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봉산-숨겨진 길을 찾아

등산코스 : 덕구온천 벽산콘도-덕구계곡-원탕-응봉산정상-용소골갈림길-헬기장-980봉-구수골계곡-구수곡휴양림
총소요시간 : 7시간

구수곡에서 응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지역산악인들이 개척해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몇 주 전 구수골을 찾아 정상을 향하였으나 용소폭에서 길이 막히어 발을 돌린 아쉬움이 채 가시지 않아 어제 다시 응봉산을 찾았다. 실패를 교훈삼아 이번에는 루트를 바꾸어  가보기로 하였다. 등산로를 표시하는 리본을 많이 부착해 놓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라는 아는 사람의 말을 믿는 바, 먼저 정상으로 오른 후 능선을 따라 가다가 구수골로 하산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응봉산의 등산로는 익히 알려진 대로 천혜의 유보지역이기도 한 덕풍계곡이라 불리는 용소골과 덕구온천의 원탕이 있는 덕구계곡 일명 온정골이라 불리는 곳과 옛재능선길이 고작이었으나 이제는 구수골이라는 계곡이 추가되어 용소골 못지 않은 길고 험난한 등산을 맛보게 되었다.

응봉산은 원래 옛 왕궁의 건축재로 쓰이던 금강송(금강소나무 또는 적송, 일명 춘향목)이 군락을 이루어 보통사람이 안아도 부족할 정도의 굵기로 꼿꼿하게 쭉쭉 뻗어 자라오르는 우리나라 몇 안되는 주산지로 알려져 있다. 산 정상의 높이는 일천미터가 채 안되는 998.5미터(사람이 정상에 서면 그 높이가 일천미터라고 보면 정확하다)이지만 길고 험한 계곡을 여럿 거느리고 있고 직접 땅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한 물을 만져볼 수 있는 자연용출 온천수와 온천탕이 있고 이와는 별개로 덕구온천아래 사람들이 들끓는 유황천원탕도 있다. 온정골로 알려진 덕구계곡에 온천원탕이 있고 구수골에는 구수곡휴양림이 있어 여름철이면 더위를 식히려는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이 찾아온다. 정상에서 뒤쪽으로 넘어가면 그 이름난 용소골.. 덕풍계곡이 있다. 이곳은 어지간히도 멀고 긴 계곡이 아니어서 출발 시 긴장감을 늦추어서는 절대로 안될 만큼 험한 곳이다. 이미 한 번 다녀왔다고 해서 느슨한 마음으로 계곡을 들어섰다간 큰일과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   

