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동(冬)종주 (1/4)

여행지 : 화엄사, 화엄사코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45Km 주릉길을 갑니다.
화엄사코스를 올라 노고단(1박), 반야봉, 토끼봉, 벽소령(2박), 촛대봉, 연하봉, 장터목산장(3박),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코스로 내려오는 3박4일간 여정의 동종주.
지리산 겨울(冬) 종주기!

화엄사 입구에서아침 8시30분, 친구 두 명과 함께 지리산으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지요.
‘아~ 얼마만의 지리산이던가...’ 구름 속에 오뚝하니 서 있을 지리산 생각에 마치 오래전에 헤어졌던 옛 누이를 만나러 가는 듯 설레더군요.

버스는 부산을 벗어나 섬진강을 왼쪽으로 굽어보며 달렸읍죠.
아랫마을 하동사람과 윗마을 구례사람이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는’ 화개장터, 지금 열독중인 <토지>의 무대가 되는 악양면 평사리, 인간다운 겉모습과 서글서글한 글빨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섬진강 시인, 용택이 형님(김용택 님) 등 온갖 모습과 생각들이 하동과 구례를 잊는 19번 국도를 따라 함께 지나가더군요.

화엄사 뒤 대숲길근데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 하동, 구례를 거쳐 오늘의 목적지, 화엄사에 도착(3시간 소요)했을 땐 구름에 가려진 하늘이 조금은 뿌옇더군요. 노고단이 있어야 할 자리가 허옇게 도배된 것이 신비함을 너머 을씨년스럽게까지 느껴집디다.
주차장(매표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마친 후, 화엄사 뒤의 붉은 대숲길을 올랐죠. '노고단까지 7.0km' 라는 팻말이 조금은 난감해 보였지만, 지리산과의 즐거운 동거를 생각하며 가볍게 산행을 시작했읍죠.

하지만 겨울추위와 눈길 때문인지 움직임이 지지부진하데요. 더군다나 초반의 평이하던 산길(화엄사코스)이 중반이후부터 가파른 바위길로 이어지면서 발걸음을 더욱 무뎌 지더라구요. 지루하게 이어진 경사로는 끝날 기미가 안보이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는데, 여느 때 같으면 발아래 펼쳐진 풍광이라도 땀을 식혀 줄테지만 흐릿한 시야는 그마져도 허락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우짭니까... 계속 오르는 수밖에요... 이런 땀냄새가 좋아 산을 찾았고, 지리산엘 왔는데... 아이젠에 긁힌 바위의 생체기만을 보며 한발씩 내딛었죠.

노고단산장 앞 도로그렇게 오르길 세 시간여. 노고단산장 앞 도로와 만났죠. 노고단 정상과 그 옆에 위치한 방송국 송신탑이 한눈에 들어옵디다. ‘이제 다왔구나’ 하는 깊은 숨소리와 얼마간의 성취감이 남더군요. 근데 ‘똥 누고 나온’ 사람의 간사함처럼 좀더 충실하게 땀 흘리며 걷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도 조금은 남더라구요. 아무튼 노고단 산장(1인 5000원)에서 간단히 저녁을 차려먹고 준비한 술과 안주를 벗 삼아 오늘의 땀기운을 삭히며 내일의 ‘고난’을 준비했읍죠.
날이 흐려 밤하늘 속 많은 별을 셀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에는 ‘지리산’이라는 포근한 별이 빛나고 있는 느낌이었죠. 부족한 잠자리지만, 그 별빛을 벗 삼아 잠을 청했죠.

참, 발꼬랑내 속의 산장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 의외로 노트에 글을 적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데요. 관광버스로 우르르 몰려왔다 쓰레기만 쏟아 놓으며 놀다가는 것보다는 잔잔한 일정이나마 조용히 되돌아볼 수 있는 자세가 어쩌면 진짜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님(?)도 간단함 메모나 편지를 남겨보세요! 한번의 발걸음으로 두걸음의 여행을 음미할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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