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숲 수리산을 찿아서 모처럼 확트인 전망을 만끽하고 왔지요

 

 

 

  

 

 

멀리서 본 수리산 전경

 

 

*수리산 등산 개념도*

 

수리산 []

 

경기도 안양시 군포시의 경계에 있는산.

위치 : 경기도 안양시 군포시의 경계

높이 : 457m

주봉 : 수암봉

 

높이 475 m. 수리산 명칭과 유래는 수리산의 빼어난 산봉의 방위가 마치 독수리같아 "수리산"이라 전해오는 설이 있고,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현재 속달동에 위치하고 있는 절이 신심을 닦는 성지라 하여 수리사라고 하였는데 그 후 산명을 "수리산" 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조선조 때에는 왕손이 수도를 하였다하여 "수李산"이라 부르기도 하며  또한 견불산()이라고도 한다. 북쪽 골짜기에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자촌()이 있다

 

인근에 군포 시민은 물론이고 안양, 안산 시민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로 사랑받고 있는 수리산은 군포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군포市의 진산이다.수리산 지형은 청계산(618m), 광교산(582m), 관악산(629m), 백운산(564m)등 광주산맥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산지 중의 하나로, 군포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산으로 태을봉(해발 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해발 451.5m), 북쪽으로는 관모봉  (해발 426.2m), 북서쪽으로는 수암봉(해발 395m)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계는 수리산  (태을봉 489m, 슬기봉 451.5m)이 군포시 서측에 남북으로 형성되어 안산시,안양시와 경계를 이루며 수리산 능선이 동서로 뻗어 군포시를 양분하고 있으며  수리산은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듯한 산계를 이루고, 봉우리 및 절벽은 대체로 규암이고 계곡지대에는 풍화에 약한 흑운모호상 편마암이나 안구상 편마암이 많으며, 부분적으로 백운모 및 흑운모 편암이 협재 되어 있다.

수리산의 임상은 활엽수림 45%, 혼효림29%, 침엽수림 26%로 구성되어 있으며, 속달동에 는 경기도유림 327ha가 있어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에서 각종 수목에 대한 연구 . 조사를 하고 있으며, 속달동 '구릉터 당숲'은 지금도 음력 10월 1일이면 이틀간 동제(洞祭)가 치러지는 아름다운 마을 숲이다. 약 100년에서 300년 가량 된 고목들이 우거져 있는 이 숲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정재륜(鄭載崙,1648-1723)과 그의 부인 숙정(淑靜)공주의 무덤 부근에 조성한 숲이라는 역사적인 배경 말고도 민속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 주의를 끌고 있다.

 

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당집이 자리잡고 있고,  이곳은 중부지방 서해안  일대에 발달된 '터줏가리당'이며, 2002년에는 생명의 숲 및 산림청에서 주최한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할 정도의 아름다운 숲이 있다

 

 

수리산 삼림욕장 []

경기도 안양시와 군포시 경계에 있는 삼림욕장.
위치 경기도 안양시와 군포시 경계
구역면적 159만 4000㎡
개장연도 1994년 2월 23일
주변관광지

관악산삼림욕장

안양시군포시 경계 부분의 수리산(, 일명 견불산:475m)에 조성된 삼림욕장으로, 1994년 2월 23일 개장하였다. 군포시청 녹지과에서 관리하며, 총면적은 159만 4000㎡로서 국유림이 28만㎡, 사유림이 131만 4000㎡이다.

 

용진사 입구부터 수리약수터 입구까지 자리잡은 삼림욕장은 오르막길·내리막길·평탄길로 이어져 있으며, 수리산 전체에 이어져 있기 때문에 산자락에 입구가 7개가 있으며 샛길도 많다. 수리산에는 식물 총 102과 311속 474종(식재종 70종, 귀화식물종 35종 포함), 조류 총 5목 12과 26종, 곤충류 총 15목 117과 300종이 살고 있다.

