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단상 3> 운길산 수종사 전설의 진위 - (운길산)

  

 오래 전부터 북한강 도로를 따라 오가면서 보아온 운길산 7부 능선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절, 수종사를 가 보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운길산은 남양주군 조안면 송촌리에 위치한 610m의 산으로 양수리에서 서북쪽으로 4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도로에서 마을 소 도로로 접어드니 공터가 있어 주차를 한다. 마을 오솔길을 200여 미터 걸으니 수종사 2 Km 라는 행선지 팻말이 보인다. 가파른 산길이 자동차 한 대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시멘트 포장도로가 꼬불꼬불 계속 산길을 유도한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인적이 뜸하다. 산길을 따라 숨을 헐떡이며 오르니, 검단산의 조용한 소로가 그립다.  산길을 오르는 도중 자가용 몇 대가 경사 40-50도 정도 돼는 산길을 굉음과 함께 매연을 품어댄다. 아마 노인 부모님을 태운 수종사 신도들이겠지(?) 생각하며 슬쩍 곁눈질한다. 왠걸 나보다 한참 젊은 남녀들이 아닌가. 나는 은근히 부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참는다. 아직도 내가 수양이 부족하구나 하고 마음을 돌린다.

  

  수종사에는 지방 문화재 제22호인 팔각 5층 석탑과 530년 수령의 은행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반긴다. 절 안내문을 읽어보니 수종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서 1458년(세조4년)에 창건된 절이라고 안내한다.

  

 전설에 의하면 세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금강산 유람을 마치고 오다가 이수두(양수리)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단다. 세조가 깊은 밤중에 종소리에 잠을 깨어 어디서 나는 종소리인지 알아보라는 명을 내렸다. 아침이 되어 종소리가 나는 곳을 알아보니, 운길산 바위굴 속에 18 나한이 모셔져 있는데 굴속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 나왔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짓고, 이름을 수종사라고 지었다는 유래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산문집을 읽다가 정조 7년(1783년) 진사 급제 기념 차 청년 시절에 마현리 집에서 가까운 수종사에 놀러 갔다가 쓴 ‘유수종사기(遊水鐘寺記)’에서 다음의 문장을 보았다.

  

 ........水鐘寺 新羅古寺 寺有泉從石寶出 落地作鐘聲 故曰水鐘云
(수종사는 신라 때 창건된 오래된 절인데 절에는 돌 틈으로 흘러나오는 샘이 있어 땅에 떨어질 때 종소리를 내므로 수종사라 한다)

  

 그렇다면 절 안내문의 내용이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아마 이 절은 신라 때 창건되고, 세조 때 중창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눈을 들어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두물머리(양수리)가 한 눈에 바라 보이는  뛰어난 경관을 감상하다가 이름이 두물머리 보다 합수머리가 더 나은 이름 같다고 아내에게 동의를 구했다. 아내 왈, 두물머리는 순수한 우리말이라 더 정겹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절경을 뒤로하고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니 목 줄기까지 시원하다.

  

 절 입구에 소로 따라 20-30분 등산로를 오르니 운길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의 조망은 북한강 물줄기가 조금 보일 뿐, 검단산 조망보다는 어림없다. 수종사를 뒤로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자주 자동차 행렬을 만난다. 산길에서 만나는 자동차 탑승객들이 왜 이렇게도 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지 검단산처럼 자주 오를 산은 아니라고 독백처럼 내 뱉으며 산을 내려온다. (2004.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