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래읍성(망월산,마안산) 돌아보기

  동장대

  

2011.1.23.

부산시 동래구

코스 동래고고 정문-동장대(망월산)-북장대(마안산)-서장대-현대아파트옆-명륜초교-동래향교

거리및소요시간 약3.5km 2시간, 단독


○동래읍
부산 동래(東萊)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이 신라 경덕왕 16년(757)이라고 하니 사용된지 1200년이 넘는다. 그 전에 찬란한 복천고분 등 가야-신라문화가 터잡고 있었으니 뿌리는 더욱 깊어진다. '동래'란 말이 동쪽의 내산(萊山), 즉 신선이 산다는 뜻한다는 말도 전해온다.

동래읍성은 서북쪽 온천천과 동북쪽 수영강 사이에 위치하여 있고 1387년 박위가 왜구를 막기 위해 현재의 동래시장 일원에 성을 쌓은 후 임진왜란 때 많이 허물어졌으나 1731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전보다 성을 훨씬 크게 쌓아 지금 흔적으로 남아 있다.

 

동래읍성지(부산 기념물 제5호)를 둘러싼 성곽에는 동래를 지킨 장수들과 민초들의 한이 머물러 있고, 동래의 자존심이 이끼처럼 엉겨붙어 있다.동래구는 1970년대 말부터 동래읍성 보수를 시작해 북문과 인생문 등 문루 2곳과 장대 3곳, 전체 성벽 1962m의 절반 가량인 901m를 복원했다.

1592년 4월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총사령으로 한 일본의 선봉군 2만여 명은 700척의 전함에 분승해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부산진성을 무너뜨린 왜군은 다음날 오전 10시께 동래성을 공격한다. 항복을 종용하는 왜군에게 송상현 동래부사는 '戰死易假道難'(전사이가도난: 싸워 죽기는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이란 글을 던지고 항전을 선포한다. 왜군의 총공세에 동래성도 무너진다. 송상현은 조복을 갈아입고 최후를 기다린다.

송상현은 붓을 세워 부친에게 편지를 쓴다. "~군신의 의리는 중하고 부자의 정은 가볍습니다." 송상현의 의연한 순절에 왜군이 감동, 그의 장사를 도왔다는 얘기는 믿기 어려운 비사다.
당시의 처절한 참극은 2005~2008년 부산도시철도 3호선이 지나는 수안역 지하 공사장에서 경남문화재연구원이 벌인 동래읍성 해자 발굴조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읍성돌기 

아침 창밖을 보며 문뜩 "'죄와벌'을 쓴 토스토에프스키가 28세 사형 선고를 받아 지상에서 보낼 수 있는 최후의 5분이란 말이 머리를 스친다. 그는 5분을 어떻게 쓸까? 옆에 앉아있는 같은 형편인 사형수에게 한 마디씩 작별인사하는 데 2분, 오늘까지 살아왔던 생활을 돌아보며 정리하는데 2분, 나머지 1분은 나를 낳아준 땅 자연을 둘러보는데 쓰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며 잊고 지내는 근교 유적지를 돌아보기 위해 동래고고 정문 옆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의 생가를 지나 주택가 골목에서 산에 올라 충렬사와
동장대 울타리 철망을 따라 동장대 출입문에 이른다.(10:20) 이곳 후문은 겨울철(11월~이듬해 3월) 산불예방을 위해 폐쇄되고 있다.

 

답사를 하려면 문화재 학술탐구 목적 등으로 충렬사관리소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1개의 학술팀이 동장대들 답사하고 있고 공익요원이 정문을 지키고 있다. 다가가 앞서간 학술팀의 일행이라고 허락을 받고 들어선다.

 

앞선팀들 뒤를 따라 누각과 조망을 돌아본다. 부산시내 조망을 한바퀴 돌아보니 가슴이 확 트인다. 동장대 누각에 망월대(望月臺)라는 현판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지금까지 달맞이 풍습이 많음을 느낀다. 망월산 자락의 성곽을 밟고 학산여고 옆을 지나 북장대 가는 길에 '인생문(人生門)' 유래문을 읽어 본다.

"임진왜란 때 이 문을 통해 피난 간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건져 사람을 살린문 이라는 뜻이 전설로 전해진다"고 한다.마안산 베트민트와농구장에서 우측 3.1운동기념탑을 돌아 나무계단을 오르자 북장대(마안산 정상)다. 시내 전망이 좋아 장산과 광안대교, 금련산, 황령산, 엄광산 백양산, 금정산,윤산 아홉산 운봉산,철마산과 부산 대부분의 산이 보인다.

길목에 상춘정(常春亭), 학소대 터, 동래부사 한배하 젓가락 설화, 전생모자 설화, 관황묘 설화 등이 안내판 형태로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북문으로 내려오니 동래읍성 역사관과 장영실 과학동산이다. 동래현의 관노였던 장영실은 세계 최초의 물시계(자격루)와 측우기, 수표를 만든 조선의 천재 과학자로 소개되어 있다.

  

과학동산에는 현대 과학지식을 총동원해야 풀리는 발명품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복천동 고분과 복천박물관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해시계에 대해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장영실 선생이 송나라 자료를 연구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만들었다는 것에 과학의 우수성을 느낀다. 2층누각 서장대를 내려와 동래향교에 이르니 문이 굳게 장겨져 있다. 관리실에 협조를 받아 들어갈 수 있지만 겉에서 본 것으로 만족하고 동래읍성 돌기를 접는다.(12:20)

  

이 유적지는 부산사람이라면 꼭 한번쯤 찾아 걸어봐야 할 역사탐방로"라고 생각한다. 2시간이란 시간을 아무련 의미 없이 누워서 보내었을 수도 있는데 내 곁 유적지를 돌아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한  5분이란 시간이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左之右之하게 하는지 중요성을 일께운다.

 

○이미지감상

 

00

   인생문

   

   3.1독립운동기념탑

 

 

   복천고분

 

  

 

 

 

 

 

   

 

 

 

 

 

   감사합니다.    =깃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