 

태을봉과 관모봉 정상까지 연결되는 10.33㎞ 길이의 순환 삼림욕로와 숲속다람쥐교실, 우리들꽃길, 피크닉장, 건강발 지압장, 황토 맨발길 등 18개소의 주제별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밖에 쉼터 2개소, 약수터 5개소와 다양한 편의시설물 및 체육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고 산 속에는 노랑바위계곡 등 3개의 계곡이 있다. 연중 무료 개방되며, 도심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시민들의 휴식과 가족단위 휴식장소로 인기가 있다.

 

주위에 태을봉(489m)·슬기봉(451.5m)·관모봉(426.2m)·수암봉(:395m) 등이 있고, 북쪽 골짜기에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자촌(), 관악산삼림욕장이 있다. 

 

등산코스 : * 한마음 등산로
          
(태을초교뒤~사교의 광장~노랑바위~명상의 숲~쉼터~상연사~용진사 입구): 3,415m
    
         * 슬기봉 등산로
           (용진사 입구~성불사~임간교실~만남의 광장~슬기봉): 530m

         * 태을봉 등산로
            (엘림복지원뒤~힘기르는 숲~독서의 숲~태을봉): 1,450m

         * 관모봉등산로(A)
           (수리약수터입구~사교의 광장~관모쉼터~관모봉): 920m

         * 관모봉등산로(B)
            (태을초교뒤~사교의 광장~노랑바위~쉬어가는 숲~관모봉 ): 1,050m

 

 

  산행일시  : 2006년 7 월 5 일 (수요일)

  산  행 지 : 경기토 안양시 군포시의 경계에 있는산. 

   산행코스 : 수리산역 - 감투봉 갈림길 - 정자쉼터 - 산림청 조림지 - 수리사 - 슬기봉 갈림길

                        - 헬기장 - 수암봉  - 북 능선 - 원두막집 - 창박골 - 금정역.

   산행인원 : 12명 (연산동님,조대흠대장,양지편사람님,대바우님,뭐야님,참이슬님,세실리아님,

                        산유화님,헤르메스님,한결님,만우님,그리고 나)

  산행시간 : 4시간 40분

  

 

산행기

나는 늘 새벽에 2시에 퇴근을 하는 남자이지요 요즘이 중고생들 시험기간이라서 눈 코뜰 사이없이 바쁘게 살아야 하는 계절이네요 그런데다 퇴근을 하여 잠시 TV를 켜니 독일과 이탈리아 4강전이 4시부터 있다고 하는데 이걸 보고 밤을 새워 아니면 그래도 두어 시간 토끼잠이라도 자 두어?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여 보니 아무래도 밤을 새고 수요 산행을 떠나는것은 내가 지금 이팔청춘도 아닌데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 쫴깨 잠을 자두자 글구 6섯시에 일어나 뉴스로 경기 결과를 보면되지 생각을 하고 눈을 좀 붙이지요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어랍쇼 내 생각에는 독일이 조금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잠이 들었는데 이건 독일 이탈리아 전후반 득점이 없어 또 15분 15분 전후반 연장전을 하는데 막 전반전께임 시작을 하데요 그런데 사람 심리 참 이상하데요 그것이 만약 한국전이 였다면 간을 조리며 애간장을 태우며 경기를 시청 할터인데 일단은 께임에 어느 나라가 승리를 하던 그건 크게 관심이 없는것 있지요 다만 누가 결승에 올라 갈것인가 그것만 궁금하여 시청을 하는데

 

연장전 전반도 양팀 모두 노골 이제 연장 후반전 시작을 하여 13분이 지나 가데요 그래서 으이그 또 승부차기로 결승팀 승부를 가리게 되겠구나 생각을 하고 흥미 진진하게 중계 방송을 보고 있는데 시상에 연장전 후반 종료 그 2분도 못남은 시간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독일이 이탈리아에게 두 골이나 골을 먹고 있네요 증말 허무 하데요 내 맴이 이렇게 허무한데 증말 독일 국민들 심정 어뗐을까를 생각하며 우리나라 선수단의 눔물의 의미를 깊이 새겼지요 그렇게 승자와 패자의 엇갈린 명암의 결과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마침 경기 종료 5~6분전에 속보로 나온 북한 미사일 발사 뉴스가 생각이나서 얼릉 다른 방송을 돌리니 북한이 정말로 미사일 발사를 하였고 3발이다 4발이다 엇갈린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그런데도 이상한것은 그렇게 긴급한 뉴스를 보면서도 왜 그런지 조금도 불안하거나 걱정이 되지를 않는것 있지요 걱정은 커녕 한편 속으론 그래 잘한 짓이다 생각이 들기도 하며 오히려 고소해 지는 대리 만족감 같은 야릇한 쾌감마져 드는것 있지요

