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의 주인은 신갈나무일지 모릅니다. 그만큼 오대산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해발 700m 이상의 고산지대 대부분은 신갈나무 군락이 우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갈나무는 참나무 중에서 고산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종입니다. 우리가 흔히 참나무나 도토리나무를 애기하지만 실제 참나무라는 개별 종은 없고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를 통칭하는 말일뿐입니다. 우리말에서 ‘참’이란 표현이 최상의 긍정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들 참나무들은 사람이나 야생동물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로봉의 신갈나무숲


예로부터 도토리는 서민들의 귀한 식량이었지만 먹을 게 풍족해진 지금도 도토리는 많은 이들이 찾는 건강식품입니다. 참나무에서 얻어지는 숯은 또 어떻습니까. 숯은 과거에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의 연료로 애용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선 그 활용도가 연료의 차원을 넘어 전방위에 걸치고 있습니다. 탈취제을 비롯한 벽지나 장식재, 화분재로 널리 활용되고 최근에는 건강식품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양주나 포도주의 숙성에 쓰이는 오크통이란 것도 서양산 참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물을 맑히는 데도 숯은 최고의 기능재입니다. 간장을 담글때 숯 몇조각 넣는 풍습은 그 작은 실례지요.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 주변에도 다량의 숯이 묻혀있다고 합니다. 숯이 갖는 정화의 기능을 옛 선인들은 잘 알고 있던 겁니다.

 

참나무숯의 기공

 

숯의 활용성은 숯이 가지는 놀라운 기공성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 숯 자체에 미세한 구멍이 많다는 것인데 이 구멍으로 미세한 물질을 흡수 흡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미세한 세균이나 VOCs(휘발성유기화합물)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유기화학물질과 대기오염물질들, 악취 유발 물질과 중금속과 같은 독성물 등 거의 모든 물질이 해당됩니다.

  

앞서 참나무로 만든 숯의 효능에 대해 언급했지만 무엇보다 참나무의 가치는 생태계에서 기능하는 참나무의 역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숲의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데 참나무는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도토리는 물론 그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산 식구들의 귀중한 먹거리입니다. 겨울을 앞둔 산에서 도토리는 산의 동물들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먹이입니다. 참나무가 제공하는 또 다른 먹거리로 수액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참나무 수액은 곤충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참나무에서 분비되는 수액은 자양분과 무기물이 풍부하여 곤충들에게 최고의 인기입니다. 수액이 분비되는 곳을 차지하기 위해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말벌 등이 서로 엉켜 자리다툼을 하는 광경은 숲에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참나무 한그루가 먹여살리는 동물이 최대 50여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비탈에 선 신갈나무


 

참나무의 가치는 숲의 관리 측면에서도 고려할 여지가 많습니다. 소나무와 같은  단순 침엽수림으로 조성된 숲은 특성상 산불에 취약하고 뿌리가 얕아 산사태가 나기 쉽습니다. 지난 90년대 이래 10여년 이상 강원도 영동권의 산야를 초토화한 산불은 거의 대부분 소나무 단순림으로 이루어진 이 지방의 산림특성에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소나무 단순림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종으로 우리 산야에 흔한 참나무는 유용한 대안입니다.

 

참나무 숲은 불에 강하고 뿌리의 강한 활착력은 경사가 심한 사면에서도 안정된 숲을 형성하여 비탈면을 굳건히 지탱해줍니다. 산불로 초토화된 산의 봄날 검게 타들어간 나무 밑동에서 터져 나오는 맹아는 이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산불로 헐벗은 산의 복원으로 소나무와 참나무로 구성된 혼합림이 흔히 거론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과거 오대산에서도 큰불이 있었다고 그럽니다. 노인봉에서 소황병산에 이르는 산등성이가 넓게 타들었습니다. 그 흔적인지 이 지역에선 전나무, 분비나무같은 침엽수림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숲은 비슷한 굵기의 맹아 줄기 여러가닥으로 형성된 나무들로 가득합니다. 신갈나무, 물푸레, 거제수 등의 활엽수가 산불로 폐허가 된 산을 다시금 일으켜 세운 흔적입니다.

      겨우살이 채취로 잘려진 신갈나무


신갈나무의 수난을 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6년 말에 한 방송사의 9시뉴스에 겨울살이에 항암 성분이 있다는 기사가 나온적이 있습니다. 방송후 오대산은 겨울살이를 채취하려는 약초꾼들로 몸살을 앓아야했습니다. 겨우살이가 기생하는 식물로 신갈나무가 표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한약재로 겨울살이가 사용된 것을 생각하면 이런 광풍은 분명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창창한 신갈나무들이 겨울살이를 노리는 꾼들의 손길아래 잘려나갔습니다. 높은 가지에 걸려있는 겨울살이를 따려고 나무를 벤것입니다.

          국립공원내 불법 채취 겨우살이


  깊은 눈속에서 언제 다시 잎을 틔울까 싶은 나무도 시절이 도래하면 피어나는 것이 자연입니다. 인간의 무지와 탐욕이 아니라면, 언제든 푸르른 세상을 이끌어 나갈 주인이 자연임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자연을 다루는 방식이 어떠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희성 시인의 ‘숲’ 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상왕봉의 신갈나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