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학산-꽃마을-엄광산-구봉산-민주공원 : 가을비 그친 뒤

 

 

2004. 11. 14.

 

동아대 하단캠퍼스-승학산-457봉-(H)489봉-꽃마을 : 단체산행 : 3시간

꽃마을-엄광산-구봉산-민주공원 : 홀로 : 2시간 15분

 

 

 

토요일 밤의 늦은 만남이 새벽까지 이어졌으나, 흩뿌리는 빗줄기에 산행걱정이 되려 삭아든

다. 세차게 내려치면 아예 가질 못할 것이요, 부슬비가 내리면 미끄러운 길 핑게삼아 졸며 가

게 될 터이니 느긋해진다는 뜻이다.

 

 

일요일 아침. 소속단체에 일년에 두번 뿐인 산행날이다. 말이 산행이지 경쾌한 소풍 격이라

아침까지 내리는 부슬비에도 불구하고 접는우산을 들고 하단 지하철역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꼭 같이 산행하자고 간곡히 설득을 하시던 선배의 부탁을 받은 터라, 당당히  나서

는 것은 시건방을 떨게 되는 모습일 수 있으니 조신한 자태로 한껏 조아려 이리저리 수인사

를 나누고 버스에 올라 산행입구까지 이동을 하였다. 전혀 본의 아니게, 산을 좀 아는 것처럼

괜스레 자신을 높혀 놓은 소인배의 행태를 보인 셈이 되어 민망하기가 그지없다.

 

 

10시가 갓 넘어 출발을 하여 꽃마을 까지 1시에 도착하기로 계획되어 있으니 넉넉한 시간이

다.  흩뿌리는 빗방울 때문에 디지탈 카메라를 꺼내기가 망설여졌는데 출발을 시작하자 마자

비구름이 앞산을 벗겨내면서 햇살이 들기 시작한다. 밤새 내리던 비가 바야흐로 그쳐 가는 셈

이다.

 

 

(아래사진1) 이번 산행의 안내도. '사람과산' 최근 호의 승학산 탐방기에서 발췌하였다. 주행

로는 적색으로 일치한다.

 

 

(아래사진2) 산행입구 (하단 지하철역 6번 출구에 동아대 하단캠퍼스를 왕복하는 셔틀이 있

다. 이 셔틀을 타고 캠퍼스내의 종점까지 가서 산쪽의 벽면을 타고 올랐다.

 

 

 

초반부터 급경사의 미끄러운 길이다. 오름길에 이골이 났건만 초반에 무거운 다리와 가쁜 숨

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지구력은 얻었지만 초반 무거움은 체중이 많이 빠져야 극복될

것이다.

 

 

옛날에는  ROTC 교육장으로 쓰이던 곳 같은데 지금은 깨끗한 공터가 되어 있다. 한숨을 돌리

고 카메라를 조작하는데 에러가 뜬다. 가끔 있는 일이다. 이것 저것 점검해보니 또 AA 배터리

가 소진된 것이다. SLR 디카에는 카메라 건전지와 AA 배터리가 같이 장착되는데 카메라 건전

지는 오래가는데 비해 AA 배터리의 소진속도가 빨라 출사할 때 마다 4개의 배터리가 거의 소

진되는 듯하다. 항상 여분을 가지고 다니지만 사용자들이 주의해야할 대목이다.

 

 

(아래사진) 승학산 전위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가 그치고  깨끗한 모습으로 가을 끝머리의

색감을 잘 나타내어 주니  비로 씻어낸 마지막 가을 상봉인 듯하다.    

 

 

(아래사진) 승학산 북사면으로 운무가 피어 오르고, 좌측 멀리 백양산 중턱에는 두터운 운무

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다. 

 

 

 

(아래사진) 승학산 정상을 계속 가파르게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방금 힘들게 지나온 전위봉

(405.5)이 어느듯 앙징한 모습으로 돋아 있다. 낙동강 넘어 진해 쪽으로 펼쳐진 산줄기에 운

무가 걸친 것이 감탄을 자아낸다. 비 그친 뒤라 낮은 산에서도 좋은 경치를 얻는다. 시원하

다.  

 

 

(아래사진) 승학산 정상 바로 아래로 고도를 높혀가니 낙동강과 을숙도의 상단이 뱃머리 모양

으로 날카롭게 보인다. 불모산 기지와 멀리 시루봉(사진판독은 불가하지만)도 가늠이 되었다.

 

 

(아래사진) 김해방면으로 눈을 돌리니 신어산이 물속을 헤쳐나가는 버팔로의 형상으로 뚜렷

하다. 아래로 김해공항이 보이고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대교가 푸른 철심같다.

 

 

 

(아래사진) 전위봉은 구름 속에 잠기고 운무는 곧 위로 번져 오를 기세다. 남쪽에서 강한 햇살

이 번져오니 후텁지근한 날씨 예감이 든다. 

