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신지요?.

 

첫째날

 

충주에서 대전 전주 화엄사까지 세번 차를 갈아타고 남도로 향한다..

화엄사에 도착하니 저녁 7시 20분

민박을 정하고 간단히 반주 삼아 소주한잔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둘쨰날

 

15년 전 아픈 기억을 가슴에 묻고 군대 갈 날을 받아놓은 상태로, 친구와 둘이 계룡산 지리산 주왕산 오대산을 도는 여행을 할 때, 처음으로 지리산 화엄사에 도착했다..

 

오후 다섯시, 산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할 때 젊은 객기 하나만 믿고 화엄계곡을 오르기 시작했고, 밤 9시가 되서야 간신히 올라서니 큰 도로가 뚫려있고 차가 지나가는 그 황당함을 아직도 잊지 못하여, 다시는 화엄계곡으로 지리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 계곡으로 아침 8시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화엄사에 들러 잠시 부처님께 합장하고 무사한 산행을 빌어본다

15년 전은 랜턴도 없이 어두운 상태로 산에 올라 주변을 잘 보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그래도 나름대로 시원하고 깨끗한 느낌에 마음이 맑아짐을 느낀다.

 

오르는 길은 역시 돌계단의 급한 경사를 자랑하는 힘든 길. 혹시나 했던 마음은 역시나.. 로 바뀌고 점점 배낭의 무게가 느껴지고 땀도 비오듯 한다.

그래도 그때와는 다르다 이제 산과 조금은 친해진 까닭일까 발바닥에 닿는 돌의 느낌과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세 시간쯤 그렇게 오르니 역시나 잘 닦인 넓은 길로 차가 지나간다 성삼재에서 오르던 중년부부가 신기한 듯 쳐다본다 한번 웃고 노고단 산장에 도착해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또다시 출발

 

성삼재로 인해 접근이 쉬워진 노고단은 관광객들이 많다 가벼운 옷차림에 운동화에 효도신발에 권사님 집사님 하면서 주고받는 말씀들이 재밌다.

 

노고단 고개에 올라 잠겨있는 노고단 입구의 철문을 아쉽게 바라보며 멀리 반야봉과 천왕봉을 바라본다. 나그네가 가야 할 길 그 길이 그렇게 명확히 보여서 좋다.

인생도 그렇게 명확한 길이 보였으면 삶이 훨씬 단순하고 명쾌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본격적인 능선길로 접어든다.

 

그 많던 관광객들을 떨치고, 조용한 능선길에 접어드니 즐겁기 그지없다 날씨를 살피며 산행을 미루다 실행에 옮길 때, 고심 끝에 악수를 두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걱정은 맑은 하늘이 가져가 버린다.. 그지 없이 맑고 그지 없이 깨끗하다 바람은 시원하게 불고 새소리도 청명하다 

 

피아골 갈림길을 지나 임걸령에서 목을 축이고 반야봉 밑에 도착해서 잠시 망설인다 그냥스쳐 연하천으로 갈까 반야봉에 올랐다 내려 뱀사골로 갈까 이미 인터넷 예약이 뱀사골로 되있고, 연하천에 간들 지난 겨울 산장지기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광야 형님도 없으니 연하천이 특별한 의미가 없어진다 

 

반야봉을 힘겹게 올라 정상에 턱 걸터 앉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사람 없는 반야봉에서 천왕봉과 노고단을 번갈아 바라본다 온 길과 갈 길이 한눈에 보이는 지리산 능선길 그래서 나그네는 지리산을 찾을 때 마다 종주를 하게 되나 보다 

 

세시간 전 노고단에서 보던 그 반야봉에 올라 다시 노고단을 바라보는 느낌. 사람 다리품이 무섭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지난 가을 도보로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걸어갈 때도, 해남의 첫걸음이 통일전망대의 마지막 걸음으로 이어질 것을 믿기 힘들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됐고 통일전망대의 첫걸음은 또 다시 해남의 마지막 걸음이 되겠지……..

