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년 11월 14일 ( 둘째 주 일요일 )

▶누구랑 : 오름 산악회와 함께 43명

▶어디로 : 남설악 흘림골 등선대 ( 1004 m )

▶교통편 : 천안↔안성↔강릉↔양양↔오색약수↔한계령 가는 길목

▶등산코스 : 흘림골 ~ 여심폭포 ~ 등선대 ~ 주전골 ~ 오색약수터 6.5 km


 

◊ 이름조차 생소한 흘림골은 한계령휴게소와 오색약수터 사이에 자리 잡은 3㎞ 가량의 골짜기이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양양 방면으로 향하는 44번 국도를 따라 2㎞쯤 내려오다 보면 흘림골 입구를 만난다.





◊ 숨겨진 비경을 찾는다
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새벽 일찍 때맞추어 일어난다는 게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어째 말똥말똥 ~ 좀체 잠이 들지 않는다. 기온마저도 뚝! 떨어져 제법 초겨울을 연상케 하고 장비를 챙겨 두었지만 은근히 걱정이 된다.

약속장소에서 차에 올랐건만 봉남이가 보이질 않네?

부리나케 전화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깜박 ~ 늦잠... ” 새벽 일찍 일어나는 건 누구나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네.

이런 저런 소소한 소동 끝에 출발하고 보니 6시를 훌쩍 넘어선다.


 

그래도 설악산을 찾아 간다는 설렘에 모두들 들떠있다. 명산은 이렇듯이 누구나 동경하는 대상이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고속도로도 텅 비어있다.



중간에 나누어 주는 떡 이랑 , 김밥 두 줄 까지 먹고 나니 배도 든든하고 우려와는 달리 쾌청한 날씨까지 ... , 한참 맛있게 자고나면 휴게소라며 깨워주고 , 스트레칭으로 어깨 풀고 진한 커피 향에 한번 취해두보고 , 또 스르르 단잠에 빠져들고 , 언뜻 눈을 뜨니 탁 트인 동해 바다 ~~!!!




난 아직도 바다만 접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상쾌하다.

이렇게 행복한 휴일이 또 있을까?


드디어 한계령을 향하는 초입이다.

버스가 가쁜 숨을 헐떡이며 느릿느릿 조심스레 오르는 동안 좌우로 펼쳐지는 남설악의 비경은 금강산 못치 앟으리라 믿는다.








오색약수터 입구 ~ 주전골 매표소 ~ 다음에 도로 좌측 편에 초라한 공터 , 그곳이 흘림골로 진입하는 국립공원 매표소 입구였다.

10시 30분이니 쉬엄쉬엄 4시간 30분 걸렸다.

밥 먹고 두 번이나 쉬었음에도 빨리 왔다.



등산로 초입은 여누 매표소와는 달리 초라하고 화장실도 간이화장실이구 을씨년스러웠지만

2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어 공개 하느니만큼 다소 불편하고 초라하여도 오히려 그런 점이 신선하게 여겨졌다.




이참에 한 가지 국립공원 측에 건의 하자면 간이화장실들이 대체로 Gas 때문에 질식 할 정도로 환기가 불량인 곳이 많으니 개선되었으면 한다.

난 그래서 고백컨대 웬만하면 간이화장실은 이용하지 않는다.

근데 대체로 여성은 남성에 비하여 생리현상을 오래 참지 못하는 경향이어서 첨에는 “여자들은 참을성이 없나 보다.” 라고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신체구조상 여성의 기관은 남성에 비하여 짧기 때문 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

그늘진 곳이라 가뜩이나 쌀쌀한 날씨에 음습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준비체조는 해야지~ .

예전과 달리 이제는 나도 틈만 나면 스트레칭으로 몸을 추스른 후에 산행을 하는 습관이 들었다.

 


 

◊ 흘림골과의 첫 대면 , 10시 40분 드디어 철책선의 조그마한 쪽문을 통해 흘림골로 첫발을 디뎠다.

