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124군 부대 남파공작원 [김신조] 침투루트 비학산을 찿아서

 

 

 

  

 

 

비학산 정상엔 정상석이 없이 군용 벙커 환기구가 정상비 대역을 하고 있네요

 

 

비학산(450m)

 

飛鶴山(450m)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법원리 북동쪽에 초리골에 자리한 산이다. 한북정맥 상의 한강봉(530m)에서 북쪽 감악산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이 약 10km 거리인 노고산(401m)을 지나자마자 북서쪽으로 또 가지를 쳐서 약 4.0km 거리에 이르러 빚어 놓은 산이며 그 형상은 山 이름처럼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飛鶴山"이라 한다고 한다.
  
飛鶴山은 지난 '68년 1.21 사태 때 무장간첩 김신조 일당의 침투로 이였으며 이후로도 임진강과 법원리에서 10여 건의 무장간첩 침투사건이 발생한 초리골을 에워싸고 있는 산인데, 작년 파주시가 파격적으로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초리골 일원에 산림욕장을 개설하며 등산로와 진입로를 개방해 최근에야 알려진 산이다.
  
飛鶴山 일원은 오랫동안 일반인들 접근이 쉽지 않았던 관계로 산자락 곳곳에 야생화, 야생버섯, 산나물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맑은 계곡에서는 도룡뇽과 가재가 보이고 산자락에는 산토끼, 노루, 오소리 등  포유동물을 비롯해서 가까운 휴전선에서 볼 수 있는 독수리와 각종 산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한다.

  

비학산 산행코스


풀코스 : 초계탕들머리~ 암산~김신조언덕~은광 ~대피소~ 비학산~대피소~장군바위~매바위~근린공원(승잠
             원) 소요시간 4시간 정도
두루메박물관 : 솟대만드는집~김신조언덕~은광~대피소~비학산~장군바위~초
리연. 소요시간 3
 시간 정도
문터골 : 삼거리~은광~대피소~비학산~대피소~장군바위~저수지소요시간 2시
간.
 

  산행일시  : 2006년 7월 16 일 (일요일)

  산  행 지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초리골 비학산(450m)

   산행코스 : 초리골 안내석- 승잠원- 초계탕 - 목교 - 팔각정- 알바 - 팔각정- 김신조 언덕 -

                        무장공비 숙영지 윗길- 은굴- 제1하산코스- 395봉- 대피소- 비학산- 대피소- 장

                        군바위 전망대- 우회로- 제2하산코스- 매바위- 제3하산코스갈림길- 근린공  절

                        개산단- 제3 하산코스갈림길- 제3 하산코스하산길- 승잠원- 초리골 안내석

   산행인원 : 2명(비엠떠블유님, 나)

  산행시간 : 5시간 30분

  

 

산행기

 

오늘도 비가 억수같이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듯 퍼 붓고 있다. 그런데 벌써 내가 늘 몇 년간 일요산행을 하다 수요 산행으로 날자를 변경하여 산행을 한지도 어언 2년여가 다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7월 16일은 아주 모처럼 나에게는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 글을 쓰며 정말 쉽지 않게 서로 댓글을 주고 받으면서 알게된 "비엠떠블유님"이 나의 고향 파주 출신이라는것을 알게 되었고 그후 우리들은 늘 선배님 후배님 하면서 각별하게 지냈던 사이인데 ...

 

그러다 무슨 말 끝에 우리 언제 한번 만나 우리의 고향 파주의 비학산과 파평산 산행을 함께 하자고 약속을 했지요 아마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 대부분은 비학산이 어디에 있는 산인가 의아해 하실것이지요 비학산은 1968년 1월 21일 북한군 124군 부대 일당 31명이 청아대를 기습하기 위하여 남하한 침투루트 중 비학산에 은신하고 있다 이곳 마을 초릿골 주민에게 발견 신고 되어 그들의 침투 계획이 알려져 결국은 청아대 뒷산 인왕산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끝에 김신조는 생포 자수 하였고 대부분의 침투조원들은 사살이 된채 미수로 끝난 역사적인 사건에 중심에 있는 산이 바로 비학산이다