 

한 시간동안 반야봉에서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맞고 보내다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반야봉을 떠나 삼도봉을 거쳐 화개재에 도착한다 

 

오후 4시반 여유롭게 뱀사골산장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저녁밥을 하는데, 노고단에서 길을 묻던 4명 한팀인 사람들이 온다 반갑게 인사하고 그분들이 가져온 삽겹살에 소주에 정나눔이 뱀사골의 저무는 저녁과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행복한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산장에서 많이 자봤지만 오늘처럼 심한 코골이는 처음이다 10여명이 동시다발적으로 골아대는 뱀사골산장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용할 정도다

 

잔듯만듯한 상태로 일어나보니 새벽한시 밖으로 나와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하늘을 올려보는데, 어찌나 별이 많던지.. 그대로 눈을 고정하고 뗄 수가 없다. 아는 별자리가 북두칠성밖에는 없지만 그것은 안중에도 없고 하늘 전체를 덮은 별들의 축제에 넋이 나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걸린 별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하고 별무리들은 성운인지 구름인지 분간이 안 간다. 나그네가 별이 되어 지구별을 바라보다가 또 나무가 되어 별을 가지사이에 품어보기도 한다.멀리서 들러오는 뻐꾹이 소리가 별빛과 어울어지는 밤 나그네는 행복을 느낀다. 적요 속에서 신과 대면하고 있는 느낌이 이럴까……..

 

그렇게 시끄러운 코골이를 피해 나선 곳에서 만난 밤하늘의 별들이 있어..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밤새 한잠도 자지 못했지만. 별이 있어 행복한 산행 첫날밤이었다..

 

 

세쨰날

 

아침을 해 먹고 7시 뱀사골산장을 출발해서 화개재를 거쳐 토끼봉에 오른다.. 잠시 앉아 쉬다가 밤새 누군가 야영을 했는지 쓰레기 봉지와 돌 틈에 꽂혀있는 껌종이 담배꽁초에 화가 난다.

 

그들이 망쳐놓은 산 때문에 진정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산에서 받는 자유의 제약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다 허나 어쩌랴 그들마저도 산이 받아주는데, 객인 나그네가 무슨 할말이 있으리요.

 

다시 걸음을 옮겨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는 맑고 한가로운 산장이 참 정겹다 지난 겨울 그렇게도 춥던 눈 덮인 산장에서 광야형님을 포함한 정겨웠던 술자리가 생각난다 

잠시 앉아 있는데, 금방 머리를 감았는지 긴 머리를 말리며, 나오는 산장지기를 만난다.지난 겨울 산장지기는 아니고 새로 오신 분인가 보다 하고 인사를 건넨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혹시나 해서 광야형님 얘기를 하니, 잘 아는 동생이라고 반색을 하신다. 나그네도 반가워서 다음주쯤 지리산에 온다고 소식을 전하니, 오면 혼내주겠다고 정이 넘치는 욕들을 섞어가며 말씀을 하신다 

 

생김새가 시원스럽고 말씀도 잘 하시는 게 누구나 호감을 갖을만한 분인거 같다. 히말라야도 다녀 왔다고 하는걸 보니 진짜 산꾼임에 틀림 없겠다 싶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연하천의 한가한 오전이 시간을 잡아먹는다 금새 한시간이 흐르고 갈 길이 있는 나그네는 떠난다. 광야형님이 오시면 안부나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산장지기는 남고 나그네는 떠나는데. 간밤에 연하천산장까지 오지않은 게 못내 후회 된다.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연하천에서 벽소령 가는 길은 개인적으로 나그네가 좋아하는 길 중 하나다 봉우리에 서있는 한그루 고사목은 첫 산행 때부터 마음에 들던 15년지기 친구다. 반갑게 인사하고 잠시 서로 바라보다.고사목은 남고 나그네는 말없이 떠난다.

 

형제봉을 거쳐 벽소령산장에 도착하니 11시반.. 라면을 끓여 먹는데, 어제 반야봉에서 본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온다. 다쳤냐고 물으니 왼쪽 다리가 많이 아프단다.. 증상을 물어보니 무릎 바깥쪽 인대가 늘어난 듯 하다 

 

나그네도 그런 증세로 2년 정도 고생한 적이 있으니 가만 있을 수가 없다 파스는 있느냐 압박붕대는 있느냐 물으니, 다행이 있단다.. 지리산 초행에 단독 종주를 한다면서 대원사 코스로 내릴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아무래도 무리다 걱정이 되어서 하산을 권유해 보지만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다.

