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나무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부신 달빛을 받으려거든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쪽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펀글)

 

함께하지 못하는 집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지난 연말 오고가는 갈림길에서 아이들과 함께하기로 정하고 이른새벽 지리를 향했건만 잘못든 오두재길 내리막에서 미끄러짐으로 액땜을 대신하고 다음을 기약한 지리를 이번엔 유비형 부부와 함께 향했다. 지난해 수 많은 변화속에서 지난 내 삶의 흔적과 무게를 조망하고 함께해야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준 지리의 새하얀 품에 잠시 입맞춤하고 대간의 그 능선에서 지나오고 겅어야 할 내 삶의 발자욱을 조망할 기회를 주시고 함께걸은 지리의 주능선길에서 부족하지 않은 만찬과 함께 내 조촐한 삶에 드높은 영혼을 지니고 나 자신답게 사는길로 안내해주신 유비형과 형수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1. 백무동에서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오르다(09:30 ~ 13:45)

 

지리를 향하는 대진고속도로상 덕유능선 너머로 올라오는 여명이 이번 산행의 설레임을 대신하고 백무동주차장에 도착하니 익숙치 않은 주차관리원이 주차비 4,000원을 징수한다. 완만한 오름질로 하동바위와 참샘을 거쳐 첫번째 안부에 이르니 시원한 조망과 함께 가파른 오름질의 댓가로 천왕봉에 이르는 길 내내 황홀한 지리의 설경을 선물한다.

(장터목 오르는 길에서 만난 상고대)

(멀리 지리의 주능선과 반야봉의 모습이 선명하다)

(제석봉에 핀 상고대)

(제석봉에서 바라본 오리궁뎅이 반야봉)

(제석봉의 설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2. 천왕봉에서 세석을 거쳐 벽소령까지(13:45 ~ 20:00)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한다는 지리 천왕봉에서 긴 호흡으로 지나온 내 삶의 발자욱을 더듬어보고 눈길위에 발자욱을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내 삶이 부끄럽지 않도록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아보고 장터목으로 내려와 형수가 끓여준 만두국으로 늦은 점심을 대신하고는 목적지인 벽소령을 향해 한발한발 조심스레 눈길을 헤치며 걸어보지만 세석을 거쳐 칠선봉에 이르러 결국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렌턴을 준비해야 했다.

 

참기힘든, 가늠할 수 없는 칼바람과 추위속에서 가지고 있으며 필요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카메라와 유비형의 렌턴을 원망하며 2개의 렌턴으로 조심스레 어둠을 헤치고 무거워진 어깨와 지친 다리를 달래며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벽소령에 도착, 저녁을 준비하는데 공단 직원의 불친절에 화가 잔뜩 나 씩씩거리며 취사장으로 들어오는 유비형과 샘터는 갈수와 동파로 샘터에서는 식수를 구할 수 없다는 벽소령 취사장에서 형수가 준비한 고추장삼겹과 소주한잔으로 추위를 달래고 힘들었던 오늘 일정을 마감하고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온몸이 무겁고 아프다.

(천왕봉 하산길에 만난 설화동굴)

(촛대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평전아래의 세석대피소)

(칠선봉에서 바라본 노을)

(그 풍부하던 선비샘의 물줄기가 초라하다)

 

 

3. 벽소령에서 연하천과 화개재(뱀사골)를 지나(07:00 ~ 11:11)

 

지친몸이었지만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긴긴 겨울밤을 뒤척이다 유비형을 깨워 취사장에 내려가니, 밤새 얼마남지 않은 생명수를 유비형이 절반이나 마셔버린 탓에 대피소에서 식수 두병을 구매하여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07:00 벽소령을 출발, 조금 걷다보니 여명이 밝아오고 결국 형제봉에 이르지 못하여 떠 오른 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장엄한 일출을 바라볼 수 없었음에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황홀한 새벽 여명이 일출의 아쉬움을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연하천에 이르러 따뜻한 식수를 보충하고 커피한잔으로 추위를 녹이려는데 홍성군 광천읍에 소재한 광천장로교회 학생 30여명이 들이닥친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포함한 일행들의 볼이 아침 칼바람추위에 벌개져 있다. 결국 나머지 산행내내 그 아이들로 인해 나 자신의 자만과 오만을 돌아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여명이 밝아오고)

(장난이 아닌 새벽 칼바람속에서의 유비형 부부)

 

 

4. 화개재(뱀사골)에서 노고단을 거쳐 성삼재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11:11 ~ 15:35)

 

화개재 쉼터에서 잠시 지친몸을 쉬고는 지난여름 아이들과의 종주시 헷갈렸던 나무계단의 수를 정확히 세기 위해 한발 한발 정성들여 오르니 그 수가 551개, 다행히 그리 힘들이지 않고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삼도봉과 토끼봉을 거쳐 임걸령에 도착하여 물한모금 마시고자 하니 다음에 와서 마시겠노라하는 형수의 말에 한바탕 웃고는 그 말에 동참한다. 얼마남지 않은 평이한 그 길이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늘 하산길은 평지이든 급경사길이든 언제나 힘들고 피곤함을 다시금 느낀다. 그렇게 힘들게 노고단에 올라 기념사진 한장 남기려는데 결국 또 강추위로 속썩이던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포기하고는 노고단대피소 취사장에서 남은 김치를 넣어 끓인 라면으로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는 성삼재로 내려와 도로 맞은편 만복대로 향하는 초입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이번 산행을 마무리한다.

(화개재에서 바라본 반야봉)

(삼도봉)

(노루목에서 조망한 노고단)

(노고단 돌탑)

 

내가 사는 곳에는 눈이 많이 쌓이면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서 내려온다. 그래서 콩이나 빵부스러기 같은 먹을 걸 놓아 준다. 박새가 더러 오는데, 박새한테는 좁쌀이 필요하니까 장에서 사다가 주고 있다.  고구마도 짐승들과 같이 먹는다. 나도 먹고 그 놈들도 먹는다. 밤에 잘 때는 이 아이들이 물 찾아 개울로 내려온다. 눈쌓인 데 보면 개울가에 발자국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 해질녘에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구멍을 서너 군데 만들어 놓으면 공기가 통해 잘 얼지 않는다.  그것도 굳이 말하자면 내게는 나눠 갖는 큰 기쁨이다.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의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