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4년 11월 20일(10월09일) 날씨 : 흐린뒤 맑음

 

산행지 : 숨은벽

 

산행자 : 인천 토요산악회와 함께

 

산행코스 :효자비~숨은벽~숨은벽정상~인수산장-육모정~ 백마 휴양지~백마 유격장~사기막골

 

 산행시간 : 7시간

 

개요 :

 

1395년 12월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 지은 경복궁에 들게 되니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은 새 도읍의 만년태평을 기원하는 가사를 지었다. 그 내용을 담은 '악장가사'에 북한산을 일러 '삼각산'(三角山'이라 쓰고 있다.

또 고려조 성종 12년(993년) 서희가 성종에게 아뢰기를 "삼각산 이북도 또한 고구려 땅입니다"하였고, 그뒤 고려사에 20여회나 삼각산이 등장하면서 각종 문헌과 비석 등에도 삼각산으로 굳어져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여지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한결같이 '삼각산'이 북한산의 본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남긴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 떠나려.'라며 '삼각산'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주객이 전도되어 '북한산'이 산의 본명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북한산'은 산이름이라기보다는 백제 건국 이후 한강 이북지역을 뜻하는 이름, 또는 고을 이름이었던 것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대며 영토확장에 혈안이 되었을 당시에는 개차산, 열야산, 진악산, 삼년산, 마시산 등 '산'이 붙은 이른바 고을 이름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 '산'은 고구려계 땅이름이 달(達), 홀(忽), 골(骨) 등과 함께 고(高) 또는 성읍(城邑)을 뜻하는 땅이름의 접미어로 쓰였던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문헌을 눈여겨보면 산을 이야기할 때는 '삼각산'이라 하였고 한성부의 옛 고을 명칭을 이야기할 때는 '북한산'이란 이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삼각산 이름에 대하여 풀이하기를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솟아있으므로 삼각산이라 부른다 "고 풀이하고 있으나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 북한산이 어찌 이 세 봉우리뿐이랴.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과 맞먹는 노적봉, 보현봉, 문수봉 등 여러 봉우리들을 제외하고서 어찌 세 봉우리만 가지고서 논할 것인가.

이것은 뒷날 사람이 '삼각'(三角)이란 한자풀이에 너무 얽매어 부회한 결과일 뿐이다.

여기서 '삼각산'이란 이름은 '서울산'을 한자로 나타낸 것 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서울'의 본딧말이 '셔불'(세불)이다. 그러니까 '삼각'(三角)의 '삼'(三)은 '세'(서)이고, '각'(角)은 '불'(뿔)로 곧 '서불→서울'이 된다.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의 삼각산,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의 삼각산 등 여러 곳에 산이 삼각형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말의 '셔불', '세부리'를 한자로 뜻빌림(意譯)한 것 뿐이다. 그것은 옛날 그 지역이 부족국가의 군장(君長)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셔불, 세부리)은 그 지역의 '수부'(으뜸도시)라는 뜻이다.

특히 신라의 17관등급 가운데 첫번째 품계인 '각간'(角干)을 '셔블한'(敍弗邯)으로 쓰고 있는데, 여기서 '각=셔블'과 '간=한'의 대등관계가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삼각산'에서 '삼=셔(서)'와 '각=셔(서)불'에서 '셔'(서)가 다만 중복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북한산=삼각산'에서 뭇사람 사이에 사용해온 산이름은 백제의 도읍 이후 삼각산이었으며 그것은 이 산이 사람들 사이에 '서울산'의 뜻으로 통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 '서울산'이 있음은 온당한 일이다.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

 

산행 전 :

 

숨은벽의 산행을 택하기까지 많은 갈등을 겪는다.