 

그리고는 파스를 바르고 압박붕대를 감고는 곧바로 길을 떠난다. 꼭 15년 전 나그네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떠나는 그 친구 뒤로 무사한 산행을 빌어본다.

 

벽소령을 떠나 선비샘에 도착해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 휴식을 취한다. 다행히 아까 그 친구가 선비샘까지 무사히 와 있어서 반갑고 대견한 생각이 든다…….

 

선비샘부터 세석까지는 나그네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코스다. 길이 험한데다가 경치도 별로다 첫 산행 때부터 이 코스는 힘겹게 넘었고, 그 기억으로 늘 두려움을 갖고 대하는데 아직도 그 두려움이 해결되지 못했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두려운 것이 있으면 자꾸 반복해서 익숙해 져야 한다는 말처럼 중산리 하산길을 두려움에서 밀어냈고, 이번 산행으로 화엄사 오름길을 밀었냈는데, 이 길은 잘 안 밀린다.

 

어쨌든 또 힘겨움으로 세석에 도착한다 은근히 기대한 철쭉은 여지 없이 실망을 준다. 올해는 철쭉이 안 이쁘다더니 어제 반야봉에서도 그랬고 오늘 세석평전도 마찬가지다 

 

아마 작은새님의 사진속 철쭉은 아직 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그네가 본 이 모습 그대로 였던 것 같다……

 

세석산장에서 촛대봉으로 향한다. 촛대봉도 나그네가 좋아하는 봉우리 그러나 하산길이 대성골이므로 내일 다시 볼 수 있다. 지금은 사람도 많고, 번잡하여 머물지 않고 그냥 스친다. 삼신봉 연하봉 드디어 장터목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시다..

 

인터넷 예약 시 장터목은 예약이 완료되어서 대기자로 올린 상태였다 대기자에서 예약자로 바뀌었는지 관리인에게 확인한다..

 

없단다.. 그럼 7시쯤에 다시 오면 되냐고 물으니, 퉁명스럽게 비꼬는 투로 짧게 모른다고 답한다. 화가 난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자리가 없으면 다른 산장으로 가란 말인가?.. 비박을 하란 말인가?.. 야간 산행을 해도 벌금을 안 먹이겠단 말인가? 관리인의 무성의한 말에 힘든 하루의 산행으로 지친 몸에 마음까지 무거워져 그 무게감이 배가 된다……

 

첫산행 때 산장과 산장지기의 매력에 끌려 산이 더 좋아졌던 나그네 비를 흠뻑 맞고 들어선 산장에서 따뜻한 커피를 대접해주던 오대산 노인봉산장지기 추운 겨울 덜덜 떨던 나그네에게 따뜻한 방을 제공해주던 설악산 중청산장지기. 비가 무섭게 내리던 어느 해 여름 폭우 속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찾아 나서던 뱀사골 산장지기, 사람의 정이 그리운 외로운 산행길에서 따뜻한 술자리를 마련해주던 연하천산장지기 등등.

 

과거의 그 정 많았던 산장의 풍경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기분 나쁨 이전에 가슴이 아파온다.. 어느날부터인가 제복 입은 자들이 산의 주인인 듯 설쳐대기 시작하면서 산의 자유도 따뜻한 정도 편리와 제도 속으로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산을 찾은 기쁨으로 위로를 삼아본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배낭을 푼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코펠을 꺼내 샘터로 향한다 한 10분 됐을까 쌀을 씻고 물을 뜨고.. 돌아와서 시간을 확인하려고 시계를 보니 없다 

 

배낭에 매달고 다니던 나침반이 달린 산행용 시계.. 늘 산행 때마다 허리춤에 끼고 다니며 흠뻑 정이 들었는데, 이번엔 배낭에 매단 게 화근이었을까? 

