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탑이 있는 마이산 종주기

 

  우리 땅에서 가장 다양한 표정을 가진 산으로 쫑긋 세운 말의 귀, 용의 뿔, 바다에 뜬 돛배,

흰눈 덮인 겨울엔 마치 먹물을 찍은 붓끝의 모습과 같다. 고드름이 거꾸로 솟는 불가사의의 산, 바람에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기기묘묘한 탑 80여기가 영산의 신비를 더하는 『신비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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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의 모습

 

馬耳山(677m)의 來歷 

마이산은 도립공원(1979. 10.16 지정, 공원 면적 17.22㎢)으로 두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677m)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673m)으로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층이 갈라지면서 두 붕우리가 솟은 것이라고 한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의 448 층계를 오르면 숫마이봉 중턱의 화암굴에서 약수가 솟는다.

또한 두 암봉 사이에 낀 마루턱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탑사에 닿는다. 세찬 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돌탑들이 신기하다.

  

신비하게 생긴 바위산에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도민 휴양지로 지정되었으며 이갑룡 처사가 평생동안 쌓았다는 80여 무더기의 석탑과 함께 마이탑사가 유명하다. 탑사, 은수사, 금당사,  북수사. 이산묘등의 문화재가 있다.

  

≪한국의 산하 및 진안군 홈피에서 발췌≫

※ 마이산의 높이가 한국의 산하에는 673m로, 진안군 홈피에는 677m로 기록되어 있는데 통일된 수치를 사용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位 置 : 전북 진안군 진안읍, 마령면

日 時 : 2004. 11. 13(토)

日 氣 : 흐림, 기온 : 영하2도, 바람 : 없음

山 行 者 : 2명(나와 아내)

찾아가는 길 : 07:30 출발 →온양 →천안논산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전주 → 진안

                  → 강정대마을

  어느덧 11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많은 세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萬山紅葉 人山人海』는 덧없이 지나가고, 진정으로 산의 속내를 살펴보기 좋은 계절이 지금이 적기가 아닌가 느껴지기에 우리는 신비의 산 마이산으로 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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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山行 豫定路圖

                          (들머리 : 강정마을, 날머리 : 이산묘)  

山行距離 : 약 14㎞

山行時間 : 6시간10분(중식 및 휴식시간 포함)

    10:55 - 강정대 출발

     11:15 - 합미산성

     12:30 - 광대봉

     13:50 - 고금당(중식)

     14:35 - 비룡대

     15:30 - 봉두봉

     15:50 - 탑사 

     16:00 - 은수사

     16:10 - 숫마이봉 입구 화엄굴 

     16:30 - 탑사

     16:50 - 금당사

     16:55 - 남부주차장

     17:05 - 이산묘

        산행 끝

 

  강정대 하천 도로변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종주 들머리인 강정대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마이산은 한번은 친구들과 같이, 또 한번은 온 가족이 15인승 봉고차를 렌트하여 10여년 전에 

다녀 간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남부주차장에서 탑사까지 올라 갔다 오지 않았나 한다. 무지의 상태에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5-6시간 정도의 산행시간이 소요 될 것으로 예상 되는바, 사전 예습 철저로

알바 없이 계획된 시간내에 마치기로 마음을 다지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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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초입의 강정마을 이정표

 江亭臺는 합미산성 아래,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이곳에서 섬진강 발원지의 상류에서 선비들이

 풍유를 읍던 곳이라 여겨집니다(산행초입 길옆의 바위에 강정대라 새겨져 있으며 누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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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合米山城(합미산성)

강정마을 맞은편 봉우리에 축성된 성으로 북쪽에 월운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성은 북서쪽 계곡에서 남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 되어져있다. 남서, 북동 성벽은 계곡 쪽으로 내려오면서 대부분 파괴되어 있으나 성벽의 흔적은 뚜렷이 남아 있다.


