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춘천 오봉산(소양호 ~ 춘천닭갈비) 산행 가는날[사진]

 

 

 

  

 

 

소양호 나루터에서 본 오봉산

 

 

산행지도 / 한서락님 제공

 

 

오봉산 산행정보

 

기암괴봉과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오봉산(779m)은 옛적에는 경운산으로 불렸다. 지금의 이름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 산은 아기자기한 바위능선과 소양호의 유람선 승선의 재미를 겸할 수 있다.

 

정상에서 남쪽 산자락에는, 고려 광종 24년에 창건한 청평사가 자리잡고 있다. 배후령에서 등산을 시작, 제1봉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가면 기초적인 암벽등반을 요하는 곳도 있고 아찔한 맛이 나는 곳도 있다. 제2, 3, 4봉을 오르내리면 굴참나무로 뒤덮인 제5봉 정상에 도착한다.

 

등산코스 : 제A코스 배후령-오봉산정상-홈통바위-청평사 -구성폭포-선착장 (7km, 3:30) 
                제B코스 배후령-오봉산정상-부용계곡 (7km, 3:30)

                제C코스 청평사선착장-구성폭포-청평사-오봉산정상 -청평사-선착장 (7km, 3:30)


 

교통안내 : 서울에서 46번 국도로 청평 -> 가평 -> 강촌 -> 의암교 또는 신연교 -> 춘천역 -> 소양2

                교-> 양구방면 우회전 -> 천전리 -> 46번 국도 -> 배후령 -> 간척사거리에서 우회전 ->

                청평사유원지    (배후령에서 청평사까지 도로포장이 다 되어있어 이용하기에 편리)


현지교통 : 시외버스 = 춘천-배후령, 06:10-21:00  40분마다 운행
                시내버스 = 춘천시내, 남춘천-소양댐, 10분 간격 운행, 25분 소요
                선      박 = 소양댐-청평사, 09:30-16:30(동절기), 09:00-18:00(하절기)

                                 40분 간격 왕복운행, 10분 소요


 

* 현지사정에 따라 정보가 변경될 수 있으므로 필요한 사항을 사전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소양댐에서 약 10분정도 배를 타고 청평사로 향하면 바로 청평사뒤를 감싸고 있는 기암괴석의 산을 볼 수 있다 원래 옛 이름은 경운산이었고 동국여지승람 이후 오봉산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것이 근래 등산객에 널리 알려지면서 산의 다섯 봉우리(비로봉, 보현봉, 문수봉,관음봉,나한봉)를 칭하는 오봉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등산코스는 배후령에서 5봉을 차례로 등반을 한 후 청평사로 하산하는 코스와 광과지내 야영장 앞에서 정상을 오른다음 청평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청평사 구성폭포,공주탑, 공주굴, 공주탕, 연리목 등이 있어 많은 관광객을 유혹하는 곳이다 역사의 순례와 자연의 멋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도 그리 흔한곳은 아니어서 가볼만한 곳이다

 

평일에는 1명, 주말과 휴일에는 3명이 문화유산해설사가 관광객들에게 문화재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를 하고 있다

 

 

[소양제]"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로 시작되는 정감있는 노래와 함께 이곳 춘천에서는 우리나라 우리것을 찾고 그 전통의 맥이 끊이지 않도록 춘천시에서는 매년 가을시민공원과 유수지 매립장에서 향토의 문화를 찾아 전통민속행사를 실시하는데 이 축제가 바로 소양제이다.

행사 기간중에는 전야제를 시작으로 하여 봉의산제,길놀이,축하공연을 비롯하여 외바퀴 수레싸움,줄다리기,그네뛰기,씨름등의 민속행사 위주로 행사를 개최하며 문예행사를 비롯한 소양장터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볼거리,먹거리를 소개한다.

소양제는 또한 춘천의 고유 음식으로 전국에 그 명성을 날린 춘천막국수,춘천 닭칼국수등을 다양하게 선보여 행사와 더불어 이 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먹거리의 추억을 선사하기도 한다. 춘천은 계절별로 축제가 전국 어느 도시보다 다양하게 끊이지 않고 펼쳐 언제 이곳을 찾아도 볼거리를 선사하는 도시이다.

