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산 추월산에서

 


 

-일시: 2008.11.9 

-어디를: 추월산에서 

-누구와: 나 홀로

 

 

 

가사문학의 산실인 내 고향 담양

벼슬에 물러난 선비들이 낙향해서 山紫水麗(산자수려)한 곳에 누정(樓亭)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을 양성했던 곳 潭陽(담양)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대쪽같이 맞섰던 선비정신은 그 대나무의 기개만큼이나 곧았다.

모처럼 오늘은 고향을 찾아 삼백오십 리 전남의 영산강을 잉태한 추월산과 담양호를 찾았다

 

 

 

 

수십 번의 핸들조작을 일으키며 담양호를 비켜갈 때 

주변의 아름다운 가을 색감에 탄성을 지르며 추월산 진입로에 닿는다.

빽빽이 들어찬 소나무들이 나를 반겨 맞아주었다.

옛날과는 아주 판이하게 잘 조성된 소나무 숲 공원이었다.

진한 솔 향 내음에 취하고 싶어 이곳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그 향기를 가슴 깊이 흠뻑 마시며 음미하고 있었다.


 


사실

내 고향의 산 추월산과는 그렇게 많은 인연을 안고 있었는데도 쉽게 찾지 못함은

그 만큼 고향을 등한시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릴 적 항상 추월산만 바라보고 자랐으며

이 세상에서 추월산이 최고의 산 인줄 알았다.

그런 고향의 산을 지금 최근 들어 자주 찾고 있다.

오늘도 늦은 시간인데 그래도 적당하게 반겨줄 고향의 산 추월산을 찾는다.

모든 사람들이 내려 올 시간 나는 일부러 조용히 산을 찾는다.


 


이왕 늦은 시간 제2등산로를 향해 올라야 조망을 볼 수 있어 좌측 등로를 따른다.

최근 가을 가뭄으로 인하여 발걸음 내디딜 때마다 흙먼지 풀풀 날리고

자칫 잘못 디뎠다가 부스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메마른 등로는 준비 없이 나선

자신에게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나선 자신이 어쩌면 추월산을 얕잡았음을 비웃음으로 전하는 메시지다

그러나 몇 고도를 올리자 마자 심한 땀 내음을 풍긴다.

그 땀 내음의 대가는 분명 달랐다.

바로 앞에 펼쳐지는 담양호의 푸르름과 어울리는 가을 색의 향연은 대단했다.

 




많은 산 객들은 부지런히도 내려오고 있건만 

자신은 여유만만 볼 것 다 보며 찍을 것 다 찍고 마음에도 담아 본다.

몇 번의 된비알을 끝내고 고도 650 암 봉에 올랐다

암 봉 한 켠에 피어있는 억새는 저녁노을에도 흔들리고 있었고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을수록 더 흔들린다는 억새는 아마도 우리네 인생사처럼

내가 살아 있으니까 흔들린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자신의 중심을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微物(미물)인 중생에게 보여준 깨우침이 다시 내 마음을 흔든다.





오늘이 여든여덟의 노모 생신이다.

어머님의 사랑을 무엇에 비하랴마는 

변치 않은 그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으시니

반 백 년이 지난 자신에게도 언제나처럼 당신에게는 비록 어린아이로 보였던 모양이다.

사랑을 받는 사람만이 사랑을 나누어줄 줄도 안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받는 사랑에 익숙해진 나에게 자꾸자꾸 퍼주기만 하는 사랑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

그 사랑을 전수받은 나는 과연 내 자식과 또 다른 이웃에게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가 하는

진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던 지난밤의 모정을 생각 해 본다.





능선을 타고 걷는 것만큼 기분 좋은 걸음이 또 있을까?

아스라히 펼쳐지는 서쪽 하늘의 지는 태양아래 반사되는 굴절의 스펙트럼 

눈으로 또는 육감으로 더듬다가 가을이 온몸에 스멀스멀 기어 오를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을 노래한다.

오 메~ 가을 추월산





석양빛에 빛나는 가을 추월산 단풍아래 펼쳐진 저 아래 나의 초등학교 모교가 보인다.

어린 시절 세상의 전부였던 나의 모교,

어쩌다 한번쯤 무슨 행사 때면 찾았던 모교

어린 시절 세상의 전부였던 나의 모교 용면 국민학교

그 동안의 세월이 무정하게 지나쳐버린 나의 매정함이 새삼 후회스럽기만 하다

옛날의 그 모습은 사라져 없어졌지만 어머니의 품 속 같았던 낙엽 쌓인 모교도 찾아 보았지

전교 학생들이 400여명에 육박했던 그 시절,

지금은 고작 전교학생이 30여명에 불과 하다는 여교사의 말씀에 아연 실색하고 말았다.





 

이미 음지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려가야 할 아쉬운 시간이다.

단풍은 이미 이곳 보리암 사찰을 지나고 없었지만 지나칠 수 없는 곳

간간히 비켜 서 있는 고목에 멋 들어진 노란 단풍은 나에게 무언의 의미를 남긴다.

새봄을 준비하고 여름내 내 푸르름을 간직하면서 우리에게 그늘의 고마움을 느꼈던 나무

이제 내어줄 것 다 내어주는 나무는 넉넉한 가을을 맞이하여 다시 자기를 비우고

자기의 공을 내세우지도 않고,

소유와 집착에도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무언으로 나를 일깨워준 추월산의 가을단풍은 잘 가라고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좋은 작품 찍으셨어요

작품은 무슨 작품입니까

홀로 사색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비구니 두 분께서 부탁을 하신다.

가뭄에 이곳에 물이 없어 군헬기로 지원한 물통 15개를 저수조탱크에 올리는 부탁을 한다

아무리 늦어도 흔쾌히 승낙을 하고 뒤 돌아서는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2개의 두유를 권하신다. 그러면서 하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한테 주세요 하면서

어둑한 산길을 내려오면서 하나로 목을 축이면서 

'그래, 또 하나는 누구를 줄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 마음에 갈등을 느끼며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오늘도 수많은 사연과 역사를 안고

추월산과 담양호는 말없이 대해를 향해 영원히 흐르고 있다.

고향을 떠나 살아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는

추월산과 담양호의 모습이 생생하여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산천이 변하지 않은 만큼 내 자신도 너를 사랑하며 또 다시 너를 찾으리라

 

2008. 11.13

청산의 바람흔적은 내 고향 담양에서

 

 http://blog.daum.net/jeon8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