 하여보니 아직 산 속에 있다기에 천천히 내려오라며 시내까지 와서 시내버스를 이용 귀가했다.

노는 시간 합해 가지산 북능 종주에 대강 네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뿌듯하고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