 

그런데 마침 전국적으로 계속되는 장맛비가 토요일도 하루종일 내리더니 저녁이 되고 부터 이제는 마치 하늘이 뚫어진듯 폭우가 쏟아붓고 있다 설마 낼 아침에는 비가 소강 상태을 보이던지 아니면 그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토요일밤 잠이들어 일요일 아침 일어나 베렌다 문을 열고 확인을 하니 세상에 어제 저녁의 그 굵은 빗줄기 그 상태로 지속하여 내리고 있으니 과연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을까? 그런데  비엠떠블유님과는 9시 30분에 의정부 북부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여 두었는데 이눔의 노릇을 어케 해야 할지요  

 

아침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마음이 다급해 지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그런 내 눈치를 살핀 도영이 할마이 여보! 오늘은 제발이지 산행은 하루 참아요 하고 위압적인  마치 내 가슴을 억누르는듯한 말투로 주문을 한다 근데 정말 내가 아무리 산을 좋아 한다고 하여도  이런 산황에서 배낭을 메고 나선다는것은 반 미치광이가 아니면 정말 이해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도영이 할마이 앞에서 비엠떠블유님에게 전화를 하지요

 

후배님 이렇게 심하게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산행이 쉽지 않겠네요 하고 그랬더니 후배님 선배님 그럼 다음에 하시지요 하기에 내가 다시 사무실에 가서 전화를 하겠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으니 일단 도영이 할마이는 내가 산에를 안가는것으로 안심을 하네요 그러니까 곁에 있던 손자넘 도영이 할아버지 멋쟁이 하면서 뽀뽀 세례를 해주는것을  뒤로 하며 집을 나와 사무실에 들려 다시 비엠떠블유님께 전화를 하지요

 

쉽지 않은 약속인데 산행을 못하면 만나서 점심이라도 먹으며 인사나 나누자고 그랬더니 후배님도 찬성을 하여 비엠떠블유님은 산본에서 나는 부평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의정부 북부역에서 10시에 반갑게 만나지요 그 전에 나는 도영이 할마이와 아들들에게 멧시지를 보냈지요 "미안 의정부에서 후배님 만나 점심이나 먹고 올께"하고서 그리고 의정부 북부역에 도착을 하니 처음만난  비엠떠블유님 이미 산행을 할 생각으로 우중 산행 복장을 하고 날 기다리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어케 비가 온다고 산행은 그만두고 점심이나 먹고 헤어지잖 말을 할 수 있나요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나도 우중산행 복장으로 변장을 하고 우리들은 의정부에서 32번 금촌행 버스를 타고 달려 가다가 초리골 (도서관)앞에 하차를 하지요 그런데 왜 이날 따라 산행을 나서는 기분이 왜 그리도 착찹 한지요? 아무래도 농민의 자식 그 근본의 한계를 넘기가 쉽지 않은듯 하네요 아침에 일찍이 파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들 몇 곳에 전화 안부를 했지요 수해는 없느냐고요 그랬더니 다행이도 모두들 수해는 없다고 하여 막상 산행을 생각하고 목적지에 도착을 하였는데...

 

불현듯 옛날 농촌시절 정말 그 시절에는 왜 그리도 가믐이 오랬동안 지속이 되곤 했는지 ... 몇 개월 가믐끝에 혹시 귀한 비가 내리면 그때 우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차마 우산을 바치지 못하고 그 비를 그대로 맞곤 했지요 너무나 오랫만에 소중하게 고맙게 내리는 비를 우산을 쓰면 마치 거부를 하는듯한 죄송한 마음이 함께 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시절 우리 농민들은 비가 오랜 가믐끝에 내리면 함부로 비가 온다고 하지 못하고 비가 오신다 내리신다 고 늘 하늘을 존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어요

 