 아직까지 성벽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곳은 남동쪽으로 높이는 약4.5m이며 길이는 약 70여m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성의 전체 길이는 약600m정도 이며 남동 성벽으로 보아 높이는 약 4-5m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 내부에는 무수한 기와 片(편)과 삼국시대 토기片(편)을 수습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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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선에서 바라본 마량 들

      늘녁의 검은 부분은 삼 재배지 같구요 

     며칠전에 내린비로 땅이 촉촉하게 젖어서 그런지 흙 냄새가 무척이나 좋다.그리고

     낙옆 썩는 냄새도 좋고 .... 벌써 地氣를 받기 시작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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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자굴과의 갈림길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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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봉 오름 암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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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봉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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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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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봉에서 바라본 마이봉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 보여

에는 바다에 뜬 돛배 같아서 돛대봉,

여름에는 용의 뿔 같다고 해서 용각봉,

가을에는 말의 귀 같다고 하여 마이봉,

겨울에는 눈 덮인 들판에 솟은 검은 암봉이 마치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고

  불리 우며, 뿐만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가지 호칭이 사용된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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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봉 내리막길의 부산 새한솔산악회 표찰

      이두영회장님의 모습을 회상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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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프타고 내려온 광대봉 모습

     아내가 내려오는데 시간 좀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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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할 능선

          왼쪽 능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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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당 진신사리탑

              이곳에서 중식해결과 석간수 보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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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飛 龍 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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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능선

       가운데 힌 건물이 고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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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부주차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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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봉 북쪽 능선의 아름다움

        맨 왼쪽 암봉은 고릴라 같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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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룡대에서 본 남쪽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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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장산이 지척에 있으리 만큼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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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로에 설치된 로프와 고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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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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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두봉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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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두봉에서 본 탑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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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마이봉 등로 폐쇄 안내판

     앞으로 2014년 10월까지는 이곳으로는 않됨.10년 후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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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塔 寺(탑 사)

 탑사에는 기기묘묘한 탑 80여기가 서 있다. 가장 큰 탑은 대웅전 뒤의 천지탑, 탑 밑부분은 한 몸처럼 붙어 있지만 3분의1지점에서 양쪽으로 나뉘어 솟았다. 음양오행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해서 오방탑 이라고도 하며, 부부탑이라고도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돌탑은 대부분 원추형이다.

 

대체 누가 이런 탑을 쌓았을까 ?

탑사에서는 구한말 터를 잡고 살았던 이갑룡 처사가 도력을 부려 쌓았다고 주장하지만 최규영 진안군문화원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탑이 존재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8세기 진안에 살았던 담락당 하립의 시에 『束金山「속금산(馬耳山)」에 탑이 많은데, 붉은 단풍 속에 종소리 울리네』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마이산 돌탑의 역사는 최소한 200년 이상은 될 것이라고 한다.

 

최원장은 마이산 돌탑을 풍수지리상 지세를 보완하기 위한 裨補塔(비보탑)으로 해석한다. 이 일대는 활이 한양을 겨루고 있는 형국. 즉, 마이산이 활의 손잡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을 세운 이태조때 흉한 지세를 보완하기 위해 탑을 쌓았을 것이란 얘기다. 束金山(속금산)이란 이름은 화살촉을 묶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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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탑사에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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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隱壽寺(은수사)

 

은수사는 현재 조계종단 소속인데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사지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했다.

은수사 황혜수 주지스님에 의하면 "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은수사란 이름은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극락전, 태극전,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바야흐로 대가람으로 도약을 기약하고 있다.

은수사에는 국내 최대 크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다. 한편, 조선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천연기념물 380호),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이다.

  

진안군 전통사찰 홈피에는 은수사가 銀水寺로 표기 되어 있는데 이곳에 와보니 어 한자 표기가

隱壽寺로 되어 있어 스님께 어찌된 연고인지 여쭈니 올해 바꾸었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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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사의 법고

      이법고는 1982년도 제작당시 국내 최내 였다함. 3타를하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다하여 나도 3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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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사의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

               나무의 높이 18m, 둘레 3m, 동서남북의 가지길이 6-7m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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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사의 줄사철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

                          나무의 높이 4-50센치정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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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사 경내의 섬진강 발원지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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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사의 적단풍

이 적단풍은 마지막 나를 위하여 아직까지 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이제 나를 보았으니

자연으로 돌아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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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마이봉과 화엄굴 오름 계단

이 계단의 안부에 도착하여 좌측으로 올라가면 숫마이봉에 화엄굴이 있다. 입구에 말의 입에서 석간수가 나오는데 이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고하여 많은 아낙들이 줄을서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물을 마실 필요가 없음 (딸을 낳을 수 있는 물이라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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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마이봉

암마이봉에 올라 숫마이봉에 있다는 선비의 샘(?)은 10년 뒤에나 볼 수 있다니 그래 암마이봉아

잘있거라 10년동안 정진한 후 너를 찾으리.....

 

마이산의 바윗덩어리는 만지면 쉽게 부스러지는 礫岩(역암)으로 이뤄져있다. 자갈이 섞인 돌이라는 뜻. 약 9천만년 전부터 1억년 전 사이 호수가 융기해 생겼다.