 

불과 몇년전만 하여도 서해교전이다 북한 공군기 남하다 할때 같았으면 멀리 나간 아이들 불러 들이고 라면들을 사재느라 얼마나 극성들을 떨었는데 ... 어랍쇼 이제는 북한에서 미사일을 발사 하였다구 하는데도 걱정은 커녕 오히려 쾌감 같은것을 느끼며 산에 가려고 배낭을 챙기고 있는 내 모습을 나 스스로 느끼면서 아니 이거이 늘 겁만 주는 북한 아사끼덜 땜시 불감증인가요 아니면 늘 북한에 퍼주었기 때문에 설마 지들이 우리를 건드리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인가요

 

하여간 7살때 6.25 사변이 일어나 피난을  다녔던 기억이 새로운 이 6학년 3반 도영이 할아부지 그 6.25 상처로 인하여 내 나이 30이 지날때 까지도 밤에 비행기가 뜨거나 야간에 포사격 소리 총소리를 들으면 간을 조리며 피난 다니는 꿈을 꾸며 얼마나 불안하여 했는데...이젠 어케된것이 아니 북한에서 우리나라 동해바다 앞에다 미사일을 쏘고 있다구 하는데도 겁은 커녕 오히려 한편 맘속으로는 그래 잘 하는 짓이여

 

우리나라 대신 북한이라도 강해져서 뻑하면 매날 우리나라에게 독도가 지네 땅이라고 우겨 대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왜넘들 쪽빠리 아삭끼들 심장을 향하여 할 수만 있다면 핵이라도 우리대신 보유하여 고넘의 일본넘들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 드는것 있지요 ㅋㅋㅋ 나 이따위 글 썻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지 안을랑가 모르것네 ㅋㅋㅋ 하지만 잡혀갈때 잡혀 가드라도 내 심정을 그렇다 이것이지요

 

글구 미국도 그래요 아니 지들은 핵무기 유도탄 미사일 인공위성 맴대로 가꾸놀믄서 뻑 하면 괜스리 우리나라만 그렁거 가지구 놀믄 몬슨다는 식으로 뺏으려 들고 같고 있지를 못하게 하는거 솔직히 그라믄 안되는것 아냐요 지가 하면 로멘스고 그래 와 우리나라나 북한이 하면 불륜으로 몰아 가냐 이거야요 다 같은 주권국가에서 오죽하였으면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도 핵을 가져야 기를 펴고 사람노릇하며 살것이라는 생각하에 핵개발을 서둘렀겠어요

 

솔직히 그때 그 프로잭트 계획이 그대로 실천이되고 유지만 되었다면 우리나라 요즘 이렇게 코큰 엉아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저 자세 외교 안해도 되는건데... 떳떳하지 못한 태어나지 말아야 할 정치인들이 들어서며 완전히 내 줏대 자존심은 모두다 팽개처 버리고 코쟁이 엉아들 심기 건들지 않으려고 이중인격으로 국가를 다스렸으니 그들은 뭐가 이완용이 보다 다른것 있나요

 

6.25때 미국 코쟁이 엉아들이 우리나라 도와준것 늘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 하고 있지요 특히 전우 세대들은 우리나라가 만약 미국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 공과를 충분히 인식을 하고 인정을 하지요 하지만 그 도움이 미끼가 되어 우리나라를 평생을 두고 아니 세대를 넘기며 군림하려 하며 우리나라를 줄세우기 하며 앉아 일어서 쪼그려 뛰어 하며 군기를 잡으려 하믄 이제 더 이상은 곤란 하지요

 