 

 

 

(아래사진) 승학산 정상에 오를려는 순간. 푸른 하늘에 마음을 뺏긴다. 얼마만에 보는 가을하

늘다운 하늘색인가. 다만 색감표현이 부족함에 안따까울 뿐이다. 

 

 

 

(아래사진) 초입에서 쉬며 가며 한시간 정도 땀을 흘리니 승학산 정상이다. 이제부터는 조망

과 억새산행이 기대된다. 하지만 오늘은 무엇보다도 비온 뒤의 쾌청한 하늘빛이 제일이다.

 

 

 

(아래사진 두장) 능선으로 올라온 운무는 기세를 뻗쳐 넘어오지 못하고 번져 오른다. 하지만 

건너편 백양산과 뒷편의 금정산을 아울러 한폭의 그림으로 이어주니 우리집 뒷산이 이리 좋

은 줄을 또한번 알게 된다.^^ 

 

 

 

 

(아래사진) 암반 아래부터 억새사면이 펼쳐진다. 당당한 남성과 조심스러운 여심이 역광의 억

새춤 사이로 보기좋은 그림이 된다. 

 

 

 

(아래사진) 승학산 억새의 사진에는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사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군

데군데 진달래가 피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고향선배 한 분이  이르기를 원래 진달래가 봄

과 따뜻한 가을, 두 철을 피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다. 매년 있는 현상인데도 그럴 적 마다 매

스컴이 호들갑을 떠니 예리한 체험으로 자연을 습득한 이의 눈에는 얼마나 경망스레 보였을

꼬.

 

 

 

(아래사진) 좀 더 멀리 나아가서 뒤돌아보니 승학산 정상이 보이고 윗 사진에서 보이는 암반

은 승학산 정상 아래 윗마루로 주저앉았다. 산을 관측할 때 원근에 따라 이런 모습을 보게 되

는 것이 산을 조망하는 또하나의 즐거움이다. 

 

 

 

(아래사진) 비록 보라색 섞인 금빛 자태를 잃었지만 노쇠한 억새는 나름대로 가을의 깊이를

드러내기에 늘상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곳을 지나칠 수가 없다. 뒷산의 볼륨과 억새능선의 부

드러운 곡선이 야릇한 매력을 준다.

 

 

 

(아래사진)  사람들은 왜 저렇게 기념사진을 찍을까.... 생각하며 웃음짓는다. 나 자신도 떠밀

려 이따금씩 그리하지만 이런 장면과 인물사진을 아울러야 현장감이 살것 같아 슬그머니 한

장 담아본다.^^ 한장의 사진으로 모든 것을 함축하기엔 그래서 참으로 어려운 것이리라.

 

 

 

(아래사진) 승학산 정상에서 암반, 그리고 평탄한 억새능선을 조망한 이곳은 489봉 헬기장

바로 아래다. 일행들은 아래쪽에서 이어진 임도로 계속 진행을 하고 나와 산행대장 둘이서

황급히 올라섰다. 작년 이맘 때보다 이 봉을 오르기가 한결 수월함을 느낀다.

 

 

489 봉을 내려서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꽃마을로 내려서니 아침 비에도 불구하고 뒤늦

은 산행을 나선 사람들이 가득하다. 오늘 산행대장님과 함께 일행 중의 최후미로 시간에 맞추

어 회식장소로 내려갔다.

 

 

여러가지 사무적인 이야기들이 격식을 갖춘 다음 술이 오간다. 이미 작심한 일이니 간단히 요

기를 하고 자리를 뜬다. 술을 좋아하지 않으나 그런 이유만으로 자리를 피할 이유는 없다. 하

지만 산을 계속 타야한다는 강박적인 생각도 상황따라 점잖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러 하루를 내어 승학산을 일주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한달 두세번의 기회에 좋

은 산도 많은데 집 뒷산을 일주하는 것은 발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

히 오늘 같은 날, 공식산행을 마쳤으니 계속 이어가기를 하면서 옛 추억의 길도 더듬어 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술 마시는 일보다는 훨씬 즐거우니까.

 

 

그리하여  혼자 나머지 구간,  아래 지도에서 구덕터널 지나는 "꽃마을" 지점에서 508 엄광산

정상석 지점(504)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출발 2시. 소나무 숲길이 상큼하다. 산행대장님께 폰

으로 전화를 하여 여흥을 나누지 못하는 송구함을 전했다. 

 

 

 

 

 

 

엄광산 내원정사는 내가 사는 곳에서 넘어올라치면 한시간 정도 걸리고 엄광산 꼭대기를 거

쳐 내려오면 한시간 반정도 걸린다. 몇 해 전, 나름대로 절실함을 가지고 매일 새벽운동을 이

코스대로 하였다. 내원정사에 까지 땀흘려 도착하고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108배를 올리고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던 강행군을 3개월여 하였던 적이있다.

