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18 

아름다운 복수가 뭔지 아시나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말에 애경사(哀慶事)가 있으면 낭패를 당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경사(慶事)는 얄팍한 축의금 전달을 체면치레로 여기고 산행을 떠나지만 가까운 지인들의 애사(哀事)는 어쩔 수 없이 공칠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이번 주말에는 공교롭게도 애경사가 겹쳐 왔다갔다하다보니 산에 가는 것이 어중간해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서두르면 어둡기 전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산으로 간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올라가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만추의 정취에 취했는지 아니면 한 잔술에 취했는지 왁자지껄 떠들며 내려오는 사람들만 북적인다. 어떤 산우는 구성진 육자배기를 한 대목을 흥겹게 부르면서 내려오는 모습이 너무나 여유로워 보인다. 
 

 “지금 올라갔다가 언제 내려오시려고 - - -” 

 “조금만 올라갔다가 어둡기 전에 내려오렵니다.” 
 

 낯선 산우와 정겹게 인사를 나누고 나니 왠지 마음이 바빠져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산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공간과 가까운 곳에 존재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너무나 확연하게 유리(琉璃)된다. 아옹다옹하다가도 산에 다다르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서로를 염려하고 격려하는 마음이 싹튼다. 그러므로 산은 나의 정신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기에 산으로 간다. 
 

 언제고 시끌벅적한 쉼터도 이상하리만큼 괴괴해 갑작이 텅 빈 기분을 자아낸다. 여기서 산정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어두워질 것 같아 그냥 내려갈까 망설이다가 현재에 안주하여 멈춰 서있는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기에 가파른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너무나 고즈넉해 정적이 흐르는 산길 언저리에는 화려함의 극치를 이뤘던 단풍도 거추장스러운 옷을 시원스럽게 벗어버리고 무욕의 자세로 겨울맞이를 서두르고 있다. 잠시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늦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는데 다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지난날의 아픈 추억의 편린들이 어렴풋이 떠올라 마음을 산란케 한다.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따지기 전에 얽히고설킨 곱새김으로 그리도 많은 시간을 차디찬 변지(邊地)에서 뒹굴어야 했던 지난 시절을 혼자만의 시간으로 채워가기에는 수많은 한숨과 피맺힌 절규로 얼룩질 수밖에 없었기에 다시 생각나는지도 모른다. 그때 지지 않으려고 끝까지 맞섰다면 지금 이렇게 그날들을 돌이킬 수 있었을까 괜스레 쓴웃음이 나온다. 
 

 엄청나게 손해 본다는 각오로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하고 용서하는 마음가짐을 다져갈 때 한편으로는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산행을 통해서 화해와 용서로 상생하는 방법을 어렴프시 터득했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다시 설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산행을 하면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듯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도 무척 힘들고 왕창 손해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산봉우리에 오르면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법열(法悅)을 느끼듯 한순간의 용서로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확 풀어버리면 고뇌에 찌든 삶을 더 윤택하게 꾸려나갈 수 있다. 교만함에서 겸손함을 가르쳐주고 덤으로 용서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는 지름길이 바로 산행이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마음의 아픔으로 똬리를 틉니다. 이처럼 마음의 아픔은 예고 없이 들이닥칩니다.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힘들 수도 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얽히고설킨 마음의 상흔을 말끔히 치유하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가짐으로 용서라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그렇다면 과연 아름다운 복수란 무엇일까?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유대인 부인께 "복수하고 싶지 않느냐"고 질문했더니 그녀는 잔잔히 웃으며 "나는 복수에 대한 감정으로 내 인생을 파괴시키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기엔 내 인생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하고 대답했답니다. 
 

"가장 큰 복수는 용서라고 합니다. 한 순간의 복수를 위해 일생동안 타인의 삶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한 순간의 용서로 응어리를 풀고 자기 삶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가라는 뜻일 겁니다. 기억하되 용서하는 것, 가장 아름다운 복수입니다." 라고「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우리들에게 띄워 보낸다.



 상대방의 언짢은 말과 행동으로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더라도 사람마다 기회와 여건이 다르기에 살아가는 방식이 엇갈릴 수 있다는 사고(思考)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옹졸한 편견에서 벗어나 너그럽게 이해하고 한발 양보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사회적 법칙이기 때문이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내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어질 뿐이다. 하지만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달라이라마의 행복 메시지가 가슴 찡하게 와 닿는다. 
 

 산정(山頂)에 서니 그림자가 더 길어진다. 조금 있으면 땅거미가 서서히 밀려올 것이다. 늦가을의 어둠은 금세 밀려들기에 무작정 올라갔다가 곤혹스러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한다. 그러나 이 산길은 너무 연숙(鍊熟)하기에 별로 부담감이 없어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어둠에 저항하는 저녁놀을 바라보니 부질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울적해진다. 

  

 내려오는 길목에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는 더욱 생생해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땅거미가 급속히 밀려들어 걸음걸이가 약간 불편스럽지만 온갖 소음으로 시끌벅적했던 산길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시각이기에 으스스하면서 야릇한 기분을 자아낸다. 이런 맛에 호젓한 야간산행을 즐기는지 모르겠다. 오로지 안락함에 길들여져 피곤함을 핑계로 산을 오르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기의(氣意)를 누려볼 수 있겠는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용기를 내서 가슴에 묻어 두었던 찌꺼기들을 깨끗이 씻어버린다면 힘겨운 산행 뒤끝에 맛보는 쾌감과 같은 희열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불목(不睦)에서 화해로 증오(憎惡)에서 용서의 길로 들어서야 희망이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무척 힘들다고 하지만 세상사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니겠는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