옛말에 지렁이두 밟으면 꿈틀 한다구 했구 독 안에 든 쥐도 성질나면 문다고 했는데 하물며 우리가 지렁이도 쥐새끼도 아닌데 자꾸만 밟으려 누르려 하믄 승질 나지요 과건 과거고 자꾸만 고따위식으로 비위 건들면 왜 있잖아요 하지도 않은 아내를 자꾸만 의붓증세로 몰아 부치면 나라도 승질나서 홧김에 서방질을 해뿌리지요 그리구 한번 바람이 나면 증말 그 바람을 잠 재우긴 쥡지 않지요 긍께 미국도 일본도 너무 지들 방식대로만 몰아부치믄 와 북한의 김정일이가 승질 안나겠어요 기왕지사 못 먹는떡에 재라도 뿌리지요 ㅋㅋㅋ

 

그리구 요건 순전히 내 개인 생각인디 우리나라 주변 강대국넘들 냉정히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남과 북이 통일되는것 진심으로 박수칠넘들 증말 있나요? 괜스리 지넘들이 도와주는냥 한 다리 끼고 남북관계 이간질만 시키며 지넘들 실리 찿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요 나두 옛날에는 요렁거 잘 몰랐는디 세상을 살망큼 살다 보니 터득이 되더라구요 지금 우리나라가 이조 시대도 아닌데 아직도 양반집에 머슴이었던 아부지에 아들이라구 그 아들도 나리 나리 하며 굽신 거리며 살아야 하는 시대는 아니지요

 

현대 시대는 내 힘이 강해야 카리스마를 가지고 사는 시대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나라는 정말 꼭 핵이 필요 한 나라지요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우리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힘은 오직 그것이 힘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나라가 가질 수 없는것 앞으로 북한은 우리나라 될껀데 ㅋㅋㅋ 거기라도 핵이 있어서 나쁠것 없지요 한때는 형제가 싸울 수도 있지요 하지만 결정적인 찰라에선 형제는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에 하나가 되지요

 

아니 내가 이거이 무시기 소릴 하고 있나요 산행기 쓴다며 엉뚜 당치도 않은 야그를 해대고 있네요 ㅋㅋㅋ 하지만 이렇게 북한에서 미사일을 일곱발씩이 퓨융 퓨융 쏴 대는데도 시상에 이거이 나만 그렇게 불감증이 있는것 아니더라구요 출근을 하는 사람들 시장에 사람들 백화점에 사람들 지하상가에 사람들 모두다 아무렇치도 않은듯 일상 생활에 임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 우리는 더이상 남과 북이 대치 상황이 될 수 없다는것을 직감을 할 수 있네요

 

위정자들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뻑하면 이눔의 정부는 북한에 퍼주기를 너무한다는 이야기들을 나서 부터 하고 있지만 오늘 같은날 국민들이 동요 하지 않고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것이 일면에선 그 퍼주기가 일조를 한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면서 서둘러 오늘은 모처럼 도심속의 숲 수리산을 찿아서 확트인 전망을 즐기며 널널 산행을 생각하며 전철을 두 어번 갈아타고 수리산역에 하차를 하니 아침에 집을 떠날때 비가 약간 내렸음에도 이날도 12명의 산님들이 모여 산행을 시작 하지요

 

 

수리산역에서 주공 아파트 단지 517동을 끼고 들머리 구간을 통과하여  올라왔지요

 

 

 

우리들은 일단 감투봉을 향하여 길을 가지요

 

 

 

시민 한마음 산책로를 지나고 나니 멀리 슬기봉 정상이 보이네요

 

 

슬기봉 정상에는 군부대가 주둔을 하고 있어요

 

 

 

이 지점에서 우리들은 가던길을 좌로 급격하게 좌측으로 꺾어 산림청 조림지 숲을 지나

래로 아래로 마치 하루 산행을 마치고 하산을 하는 기분으로 널널하게 내려 가고 있지요

 

 

