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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서 바라본 탕정호 ,계백장군 산벌 격전지-

 


계백(수락)단맥 곡절과 감동이 함께했던 추억산행

2015027016호        2016-02-29()


자리한 곳 : 충청남도 논산시

지나온 길 : 신암리-함박-697번지방도-매봉-고정상-황산벌전적지-수락산-2번군도-대명산-외성이-논산장례식장

거리및시간: 산행시간 9시간 43(08:36~18:19) = 총거리: 17.6km

함께한 이 : 신경수선배, 고송부선배 그리고 계백

산행 날씨 : 눈발 오락가락 변덕심한 날씨


산행을 나서는 새벽의 나의 심경

어제가 가슴에 묻은 아들놈의 9주기라 과음으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지만 오래전의 약속이고 아빠의 망가진 모습을 녀석이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뒤척거리는데 모닝콜이 울리며 기상시간임을 알려주어 이를 악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04:00)

컴퓨터를 열어 메일과 블로그 그리고 충청도의 날씨를 확인하고 딸아이가 준비해준 이틀간 산행에 필요한 이런저런 간식과 식수로 배낭을 꾸려 집식구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다.(05:15)

전철만으론 열차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시내버스를 이용해 종각역에서 1호선 전철로 갈아타고 호남선출발지인 용산역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는 열차(KTX)를 찾아 승차해 행신에서 탐승하신 신경수선배를 만나 예약시기가 달라 떨어진 각자의 지정석에 좌정하자 고요가 찾아왔다.(06:15)

광명역을 빠져나온 KTX가 고속으로 질주하는지 차장을 스치는 풍경이 빠르게 변하며 사색의문을 열고 나만의 깊은 생각에 잠긴다 시간 따라 달이 차오르고 기우는 것은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며, 꽃이 벙글어 만개하고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어느 누가 감히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젠 놓아주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살아야한다 독하게 마음을 굳히며 燕巖憶先兄를 중얼거린다.


燕巖憶先兄(연암억선형) 돌아가신 형을 그리며 / 朴趾源(박지원) (1737~1805)

我兄顔髮曾誰似(아형안발증수사) : 내 형의 외모는 누구를 닮았던가

每憶先君看我兄(매억선군간아형) : 선친 그리울 때마다 형을 보았지

今日思兄何處見(금일사형하처견) : 이제 형이 그리운데 어디서 보랴

自將巾袂映溪行(자장건몌영계행) : 의관을 갖추어 시냇물에 비추어 보네.


계룡역에서 고송부선배와 함께하며 셋이 하나가 된다.

영업하는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조반을 때우고 택시로 논산군 연산면 신암리 삼천리교육원(어느 종교의 기도원)에서 벌곡면사무소를 잇는 20번군도 황룡재로 주차장에 내려서 황산벌 전적지안내판과 마주하자 오래전 금남정맥 종주때 준비했던 김밥이 무더위(831)로 변질되어 먹을 수 없어서 배고픔과 싸움이 고통스러웠던 추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산행준비를 끝내고 떡가루가 뿌려진 계단을 올라서며 산행을 시작(08:38)하자 금남정맥산줄기는 가파른 오르막과 올망졸망 모여 있는 묘지들을 뒤로하고 활공장에 오르자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고 탐정저수지의 맑은 물이 시원했고 3년전(131) 종주했던 계룡산의 약수단맥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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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 함박봉 오르는 길, 계룡산 약수단맥 풍경-


오늘 답사할 산줄기의 지도를 준비하지 못했으니 가끔씩 지도를 동냥하며 선배들 사이를 눈치껏 끼어서 따라가면 그만인 상황이니 독도가 불필요하지만 지도 없는 산행은 전쟁터에 나간 병사가 총을 준비하지 무지며 장님이 지팡이만으로 세상의 변화을 느낌려는  행위와 같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의 종주할 계백단맥은 금남정맥 함박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매봉산과 고정산을 경유해 계백장군의 마지막 격전지인 황산벌을 관통하여 수락산에서 대명산 팔분능선으로 이어지며 외성리와 논산장례식장(1번국도)을 건너 연산천 부황역앞 합수점까지의 비산비야가 많은 야산지대의 산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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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9BD5056DCB4A5154D01-계백(수락)단맥 금남정맥에서 분기점의 풍경들-


계백단맥 산줄기 첫걸음

하얀 눈이 쌓여있는 가파른 금남정맥 산줄기를 수백 미터 내려서 눈 때문에 분기점을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분기점에서 신선배의 부름에야 우측의 급경사를 산줄기를 지그재그 조심스럽게 내려서 별장단지를 지나 동네포장도로를 따르며 우사와 견사를 지나칠 때는 견공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전답지과 수로를 빠져나와 구덕재(697번지방도)를 횡단해 지나온 산줄기가 시원하게 조망된 전망(무명)봉에 올라서 늘어지게 휴식을 취한다.(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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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D344E56DCB4A81481CE-무명봉에서 바라본 금남정맥 풍경-


탑정호둘레길 따라 매봉(145m)지나는데 맑던 하늘이 흐려지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해 윤달이라 내일이면 새달인 나태주님의 ‘3월에 오는 눈'이 생각난다.