 

21일부터 시작되는 불암산님의 백두대간청소길에 동참하여 짜집기 했던 대간종주를 완벽한 마무리를 해 볼려고 올 봄부터 한 계획이 사적인일로 인하여 내년으로 미루어져야하는 처지에 놓이다보니 불암산아우님에게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되었다.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보려 영남알프스종주와 푸른소나무산악회에서 정기산행으로 완도 상황봉을 가는지라 두 군데중 하나를 선택하여 혼자서 다녀 올 생각을 굳혀 놓았으나 백두대간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사실 대간종주을 혼자서 한다는게 힘이드는줄 아는지라 사랑하는 아우와 함께 나서는 길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편안한 여정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여간 기다렸던 것이 아닌데 막상 참여를 포기한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은 물론 불암산 아우에게 미안한 마을을 전 할 길이 없다.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은상태에서 지방의 원정 산행을 한다는 것이 어떻게 비쳐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데도 답은 오지 않고.......

 

차라리 모든 걸 포기하고 경방기간 때문에 천왕봉에서 스타트를 하지 못하고 성삼재에서 여원재를 (천왕봉에서 성삼재 구간은 경방이 끝나는 시점인 12월19일 천왕봉에서 출정식을 갖기로 계획을 일부 수정하였다고함)  먼 저 해야하는 아우의 마음도 달래줄겸 이 구간만이라도 동행할까 하는 마음도 생긴다.

 

이런 저런 마음으로 잠 못이루는 고민은 시작되어 새벽 5시경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어 아침에 눈을 뜨니 07시가 조금 지나고 있다.

 

어젯밤 고민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라 다시금 고민은 시작 되는데 인토산 정기산행이 올 해 마지막으로 숨은벽을 오른다고 하는 소식을 카페에서 보아두었던 생각이 문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 이거다.

07시36분에 숨은벽을 오르기로 결정하고 정신없이 베낭을 준비하여 (08시 부평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 시간까지 부평역에 도착을 해야 한다) 아침식사도 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집을 나서면서 하얀눈꽃 대장님께 전화 드리니 오케이 하신다.

 

사 전에 참석하겠다는 연락을 하여야 도리인줄은 알지만 오늘은 나의 이기심의 발로이니 인토산회원님들의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다.

 

산행 글 :

 

집에서 동암역까지는 7분내의 거리이기 때문에 뛰다싶이 동암역에 도착하여 풀랙홈에 이르니 때 마침 구로행 직통전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오늘은 왠지 산행 예감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왼 종일 기분좋은날이 계속되었음)

 

직통전철은 백운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부평역에 정확이 07시58분에 도착을 하니 다행이 약속시간에 맞출 수 있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쉬리님를(이 때까지는 모르는 분들이라 서먹서먹하였으나 산행을 하면서 금방 친해지기 시작 하였음)끝으로 하여 숨은벽의 들머리 효자비를 향 해 전철을 타고 출발을 합니다.

 

오늘 산행에 동참한 9명중 수잔나님과 나를 제외한 7명은 대우차동차소속 산악부회원이자 인천토요산악회 인터넷 회원님들인지라, 단체산행이지만 팀웍이 잘 맞을것 같은 예감을 하였는데 예상이 적중 하였습니다.(릿지산행에 전문가들이라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으며 산행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세 번의 전철과 연신내역에서 의정부행 버스를 바꿔타고 효자비에 내리니 09시 30분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오늘 산행에 참석하신 분들과 수 인사 나누고 눈꽃대장님에게 산행 시 지켜야할 행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산행을 시작하니 09시 45분입니다.

 

09시45분

朝鮮孝子朴公/泰星旌閭(정려)之碑.

1893년(고종30년)에 조정에서 박태성의 효심을 기리기 위 해 세웠다고 쓰여 있습니다

 

내력

 

이곳이 효자리라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예전 조선시대 한양 사대문 안에 살던 박태성이란 사람이 부친상을 당하여 지금의 효자리에다 묘를 썼다. 그는 효성이 유달리 지극하여 부친이 돌아가신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묘에 참배를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박씨는 가사일을 돌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드시 묘소를 찾았는데 그렇게 하기를 몇 달, 하루는 평상시대로 한양에서 부친의 묘소에 참배하기 위해 길을 가다 무악재 고개에 이르렀을 때, 난데없이 호랑이가 나타나 앞길을 막았다.