애고 산행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산행을 함에 있어 그 산에 대한 기본지식과 주변의 역사나 정보를 취득하고 알아두는 것은 어쩌면 무심코 산에 오르고 다녀오는 것보다 뭔가 다른 맛을 만끽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줄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10:00
피치 못할 이유로 산행시간이 늦추어졌다. 구수골로 하산할 것에 대비하여 차를 덕구에서 울진으로 갈리는 갈림길가에 주차시키고 걸어서 벽산콘도 뒤편 응봉산 원탕방향 등산로로 들어섰다. 전에 찾았을 때는 수해복구가 한창이어서 계곡 전체가 어수선하고 엉망이었었는데 지금은 계곡 곳곳에 여러 개의 세계 유명교량을 본 딴 다리를 놓아 테마가 있는 산책로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가족 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좋을 것 같았다. 금문교도 지나고 .. 백운교와 청운교도 지나고..    
10:50
온천수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원탕에 닿으니 웬 텐트촌이?
배관공사가 있는 것인지 원탕주변을 정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기도 무슨 테마파크로?
바위벽을 타고 따끈따끈한 물의 느낌을 맛보고 싶었던 나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신각을 끼고 돌아나가며 계곡을 따라 그대로 올라갔다. 물이 많을 때를 대비하여 등산로는 좌측 비탈을 타고 위로 올라가지만 지금은 물의 흐름도 적고 까작까작하니 그냥 바위를 밟으며 가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원탕에서 백여미터를 더 올랐을까? 우측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예전에 올랐던 길에서 약간 옆으로 비껴선 자리로 새로 길을 내어놓은 것이다. 이제 그야말로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되는데...말 그대로 정상까지 45도에서 80도 각도의 경사로 계속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 대개 사람들은 그저 산책로처럼 여겨지는 옛재능선길로 올라 이곳 원탕으로 하산하지만 이렇게 하면 진득한 발품과 땀의 맛을 볼 수가 없다.
어쩌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왜냐면 가파른 하산길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탕에서의 오름길은 고달프기는 하지만 위험이 덜하다. 앞 질러갔던 사람이 벌써 사라져 버렸다. 하산하는 등산객들과의 가벼운 인사가 고맙기만 하였다. 두어 번 쉰 것 빼고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2:20
정상에 도착하니 한 분이 반가이 맞으며 길을 물었다.
능선길로 올랐는데 어디가 내려가면 좋겠느냐고 ... "당연히 덕구계곡 쪽으로 내려가세요.."
"내려가면 따스한 온천 원탕물이 솟아나니 한번 마셔보고 가시라구요. 계곡도 좋아요. 아담하니..."
나는 그대로 정상표석을 지나쳐 낯선 길의 낙엽을 밟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의 발 흔적은 없고 길인 듯한 모양의 지렁이 같은 소로가 나무들 잔가지 밑으로 나있는데 그마저 낙엽에 묻혀있었다.
내리막길 달리며 걸음을 서두르니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용소골과 구수골.. 갈림길이었다.
우측으로 향해 쓸쓸히 내려가는 용소골은 다음을 기약.. 나는 그대로 직진하였다.
능선을 한참 굽어가니 응봉산의 정상이 마주보였다. 다시 등을 돌려 아주 드문드문 걸려있는 길표시 리본을 확인하며 전진... 바람을 피해 비교적 따스한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추위가 엄습하니 미리 준비해 놓은 외투를 꺼내 걸쳤다. 지루하게 얼마를 걸었을까. 오르내리기를 몇 번... 가늘게 나 있는 이 구수곡행 등산로... 아무도 아무도 없다.
13:45
느닷없이 공터가 나오니 가슴이 썰렁하였다. 헬기장이었다.
간헐적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하늘은 하얀 구름.. 도대체 웬 빗방울이란 말인가?
온도차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까? 외투를 벗으면 춥고 입으면 덥다.
얼마나 더 가야 하산길이 보이는 걸까?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세 시가 되기 전에 하산을 시작해야 될텐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갔을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아는 사람에게서 표시가 잘 되어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를 들었으니 조바심과 불안을 덮기로 하였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하산길이 나있는 걸로 예측되었는데 그 봉우리 에 오르자 나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되었다.
14:25
응봉산 정상에서 강원도와 경상북도 경계능선을 따라 꼬박 두 시간 걸려 도착한 것이다.
하산길이 나타나니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시간도 그리 늦은 편도 아니고 잠시 서서 주변을 정리하였다. 쓰러진 나무들도 치우고 리본도 방향에 맞게... 다음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다시 달아 놓았다. 앞서 온 사람들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장소였다. 거추장스러운 나무들을 베어내 하산길을 잃지 않도록 시야를 넓혀 놓았다.
직진하면 낙동정맥에 닿는 삿갓봉과 백병산을 향한다. 나는 몇 개월 전에 여기서 멀지 않은  면산에 올랐었다. 강원도 삼척의 풍곡 석개재를 걸어올라...  
멧돼지가 파헤친 수풀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 뒤집혀 있다. 동물들의 동글동글하고 까만 똥들이 길 위에 많이 발견되었다. 붉은 가슴을 드러내 놓은 금강송들의 자태가 씩씩하기만 하였다. 금방이라도 내려설 듯 싶었는데 하산능선의 길도 만만찮은가보다. 좌우를 살펴보니 골이 엄청나게 깊다. 용소폭과 웅녀폭이 저 아래 어딘가에 버티고 있을 성싶었다. 
오른쪽 무릎에 조금씩 무리가 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경사진 곳에서는 지팡이를 짚고 뒤돌아 내려왔다. 그러면 무릎에 무리가 덜할 뿐만 아니라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묘지를 지나자 구수골의 양 계곡이 보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합수지점이 이 능선의 끝.. 왜 이렇게 험하고 먼 곳에 묘터를 잡았을까?
그 자식은 어지간히 효자였었나보다.
15:45
먼 하산길이 종료되고 이제는 계곡길이다.
지난 번 경험한 길이었기에 눈에 선한 그런 길이다.
그땐 단풍이 덜 된 그런 시기였는데 지금은 완연한 갈산.. 도마뱀이 숱하게 발견되었고 고기떼도.. 뱀도 보았었었다.
16:40
계곡이 날머리엔 아담한 구수곡휴양림이 자리잡고 있었다.
통나무집 같은 숙박시설과 공연장과 체육시설 야영장과 야외수영장..계곡 자체가 수영장이기는 하지만..고루 갖춘..
휴양림을 나와 포장된 군도를 따라 덕구쪽으로 향했다.
17:00
승용차가 주차되어있는 곳까지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정확히 15:00이었다.
7시간의 산행이 끝난 것이다.

응봉산에서의 힘들고 고된 산행다운 산행을 원한다면 다음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벽산콘도-덕구계곡(온정골:원탕)-정상-덕풍계곡(용소골)
둘째는 벽산콘도-덕구계곡-정상-능선-구수곡계곡(구수골)
셋째는 구수곡계곡-정상-용소골
산행기점을 반대로 잡아도 상관없다.

<알림>
초보자는 몰라도 등산복 꾸려 입을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산행코스는 피하기를..
밋밋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덕구온천-옛재능선길-정상-옛재능선길-덕구온천
둘째는 덕구온천-옛재능선길-정상-덕구계곡(온정골:원탕)-벽산콘도

그나마 다음은 무난한 산행방법이다 : 벽산콘도 앞 주차장에 주차 후
벽산콘도-덕구계곡(온정골:원탕)-비탈-정상-옛재능선길-벽산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