산림청 조림지역 등로에는 수 많은 야생화들도 피어 있고 흐르는 계곡물에

마치 가재라도 잡힐듯한 청정지역으로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완전히 산행을 마치고 하산을 하는 모습과 흡사하지요 그래서 조대장에게 아니 뭐이 이렇게 싱거빠진대로 울덜을 끓고 다니느냐고 우스개 소리로 시비를 걸어 보니 조대장 네 그래요 형님 하는 말투가 아무래도 그래 너 어디 두고 보자 잠시 뒤에도 그따위 우스게 소리를 할 수 있는가 하고 비웃는듯한 어투여서 나는 찔끔하고 긴장을 하지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코스로 일부러라도 날 골탕을 먹이기 위하여 더 빡쎈 코스를 안내 할것 같은 기분인것 있지요 하여간 늙은 말이 입방정만 떨어 일행들 더 힘들게 하는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마을길처럼 편안한 등로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니 삼거리 우측으로 수리사 가는길 이정표가 전주에 걸려 있고 우리 일행들은 그 이정표를 따라 수리사를 지나 슬기봉 방향으로 가기 위하여 발길을 재촉을 하지요 그런데 아침에 집을 나설때 내리던 비는 모두 멈추고 의외로 날씨가 여름날 답지 않게 서늘한 바람이 함께 하면서 마침 산행하기 좋은 분위기를 제공하여 주니 이 얼마나 다행하고 고마운 일인가요?

 

인간이 아무리 제 잘난척하고 날뛰며 이리뛰고 저리 뛰는 재주를 가졌다 하여도 모두다 하늘이 도와 주지를 않으면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안에 있는 격인걸 하물며 미생물도 아닌 인간이 그것에 대한 이치를 모르고 경거 망동한 행동을 나 자신 비일 비재 하며 살고 있지요 하기사 내가 그 정도 이치를 이미 터득을 하였다면 를 벌써 어디다 자리 깔았지 오늘날 이렇게 수요산행이나 하면서 세월 죽이고 있진 않겠지요 ㅋㅋㅋ

 

 

수리사 가는길에 계곡가에 우뚝선 유일한 바위

 

 

널널 산행이라 주접떨며 오르다 어느새 수리사 올라오는 길에 할딱 거리며 오르니 단

청도 하지않은 아주 크지도 작지않은 대한불교조계종 수리사 사찰이 올려다 보이네요

 

 

수리사(修理寺)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수리산(修理山)에 있는 절.

종파: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 신라시대
소재: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329

*** 수리사의 역사 *****

1. 신라 진흥왕(540~576)때 창건
2. 임진왜란때 부분파손
3. 곽재우(1552~1617)장군 재건
4. 1950년 6.25때 소실
5. 1962년 대웅전 재건
6. 1980년 석등 세움
7. 1993년 성우스님 주지로 취임
8. 1997년 성견스님 주지로 취임
9. 1997년 나한전 및 산신각 불사를 하기 위해 전각을 뜯음
10. 1998년 불사할 터를 닦음
11. 2001년 나한전 및 산신각 완공
12. 2002년 대웅전 중창불사
13. 2003년 11월 16일 대웅전 회향

<창건연대>

수리사는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속달리 320번지에 자리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해발 475m의 수리산은 옛날의 어느 왕손이 이곳에서 기도하여 부처님을 친견하였다고 하여 원래 견불산 이라 불리었던 산인데, 근래에 절이름을 따라서 수리산으로 부르고 있다. 이 산의 중턱에 자리한 수리사는 신라 진흥왕(540~576)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자세한 창건경위는 알 수 없고, 다만, 불심을 닦는 성스러운 절이라 하여 수리사라 이름지 었다고 한다.