 

물 뜨러 가기 전에도 확인했는데 장터목에서 장비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는 장비가 허술한 나그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딴 나라 얘기 인줄만 알았는데.. 막상 당하고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벽소령에서 챙기지 못한 장갑과 산장 관리인의 불친절까지 떠오르며 기분이 많이 나빠진다..

 

바람은 불어 밥은 잘 되지 않는데, 산장에서 하는 방송은 잘 들리지 않아 대기자를 부르는 방송인줄 알고 몇 번을 달려갔다가 헛탕을 치고, 밥을 하다가 중간에 가스가 바닥나 가스를 다시 사오는 과정까지…… 번잡스럽고 짜증스러운 저녁이 그렇게 지나간다 

 

장터목 도착시간 5시에서 그렇게 산장에 입실하여 정리를 끝낸 8시반까지 극한 감정의 혼란을 경험하니, 즐겁게 떠들며 식사와 술을 하는 다른 등산객들까지 미워지는 과정을 겪어낸다.

 

그리고 조용히 담배한대 피고 마음을 다스린다. 멀리 보이는 하동의 불빛에 마음을 흘리고 부는 바람에 마음을 흘린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네쨰날

 

새벽3시 잠에서 깬다..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일출을 보겠다고 벌써 천왕봉으로 오른 사람도 있고 오르려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출은 5시20분쯤 이라 했는데..

 

나그네는 조용히 몸을 풀면서 사람들을 지켜본다 4시 배낭을 놓고 허리빽에 카메라와 랜턴을 챙겨서 산장을 나선다 멀리 하동의 불빛을 바라보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렇게 제석봉을 넘어 천왕봉에 오른다.

 

4시 40분. 5개월만에 보는 천왕봉 이미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는 천왕봉비석에 손을 올려 잠시 쓰다듬으며 천왕봉에 인사한다..

다시 왔소 천왕봉이여.. 반갑소 보고 싶었소.. 그대여………..

 

잠시 그러고 있다가 천왕봉을 피해 사람들이 없는 일출보기 좋은 장소로 이동한다

등산화를 벗고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밝아 오는 여명을 바라보니 그 스산한 신선함이 나그네를 맑게 정화해 주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 소리. 점점 형태를 들어내는 산 능선들그리고 붉게 밝아오는 동쪽 하늘.. 조용히 앉아서 그 쪽을 응시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굽이굽이 펼쳐진 산능선들과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와 밝아오는 하늘과 신선한 바람과 하나되는 나그네.

 

한사람이 천왕봉에 앉아있고, 지리산, 그 지리산을 포함하고 있는 지구, 그리고 태양을 향해 돌고 있는 그 지구위로 점점 태양의 빛들이 확산되어가는 속으로 들어서는 사나이.. 나그네는 조용히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며…… 날마다 일어나는 사소한 일출과 일몰의 즐거움을 만끽해본다. 그 사소함으로 매순간 깨어있기를 …….

 

주변이 조용해 져가고 사람들이 하나 둘 산정을 떠나갈 때 즈음  나그네도 하산을 준비하려고 일어선다 붉은하늘에 눈이 부신 상태로 돌아서는 시야가 흐려진다 그리고 한발을 내 딛는데. 지지할 바위가 없다.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이상하다 왜그러지 하는 생각이 스칠 때쯤 나그네의 가슴팍과 왼쪽 무릎이 바위 모서리에 가서 제대로 찍힌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 숨이 멈추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아주 어릴 적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신이 나서 몰고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넘어져 핸들에 가슴을 찍혔을 때가 떠오른다. 삶의 일편들이 단막으로 스쳐간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영겁의 찰나가 지난 후에 숨이 트이고, 누군가 옆에서 나그네를 부르며 괜찮냐고 묻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그분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아서 그분의 얼굴을 올려보지도 못한 채 나직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분이 챙겨준 카메라를 받아 들고 몸과 마음이 주변을 인식할 때까지 한참을 앉아있는다..그리고는 갑자기 엄청난 오한이 밀려온다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떨려서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다리를 움직여본다 움직일만하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몇 번 뛰어본다 됐다.. 괜찮은 것 같다.. 그 길로 나그네는 산정을 벗어나 내리 달린다. 다리와 가슴의 통증보다 더한 오한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이내 몸은 더워지고 다행히 뼈는 이상이 없는듯하다……. 그렇게 내리면서 더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아마도 통천문을 지나면서 천왕봉을 만나러 간다는 신고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하며. 마음을 위로해 본다..