철책선 통과 하듯 굳게 닫혔던 일부를 통과하여 발을 들 여보니 여누 등산로와는 첫느낌이 달랐다.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둥치며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잔가지들 , 잔뜩 이끼를 짊어진 바위들 , ~ 제자리가 아닌 듯 밞으면 구르기 일쑤인 등산로 주변의 돌멩이들 ... 아직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서 자유로운 탓에 마치 헝클어져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원시림의 청초한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미 겨울이 성큼 다가와서 모든 게 앙상한 골격만 남았기 때문이리라.

그랬다 !!

설악에는 이미 가을은 떠난 지 오래 전이다.

이제 겨울이 함께 하는 것 이다.

길 가장자리 풀숲에서는 이미 얼음 꽃이 피어있다. 삐죽 삐죽 땅거죽을 들추고 너도 나도 투명한 침상결정체들이 꽃 피우듯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은 이미 생명력을 잃었고 이름모를 야생화들의 함초롬한 자태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만물의 보금자리인 설악의 흙이 얼었다.

이제부터는 아이젠도 챙겨서 다녀야겠다.

설악은 이미 겨울의 가운데에 있었다.


 

◊ 등산로는 사전 예고도 없이 바로 오르막길로 시작이다.

여기 저기 구멍이 뻥~ 뚫린 채 생명의 끈질김을 과시 하려는 듯 주목들이 버티고 있다.

어떤 것은 나무둥치가 어른 두 사람이 감싸 안아야 할 정도다.



저만치 자라려면 몇 년 동안이나 이 자리를 지켜야 했을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찬사를 늘어놓을지 몰라도 나는 처절한 느낌이 들었다.






경애감도 , 감탄도 아닌 ... 착잡한 서늘한 기운이 휑하게~하니 가슴을 파고든다.

마침 주변이 을씨년스런 겨울의 황량함으로 들어찼기 때문일까?

여기 저기 찢기고 떨어져 나가고 , 속이 휑하니 파이고도 버티고선 몸뚱이에 의지한 몇 몇 가지에서 빌붙어 생명력을 유지하는 빈약한 영양실조의 불쌍한 주목~

한계령을 넘어서 대청봉을 찾아가던 길목의 그 주목과는 다르다.

덕유산 정상을 받치고 있던 신비스런 주목들의 군상과는 더욱 다르다.

오죽 인간들의 횡포가 심했으면 아예 철조망으로 둘러싸서 20년이나 막아 두었을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길목은 이 땅의 신혼부부들이면 건강한 후세를 얻기 위한 일념으로 꼭 거쳐 가던 필수코스 이었다고 전해진다.

인간은 기원 했던 대로 후세를 얻었을지 몰라도 정작 자연은 병 들어버렸으니~

또한 진정 자연이 생명력을 되찾았기에 이곳을 새로이 개방한 것이 아니라 주변 상가들의 활성화를 기대한 압력이 감안 되었다는 해석도 들리니 어찌 씁쓸하다.


20여분을 땀 흘려 오르다보니 웬 사람들이 북적인다.


여심폭포다

여성의 깊은 그 곳을 닮았다는 높이 30여m의 '여심(女深)폭포'가 바로 이곳. 신혼부부가 이 폭포의 물을 받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 때문이었다는데, 이런 이유로 1980년대 말까지 제주도와 경주를 비롯해 설악산은 단골 허니문 여행지였다. 만물상과 점봉산, 한계령 속에서 그 우아한 자태를 감추고 있었던 남설악의 흘림골은 그 당시 신혼부부들이 반드시 들려가는 필수 코스였다는데….

흘림골이라는 지명도 이 물이 흐르는 골짜기라고 해서 붙었다고 한다.

여성의 깊은 곳이라니…. 하지만 부끄러워말고 사진을 잘 보시라.



오전이라 그늘져 다소 어둡지만 햇살이 들 때 조명 효과가 더해졌다면 더욱 실감 났을 것 같다.

보면 볼수록 어쩌면 저리도 여성의 성기와 닮아있을까,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지만 뭐 모두들 기념사진도 찍고 특히 아저씨보다 아주머니들이 어찌 그리 좋아 하는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

오늘만 해도 분당 , 일산 , 대구 등등 전국에서 골고루 찾아왔네.

지금 봐도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하고 쑥스럽지만 아무튼 한참동안 구경하고 사람들 숙덕이는 이야기 엿듣느라고 뒤쳐졌다.


