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의 비경 12폭포(성봉-성치산)를 찾아서

 

언제 : 2004.11.17(수) 날씨 : 흐림 기온 : 5~14℃

산행 거리 : 17km  산행 시간 : 6시간 30분 산행지 : 성봉, 성치산

 

<산행 경로> 

 

남이면 흑암리(모티)

09:15

능선 갈림길

13:00

12폭포(죽포폭포)

09:30

암릉

13:43

무자치골 갈림길

10:50

성치산(670.4m)

14:04

무명봉

11:00

광대정

15:50

성봉(648m)

12:00

모티마을 천변주차장

16:15

 

 

<팔도의 유래와 별칭>

 

 이중환은 각 지방이 지닌 개성과 질을 중요시하였으므로 결코 모든 지방을 하나의 획일적인 틀에 맞추려 하지 않고 지방을 고찰하였는데, 地理, 生理, 人心, 山水 등 네 가지를 들면서 모든 층이 충족되는 지역이 이상적인 지역이라고 하였다.        

 江原道 江陵과 原州에서 유래한 도명이다. 江原道는 암하노불(巖下老佛)이라 별칭 되는데 큰 바위 아래에 있는 부처처럼 어질고 인자하다는 의미이다. 강원도인의 순박함과 어짐이 나타나 있다.

 忠淸道 忠州와 淸州에서 유래하며 淸風明月이라 별칭 된다. 맑은 바람 바람과 큰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하다는 의미이다.  여유 있게 풍류를 즐겼던 충청도인의 성품을 나타낸다.

 全羅道 全州와 羅州에서 유래하며 풍전세류(風前細柳)라 별칭 되는데, 버드나무처럼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이다. 남도 가락과 더불어 생활하는 전라도인의 멋과 여유가 느껴진다.

 慶尙道 慶州와 尙州에서 유래하며 태산준령(泰山峻嶺)이라 별칭 된다. 큰 산과 험한 고개처럼 선이 굵고 우직하다는 의미이다. 같은 남도 지방이라도 전라도에 비해 험준한 산이 많은 지역에서 생활해야 했던 경상도인의 기질을 보여준다.

 京畿道 서울 주위 500리 이내의 땅을 이르는데 경중미인(鏡中美人)으로 별칭 된다. 거울 속의 미인처럼 우아하고 단정하다는 의미인데 수도 주변에서 고급문화를 영위했던 경기도인의 세련됨을 표현한다.


- 김경수,이영화의 <테마로 읽는 우리 역사>중에서 -

 

 
 

 네덜란드 사회지리학자 빈 파센(Van Paassen)은 인간에 관한 학문은 실존적 문제에서 기원한다. 인간 존재의 질서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인간은 고민하고 회의하기 시작하며 그 질서에 대항하여 변화시키고자 시도하게 된다. 즉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로부터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하면서 자기와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나 다른 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해 탐구하게 되고, 여기서 지리와 역사가 시작된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사는 삶의 공간은 역사와 함께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와도 직결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금산(錦山)은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줄인 말로 통한다. 그만큼 빼어난 경치와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금강이 흐르는 줄기를 따라 산이 이어지고 곳곳에 절경과 아름다운 지형을 일구어 놓았다.

 대전 주변에서 금산을 찾아 산을 누비면 의외로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쉽게 만난다. 여름의 폭염과 장마의 빗줄기 속에서 캐낸 노다지가 있다면 바로 남이의 12폭포가 아닌가 한다.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고, 깊은 골짜기 속에 감춰져 쉽게 사람들에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 비경! 바로 남이에 있는 성봉과 성치산을 아우른 12폭포 浦同天이다.

 
 
 

 12폭포로 가는 길은 우선 금산에서 진안 쪽으로 가다가 용수암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흑암리 모티마을 침수교에서 시작하거나, 신동 저수지가 있는 신동리에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신동리쪽은 길이 좁아 차가 왕래하기 불편하므로 모티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계곡과 능선 산행을 겸하려면 725번 지방도로 진안 쪽으로 가다 충남과 전북 도계인 고개에서 시작하여 성치산과 성봉을 지나 12폭포 계곡으로 하산하는 게 좋다.


