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외곽 훑기(대발령-천자봉-시루봉-안민고개)


◈ 날짜 : 2004. 5. 16(일), 흐리고 비
◈ 행선지 : 진해 시루봉
◈ 참가자 : 나
◈ 산행시간 : 4시간
◈ 주요경로 : 진해시 2번국도 대발령(15:15) - 천자봉(15:48) - 시루봉(16:48) - 불모산/안민고개 갈림길(17:25) - 동굴(18:19) - 안민고개 생태통로(18:40) - 안민고개 구도로 - 공동묘지 - 진해남중 - 경화시장(19:15)


조금은 심심하게 보낸, 지난 일요일의 기록이자, 객지에서 무료한 휴일을 보낸 놈의 넉두리입니다. 산행기는 쪼금뿐이구요....


토요일부터 지겹게 흩뿌리는 봄비인지 여름비인지 모를 빗줄기에 우울하다.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생명을 키워 우리를 먹여 살려주는 농부님들에게는 반가운 비일 터이니, 비 온다고 투정을 하면 천벌을 받을 일이이다. 그러나 귀경도 못하고 나들이도 못하고 숙소에서 주말을 보낼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


다행히도 일요일 아침에는 가랑비 정도라서 드라이브나 해볼까 하고 동료 직원들과 함께 차에 오른다. 며칠 전 한울타리님께서 빗속에서 해운대와 장산을 훑어 보여주신 기록을 떠올리며, 혹시나 비가 개면 장산이라도 올라볼까 하고 등산화에 등산복 차림으로 나선 길이다.
숙소가 진해 용원이라 거의 한 시간 반 가량을 이리저리 헤매어 해운대에 도착한다. 길을 잘 모르니 제8부두니 신선대부두니 하는 컨테이너 하역부두들도 지나치며 작년엔가 개통한 광안대교를 아래층으로 달려 해운대에 도착한다.


아마 30여 년 전에 한 번 들른 기억은 있지만, 이미 메모리에는 남아있지 않는, 처음 보는 낯선 바다이다. 이미 많은 관광버스와 구경꾼들로 법석이다. 그리 폭이 넓지는 않지만 도심에 이렇게 맑은 물이 가까이에 있다니 정말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발을 적시며 파도따라 들락거리는 아이들의 밝은 웃음들… 모래사장을 한 동안 거닐며 이방인의 들뜸에 동참한다.


모래사장 서쪽끝의 갯바위로 가본다. 예쁜 인어가 한 마리, 아니 한 사람 있다. 이거 마리가 맞는지, 사람이 맞는지? 하여간 청동 인어상으로 올라 앙탈거리지 않는 인어를 끌어안고 사진을 찍는다. 빗물로 미끈거리는 게 아차하면 추락, 부상일테니 이건 목숨, 아니 상해 걸고 하는 짓이다. 사랑도 바람핌도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것...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나오는 귀절인데...


(전략)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것을 거니까 외로운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수 있겠지
(후략)


최치원선생 동상이 있는 동백섬 언덕위를 오른다. 오르는 길 좌우의 동백이 가지런하다. 2월이라면 서럽게 붉은 동백들이 맞을텐데...  나말여초에 최치원선생이 여기서 뭘 했는지는 모르나, 유적지라고... ㅋㅋㅋ. 동백섬을 내려와 다시 안내판을 읽는데 아, 해운대 석각! 전에 한울타리님의 기록에도 나온 것이다. 나 혼자 얼른 보고오마고 바삐 걸음을 되돌린다.


동백섬 순환도로에는 달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바다가 탁 트인 해안가에 석각 안내판이 있고 그 아래 바위에 海雲臺라는 글자가 새겨있다. 정말 최치원선생이 썼을까? 1100년도 지났는데, 이 거친 바닷가에서 그리 크지도 깊지도 않게 새긴 글자가 버텨남았을까? 허어 참… 그저 그려려니 해야지...


해운대를 떠나니 달맞이고개이다. 팔각정자 해월정에 올라 바다를 굽어본다. 가랑비와 운무로 시야가 답답하다. 맑은 날에는 혹시 대마도가 보이지 않을려나... 


내쳐 동쪽으로 달리니 송정이다. 너르기로야 해운대와 비슷한 듯한데, 해운대에 비하면 조금은 시골다운 모습이 남아있다.


동료들과 식당을 찾아 출출한 속을 채운다. 배도 부르니 만사 행복...  부른 배로 행복한 귀가길에 오른다.


용원에 도착하니 3시경...  비는 그쳤고...  아직 어두워지려면 꽤 시간이 남은 듯...   에라, 진해 시루봉이라도 올라보자. 이렇게 해서 오늘의 시루봉 등산이 늦게야 시작된다.


아예 승용차로 대발령까지 이동한다. 이미 세 시가 넘었다. 지난 1월말, 진해로 파견 내려와 처음 올라본 곳이다. 어둡기 전에 안민고개로 내려올 수 있겠다. 아주 작고 오래된 쌕이 있는데, 바람막이용 겉옷, 카메라에다 가게에서 생수 한 병과 작은 약과 몇 개를 사니 가득찬다. 볼펜도 없으니 오로지 디카의 기록에 의지할 뿐...


대발령에서 임도를 따라 오른다. 콘크리트임도를 따라 쉼 없이 오르니 이마에, 등에 땀이 주루륵이다. 비가 그친 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 후덥지근하다.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 속에 입은 반팔 티를 아예 벗어버리고 긴 팔 티 하나만을 입는다. 훨씬 낫다.