 

 

어두운 새벽에 무덤이 많은, 익숙하지 않은 곳을 지나던 그 절실함은 내 뼈 속에 베어 들었는

지 지금은 그런 열정이 순화되어 있다. 하지만 약골이었던 몸은 정신의 단련과정에서 그렇게

서서히  야물어져 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엄광산 줄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연사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쪽 산을

탈 때마다 남다른 감회로 경건해지는 것이 오늘도 어긋나지 않았다.

 

 

(아래사진) 꽃마을에서 엄광산 오르는 소나무 숲 길

 

 

 

가파른 경사를 두어번 숨을 고르다가 오르니 어느새 엄광산 표지석 봉우리다. 정면에 기상관

측시설이 있는 구덕산(실제 구덕산, 이곳에는 엄광산 구덕산이 속칭으로 불리워 이곳저곳 중

복 되는 곳이 있어 초행자들이 혼란스러워한다)이 보이고 멀리 승학산도 비친다.

 

 

(아래사진) 엄광산 암봉에서 : 발아래 꽃마을이 있고 등산객은 김해 쪽을 가르키고 있다. 나는

이런 사진을 즐겨 채집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람들이 시선을 일치시켜 맘에 드는 모델이 되었

다.^^ 

 

 

 

(아래사진) 엄광산 정상석 곁에 헬기장이 있고 그 곳에서 가야할 동릉을 바라본다. 구름 아래

회색 산그리메가 있으니 해운대 장산이다.

 

 

 

(아래사진) 능선을 가면서 북쪽의 백양산을 바라본다. 몇 년 사이에 아파트가 훨씬 많이 들어

서 산아래가 더욱 요란해졌다.

 

 

능선은 동쪽(동동남)으로 진행하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동의대, 가야공원, 수정동 안창마을 코

스로 직진하는 길(아래사진 두장)과  남쪽 구봉산 쪽으로 90도 꺽어지는 완만한 능선의 이음

길(그 아래 석장)로 나뉘어 진다. 

 

엣날에는 이곳에 서면 동서남북을 모르고 그냥 참 길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 지나는 사람들에

게 몇번을 망설이다 물어보고 진행하기도 했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누가 물어보면 참

으로 친절히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아쉽게도 아무도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

다. 

 

 

(아래사진 두장) 능선은 동쪽으로 이어져 동의대 쪽, 서면 쪽, 수정동 쪽으로 향한다.

 

 

 

 

(아래사진 석장) 능선은 남쪽으로 부산항, 남포동, 대청동 방향으로 향한다. 

 

 

 

 

 

 

구봉산에 도착하였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아직 두시간도 되질 않았다. 구봉산은 봉수대가

있었고 가볍게 올라온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부산항이 코 앞이다,. 북항의 1부두에서 8

부두까지가 죄다 들어 있는 곳이라지만 잘 모르는 것이 부산항이다. 이러고도 부산에 사는 사

람인지 모르겠다.

 

 

항구는 여전히 두렵고 낯설다. 투박하고 거칠게 느껴지고, 생존의 기반이 흔들리는 배의 아래

인 바다같이 불안정하고 두렵다.  내륙에서 이주한 소도시 유학생으로서,  아직도 부산의 기질

을 빨아들이지 못해서 일까. 항구를 바라보면 나는 문득 어쩔 수 없는 이방인임을 느낀다.

부국의 길이 항로로 열려있다는 캐취프레이즈는 내겐 애초에 생경하기만한 것이었다.

 

 

(아래사진 두장) 1.구봉산 봉수대 뜰에서 부산항을 바라보다./ 2.대청공원에서 이름이 바뀐

민주공원 탑과 기념관이 보인다. 

 

 

 

(아래사진) 영도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봉산 봉수대에서 내려서는 길은 잠시 비탈을 강요하더니, 이내 너무나 편안한 산책로였다.

해가 비스듬해지니 산을 오르는 이는 적고 몇몇 하산객만 보이는데 길은 너무나 조용했다.

체육공원을 지나 대청공원 탑으로 향하는 길이 이리도 고요하다.

 

 

(아래사진) 한적한 늦은 오후의 하산로

 

 

대청공원 곁으로 하산을 완료하니 오후 산행은 두시간 15분이 걸렸다. 좀더 많은 사진을 심혈

을 기울여 찍을 수 있었는데 괜스레 마음이 급했다.  비교적 가벼운 산행이었는데도 미뤄둔

숙제를 마친 것처럼 맘이 가볍다. 근교산(엄밀히 말하자면 뒷산)의 즐거움을 만끽한, 편안한

산행이었다.

 

 

(아래사진 두장) 민주공원(근사한 이름이지만 왠지 예스런 대청공원이 더 정겹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