 

 언젠가 천태산과 대성산을 종주하며 영동에 사시는 박달령님께서 자신이 아끼는 산악 코스를 개발하시고 이정표와 갖가지 산행 편의 시설을 갖춰 놓으신 것을 보고 정말로 산을 아끼는 마음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누구나 산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해 가꾸는 나만의 산이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찾아 나섰는데 뜻밖에도 남이의 12폭포의 성봉과 성치산이 그 대상으로 떠올랐다.

 너무도 뜨거운 한여름에 찾은 12폭포는 장관의 폭포수와 시원한 계곡 그리고 아름다운 물이 흐르는 무릉도원으로 내게 다가왔다.

 

  

 가을에는 무수한 낙엽의 푹신함과 계절이 지나치는 소리에 낭만을 느꼈고, 인적 없이 호젓한 오솔길을 걸음은 세월의 흐름조차 잊게 했다.

 

 봉황천은 너무도 맑고 깨끗한 물로 나그네의 방문을 재촉한다. 침수교를 건너 죽포동천으로 가는 길은 늦가을 정취를 맛보게 하는 그윽함 바로 그것이다.

 조그만 沼를 이루고 산자락을 끼고 도는 호젓한 길은 도시를 떠난 산객을 너무도 푸근하게 맞는다.

 여름에는 죽포동천에 다가설 때 들리는 폭포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만추에 찾은 12폭포는 고요와 한적함만이 가득하다.

 높이 20m 정도의 12폭포는 우선 크기와 수량 그리고 주변과의 조화에서 일품이다. 절벽을 타고 흐르는 폭포수의 물줄기를 상당히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는데 산자락 사이에 위치한 폭포의 우람함이 대단하다.

 
 
 

 폭포 밑에는 청뢰(晴雷)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하늘에 구름이 없는데 천둥치는 소리가 난다는 뜻으로 폭포의 엄청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빗대어 적은 듯 하다. 또한 落河, 疑河라는 한자가 폭포 밑에 있는데 글 쓴 사람의 號를 적은 듯 하고 너무도 엄청난 수량에 내인지 의심하여 疑河로 새겨 놓은 듯 하다.

 疑河 전서여서 해석이 어렵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맞닿아 있는 하늘과 어울려 너무도 멋있다. 여름에 폭포 밑에서 맞는 폭포수는 등줄기를 따갑게 하고 더위를 쫒는 청량제와 같다.

 폭포 위에 오르면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는데 폭포 상단 오른쪽에는 竹浦同天이라 쓴 큰 글씨가 음각되어 계곡의 명칭을 알려주고 있다.

 예전에는 조그만 구멍으로 실을 드리우면 폭포 아래까지 내려갔다 하는데 지금은 막혀서 물이 고여 있다.

 12폭포라는 명칭은 오히려 많다는 뜻으로 쓴다고 본다면 폭포의 명칭을 죽포폭포로 명명하는 게 옳지 않을까 여겨진다.

  

 폭포 상류를 따라 오르면 넓은 암반에 계곡수가 흐르고 듬성듬성 작은 소(沼)가 무수히 있다. 넓은 암반의 양쪽에는 사람들이 어디서든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편히 쉴 수 있다.

 
 
 

 양지 바른 암반에는 세 글자가 음각되어 있는데 鳴雪, 雲玉, 風珮이다.

 鳴雪(명설)은 겨울에 내리는 눈을 표현한 듯 하며, 雲玉(운옥)은 계곡에 낀 골안개나 뿌연 구름을 나타내고, 風珮(풍패)는 계곡에 부는 바람을 사람이 찬 옥에 비유하여 읊은 듯 하다.

 중간에는 한시로 표현한 닳은 문자가 보이는데 언뜻 12골짜기의 풍광과 글자를 새긴 유래를 나타낸 듯 하다.

 너무 마모가 심하여 올바른 해석이 어렵지만 과학적인 탐구를 통한다면 전체의 해석도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골짜기를 오르다 보면 상당히 큰 沼를 지나는데 나무숲이 울창하고 기다란 폭포가 연결되어 있어 계곡 중 으뜸인 곳을 만난다.

 웅덩이처럼 沼를 만들고 물의 흐름이 바위 사이를 길게 지나는데 여름철 피서지로는 제격이다.

 바위 벽 쪽에는 옆으로 누운 초서 한자가 보이는데 대략 琛龍 또는 沈龍으로 읽어진다. 아마도 용이 누워 잠을 잔다는 뜻이나 물 속에 잠겨 있는 용을 말하는 듯하지만 좀더 고증을 거쳐 해석해야 할 듯 하다.