3월에 오는 눈은 오면서 물이 되는 눈이다.

어린 가지에 어린뿌리에 눈물이 되어 젖는 눈이다.

이제 늬들 차례야 잘 자라거라 잘 자라거라 물이 되며 속삭이는 눈이다.

화창한 봄인 듯 하다가도 뜬금없이 매서운 꽃샘추위가 몰아치는 3월은 잠시나마 우리들 특히 산꾼들에겐 시련이 분명하지만 春雪(봄눈)이 녹아내려 식물들의 뿌리에 생명을 불어넣어 새싹을 키우는 희망의 눈발이다.

이번에 새롭게 도전한 職業(직업)의 인간관계에서도 3월의 눈처럼 처음에는 비록 고통스럽지만 머지않아 협조와 희망의 관계로 발전해 빠른 시간에 상호 존중하며 共生(공생)하는 관계로 정착하는 바램으로 折花行람 한시 한수를 읊어봅니다.


折花行(절화행) - 꽃을 꺾어서 / 李奎報(이규보) 고려 1168~1241

牡丹含露眞珠顆(모란함로진주과) :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 알 같은데

美人折得窓前過(미인절득창전과) : 미인이 모란꽃 꺾어 창앞을 지나간다

含笑問檀郞(함소문단랑) : 웃음을 머금고 박달나무 신랑에게 물었다

花强妾貌强(화강첩모강) : 꽃이 더 예뻐요? 제가 더 예뻐요?

檀郞故相戱(단랑고상희) : 신랑이 일부러 장난치면서

强道花枝好(강도화지호) : 꽃가지가 더 예쁘다고 말하는구나!

美人妬花勝(미인투화승) : 신부는 꽃이 더 낫다는 데 시기하여

踏破花枝道(답파화지도) : 꽃가지를 밟아 짓뭉개고 말했다

花若勝於妾(화약승어첩) : 꽃이 저보다 예쁘다면

今宵花同宿(금소화동숙) : 오늘 밤은 꽃과 같이 주무시지요.


정신요양원(한울 빌리지)에서 마루금을 따르자 갑자기 나타난 잡목지대를 가까스로 빠져나와 길게 이어진 과수원을 관통해 2차선 포장도로를 넘어서니 또다시 바람이 강해지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변덕스런 날씨지만 다행히 호화묘지들을 조상하느라 닦은 산책로의 산줄기를 따르다 탑정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르고 조망이 훌륭하며 고급잔디로 단장한 묘지에 둘러앉아 배낭을 풀고 간단하게 점심을 때운다.(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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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몰아친 풍경,탑정호가 내려다 보이는 묘지-



넓은 안부인 고정산(145m)를 뒤로하고 솔바람길(동물이동터널)넘어서 산줄기이름으로 빌린 백제군사 박물관단지와 마주한 계백장군유적지(황산벌전적지)를 내려다보기 좋은 지휘대에 닿는다.(14:20)


階伯(계백:堦伯)이라고도 표기한다.?∼660(의자왕 20). 백제 말기의 장군. 관등은 달솔(達率)이다.

 660년 김유신(金庾信)과 소정방(蘇定方)5만여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 : 지금의 大田 동쪽 馬道嶺)과 백강(白江)으로 진격해 오자, 결사대 5,000명을 뽑아 황산(黃山 : 지금의 충청남도 連山)벌에 나가 맞이하였다.

그는 전장에 나아가기에 앞서 한 나라의 힘으로 나·당의 큰 군대를 당하니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다. 내 처자가 잡혀 노비가 될지도 모르니 살아서 욕보는 것이 흔쾌히 죽어 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고는 처자를 모두 죽이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을 각오하였다. 또한, 병사들에게도 옛날 월왕 구천(越王句踐)5,000명으로 오왕 부차(吳王夫差)70만 대군을 무찔렀다. 오늘 마땅히 각자 분전해 승리를 거두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고 격려하였다. 그의 결사대는 험한 곳을 먼저 차지해 세 진영으로 나뉘어 연합군에 대항하였다. 목숨을 버릴 것을 맹세한 결사대 5,000명의 용맹은 연합군의 대군을 압도할 만하였다. 그리하여 처음 연합군과의 네 번에 걸친 싸움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반굴(盤屈관창(官昌) 등 어린 화랑의 전사로 사기가 오른 연합군의 대군과 대적하기에는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였다. 결국, 백제군은 패하고 계백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계백의 이러한 생애는 후대인들의 높은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에게는 충절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한편, 권근(權近)은 계백이 출전하기에 앞서 처자를 모두 죽인 것이 오히려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결국 패하는 결과를 낳게 한 것이며, 계백의 그러한 행동은 난폭하고 잔인무도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서거정(徐居正) 등은 계백의 행동을 높이 평가해 당시 백제가 망하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기에 자신의 처자가 욕을 당하지 않도록 몸소 죽이고, 자신도 싸우다가 죽은 그 뜻과 절개를 높이 사야 한다.”고 하였다. 더구나, 백제가 망할 때 홀로 절개를 지킨 계백이야말로 옛 사람이 이른바 나라와 더불어 죽는 자라고 칭송하였다. 그 평가는 이후 조선시대 유학자들 간에 그대로 계승되어 계백은 충절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그 뒤 계백은 부여의 의열사(義烈祠), 연산의 충곡서원에 제향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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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군사박물관 그때 탱크가 있었나???, 황산벌 격전지 지휘소 옆 목련-