 

아침을 먹고 파스를 바르고 압박붕대로 동여맨 채 길벗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나그네는 홀로 세석으로 향한다. 향하면서 한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장터목 산장을 돌아본다.. 다시 봅시다 장터목이여 다시 봅시다 천왕봉이여……

 

다시 연하봉과  삼신봉을 넘어 촛대봉으로 오른다. 장터목으로 향할 때 못한 정나눔을 위해 촛대봉에 올라 물 한모금 마시고 노고단과 천왕봉을 그리고 걸어온 능선길을 쭉 훑어본다 또 그렇게 이 길을 걸었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언제나 그러하기를……….

 

대성골로 내리는 길은 초행이다  그래서 즐겁다.. 언제나 새로움과의 만남은 나그네를 설레게 한다.. 선비샘에서 장터목까지 동행했던 길벗이 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쉬운길로 하산하길 권한걸 거부하고 대성골로 왔다. 어제 나그네가 젊은 친구에게 권했던 하산 권유가 생각나서 잠시 웃다가. 대성골을 거쳐 의신으로 내린다..

 

다리가 힘들어 몇 번을 쉬고 산장외에서는 피지 않던 담배도 몇 대 물어본다……. 의신으로 내리니 2시 20분………다리는 퉁퉁 붓고 몸은 극도로 피곤하다

 

그런데 쌍계사행 차가 두시간 후에나 온단다. 그러면서 가게의 아줌마는 나그네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염없이 걷다 보면 나올 거라는 농짓거리를 한다.. 화가 날만도 한데 나그네는 그냥 한번 웃고 도로를 걷는다.. 나그네의 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어줍잖은 생각을 해 보면서……

 

한시간 가량 걸어 신흥에 도착했는데.. 차가 금방 떠났단다. 어디까지 일까.. 이번 산행의 불운은. 그래도 이상하게 화가 안 난다.. 산이 준 선물일까..

 

마음 편하게 히치를 한다.. 절에 갔다 오던 봉고차가 서주고 쌍계사까지 편하게 이동한다 태워주신 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그러 그러하게 숙소를 정하고 샤워를 하고 계곡물소리 들으면 동동주에 파전에 제첩국까지 배부르게 먹고그대로 쓰러져 아주 깊고도 편한 잠을 잔다……..

 

 

다섯째날

 

아침 일찍 일어나 쌍계사를 보고 불일폭포까지만 갔다 오려는 계획은, 아침에 터질 듯 부어오른 무릎의 통증으로 포기한다……..쌍계사를 떠나면서 아쉬움에 한번 돌아보고는 다시 올 것을 기약해 보며, 진주를 거쳐 충주까지 7시간 걸려 돌아온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을 새삼 느끼게 되는 산행이었습니다...

화엄사, 쌍계사에서 평소보다 싸고 좋은 민박집을 얻은 행운..

뱀사골에서 좋은 길벗들과의 즐거운 술자리.

뱀사골 산장의 지나친 코골이와 그 덕분에 얻은 수많은 별들과의 조우..

연하천 산장지기와 광야형님을 끈으로 해서 나눈 즐거운 인연

벽소령에서 분실한 장갑

장터목에서의 시계도난

장터목 관리인의 불친절

장터목에서 밥지을 때 바람막이를 빌려준 분의 친절

천왕봉에서의 여명과의 만남과 흐려진 날씨로 인해 제대로 보지 못한 일출

천왕봉에서의 사고와 어느분의 친절

대성골과의 새로운 만남과 오랜만에 느낀 과도한 고통

의신 가게방 아줌마의 냉소섞인 농짓거리와 차를 태워주신 고마운 분들의 친절……..

 

지금도 퉁퉁 부어 오른 다리를 보며 미소를 흘릴 수 있는 건. 무사하게 이 모든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지리산과 고마웠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그네를 기분 나쁘게 했던 분들이나, 도움으로 즐거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보며.더불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행복을 같이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