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세월을 넘나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말없이 헤어진 친구,

그래도 '언젠가는 꼭 만나지겠지' 하고 마음 편안하게

생각하던 친구를 어제 만났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연결되어

전화와 메일만 주고 받다가

대전과 경주의 중간지점인 대구에서 만나 팔공산을 함께 오르기로 했습니다.

 

14일 오전 10시 동대구역에서  핸드폰이 울려 '그래, 나야'하며

고개를 왼편으로 돌리니,

등산복 차림의 그녀가 놀라는 얼굴로 내게로 다가오며

'야 - oo야'를 외쳤습니다.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나서

자세히 보니, 정말 30년 세월이 무서웠습니다.

 

거리에서 모르고 지나치면

서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있었습니다.

 

세월이 지우지 못한 그때의 모습을 애써 찾고

목소리로 확인하며

'너는 그대로구나!' 라고 실없는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웃음이 떠나지 않던

솜털 뽀얗고 통통하던 뺨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녀는 너무나 말라 있었지만,

눈빛 형형하게 살아있고

연륜의 무게가 있어 내 친구다웠습니다.

 

그녀는 날보고

혈색 좋던 네 뺨도

나이가 다 지웠나보다고 말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둘은 그 옛날과 마찬가지로 호탕하게 웃으며

30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팔공산 갓바위 오르막길을 순례자처럼 오르며

조금씩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습니다.

 

품위있고 능력있어 보이는 갓바위 부처님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간절한 염원을 기도하고 있었고,

취재진,등산객이 섞여 북새통이었습니다.

 

한 귀퉁이에서 허리 깊게 숙여 절하고 그 곳을 빠져나와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바위 능선으로 그녀가 씩씩하게

나아갔습니다.

뒤따르며, 변하지 않은 그녀의 씩씩함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물론 정상 등산로도 있었습니다.

 

위험하다는 표지판을 몇개 지나치고

햇빛이 따뜻하게 내려쪼이는 편편한 바위위에서

점심을 먹으며

그녀의 참선 공부에 대하여 대화를 나눴습니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는 그녀의 말에

공감을 하며, 내 마음은 남비 끓듯 한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나이만 많이 먹었지

바글바글 끓는 성격으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을 아직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했습니다.

 

그녀는 30년전에도 나보다 훨씬 성숙했었는데

지금도 그랬습니다.

그녀의 깊은 정신세계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철조망과 바위를 타고 넘으며

그녀와 나의 롱다리를 자찬하며 깔깔웃었습니다.

 

팔공산 능선길은

부드러운 흙길로 걷기에 좋았습니다.

오르내림의 경사도 완만하고 전망도 제법 좋고

길 옆의 진달래, 철쭉나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녀가 말했습니다

잎 떨군 나무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자신의 모습도 저 나무들처럼 충분히 아름다울거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에게 충만한

그녀다운 말이었습니다.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옛 이야기를 나누며

신령재를 지나

표지판 55번 지점에서 하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완만한 내리막길에는

활엽수 낙엽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일부러 발을 끌며

낙엽 밟는 소리를 즐겼습니다.

 

동화사가 가까워지자 계곡이 나타나고

맑은 물 흐르는 오솔길이 이어졌습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빛에

청정한 소나무는 더욱 푸르게 보이고.

 

엄청나게 큰 통일대불과 동화사를 보고

또 엄청나게 큰 일주문을 지나

아늑한 음식점에서

맥주로 목을 축이고

산채비빔밥과 시래기국을 먹었습니다.

 

30년을 넘나들며 이야기는 이어졌고

마음은 평화로워졌습니다.

그녀의 평상심이

내게로 전해져 선하게 세상을 살 수 있을 것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반짝이는 까만 그녀의  두 눈을 보며

내가 흔들릴 때

저 눈을 떠올리면 중심을 잡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그녀!

 

역시 내 친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