가파른 길을 30여 분을 오르니 천자봉이다. 하늘은 뿌옇지만 발아래 굽어보는 진해 앞바다가 정겹다. 눈에는 비록 가까운 것 몇 개 밖에 보이지는 않으나, 안개 속에 점점이 떠 있을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느껴진다. 그 섬들 사이사이에 작은 점으로 보이는 배들도... 


천자봉을 지나니 너덜길이다. 부서진 작은 바위들이 비에 젖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아주 작은 공룡능선이다. 작은 오르내림을 거쳐 능선길을 지나 또 한번 거센 숨으로 봉우리를 올라서니 드디어 눈 앞에 시루봉이 자태를 드러낸다. 산 정산의 이상한 바위...  떡시루모양...  참 신기한다. 그 아래 산사면 보호용 나무데크도 인상적이다.


구비구비 나무데크를 올라 시루봉에 다다른다. 바위 위로는 길이 없단다. 데크를 따라 한 바퀴돌며 주위를 굽어본다. 703m이면 그리 낮은 산은 아닌데, 구름에 가려 전망이 답답하다. 그저 마음으로 계곡과 숲을 느낄 뿐...


갈 길이 멀어, 아니 시간이 바빠 북쪽으로 길을 재촉한다. 작은 오르내림을 거쳐 30 여 분을 가니 좌 안민고개, 직 불모산 갈림길이다. 언젠가는 불모산으로 해서 창원이나 용원쪽으로 가 볼 생각인데, 오늘은 시간상 안민고개로 갈 수 밖에 없다.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 진행하니 내림길에 또 나무데크길이 길게 이어진다.


진해 시내에서 진해를 들러싼 이 능선을 보면 거의 비슷한 고도의 수평한 능선이다. 왼쪽에는 장복산, 가운데 움푹한 곳이 안민고개, 우측이 바로 지금 걷고 있는 이 평평한 능선이다.
아무튼 큰 어려움은 없으나, 갈림길에서 안민고개까지 3~4km는 될 듯하다. 부지런히 작은 오르내림을 거치기도 하고 우회도 한다. 상쾌한 숲 냄새에 고개를 돌리니 능선 좌측에 측백나무가 빽빽하다. 보기에도 기분에도 흐뭇하다. 길 우측에 작은 동굴을 지난다.


드디어 안민고개다. 무슨 보수공사한다고 길을 막아놓았는데, 차량이 없으니 마음이 더욱 상쾌하다. 다음에는 장복산까지 이어갈 생각을 한다. 나무데크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다 천자봉 산책길 안내판 있는 곳에서 희미한 산길을 찾아 급사면을 타고 내린다.


이미 7시가 지나 어둑어둑한데, 주위는 공동묘지이다. 지난 번 북한산 사기막골 군부대 야간담력훈련장에 이어 또다시 공동묘지라...   어스름이 깔린, 처음 가보는 길을 혼자서...  으시시...    요즘 운수가 사나운 날들이...   숨 돌릴 틈 없이 죽어라 내려오니 무슨 학교 운동장으로 떨어진다. 어휴~ 살았다. 진해 남중.


이어 도로를 따라 이리저리 걸어 105번 버스 정류장(경화시장)에 도착, 하루 산행을 마감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자칫 무료할 뻔했던 휴일을, 늦게나마 4시간의 산행으로 마감하니, 무릎은 뻐근해도 가슴은 뿌듯하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번국도 대발령 산행들머리 임도


쉼터에서 올려다본 천자봉


천자봉에서 바라본 남해 바다… 운무에 희미한… (사진이 시원찮네요... 죄송...)


시루봉 쪽 능선


시루봉과 데크


시루봉 안내판


아주 작은 현수교…. 그러나 계곡은 아주 깊고…


갈림길 내림길의 데크


동굴


뒤돌아본 능선, 희미한 왼쪽이 불모산 정상


석양과 희미한 장백산


안민고개 생태통로


오전에 들른, 해운대 인어상


해운대 석각. 석축 울타리 안에... (최치원이 썼다는...ㅎㅎㅎ)




▣ 山용호 - 진해 산줄기는 아직도 가보고픈 곳으로 점지해두었는데..사진 잘보고 갑니다. 안전산행 하세요
▣ mjlhalla - 선배님, 여전히 건재하시군요. 조선소 일로 부산에 가면 야밤에 시내에서 택시타고 혼자 기분내러 들리던 카페 많은 달맞이 고개, 해운대 바닷가 입니다. 망미동 옥류아구찜(가물가물)은 들리셨나요. 서울분은 꼭 방아잎(추어탕 산초가루 향) 빼고 달라고 하셔야 합니다. 창원에 있으면서 가보지 못한 영남알프스 가지산, 운문산이 평생 한이 될 것 같읍니다.
▣ 김학준 - 나타나지 않는 사진이 몇장있네요? 산을 좋아하시는 그마음 함께하고 싶습니다. 글과 사진 잘보고 갑니다.
▣ 김학준 - 이제 사진이 다보이는군요. 잠시 컴이...
▣ jkys - 비가 오면 좀 우울하죠.회사업무로 타지에 계신가봐요.사진 잘보고 갑니다.
▣ 이수영 - 안녕하세요? 미시령님.. 제가 갔다온 코스여서 머리에 속속 들어오네요^^ 대발령에서 날머리인 경화시장까지 4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니 놀라운 산행 실력입니다. 늘 즐산하십시오. 참 장백산은 장복산으로 수정하시길..
▣ 김정길 - 서면 숙소 든처에서 대발령으로 넘나드는 시내 시외버스는 있는지요, 천자~시루~웅산~안민고개 기가막히게 좋은 코스 다녀오셨습니다. 아우님의 산 사랑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