그랬던 농민의 자식인 내가 아무리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고 하여도 전국이 장맛비로 난리를 치고 있는데 마치 강건너 불 보듯 하는 심정으로 산행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에 우리는 둘이서 모두 미안함을 이야기 하지요 그러나 이미  우리들의 마음은 산으로 가고 있으면서 그거이 무슨 소용이 있는 일인가요 아마도 말 따로 행동 따로 생각 따로 마치 따로 국밥으로 노는 형상이지요 그나 저나 이미 우리들은 그 먼길을 달려 이곳 김신조 때문에 전국에 알려진 비학산 기슭에 도착하여 있는데 기왕지사 왔으니 즐산하고 가야지요

 

 

들머리 구간을 가는길에 만난 승잠원

 

 

초릿골이라는 음식점 마당을 들어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머리 구간이 나타나지요

 

 

어제부터 내리 비로 인하여 계곡물은 황톳물이되어 거세게 흐르고 있네요

 

 

통나무다리를 건너서...

 

 

우리들은 이날 산행의 들머리 구간을 들어서지요 그런데 첫 발을 시작하자 마자 목계단길

에는 마치 우리들에게 겁이라도 주려는듯 등로에 세찬 물줄기가 내려쏫아져 흐르고 있네요

 

 

암산 정상을 향하여

 

 

너덜 구간도 지나며 힘겹게 치고 오르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드디어 팔각정이 나타나고 ... 

 

 

사발팔방을 휘둘러 보아도 세상은 모두다 희뿌연 안개와 세차게 내리는 빗

속에 조망이 제로 상태여서 우리들은 가야할 등산로를 찿기가 쉽지 않네요

 

 

처음만난 고향 후배 비엠떠블유님

 

만나던 즉시 나는 어떻게 우명길님에서 닉을 비엠떠블유로 바꾸신 사연을 물었지요? 나는 속으로 늘 아마도 자동차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구나 생각을 하였는데 비엠떠블유님의 답변은 책(Book)을 좋아하고 산(Mountain)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닉에 그리 깊은 뜻이 숨어 있는줄도 모르고 ...으이그! 나에 무식이 탄로나는 순간이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후배님은 지금도 산행이 없는 날이면 늘 하루종일 책과 씨름을 하며 사는 5학년9반 생이다 그럼에도 불구 눌 학문을 탐구 하며 살고 있는 그의 모습에 더욱 호감이 가네요

 

정말 부러운 후배를 만나게 된것이 얼마나 자랑 스러운지 모르지요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부귀영화 희망 목표를 나름대로 달성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요 우린 그런 사람들을 성공을 한 사람이라고 대부분 부르지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내 속으로 난 내 자식이 그럴듯한 학교를 보내 졸업을 시키고 당당한 직장을 잡고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성공이라 생각을 하는데 이날 내가 처음으로 만난 비엠떠블유 후배님은 그 모든 구색을 가추신 분이니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요

 

그러나 사람살아가는 세상살이 이야기속에는 사람마다  한 가지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는것 만도 아니지요 우리 둘이는 처음만난 사이이면서도 어쩌면 수십년지기 처럼 그렇게 친숙하게 비가 억수같이 질퍽거리고 내리는 상황에서도 우리들의 사람사는 이야기는 두런 두런 끝일줄 모르며 산행이 이어지고 있다 때론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도 나누고 또한 기쁨을 이야기도 하면서 ...

 

 

 

 

그러다 보니 얼마나 진행을 하였을까요?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희미한 등로가 없어지고 급경사로 이어지는 원시림같은 나무들 사이에는 중간중간에 등로도 없는데 꼬리표 리본이 붙어 있기에 아마도 험준하게 등로를 찿아가는 표시거니 생각을 하며 내려 가는데 몇일간 내린 호우로 인하여 비탈진 산에 흙이 미끄러져 내리면서 엉덩방아를 두어번이나 찧다보니 등산복장이 완전히 현역시절 비오는날 각개전투 훈련을 할때의 그 복장과 다름이 없네요

 

얼마를 내려갔을까? 아무래도 이상하네요 저 아래에 범람하는 개천이 흐르고 우리들이 가야할 진행 방향은 오리 무중이고 진퇴양난에 놓여 있는데 몇달전 백두대간 산행을 끝내고 지금은 한북정맥도 거의 다 마무리 구간 진행을 하시는 비엠떠블유 후배님 왈 선배님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도호 다시 팔각정까지 돌아가 그곳에서 나침판과 지도를 보고 진행을 하자고 지금까지 40여분간이나 진행한 구간을 아깝게 돌아가자 하네요