한 때는 12개의 암자를 지닐 정도의 큰절이었는데, 임진왜란의 와중에 거의 파괴되었다. 당시의 의병장인 곽재우(1552~1617)장군이 이 절을 재건하고, 이 곳에서 말년을 수도생활로 보냈다고 전해온다. 조선후기를 거쳐 일제 때까지 어느 정도의 사격을 유지해 왔으나, 6.25로 인하여 1951년에 본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1961년 이후에 꾸준히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산신각, 나한전 등의 전각 석등 2기가 있다. 또한 최근에는 대웅전 앞마당에 부모은중경탑을 새롭게 조성하였다.규모는 약간 작지만 용주사의 그것과 동일한 양식으로 3층의 층개석을 올리고 1층의 탑신에 《불설대부모은중경》을 우리말로 새겨 절을 찾는 참배객들에게 효심을 일깨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서 내부에 석가여래상,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였다. 나한전은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서 열아홉 분의 나한을 모셨고, 산신각에는 가람을 수호하는 산신을 탱화로 봉안 하였다. 한편, 경내에는 석탑의 부재가 흩어져 있어 절에 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대웅전을 쌓은 축대에는 곳곳에 옛 건물의 주춧돌, 장대석 등이 보이고 대웅전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는 물화라고 불리는 석물이 있다.

<창건 당시의 시대적 배경>

통일신라 이전에는 삼국이 팽팽히 맞서고 있던 때인 만큼 각 국가의 생존은 왕실 및 귀족의 집정하에 모든 흥망이 달려 있었다. 따라서 신라 왕실은 기존의 귀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중앙집권적 세력을 강화시켜야만 국가가 안정되며 나아가 삼국통일을 이룰 수 가 있었던 것이다.당시의 이러한 국내정세 속에서 국민들을 한 곳으로 단합시키고 왕실의 정통성과 귀족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여 줄 수 있는 사상적 체계가 필요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법흥왕 때부터는 기존의 전통신앙을 떠나 매우 근본적 이며 합리적인 사고 관념을 갖고 있는 불교사상들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신라에 수용된 불교는 왕즉불사상을 통하여 왕의 존재를 궁극적이며 신성한 종교적 실제와 관련시킴으로서 왕권을 정당화 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전륜성왕설과 미륵신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막대한 재산과 인명의 피해를 내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이유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며,통일을 이룩함으로서 전륜성왕의 세계와 같이 물질적 혹은 정신적으로 숭고 한 복지사회를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며, 그 땅에 미륵부처님께서 오셔서 용화회상을 여신다고 하여 자신들의 위치를 국민들에게 정당화 시키는 한편, 합리적인 업사상을 받아들임으로서 자주적이며 역사상 훌륭한 문화를 이룩 할 수가 있었다.

<창건주 미상>

수리사의 창건주에 대한 자료를 여러방면으로 알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수리산 유일의 고찰로 이어오다가...」이와 같이 신라 때 라는
설명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리사 회보를 참고해서 몇 자 더 적어보면 창건주는 미상이고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어 왕손인 운상대사가 뼈를 깍는 기도정진으로 마침내 부처님을 친견하였다하여 산 이름을 견불산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수리사 홈에서 가보시길>>>
www.surisa.net

 

 

 

 

 

대웅전에도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았어요 일행들은 왜 단청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는데

나의 생각에는 그냥 단청하지 않은 모습이 더 소박하고 친근감을 느끼는것 같은데...

 

 

 

수리사 경내에 샘터가 있으나 사찰내 아직은 시설 공사로 인하여 샘물이 물을

마시기가 좀 그렇네요 멀리 삼성각도 대웅전 위에 아주 작은 모습으로 보이구요

 

 

나한전

 

유일하게 나한전에는 단청이 되어 있었어요 나한전이 무슨 뜻인가요? 내 짐작으로는 부처님을 보좌하던 그러니까 요즘 시체말로 하며 보디가드 비서같은 사람들이 묵던곳 아닌가 생각을 해보지요 ㅋㅋㅋ 무식이 탄로가 나는 순간 같아 어째 쫴끔은 안 할말을 골라 한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어디 그런 유권해석을 나만 그렇게 하고 있었나요 늘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산행길 가이드 역활을 하며 수고를 하여주는 유능한 대장 조대장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를 하고 있던대요 ㅎㅎㅎ 만약 챙피 당하면 나만 당하는것 아니지요 나야 쬘병이니까 조금 낫지요 조대장이 더 개 망신이지요 ㅋㅋㅋ

 

 

수리사 샘터 누각

 

 

수리사 경내 모습

 

 