 너무 난해한 초서여서 글자의 해석이 쉽지 않다.

 

 S자 모양의 폭포를 오르면 넓은 바위 쉼터가 있다. 여름철 물속에서 뛰놀다가 햇볕에 몸을 말리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 곳은 하늘이 열리고 주변 봉우리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무자치골은 예로부터 뱀이 많다는 골짜기로 이름이 나있는데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다만 습지가 많고 사철 물 흐름이 끊기지 않으므로 버섯과 뱀이 많다고 구전된 듯 하다.

 가끔씩 가재와 징개미(새우)가 있는 계곡을 따라 한참 오르면 마지막 암반에 폭포가 있다. 물줄기의 흐름은 작지만 낙차 큰 폭포는 무척 아름답다.

 
 
 

 바위에 글자가 쓰여 있는데 山鵴(산국) 또는 山鷄(산계)로 보이는데 해독이 어렵다. 아마도 산비둘기나 부엉이를 나타내거나 다른 의미로 절경을 나타낸 듯 하다.

 폭포의 위치가 암반에서 비스듬히 바라다 보이고 계곡 수에 반질반질하게 다듬어진 바위가 쉼터로 제격이다.

 화려한 필체가 다른 글씨와 달라 뜻의 해석이나 유래가 더 궁금하다.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의미와 유래를 더 알아보면 흥미 있는 해석이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무자치골을 따라 오르다 보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왼쪽 능선을 따라 오르면 첫 번째 봉우리를 만난다. 해발 600m 정도인 무명봉은 무척 가파르고 성봉 가는 길에 비슷한 봉우리가 여럿이어서 매우 힘이 든다.

 탁 트인 조망과 함께 신동리 저수지가 보이고 능선의 이어짐이 계속된다. 발을 디디면 수북한 낙엽의 쌓임으로 자꾸만 미끄러진다.

 하지만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는 너무도 멋진 운치이다. 만추의 자락에 능선을 따라 걸으며 낙엽의 수북함과 사각대는 소리를 들음은 세월의 흐름을 잊고 산행할 수 있는 멋을 느끼게 한다.

 
 

 이윽고 해발 648m의 성봉에 오른다. 성봉(城峯)은 고만고만한 능선 줄기에 있는 봉우리의 가운데를 말함인데 전북과의 경계 지역인 북쪽 봉우리가 성봉으로 제격이다.

 성봉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과 전북 진안군 용담면과 경계에 있는 산이다. 넓은 암반을 이룬 무자치와 같은 꼬불꼬불 흐르는 와폭이 있는가 하면 바위에 패여진 홈통으로 물이 모아져 내리는 폭포도 있다.

 널리 퍼져서 빗줄기나 실 날처럼 가늘게 떨어지는 물 장막 폭포도 있고 넓은 암곡의 높은 바위 낭떠러지 위에서 하얀 비단 폭을 풀어 내리듯 한 용의 초리가 곧바로 떨어지는 직폭도 있다.

 선비들의 멋과 아름다운 풍류가 배어있는 성봉은 산 자체로는 그리 멋있다고 보이지는 않으나 무자치골을 아우르는 봉우리로는 손색이 없다.

 

 한동안 디자인하고 가공한 알루미늄 판 표석이 배낭에 가득하다. 땀 흘리며 짊어지고 온 두 개의 표지석.

 내 손으로 정상에 아름다운 표지석을 세운다는 계획이 실천에 옮겨지는 순간!

 야전삽으로 땅을 파고 고르는 일이 신이 난다.

 준비한 알루미늄 표석을 세우며 주변을 정리한다. 내 손으로 세운 정상 표석! 정말 가슴 뿌듯함이 찡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정성껏 깊게 파고 돌과 함께 묻은 후 귀연표시기를 옆에 세우고 사진 촬영을 하니 너무도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

 컵 라면으로 점심을 들고 건너에 솟구친 암릉과 성치산을 향하여 발을 내딛는다. 보람을 느낀 보폭은 거침없이 내달린다.

 
 
 

 갈림길이나 헷갈리는 곳에 표시기를 달고 몇 번의 오르내림을 거치니 성치산 오르는 험한 암릉이 나타난다.

 암릉에서 바라보는 사방은 뿌연 연무로 조망이 별로지만 주천면 주양리 운일암 반일암이 바로 지척이고 커다란 운장산맥과 운장산 그리고 구봉산 장군봉이 빤히 보인다.