 

나는 속으로 그동안 이 악천후속에 진행한 난 코스 구간을 도로 간다는것이 너무 아쉬워 능선위에 올라 후배님 저리로 가는것이 맞는것 같은데 하면서 그쪽 방향으로 가기를 은근히 기대 하면서 이야기기를 하여 보지만 후배님 더 이상은 나의 이야기를 간과 하면서 결국은 다시 팔각정으로 돌아오고 말았지요 어영부영 50여분 우중속 알바를 하게 되었지요

 

팔각정에서 지도와 나침판을 보며 확인을 하니 세상에 바로 옆에 설치된 나무계단이 있는데 우리들은 그곳을 처음보고 광망을 하는 관망대로 보았지요 그렇게 시야가 일체 보이지를 않았어요 내친김에 우리들은 엎어진김에 쉬었다 간다고 배낭에서 막걸리 한 병을 둘이서 게눈 감치듯 나누어 마시고 이제는 아주 널널하게 훤하게 뚫린 등로를 따라 산행이 계속되지요

 

 

김신조 언덕 오름길

 

 

 

 

 

 

 

 

김신조 간첩일당 청와대 피습사건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하였던 사건.
 
경과
게릴라전 특수훈련을 받은 31명은 그해 1월 13일 북한군 정찰국장 김정태로부터 청와대 습 격에 관한 구체적인 작전지시를 받고 18일 자정을 기하여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돌파하였다. 서부전선의 미군담당 군사지역에 잠입하여 하룻밤을 숙영, 19일 밤 8시 30분경 결빙된 임진 강의 얼음판을 횡단, 경기도 파주군 법원리의 비학산에서 2일째 숙영을 한다음, 20일 앵무봉 을 통과하여 비봉·승가사로 이어지는 산악길을 타고 이날 밤 10시 서울시내 세검동파출소 관할 자하문초소에 이르렀다.
 
자하문초소에서 경찰관의 첫 검문을 받게 되자, 일당은 "방첩 대원들이다.", "신분증은 볼 필요가 없다.", "우리부대로 가자," 등의 위협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계속 행진하였다. 약 400여m를 더 행진하였을 무렵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찰병력과 첫 접전이 벌어졌다. 게릴라들이 먼저 자동소총을 쏘며 수류탄을 투척하였다. 현장을 지휘하 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경찰관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부터 게릴라들은 현장을 지나가는 버스 안에 수류탄 1발을 투척, 승객에게 부상을 입히 는가 하면 자동소총에 실탄과 수류탄을 몸에 지니고 뿔뿔이 흩어져 온갖만행을 저질렀다. 서대문구 홍제동 민가에서는 한 시민이 게릴라와 격투를 벌이다가 총격으로 사망하는 등 이 날 밤 민간인 5명이 살해되었다. 군경합동 수색진은 일당 중의 김신조를 발견, 생포하는 한 편, 이들에 대한 소탕에서 그날밤 게릴라 5명을 사살한 데 이어, 경기도 일원에 걸쳐 군경 합동수색전을 전개, 31일까지 28명을 사살하였다. 나머지 2명은 도주한 것으로 간주되어 작 전은 종료되었다.
 
이들이 장비한 습격용 무기는 기관단총(PPS) 31정(1인당 1정씩 휴대), 실탄 9,300발(1인당 300발씩 휴대), TT권총 31정(전원 휴대), 대전차용 수류탄 252발(1인당 8발씩 휴대), 방어용 수류탄 252발(1인당 8발씩 휴대), 단도 31정(전원 휴대)이었다.
 
