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의 가을은 어느새 칠성봉에 가득하고


2005.10.23(일, 맑음)

배티제(08:30)→오대산(09:00)→장군샘터(09:20)→태고사전망대(09:40~10:15)→낙조대(10:30)→제1봉(10:40)→제2봉→용문골갈림길→제3봉(10:55)→제4봉(11:10)→계곡(11:20)→장군바위→칠성봉전망대(11:50~12:30)→케이블카종점(12:40~)→금강구름다리(12:50~13:20)→제5봉(13:40~50)→마천대(14:00~10)→720암봉(14:25~50)→석천암(15:10)→독수리바위15:25)→승전기념탑→버스종점(15:40)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 지니 가을도 깊어 가는가 보다.
지난 9월초 대둔산 낙조대에서 내려다 보였던 오대산쪽 능선으로 올라 아름답다는 칠성봉을 찾아본 후 추색이 깃든 구름다리를 보다 가까이서 담아보고 싶다.

농촌들녘의 풀밭엔 서리가 하얗게 내렸는데 아침햇쌀에 은구슬처럼 반짝거리고 농가마다 빨간 감이 주렁주렁 어느새 가을이 깊었음을 실감케 한다.

배티제를 넘어가니 아직도 아침햇쌀이 산을 넘지 못했는지 대둔산 암봉부위만 유난히 뚜럿한 모습이다.




대둔산방향으로 완만한 등로를 가다가 오대산 정상으로 이어질 것 같은 길로 리본따라 간다.
30여분 오르니 바위지대도 나타나고 대둔산 암봉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둔산 낙조대로 이어지는 능선길로 내려가니 배티제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조금 가니 장군샘터 갈림길이다.
김밥집에서 정수기물을 담아왔지만 샘물로 바꿀겸 단풍빛이 고운 산허리를 돌아 가는데 갑자기 큰 바위밑에 20여분이 무리지어 앉아있다. 순간 이게 무슨 특공대들인가? 햇볕도 들지 않는 이곳에....

섬찟한 기분이 들지만 내가 먼저 안녕하십니까
장군약수터가 어디입니까 바로 여기라며 친절하게 맞아준다.
예쁜 도자기 잔에 향긋한 차도 대접 받으며 이야기 나누다보니 그들은 다도(茶道)라는 모임인데 우리의 전통차를 즐기시는 분들이다. 이른 새벽에 대둔산 암릉을 거쳐 잠시후 하산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할 예정이라는데 역시 대단하신 분들이다.

곧 그들과도 이별하고 다시 낙조대를 향하여 올라 가는데 낙엽이 수북이 쌓인 비단길의 연속이다.


건너편 암릉을 담으면 좋겠는데 좀처럼 시야가 열리지 않는다.
계곡으로 떨어지려는 곳에서 능선쪽으로 올라가 보니 암봉 하나가 보인다. 올라간 흔적을 따라 가보니 역시 최고의 명당이다.


칠성봉과 낙조대가 바로 눈앞이고 올라왔던 오대산 능선과 태고사 뒤편 암릉도 한눈에 들어온다.









태고사와 연결되는 계곡부턴 너덜지대다.
바로 붙어 있다시피한 오대산은 육산인데 대둔산만큼은 온통 돌산이다. 사람도 분명히 이렇할 것이다. 겉보기로는 모두가 같아 보이지만 기질만은 각각 다른 것이 사실이니.....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낙조대에 올라 지난번 운무중에 올랐던 능선끝을 바라보니 골프장과 돗대봉도 보인다.



대둔산에서 바랑산 월성봉으로 향하는 능선도 다시한번 확인해 보니 수락리 마을부근까지 내렸다가 다시 치솟은 모습이다.


동남쪽으론 첩첩이 산들인데 구름위로 보일듯말 듯 하는 것이 덕유산과 지리산 같고 북으론 계룡산이 가까운데 논산방향만 호남들녘의 시작인듯 열려 있다.



능선상의 암봉들은 강한 역광으로 인해 한쪽면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늘에 가려 있다.






용문골 갈림길을 지나 암봉마다 올라 가을 모습을 담아보는데 정상에선 모두가 보일 것 같지만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데는 그 나름대로 한계가 있는 듯하다.



정상이라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들은 정상만을 고집하며 부러워하고 자신의 처한 현제 상태를 부정하는 듯 하다.

한 노인이 칠성봉을 물어 보시길래 저도 그곳이 궁굼한데 저 아래 케이블카 종점 어디쯤 될겁니다 하니 한 젊은 분이 용문골 계곡 아래을 가리키며 사람들 모여 있는 곳이 칠성봉 전망대라 한다.

노인께서는 용문골에서 케이블카 종점사이 계곡으로 올라오셨다는데 칠성봉 전망대를 못 찾으셨단다.
곧바로 노인이 올라 오셨다는 계곡으로 내려가 보니 케이블카 종점에서 전망대쪽을 오가는 작은 길이 보인다.

장군바위가 서있는 능선을 돌아 계곡으로 내려가니 용문골로 오르내리는 산님들 소리가 들리고 칠성봉 안내판도 보인다. 용이 승천할 때 일곱 개의 별이 능선에 떨여져 저렇게 암봉 7개가 줄지어 생겨났다고....

칠성봉 전망대 오르는 좁은 석문을 지나 전망대에 올라보니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 암봉들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위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장군바위에서부터 정상까지 설악산 천화대같은 암봉들이 연이어 솟구쳐 있고 중간중간에 소나무와 단풍까지 곁들여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저런 모습을 한 장에 모두 담아볼까 하여 파노라마 촬영을 시도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읽어 보기만 하고 손에 익히지 않았으니... 주변분에게 물어봐도 모르기에 내 맘대로 대충 찍어보고.....이 주변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좀더 바라보고 싶은데 연이어 사람들로 붐빈다.