이에 박태성은 크게 놀라서 당황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호랑이에게 말하길, "나는 돌아가신 아버님께 문안드리러 가는 길인데 어째서 길을 막느냐!"하니 호랑이가 고개를 옆으로 끄덕이며 등을 내밀면서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이에 박씨는 죽을 각오로 호랑이 등에 올라타자 호랑이는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달려서 이 곳 그의 아버지 무덤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러자 박씨는 안심하고 아버님 산소에 절을 하고 다시 호랑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호랑이가 매일 무악재에서 묘소까지 태워다 주게 되었다.

이래서 박태성은 집안 일을 돌보며 참배를 다닐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후에 효성이 지극하던 박씨도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고 모든 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뜨게 되었다. 박씨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할아버지의 묘 옆에 묻기로 하고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울부짖다가 묘자리 옆에 쓰러져 죽었다.

박태성 아들이 평소에 아버님이 말씀해 주신 호랑이로 알고 아버지 옆자리에 묘를 마련하여 묻어 주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감복하여 박효자의 효성을 기리어 이때부터 마을의 이름을 효자리라고 하였다.

위와 같이 박태성의 전설에 의하여 효자리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이전에는 마을 자연촌락 명칭으로 사기동(沙器洞), 청담동(淸潭洞)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효자비를 지나고 이 개천을 건너서 왼쪽으로 개천을 따라 100여미터 진행을 하다 우측의 길로 접어 들어야 합니다.(직진하는 길은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므로 출입통제구간입니다)

09시58분

게곡을 치고 올라 지능성길에 접어드니 간이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있습니다.

10시11분!

백운대 오르는 길을 지나서 계곡에 당도하여 간식으로 요기를 합니다. 아침을 먹지 못 한 나를 위 해 떡과 과일을 챙겨 주신 수잔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효자계곡!

 

숨은벽을 향해 된 비알을 치고 오르는데 오늘의 홍일점 수잔나님은 한 여름을 만난 것 같습니다.

숨은벽 오르는 주 능선에 접어 들기 전 오던길을 되 돌아 봅니다.

누구에게나 쉽게 치부를 드러내지 않는 숨은벽의 위용이 오늘도 여김없이 안개속에서 신비감을 더 해 줍니다.

 

 

 

 

 

10시47분

일명 빨래판 바위을 앞에 두고 이 곳 해골바위에서 2차 숨고르기를 합니다.

 

소 뿔을 닮은 바위!

소가 싸움에서 상처을 입어 뿔을 수술한 것 같지요?

 

 

 

빨래판 바위를 치고 오르는 햐얀눈꽃 대장님!

가까워 지는 숨은벽!

 

10시57분

숨은벽 공격을 앞 두고 전 대원들이 기념으로 한 장을 남김니다.

일명 빨래판 바위!

우측의 괴상한 암릉!

해골 바위!

우측의 소뿔 바위와 함께 해골 같지 않습니까?

 

2차 간식으로 돼지족발에 소주 한 잔 !

에궁! 아들과

아빠는 동시에 포경수술중이랍니다.

산장능선 넘어 오른쪽의 오봉과 도봉산의 선인봉 만장봉 신선봉!

낙서하듯 음각을 하듯!

설교벽과 숨은벽 사이로 햇살이.........

햐얀눈꽃 대장님!

11시30분

대슬랩에 도착합니다.

 

염초봉에서 숨은벽으로 내려오는 바람골 입니다.

아래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협곡은 밤골계곡입니다.

도봉산에도 햇살이 비치기 시작 합니다.

대슬랩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구간 릿지!

대슬랩을 오르기 시작 합니다.

 

 

그런데 오늘도 지난 봄과 마찬가지로 황당한일을 당합니다. 릿지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모르는 사이라 할지라도 협동심과 타인을 위 해 배려할 줄 아는 양보심이 필요한데요?

 

아마도 오늘 처음으로 로프를 사용하고 대슬랩릿지를 하는 분 두 분이 기본장비는 완벽하게 준비를 했는데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준비를 끝내고 대슬램을 오르기 시작 하는데 기본 릿지가 안 되어 너무나 힘들어 합니다. 첫 번째로 오르신분도 시간을 많이 지체하였는데 이분마져 시간을 지체한다면,

 

 우리 대원들도 20여분이 지나기 시작하면서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온 몸이 추위로 굳어지기 시작하면 오늘 산행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이 분이 위험해 보여 남의일에 간섭하기 싫어하지만 이 분을 도와 주기로 합니다.