수리사 사찰 경내 견학을 하고 나니 드디어 급격하게 이어지는 아주 빡쎈 등로가 나타나고 우리들은 깩소리 한 마디 못하고 모두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씩씩 거리며 숨을 거칠게 내 몰아쉬며 대장의 곁을 따라 오르지요 근데 우리 조대장 얼마전에 수술하고서도 시상에 끄떡도 하지않고 늘 앞장서서 산행 리드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인같은 생각 드는것 있지요 하기사 나두 조대장에 비할 바는 감히 어림도 없지만 솔직히 편안하게 사무실 지키고 있는것 보다는 힘이들게 거친 숨소리를 대더라도 이렇게 산을 오르고 있을때가 젤루 행복하고 삶에 희열을 느끼고 있으니 어느새 나두 산 중독이 든것은 맞는것 같네요

 

 

난 산행을 하며 이렇게 이들 이들한 풀을 보면 옛날 농촌에 살때 늘 소에게 꼴을 베어다 여름철 주식으로 먹이는데 세상에 시골에 집집마다 소를 키우니 하루 꼴지게 한번씩 꼴을 베어 나르는것이 얼마나 큰 행사이고 부담이 되었었는데 ... 이렇게 많은 목초들을 보면 그 옛날 생각 나는것 있지요 그런데 요즘은 한우도 젓소도 옛날 보다 훨씬 많이 키우면서도 소들이 이런 꼴을 먹고 살지 않고 사료와 수입용 목초를 먹고 살고 있으니 정말 세월 많이 좋아 졌다는 생각을 하지요

 

 

저 멀리 무인 철탑 산불 감시초소가 올려다 보이네요  

 

 

 

 

힘겹게 할딱 거리며 오르고 보니 저 두 그루 소나무 저 넘어에 한폭의 동양

화 같은 비 개인뒤 도심 풍경이 새롭게 느껴질 정도로 한눈에 들어 오네요

 

 

전말 소나무에서 본 슬기봉 정상과 군부대 기지 돔이 보이네요

 

 

우와 증말 조오타 확트인 시야 멀리 시화 앞 바다도 보이네요

 

 

그리고 우리들은 군부대 철책길을 따라 슬기봉을 바라 보며 가지요

 

 

 

 

통과 할 수 없는 철망속으로 멀리 수리산 수암봉이 보이네요

 

 

슬기봉 정상의 군부대 시설

 

 

철망 사이로 본 세상

 

 

 

 

모처럼 훤히트인 시야속에 외곽순환고속도로가 보이네요

 

 

 

 

너무도 시원한 조망을 바라 보며 조대장이 신바람이라도 난것처

럼 보이는곳에 대한 설명은 끝이 날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지요

 

 

멀리 시화 앞 바다도 보이네요

 

 

수암봉을 향하여 일행들이 다시 7월의 싱그러운 숲길을 각 있지요

 

 

수리산 수암봉

 

 

 

 

멀리 수리터널이 보이고

 

 

드디어 먼저 수암봉 정상에 오른 일행들의 모습이

 

 

수암봉 정상에서 슬기봉을 배경으로 이날 산행의 단체사진을 찍어 두지요

 

 

수암봉

 

 

저수지도 보이고

 

 

줌으로 당겨 본 조망

 

 

나무 사이로 본 조망

 

 

바위라 하기에 그렇고

 

 

수암봉에서 다시  북 능선길을 따라 가다 우리들은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 식사를 하지요

 

 

 

수리산 등로는 이날따라 비 온 뒤끝이라서인가요? 등로가 엄청나게 미끄러원

내려는 등로에서 각별히 세심한 안전 주의을 하여야 할 정도로 위험 하였어요

 

 

 

북능선 가는길을 따라 가다보니 일행들이 우회를 하기에 나 혼자 좌측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오르니

군사기지가 있어 사진촬영 금지구역 통제가 되어 즉시 일행들이 우회한 등로를 따라 하산을 서두르지요

 

 

이제부터는 하산길 등로는 대부분 소나무길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또 어떤 구간에는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간신히 사람하나나 지나 다