이들의 치밀한 작전 계획을 살펴 보면
(1) 습격시간은 밤 8시이며 당일로 복귀한다. 습격소요시간은 3∼4분 간이며 증원군의 추격을 받지
     않도록 한다.
(2) 습격 전날 북악산 부근에 숙영하여 청와대를 관측, 정찰한다.
(3) 전원 사복으로 갈아 입고 취객을 가장하여 접근, 유격대원끼리 시비를 걸다가 기회를 포 착, 청
     와대 초소를 기습한다.
(4) 제1조는 청와대 2층을 기습, 기관단총으로 무차별사격하여 인원을 살상하고 수류탄을 투 척한
     다. 제 2조는 청사 1층, 제3조는 경호실, 제4조는 비서실, 제5조는 정문보초 및 기타 보초 등을
     맡아 살상, 파괴한다. 운전조는 차량을 탈취하여 탈출준비를 완료한다.
(5) 습격이 끝나는 즉시 분승하여 문산 방면으로 도주, 그날로 복귀한다.
 
#.만약 북한군 124군 부대 남침기습 사건이 초리골 주민의 신고가 없었다면 과연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이 어떻게 전개개 되었을지?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네요 우리 파주 사람들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를 하고 살아야 했던 우리들은 당시 상황으로는 학교에서 늘 반공에 대한 교육을 받았으며 간첩 신고는 의무이다 시피 했지요
 
당시 초리골에 사는 우씨형제가 비학산으로 나무를 하러 올라갔는데 우씨 형제를 124군 부대 대원들중 우씨성을 가진 사람이 지형 정찰을 나갔다 마주쳐 형제를 붙잡아 데리고 와 이들의 교육받은 대로라면 당연히 우씨 형제를 사살 매장을 하여야 했으나 꽁꽁언땅을 파고 묻는것이 용이 롭지 못하고 대원들중 다수가 그냥 살려 보내자는 의견이 우세하여 우씨 형제에게 엄포를 하여 살려 보냈는데 우씨 형제는 그들의 위협적인 엄포가 있었음에도 불구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여 이를 계기로 우리군경에 비상이 발동되고 결국은 청아대 인근에서 공방전 끝에 상황이 끝내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우씨 형제들의 투철한 반공 정신에 박수를 보내지요

 

 

무장공비 숙영지가 화살표 방향으로 120m 진행을 하면 있다 하였기에 가면서 꼭 이곳은 돌아보고 가리라 생각을 하고 우리들은 또 옛날 이야기 고향 이야기 어려서 자랄때 이야기를 하면서 비가 오던 말던 아랑곳 하지 않고 둘이서 그렇게 두런두런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며 가다 보니 으메 얼마를 지났을까요 그때서야 무장공비 숙영지 생각이나 돌아보니 우리들은 이미 너무나 먼길을 진행을 하였기에 아쉬움을 토로 하며 그냥 갈길을 가야 했지요

 

그러면서 아쉬움이 남네요 기왕지사 파주시에서 이곳 비학산을 안보 산행지 차원에서 조성을 하였으면 최종적으로 무장공비 숙영지 근처(숙영지는 능선에서 아래 은밀한곳)에 있을것이기에 그곳에 이정목 하나 더 세워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비학산에 오기전 이미 몇분의 산행기를 참고 하여도 김신조 일당이 은거를 하였던 장소는 우리들처럼 대부분 그냥 통과를 하셨더라구요

 

 

은굴따라 목 계단길

 

 

은굴은 1900년도 초반 일제강금기때 은을 채광 하였던 곳으로 굴의 길이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명주실 한타래 정도의 긴 굴로 추정하고 있으며 채광중 붕괴사고로 인하여 수십명의 인명패해가 발생 하였다고 함. 그후 다시 1960년 은 채취를 하였다가 폐광이 되었으며 빈번한 간첩의 침투로 인하여 군부대에서 굴 입구를 콘크리드로 봉하여 지금까지 오고 있음

 

 

은굴

 

우중 산행때 디카 안전 사용방법

 

지난 수요일 세찬 비 바람에 디카 고생을 얼마나 시켰던지요 이번에는 아예 산행 떠나기 전에 우천시 산행때 디카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를 해 보지요 물론 완전 방수용 디카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임시변통으로 은행에서 사용하는 동전 봉투지에 디카를 넣고 줌이 들락 거릴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주고 비닐봉지 봉투입구 압착식을 눌러 밀페를 시킨후 너덜대는 부분은 고무밴드로 고정을 시키고 작동을 시켜 보니 아주 훌륭한 방수 디카가 출현을 하였지요