 

그런데 자존심일까요? 도움 받기를 거절을 하네요. 뒤 따라 오르면서 혹시나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으로 이 분이 사용하는 로프를 단단히 부여 잡습니다.

아마도 이 분은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요?

 

선두에 올라서 로프를 설치한 분께서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전도 확보할 줄 모르는 분들에게 로프만 설치 하였다고 하여 그냥 오르게 하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어떻게 할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르면서 지체하는 우리가 위험해 보였던 지 후미대장님이 보조로프를 설치하기 시작 하면서 지원조로 뒤를 받치고 오르기 시작하니 나머지 대원들도 뒤 따라 오를 진풍경이 연출 됩니다.

 

가까스로 이 분을 정상에 올려 보내고 뒤를 볼아보니 우리대원들의 안위가 걱정 되어 우리 대원들이 오를 때 까지 로프를 사용하게 해 달라고 하니 먼저 올라와 있던 분께서 하시는 말이 로프를 거두라고 지시를 합니다.

 

얼마나 황당한지요. 더 이상은 이 분들에 대해 기록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 하고 싶은 것은 남을 위 해 배려를 할 줄 하는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월등히 앞서 간다는 사실이지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분에게 남을 위 해 양보하고 배려를 할줄 아는 고운 마음씨를 가지라고 충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대슬랩 후 나타나는 2차피치 !

소 잔등 오르기......

영하의 날씨에 손도 얼고 바위도 얼어 로프없이는 오르기 힘듭니다.

숨은벽 정상을

앞두고 마지막 구간까지

 

잠시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 되셨는지 잠시 여유를 찾아보는 대장님!

설교벽 뒤로 아무리 보아도 지겹지 않는 도봉의 모습!

인수봉의 스파이더맨!

대장님은 휴식 중!

12시50분 숨은벽 정상에 도착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인데 차마 표기할 수는 없고........

뭔가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지요 ㅋㅋㅋㅋㅋ

산화하신 산우를 위 해 이 곳에 오면 언제나 술 한잔 따라 놓습니다.

산우를 보호 하소서!

인수봉의 암벽화!

마치 인수봉을 지키는 추장님 같지요!

쿼터!

사분의 일의  크로스

백운대!

인수봉에서 바라보는 백운대 모습입니다.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

불수사도북의 필수코스!

기억이 안나요!

괴석!

 

8자고리!

인수봉의 벨트!

배수구!

영봉!

도레미파솔라시도~레~

12시36분 이곳에서 음악과 함께 점심식사를 합니다.

어찌보면 남한의 지도 같기도하고.........

인수봉의 여인!

암벽화가 여인이 웃고 있는 모습같아 수잔나로 이름 지었습니다.

14시22분 백운산장 뒤  암자에 도착 합니다.

백운산장의 혼!

족두리바위!

브라보!

인수봉과 보현봉줄기!

멀리 비봉능선도 보입니다.

코끼리바위!

15시43분

무엇에 털 난다는 남자의 뒷 모습 같지요!

 

 

도봉산!

개미집?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

 17시에 사기막매표소로 하산하면서 오늘의 산행을 마칩니다.

 

산행후기:

 

모처럼 유쾌 통쾌한 산행이었습니다. 대우자통차 산악팀의 저력과 인토산의 저력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고, 모처럼 도움 받아 가면서 하는 산행이라 줄거움은 두 배였습니다.

 

산행시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 인상적이었고 하산 후 부평에 도착하여 버섯지개를 안주 삼아 소주한 잔은 황홀한 시간이었습니다.

 

어수선할 때 엔돌핀이 팍팍 솟아나게 한 산행의 줄거움을 주신 인천토요산악회 하얀눈꽃(카페지기)님과 함께한 회원여러분 그리고 대우자종차산악팀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이 번 산행기록을 바칩니다.

 

줄거운 산행과 가정의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