  

 
 성치산(城峙山)!

 해발 670.4m인 성치산은 주변에 성이 보이지 않지만 고갯마루에 만들어진 성곽에서 유래된 지명이라 생각된다.

 특히 충남과 전북의 도계인 미적동 고개 근처가 중요한 요충지로 보여 성치산과 성봉의 명칭이 성(城)자(字)로 된 듯 하다.

 산의 명칭에 대하여는 주변 마을과 면사무소 등을 통하여 고증할 필요를 느껴본다.

 날카로운 암릉을 거쳐 헬기장과 갈라지는 지점에서 지도를 확인하고 적당한 지점에 표석을 설치한다.

 

 

 성봉 표지석 설치보다 위치적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남쪽에 있는 헬기장과의 거리가 가깝고 높이가 어설프기 때문이다.

 고도계와 세밀한 지도를 통하여 성치산의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라 여기고 정성껏 표지판을 세운다.

 표지석 앞에서 기분 좋은 촬영을 하고 주변을 정리하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이다. 가깝게 느껴졌던 성치산이 의외로 코스가 길고 능선의 오르내림이 많아 피로가 나타난다.

 지도를 보고 고무골을 따라 내려 뻗은 능선을 따라 나아간다. 전북도계 종주 팀이 붙여 논 표시기가 있어 길을 찾기는 쉽다.

 다만 도계가 끝나는 지점부터 원구석이나 광대정 가는 길이 애매하고 낙엽으로 인하여 등로가 매우 불투명하다.

 
 
 

 몇 번의 알바와 헷갈림 끝에 광대정 마을에 도착한다. 빨갛게 익은 감나무를 나뭇가지로 쳐서 떨어진 홍시를 먹는 즐거움이 산행 말미 피로를 씻게 한다.

 상당히 애로를 거쳐 하산한 이유를 지도를 놓고 분석하니 고무골 능선을 지나 원구석 마을로 내려서는 골짜기 길을 찾지 못해서 임을 알았다.

 하지만 낙엽에 덮인 등로는 너무도 애매하여 길을 쉽게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원구석 마을에서 반대로 오른다면 등로를 찾기가 쉬울 듯 하다.

 원구석 마을은 봉황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받고 있다고 한다.

 원구석 마을에서 시작하여 성치산을 오를 수 있는 길을 확인하여 12폭포 전체를 능선으로 연결짓도록 하는 산행 코스를 개발함도 의미 있으리라 여겨본다.

 

 6시간 30분이 걸린 산행은 도로를 따라 걷는 마지막 인내로 에너지를 탈진한다. 승용차를 통한 산행은 애시당초 원점회귀의 어려움이 늘 있지만 도로에서 차 태워주기를 허용하지 않는 인심에 고달프게 아스팔트를 걸어야하는 피로는 엄청나다.

 

 

 모티마을에 도착하니 동네 사람들이 하천에 널려 있는 쓰레기 수거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여름 피서인파로 인한 쓰레기가 환경 파괴의 근원인데 불편을 마다 않고 12폭포 절경을 지키는 주민들의 노고가 너무도 감사하다.

 

 금산에는 진악산과 보석사 그리고 금강을 따라 많은 절경이 있다. 제원에 있는 월영산과 갈기산도 주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산행지이다.

 대전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성봉과 성치산 그리고 12폭포가 있는 계곡. 잘 가꾸고 보호한다면 금산의 명소로 거듭나리라 여겨진다.

 안내판의 설치, 바위에 새겨진 글자의 해석 그리고 보다 확실한 등로와 산행 코스 개발을 통하여 홍보한다면 아름다운 금산 가꾸기에도 보탬이 되리라 여겨진다.

 성치산과 성봉에 설치한 정상 표지석이 시간과 세월이 흘러 많은 산악인들에게 호응 받고 산행 지표로 각광 받기를 기대해 본다.

 산을 찾아 나선 산꾼의 보람이 느껴지는 하루여서 좋다.

 

<12 폭포 가는 길>

 

 
<성봉과 성치산 개념도>
 
 
 

<조망>

동 : 적상산, 덕유산, 성수산

서 : 대둔산, 진악산

남 : 구봉산, 운장산, 명도봉, 명덕봉

북 : 서대산, 천태산, 덕기봉, 월영산, 양각산, 민주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