 

여기에 동전 봉지 하나를 더 소지하고 다니며 촬영후 혹 줌 구멍 방향으로 습기 들어 가는것을 방지 하기 위하여 사진 촬영후 공간이 있을때는 또 한개의 봉지를 덧 씌우니 아무리 세찬 비가 내려도 줌을 하늘로 향하여 사진을 찍지 않는한 우중산행에 사진 촬영은 전혀 문제가 없드라구요 ㅋㅋㅋ 물 묻은 손으로 아무리 디카를 만져도 전혀 까딱이없네요 이렇게 해서 올 여름 우중 산행에 비로인한 디카 보호방안을 연구를 하였으니 만사가 OK라는 생각을 하지요 일단 내가 세찬 장대비속에 하루종일 실험을 하였으니 더 이상의 검증은 필요가 없어요 이글 보시는 산님들 꼭 한번 실험삼아 이용하여 보세요

 

 

은굴을 지난 우리들은 이제부터 등로가 마치 사람이 다니지 않은것

처럼 잡초가 우거진 숲을 헤치고 장군바위 방향으로 가고 있지요

 

 

 

 

 

 

 

 

 

 

 

 

그렇게 비가 쏫아지는 와중에도 늘 손에는 지도와 산행 자료를

손에들고 산행을 하시는 후배님을 보며 난 많은것을 배우게 되지요

 

 

대피소 이곳 대피소는 뜻 밖에도 오늘처럼 비가 오는날 또는 눈 보라 몰아치는 날 이곳에 찿아 들면 정말 말 그대로 대피소 역활이 안성 마춤이라 느껴 질 정도로 나름대로 깨끗하게 잘 관리가 되어 있었어요 우리들은 이곳에서 김밥이랑 떡이랑 배낭에 넣어온 과일로 점심을 먹게 되지요

 

 

식사후 우리들은 다시 이정목에서 장군바위 구간을 향하여 한 바탕 경사로 이어지는 등로를 힘들여 따라 가지요 하지만 원체 비가 하루종일 내리고 있으니 땀이 나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종일 풀섶을 헤치며 등로를 찿고 확인을 하며 가고 있지요 능선을 넘어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제법 넓다란 고갯길이 나오는데 ... 이곳에 군사 작전용 삼각점 표시같은것이 있어

 

그렇치 않아도 비학산 가는 이정표나 표시가 없어 궁금해 하며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 자칫 잘못하면  이곳 삼각점이 비학산이 아닌가 하고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오늘같이 비가 많이 내리고 시야가 흐린날은 많이 할것 같네요 아마도 비 산악인 들인 파주시 행정 산림 담당 책임자들의 졸속 행정 발상이 너무도 아쉽네요 정작 가장 중요한 비학산 이정표 랑 비학산 정상석을 빼먹고 무슨 비학산을 안보 등산로로 조성을 하였는지 정말 나도 파주 출신으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겠네요

 

 

왼편으로 가면 토끼 울석산으로 가는길이고 오른편으로 가면 황발리로 가는 이정목에서

우리들은 거의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는 풀풒속 등산로 입구방향 이정목을 따라 가고 있지요

 

 

비학산으로 가는길목 구간을 찿아서 ...

 

 

제법 험준한 암릉길도 있었어요 비가 오는날이라 아주 조심조심 암릉구간을 넘어 가지요

 

 

 

 

 

 

 

 

이곳이 비학산 정상이지요 그런데 정상에는 정상비라던가 정상을 알리는 어떠 표식도 하나 없네요 다만 벙커의 환기 구멍 굴뚝이 비학산 정상의 표시를 하고 있네요 그외 많은 산님들이 방문후 남기고간 꼬리표 리본이 비를 머금은체 나무에 걸려 있을뿐이었어요 파주시 관계자님들 기왕지사 비학산을 안보 등사로로 조성하였으면 돈 쓰는김에 몇 푼 더 써 정상비를 하나 세워 두시지요 전국에서 많은 산님들이 찿았다가 전문 산악인들이 아니면 비학산 정상도 알지 못하고 그냥 찜찜한 마음으로 하산 하면서 뭐라 하겠습니까?