석문 입구 양지쪽 바위면에 올라 앉아 전면의 화려한 암봉들을 바라보며 김밥 3줄을...


장군바위 능선을 돌아 케이블카 종점에 올라보니 인산인해다.
옥외 전망대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장군바위를 담은후 금강 구름다리쪽으로 이동하는데 놀러오신 분들이 어찌도 많은지 진행자체가 어렵다. 다리 부근부터는 아에 정체상태, 뒤로 후진도 못하고 30여분동안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삼선구름다리도 역시....




일반 등로쪽으로 곧바로 올라가는데 마치 개미때처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한없이 이어진다.
나역시 오르는 개미 대열에 끼여 열심히 올라간다. 능선에도 올라갔던 개미들이 여기저기 먹거리판을 벌여놓고 어떤 무리들은 고성방가로 자신들의 흥을 돋구기도 하고....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구름다리 가을모습을 담은 후 번잡한 그곳을 떠나 다소 한적한 마천대 남쪽 능선으로 이동하여 구름다리와 마지막 눈인사를 건넨 후 되돌아 나와 석천암 가는 능선으로 하산한다.






버스 시간도 여유가 많아 도중에 신발벗고 따뜻한 바위면에 누워 잠을 청해 보는데 지나는 분마다 굴러 떨어질 위험이 크다며 한마디씩 던지고 어린 아이까지도 저 아저씨 위험한데 저기서 잠을 잔다며.....

내딴엔 절벽아래로 약간의 돌기가 나와 있고 깊이 골아 떨어지는 낮잠이 아니라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영 신경이 거슬리고 그 분들에게도 걱정을 끼쳐 주는 것은 도리가 아닐 듯 하다.




이내 일어나 석천암쪽으로 내려 가는데 바랑산과 월성봉의 바위지대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논산시 주천면 들녘도 보다 가깝게 들어온다.

계단을 내렸다가 계곡으로 들어서니 낙조대와 석천암 갈림길과 만나고 조금 아래로 석천암이다.
석천암에 올라보니 큰 바위틈에서 물이 흐르고 그 아래선 등산화를 신은 채로 한 노인이 목탁을 두드리며 멋찌게 염불을 막 시작한다.
그 옆엔 등산가방도 있고....


조용히 암자를 둘러보다 한 스님이 계시길래 지금 염불하시는 분은 무슨 뜻으로 하시는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하니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기리는 인도말이라며 신라시대에 들어와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단다.
젊으셨을 때 스님생활을 하셨는지 잘도 하신다고 한다. 내가 들어봐도 목청도 그렇고 목탁 두드리는 솜씨도 전문가 이상이다.

진도개 새끼같은 강아지 한 마리 보이길래 목을 쓰다듬어 주었더니 떠나지 말고 같이 놀자며 마구 달려든다.
그 놈과 어려운 작별을 하고 독수리 바위를 지나며 빨갛게 물든 단풍을 찾아 보는데 매우 드문 편이다.


계곡을 벗어나며 포장도로가 시작되고 승전 기념탑을 지나는데 빨치산 토벌 기념이란다. 별로 듣기 좋지 않다.
빨치산(partizan ) 은 러시아어로 전쟁시 배후에서 활동하는 비정규군을 의미하고 6.25당시 공산 guerilla(유격대)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먼 나라 사람같이 들린다.

자율적 의사와 상관없이 소속된 조직의 강요로 자신도 어쩔수 없이 그런 활동를 했을 것 같은데... 전쟁시엔 피차일반 아닌가.

승리자체를 기념할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내부에서 자행된 지난날의 불행한 역사를 사실데로 정확히 후세에 알리고 그런 불행속으로 다시 빠져들지 않도록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각성하도록 함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강대국들의 세력 전쟁에서 경계지점에 처한 약소국들이 어쩔수 없이 희생양으로 이용당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

동족을 죽이는 토벌에서 승리한 것이 뭐가 그리 기념할 만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죽인 그들도 우리와 같은 성향의 한겨레일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우리와 다를바 없지 않겠는가

진입로엔 갈수기라선지 지난번처럼 계곡물이 진입로로 흘러들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으로 이어지는 진입로에는 벼들이 널여 있고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온가족이 나와 도로면에 말린 벼를 다시 푸대에 담고 바로 옆의 다랑이 논에서는 타작 기계가 소리를 내며 벼를 베고 있다.

이처럼 농삿일은 아무리 기계화되었다 해도 온가족이 늦은 시간까지 힘을 모아야 하는 힘든 일이다.
곡식 한알을 생산하기까지는 이처럼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수고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먹거리에 대해 소중한 생각이 없는 듯하다.

요리하는 것도 귀찮다고 대충 만들어 적당히 먹다가 남으면 버리고....
요즘엔 아에 음식쓰레기 나오는 것을 당연시 한다. 조리중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이 그렇게도 많단 말인가? 김장 담그는 것도 잊어 버렸을 정도인데...

심화되어가는 기상이변과 대지진은 머지 않아 지구전체가 기근속에 빠져들 것을 예고하는 듯한데 알뜰살뜰한 살림살이는 찾아보기 힘들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껴쓰는 마음이 풍족함보다 나을 것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비만이라면 어른이 돼서 어떻게 힘든 삶을 헤쳐 나갈 것인가?
지나치게 많은 것도 화가 될 수 있으니 모든 것이 적당할 때가 좋은가 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벌써 정류장인데 앞으로도 한시간 정도 남았다. 두부와 곡주 한병으로 허기를 때우고 16:55분발 논산행 시내버스로 지난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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