표면에는 동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타포니 지형이다. 타포니는 벌집모양의 자연동굴을 뜻하는 코르시카의 방언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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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塘寺(금당사)

 

 신라 헌강왕 2년(876년) 혜감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극락전에는 수천년이 넘은 은행나무를 깎아서 만든 금당 사목불좌상(지방유형문화제18호)과 가로5m, 세로9m 크기의 괘불탱화(보물1266호))가 있다. 이 괘불탱화는 단독의 관음보살입상이 그려져 있으며, 표현양식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의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걸작으로 통도사의 관음보살 괘불탱화나 무량사의 미륵보살 괘불탱화 등과 함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또한 이곳에는 고려 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당사 3층석탑(지방문화자료 122호)이 연못 안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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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사 괘불 탱화

               이 괘불을 보고나니 이상하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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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묘


 1909년 정제 이석용, 오병선, 허윤조 등이 '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하여 마이산 용암에 제단을 차려놓고 소를 잡아 산신에게 제사 지내고 조국광복의 대업을 스스로 맡아 꼭 완수 할 것을 천지신명에게 맹세한 것이니 이로써 호남최초의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연재와 면암 두분 선생을 흠앙하는 이 고을 선비들은 1924년 여름에 모여 선왕의 주필지요, 항일독립운동의 진원지요, 연재와 면암 두분 선생의 자취가 서린 이곳을 경건히 모시고, 존현의 의의를 살린다는 뜻으로 석벽에 주피대라는 세글자를 크게 새기고 경향의 여러 고을에 통문을 보냈는데 동년 12월18일 공주의 숙모전에서 열린 경향의 유림회의 때에 이 고을 오채열의 발의로써 마이산에 사당을 짓고 봄, 가을로 제사를 올리겠다는 뜻으로 유림들의 결의가 있었고, 모성공회에서 전국의 향교, 서원에 통고 하였으므로 1925년 주필대의 서쪽에 이산정사와 이태조를 제향하는 회덕전을 지어 제향을 지내게 되었으나 당시 일제의 탄압과 박해가 심하여 제향을 받드는 선비들의 고통과 희생이 막심하였다.

 

 다행히 1945년 조국 광복이 되자 1946년 9월에 이산사 중건임원이 조직되어 이산묘의 중심건물인 회덕전을 완공하고 국내 여러 고을의 동의를 얻어 회덕전에는 단군 성조와 세종대왕을 추가로 모시고, 회덕전 아래에 동서의 두 사우를 지어 동쪽은 영모사라하여 조선개국 이래의 명유 40위를 모시고 서쪽은 영광사라하여 고종 을사년이후 연재, 면암 및 순국하신 선열 34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처소로 삼았다.


 한편, 고종황제의 위판은 옥구군의 해종전에 있었는데 일제의 훼철을 당하여 임시로 전주의 건지산에 봉안 하였다가 전주 및 열군의 사론이 회덕전에 봉안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여 1948년 가을에 회덕전에 옮겨서 봉안하니 모두 4위가 된 것이다.

 또한, 이산묘에는 1949년에 이산묘 원장으로 선출된 이시영 부통령의 친필인 이산묘 현판이 외삼문에 걸려있으며 독립기념비각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휘호로 된 '대한광복기념비(大韓光復紀念碑)'가 새겨져 있고, 백범 김구선생의 '청구일월대한건곤(靑丘日月大韓乾坤)' 이라는 글귀가 개울 건너편 은선동 바위에 새겨져 있다. 현재 이산묘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2일 향사를 지낸다.


   

금당사에서 남부 주차장을 거쳐 이산묘에 도착하니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비는 하염없이 내렸습니다.

이사진 오른쪽(사진에는 없음)에 전 김대중 대통령의 의병 발원지를 알리는 표석이 있음. 

산행을 마치고 택시로 강정마을에 도착 쓸쓸히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는 차로 집으로 출발 

  

 산행 끝

  


 

산행후기

 오늘 산행은 사실상 나 혼자만이 산행을 하였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내가 11월11일(목) 농협산악회에서 우중에 오대산 진고개휴게소에서부터 노인봉(1338m)을 거처 소금강으로 하산하는 6시간 정도의 산행을 다녀와서 내심 어려웠겠지만 잘따라준 하루로 이제는 나보다도 더 산을 좋아하다 보니 마약의 유혹은 뿌리치기가 어려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