 

 

 

 

고향의 비학산을 찿은 기념으로 하루종일 등로에 사람을 볼 수 없어

누가 사진을 찍어 줄 사람도 없어 서로 한 장씩 기념 사진을 찍어 두지요

 

 

 

 

비학산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한 후 우리들은 지금까지 힘들여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대피소까지 와서 이곳에서 다시 장군봉을 향하여 진행을 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대피소에서 비학산 가는 이정목에 비학산 가는 이정표가 없었어요 아마 모르는 사람들 같았으면 대피소 에서 조금 올라가면 봉우리 위에 있는 삼각점을 보고 비학산으로 착각을 일으키기 안성 마춤이네요 우리들은 비학산에서 다시 거의 대피소 인근까지 원점회귀하여 이번에는 정말로 장군바위를 만나러 가지요

  

  

  

  

장군바위 방향으로...

 

 

그런데 이상한것은 전망대 바위 구간을 다 와도 정작 장군 바위가 어느것인지 바위는 보이지 않

고 이날 산행구간중 가장 멋진 풍경으로 이어지는 구간에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을뿐 이었어요

 

 

 

 

어디가 장군바위라는것인지...?

 

 

잠시 조망도 되네요

 

 

 

 

다시 매 바위 방향으로...

 

 

 

 

매바위 등산로를 따라 가보지만

 

 

매바위 등산로 방향으로 ...

 

 

 

 

그러나 역시 또 어디를 가도 매 바위는 보이지 않고 헛걸음질만 하였지요

 

 

근린공원 방향으로 가지요

 

 

묘소도 지나고 ...

 

 

 

 

산행길 내내 이름모를 버섯들이 얼마나 즐비하게 많던지요

 

 

 

 

아무리 찿아 보아도 매바위는 없었어요

 

 

 

 

 

 

 

 

 

 

근린공원능선에서 바라본 법원리 시가 모습

 

 

근린공원 방향으로

 

 

 

 

근린공공원이 조성된 산 봉우리 정상에 올라서니 마침 시야가 트이면서 오전에 우리

들이 들머리 구간으로 들어선 통나무 다리가 있는 마을이 아래에 내려다 보이네요

 

 

 

 

 

 

하늘동산 근린공원

 

 

근린공원이 있는 산 봉우리에서 근린공원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분명이 있을것으로 생각하여 등로를 찿아 보았으나 무성하게 자란 잡목숲이 우리들 발길을 잡네요 그리고 등산로는 보이지를 않고 그러니 또 비엠떠블유 후배님 말씀 선배님 빽을 하시지요 길을 잘 모를땐 빨리 왔던길을 되돌아 그곳에서 길을 다시 찿는것이 빠름니다 하시기에 우리들은 또 그 무성한 풀섶을 헤치고 되돌아

 

 

이정목에 다시 와 보니 시상에 분명히 근린공원 방향으로 하산을 하라고 되어 있는데 근린공원 정상엔 하산로가 없다 아무래도 생각을 하여 보니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탓에 등산로가 무성한 풀섶에 가리웠는지는 몰라도 정말 이상한 이정표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우리들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이곳에서 3코스 하산로 방향으로 하산을 하기로 결심하고 하산을 하지요

 

 

드디어 우리들이 입산할때 보았던 초릿골이라는 음식점이 저 멀리 보이네요

 

 

산행을 처음 시작할때는 승잠원을 우측으로 지나 들머리 구간을 찿아 올라 갔는데 하산을 하는 구간은 승정원을 좌측으로 끼고 이날 산행 날머리 구간으로 나오게 되네요 정말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우리들이 마치 미로찿기 산행을 하다가 뒈돌아 온듯한 착각을 하게 되네요 그토록 시야도 하루종일 가리기도 했지만 많은 비가 주루주룩 내리는 등로를 따라 우리들은 아주 오래된 사이들처럼 두런두런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재미있게 하며 산행을 하였는지...