닐 정도로 난 아주 좁은 등로를 따라 하산길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지천으로 핀 야생화 군락지도 지나고

 

 

 

 

 

 

 

 

천주교 수리산성지순례지 성당이 있는곳에 이르니 이날 산행 구간이 끝이나고 우리들은 다시

잘 다듬어진 차도와 인도를 따라 원두막집이 있는 먹자 거리를 지나 창박골로 하산을 하지요

 

 

인공폭포도 지나고

 

 

꽃과 나비

 

 

올려다 보이는 산위에 팔각정도 보이네요

 

 

새로 안양시에서 조성한 공원도 지나고

 

 

잘 조성된 공원길 꽃밭도 만나며

 

 

만우님, 조대장, 최윤영님 그리고 나

 

드디어 우리들은 이날 산행을 접으려 하지요 그런데 천마 철마산 종주때 함께 산행을 하고 무소식이던 만우님께서 그간 김포에서 아주 그럴듯한 동네로 이사도 하시고 그러다 보니 삶에 질이 업그레드 되어 아예 우리들과 같은 소 시민들과는 거리를 두고 간격을 유지 하려는가 웬만해서 모습을 보이지를 않던 만우님이 우리들을 만나러 역으로 산행을 하고 우리들 하산 구간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네요 그러니 을매나 반가운지요

 

 

이게 뭐냐구요? 배낭 등판이지요? 별것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6학년 5반 연세에도 그동안 백두대간 각종 지맥 정맥 그리고 최근 태극종주를 마치신 연산형님(물안개님 부군)께서는 이미 몇년전 부터 이 등판을 배낭에 붙여 착용을 하시고 산행을 하시는 모습을 보아 제가 몇번을 이 넘의 등판 파는곳을 몰라 구입하여 달라고 당부를 하였었는데 그 매장이 없어져 버려 에이 이제는 못 구하나 보다 체념을 하였었는데 지난주 북한산 하산길에 우연이 이 등판 파는곳을 만나 5.000원을 주고 구입하여 착용을 하고 이날 산행을 하여 보니

 

시상에 여러말 필요 없이 잔등에 시원한 물 수건을 넣고 산행을 하는듯 조금만 바람이 불면 잔등이 얼마나 신바람이 나게 시원한지요 늘 산행때면 배낭이 등에 착 붙어 한 여름엔 땀띠로 불편을 겪곤 했는데 이날 착용을 하여 보니 아무래도 올 여름 산행때 잔등 땀띠 고생끝이라는 예감을 하기에 산행기를 쓰며 이 등판을 소개를 하려 하지요 ㅋㅋㅋ 그렇다고 지가 등판 장사꾼 아니걸랑요 다만 산행에 편안한 물건이 있으면 다 함께 이용을 하여 서로 편안한 산행을 즐기자는 뜻이지요

 

 

만우도 만나고 그리고 우리들 (참새)가 어케 방아간을 지나 가나요 점심도 먹은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가볍게 시원한 호프 몇잔 나누며 이런저런 사람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이날은 모처럼 평상시 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에 일행들과 다음 주 정말 기대되는 북한산 산행길에서 만날것을 약속을 하며 각자 일상으로 돌아 왔지요

 

 

호프집 만남을 뒤로하고 나오니 시상에 누렁이가 아자씨들 올 여름 산행길 늘 안전 유의 하시며 조심하고 즐산 하시라 하며 나에게 꼬리를 치며 치근거리네요 그래서 지두 그 누렁이에게 한 말 했지유 이 넘아 ! 내 걱정일랑은 말고 니나 증말 이 여름 잘 견디어 내고 인연이 있으면 언제 다시 만나자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이 넘 하는말 아자씨 개고기 먹어요 하네요 ㅋㅋㅋ 그러니 이렇게 순박하게 착해 빠진넘에게 어케 그렇다구 할 수 있나요 답례로 아니 못 먹어 했지요 근디 솔직히 말하믄 지 세상 고기중에 이 넘 고길 젤루 좋아 하걸랑요 미안하다 누렁아 꼭 이 여름 잘 살아다오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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