 

근데 이야기가 뒤로 앞질러가서 천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퀴즈 맞추기를 하는데

신체 일부 중에서 “ ~지”로 끝나는 말은?

짓궂은 질문을 던진 악동(?)이 있었다.

 

나중에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중지 , 엄지 , 허벅지 , 약지.... 등 등 ” 이미 다들 이야기하고 내가 할 수 있을게 딱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아무 말도 못하고 바보처럼 벌금으로 만원을 깨끗이 헌상했다.

쑥스럽구먼!


 

◊ 등선대 , 여기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 이지만 그리 길진 않고 오를만하다.

등선대까지 이어지는 이 코스의 이름은 깔딱고개라 한다. 여기까지 올라와서 등선대를 오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이 고개를 오르면 등선대 오르는 길과 12폭포로 하산하는 갈림길이다.

여기서는 바위 틈사 이를 비집고 올라야 하는 만큼 위험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릴 때면 한정 없이 기다려야 한다.



아마 동절기에는 틀림없이 입산금지 일 것 이다. 그만큼 위험하고 기다리기가 번거롭지만 선녀가 하늘로 오른다는 등선대(登仙臺)는 흘림골 산행의 절정이요 비경이다.


힘겹게 올라보니 사방으로 펼쳐진 남설악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사방에 뾰족 바위로 뒤덮인 산들이 연봉을 이룬다. 이곳을 만물상 이라고 하는데 등선대가 만물상을 대표 하는 듯 하다.



동으로는 칠형제봉과 그 너머로 한계령과 귀때기청봉이, 서쪽으로는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천사가 되어 하늘에 오른다고 1004m 라는데 진짜 날개가 생겨서 훨훨 날아서 저기 맞은편 봉우리로 날아 갈 것 같은 충동을 느낀다.


기껏 4~5명이 서 있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의 바위 정상이고 깍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서있는 기분을 어찌 표현 다 할 수 있으랴.

근데 난 이 땅에서 나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은 것 같아서 천사 되고픈 마음은 접었다.

아쉽지만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하산해야겠다.



11시 50분 이제 하산길이다.

사실 산행으로는 , 오르는 듯하다가 하산 하려니 뭔가 부족하게 여겨지지만 워낙 경관이 아름다워 서운함을 상쇄시켜준다.





20여분 내려오니 등선폭포다.

여기서 일행을 기다렸다가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벼락을 맞았는지 고목이 죽어있다.



 

◊ 주전골 ~ 13시 벌써 골짜기는 그늘이 드리워져 어시시 춥다.




무명폭포를 거쳐 12폭포 쪽으로 하산이다.
용소폭포 갈림길까지 한 시간여 내려오는 내내 주변 경관에 취하여 있었다.
















12폭포까지의 주전골 , 맑디맑은 물줄기에 기암괴석이 마치 소금강에 다시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주전골삼거리에서 왼쪽으로는 용소폭포, 오른쪽으로는 큰고래 골이 이어진다. 금강문, 선녀탕, 오색제2약수, 오색약수터로 연결되는 이 곳을 큰고래골 이라고 한다.




계속 물줄기를 따라 내려간다. 지금부터는 그냥 관광이다.

나에게는 관광도 산행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니 마냥 즐겁다.





















◊ 나의 산행일기 ...
산행기라 해서 꼭 산을 일등으로 달리고 높고 험준한 곳을 정복 하는 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니라.

주변을 둘러보고 땀 흘려 오르다 잠깐 뒤를 돌아다보며 여유도 곰씹을 줄 아는 사람 ,

풀 한포기 , 야생화 꽃잎 하나 , 철따라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기 , 이 모든 느낌을 가슴속에 담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 해두었다가 빛바랜 책갈피 속의 네잎크로바처럼 가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으로 산행기를 남겨 두고 싶다.


 

◊ 마무리 ... 15시 오색약수 주차장에 이르러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하산길이 두 시간 남짓 걸렸으니 산행 치고는 다소 부족한 듯하기도 하다.






허지만 등선대를 비롯해서 물줄기 따라 기암괴석에 취할 수 있었던 아름다움에 모든 시름을 지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