단체 행동은 어떤 경우라도 함께해야 한다는 교훈 얻어다.

마루금이 둘레길이라 자동차 통행도 가능한 산줄기를 따라 수락산(167m)지나 이정목갈림길에서 충곡서원으로 하산하다 산줄기와 인도의 갈림길에서 신선배는 산줄기를 택했고 난 앞서간 고선배와 임도를 따라 마을에 내려서는 길목 우측 산기슭에서 수상생활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위의 원두막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충곡마을길에서 포장도(2번군도)를 따라 충곡리 마을회관에서 해어진 신선배와 통화에서 2번군도를 넘어섰다는 소식을 고선배께서 전해 준다.(03:43)

또다시 눈발이 날리고 시장기가 찾아와 간식하며 신선배를 기다리기로 하고 조망이 트인 묘지에서 어디쯤에 계신지 통화를 시도했으나 통화권에서 벗어났다는 안내 후 통화를 시도했으나 통화하가 되지 않아 답답하게 시간만 보내기 보다는 찾아나서 가능성 있는 능선길목을 지켰으나 만나지 못하고 대명산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황토밭을 가로질러 생태공원으로 내려서 도로를 걷다 고선배께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신선배와 통화됐다는 말이 편해진 마음으로 생각보다 가파르고 힘든 경사로를 치고 올라 대명산(181m)3등삼각점을 확인한다.(17:13)

정상엔 호화묘지가 자리해 심기가 편하지 않은데 인기척을 느껴 돌아보니 신선배가 다가오고 있어 합류하며 단체 행동은 어떤 경우라도 함께해야 한다는 교훈 얻어다. 정상에 설치된 태양전기 전광판과 전망테크에서 내려다 본 탐정호의 아름다운 풍경과 논산일대의 환상적인 풍경을 즐기는 마음한구석에선 1356민족의 비극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져 서둘러 대명산을 뒤로한지 5분여만에 벗어났던 마루금에 복귀한다.(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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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산 정상 풍경, 갈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 산행 종료지점-


내리막을 내려서 대명산 정상 1.08km 이정표에서 도로를 따라 논과 밭 그리고 공장을 지나 외성3리 버스정류장에 닿았는데 날이 저물어가는 시간이고 논산장례식장(1번국도)까지는 포장도로이며 국도를 넘어서도 논두렁밭두렁길이라 의미가 퇴색한다는 생각에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생략했으면 좋겠다고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선에서 10시간 가까운 산행끝에 계백(금남정맥 수락)단맥종주를 갈무리한다.(18:19)


에필로그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해야 한다는 욕구충족을 위해선 식당을 찾는데 급선무라는 신선배의 지휘대로 버스정류장에서 배낭을 정리하신 신선배는 뒤따라오시라며 고선배가 앞장서니 뒤따르나 도로변엔 음식집이 눈에 뛰지 않는데 횡단보도 삼거리에서 고선배가 길을 건너니 따라 건너는데 신선배는 보이지 않는데 고선배는 따라올 거라며 뚜벅뚜벅 걸어간다. 이미 어두워 식별이 어려운 건너편 인도를 신선배 비슷한 분이 지나가기에 따라가며 소리쳐 여러 차례 불렀으나 지나가버려 어쩔 수 없이 고선배가 기다리는 짬뽕집에서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어 논산장례식장으로 이동해 기다리다 택시를 불러 예상 진행로를 따라가며 찾아보기로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논산시내 음식점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갈밖에 없다고 논산시내로 들어가는 도중에 고선배와 통화로 아까 우리가 기다던 논산장례식장에 계신다는 신선배 소식에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며 택시를 돌려 50분간의 離散(이산)을 마감한다.

곡절을 겪으며 시내 음식점에 둘러앉아 옛이야기 하듯 태연한 표정이지만 혼자 떨어져 고독하게 마음고생 심했을 신선배 입장에서 易地思之(역지사지)로 생각하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조차 민망하고 마음이 찡하지만 달리 위로하기도 그래서 소주잔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무튼 신경수 선배 수고하셨습니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찾아서~


2016-03-07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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