 

우중 산행이 되어 최대 안전 산행을 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무리한 산행을 금하며 편안한 등산을 하였기에 그런가요? 무려 다섯 시간 반이라는 긴 산행을 하였네요 내 평생 태어나서 이렇게 산행구간 내내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여 보기도 처음이고 모처럼 만난 후배님 그 빗속에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잼나는 산행을 해 보기도 처음이지요 아마도 둘이 고향 사람들이라는 공통 분모속에 빠져들었던 산행길이 아닌가 생각을 하지요

 

 

 

 

 

 

 

 

산행 뒷 이야기 (파주시에 전합니다)

 

아주 모처럼 한국의 산하에서 만난 고향 후배님과의 산행길에 대한 기대를 걸고 우리들은 우리들의 고향산 비학산을 찿았지요 그런데 등로 정비나 시설은 대체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는데...

 

정작 아쉬운것은 무장공비숙영지라는 이정목은 있는데 무장공비숙영지가 등로에서 이탈하여 설치된곳에 대한 안내나 이정목이 없어 이곳을 찿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게 하여 어리둥절 하게 하고 있고 분명히 매바위 이정목을 향하여 진행을 하여도 정작 매바위는 나오지 않고 가장 중요한것은 비학산 등산로에 비학산 가는 이정목도 없고 또한 비학산 정상에는 정상석도 없고, 어디 그뿐인가요 ? 분명히 장군바위 가는 이정목은 있는데 정말 어디에도 장군바위라는 안내판도 장군바위 같은 것도 없다는것 ㅋㅋㅋ 증말 어찌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없는 등산로를 따라서 우리들을 마치 미로 찿기식 고향산 비학산 등산을 마치었지요

 

이런 경우를 비유하여 말 해보면 마친 된장찌게라 해놓고 된장을 안넣고 찌게를 끓여 낸 것과 흡사하고 삼계탕이라 해놓고 삼계닭을 빼고 끓인 삼계탕을 먹은 기분 이네요  알맹이는 누가 모두 다 빼먹고 손님에겐 군 소리리 하지말고 국물이나 퍼질러 마시고 가라는식 접대를 받고 나온 그런 기분이네요 혹시 내가 등로를 이탈하거나 잘못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렇치 않으면 너무나 우거진 칠월의 숲속에 가리워 보지를 못했나요 ㅋㅋㅋ 아마 그렇치는 않은것 같은 느낌이지요

 

왜냐 하면 나는 그렇게 형편없는 산꾼이라 하여도 비엠떠블유 아우님은 대간 정맥을 두루 경험하신 분이고 그 비오는 와중에도 나침판 놓고 지도 펼치고 방향감각 제대로 따라 산행을 하였걸랑요 그러니 한 군데도 아니고 이렇게 여러곳에 알맹이를 빼먹은듯한 등산로를 우리들이 장님이 아닌 이상 어떻게 그렇게 몽조리 빼먹을 수 가 있나요

 

 

우리들은 이곳 법원읍 도서관 입구에서 다시 의정부로 32번 버스를 타고 나와서 비를 맞아 개떨리듯 하는 몸도 달굴겸 의정부 부대찌게 골목에 와 뜨끈한 부대찌게를 끓여 놓고 이슬이에 맥주 몇잔 나누어 마시고 이날 우천 관계로 하지못한 파평산 구간은 다음에 감악산과 함께 연계하여 산행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이날 산하에서 만난 고향 후배님과의 산행을 모두 접고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구로역에서 각자 헤어져 일상으로 돌아 왔지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세상에 전국이 온통 물 난리 소식을 접하고 보니 솔직히 산행기를 올리는것 자체도 조금은 조심 스럽네요 진심으로 전국에서 수해를 만나신 수재민 여러분에게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조속한 시일내 정부와 해당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수해복구에 힘 입어 다시 수재민 여러분들이 활짝 웃을 수 있는 모습으로 돌아 오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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