춘천 인형극제,국제마임축제,의암제,봄내종합 예술제,춘천만화축제,춘천막국수 축제,춘천국제 연극제,소양제,국제마라톤 대회등을 잇달아 열면서 이제는 문화의 도시로 그 명성을 추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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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시 : 2006.2. 8 (수) 12:00~16:30

 산  행 지 : 오봉산 (799m) 강원도 춘천시

 산행코스 : 배후령 오봉 1 ~ 5봉 = 홈통바위 = 적멸보궁 = 해탈문 = 청평사 = 구성폭포 = 관리소

                      = 선착장 = 소양호땜 배로 이동 = 선착장

 산행인원 : 34명

 산행시간 : 4시간 30분

 

 

배후령고개에 도착하여 하산즉시 장비 점검을 하고 일행들이 기념 사진을 박았어요

 

오늘은 우리 산내음에서 매월 한 번씩 장거리 산행을 하기로 되어 멀리 춘천의 오봉산 산행을 하고 모처럼 산내음 회원님들과 춘천의 명품 먹거리 닭갈비촌으로 가서 가볍게 뒷풀이를 하고 오기로 되어 있는 날이지요

 

그래서 금년 부터는 나의 산행길에 가능하면 동행을 하겠다는 아내에게 넌즈시 당신 춘천 오봉산 산행을 하고 소양호 배도 타고 그리고 춘천의 명물 닭갈비를 맛볼 수 있게 하여 줄터이니 산행에 동참을 하려면 하라고 의견을 물으니 뜻밖에도 쾌히 승락을 하네요 사실 나의 진짜 속셈은 제발이지 아내가 따라 나서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 대접상 해본 말인데 말입니다

 

거참! 그러니 가지 말란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잘됬다 얼씨구 춤이라도 출일도 아니고 엉거주춤 한 맘으로 하루 이틀 사흘을 보내다 정작 내일이면 오봉산 가는날이되어 다시 한번 아내에게 산행참여 여부 확인을 하니 날씨도 춥고 손자넘도 걸려서 당신이나 훌훌 다녀오라고 아내가 흔쾌히 말을 하네요 그러니 맘속으로 나는 쾌재를 부르면서

 

그래도 그래 얼씨구 절씨구 좋구나 하는것 보다는 모양새를 가춘다는 의미에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경고성 엄포를 놓으며 당신같은 촌닭 아줌씨를 진짜 춘천 닭갈비를 맛보게 해줄려 했더니 싫다고 마다 하네 하면서 하기사 저 싫으면 어쩔 수 없지 ... 알았어요 그럼 나 혼자 가는걸로 다시 정정 신청 할꺼야요 했더니 ... 시상에 이눔의 도영이 할마이 또 다시 그럼 갈까 하고 말을 바꾸네요

 

거참 완존히 좋았다 망했다 이거 아님니까? 긍게 사람은 항상 말을 할때 신중해야 하는건데 그눔의 체면 차린다고 할 소리가 아닌걸 했다가 완전히 원위치로 돌아 와버렸으니 이때부터 나의 오봉산 산행길 예감은 이미 난파선을 만난것이지요 그렇게 다시 결정된 아내의 동참으로 정작 산행을 떠나는날 당일 아침도 아침 8시 50분에 청량리역에 대기하고 있는 대절 버스를 타기 위하여 서둘러 떠나야 하는데

 

으이그 썪어 모처럼 아내하고 산행을 떠나려니 와 그리 꼼지락 거리며 시간을 지체 하는지 늘 성질이 급하다는 한 소릴 듣는 나는 벌써 몇번을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핏대를 세웠다 눙첬다 하는것을 그래도 꾹 속으로 참고 직행 전철을 타고 그리고 일반 전철을 갈아타며 간신히 시간에 겨우 마추어 청량리역에 도착을 하여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을 만나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출발을 하지요

 

그러나 우리일행을 태운 버스는 시내구간을 지나며 가다 서다를 반복을 하며 또한 어제 내린 눈으로 도로가 미끄럽다 보니 집행부에서 예정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지체되어 춘천의 오봉산 배후령고개 주차장에 12시가 다 되어도착을 하네요 그러니 나 같이 근무 시간을 잠시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겨두고 산에를 온 사람들은 초장부터 계획에 차질이 와  다소 당황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어쩜니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판인데 ... 이럴때 속상해 하고 있는것 보다는 빨리 내 생각을 바꾸는것이 묘 수이지요 그래 어차피 하루벌어 열흘 먹고 사는것 아닌데 오늘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몇 시간 더 신세를 지기로  마음 먹고 아예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들머리 구간을 들어 서지요

 

 

그런데 배후령에서 올려다본 오봉 오르는 들머리 구간은 첫 발부터 깔딱고개 구간으로 되어 있으니 평소 나와 함께 운동장 아파트 주위에 있는 부평공원 코스를 거의 매일같이 몇 바퀴 정도 돌수 있을 정도로  워킹에 자신이 붙은 아내의 체력으로 볼때 내 생각에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하두 엄살을 떠는 아내의 산행이 정말 가능할까 걱정이 태산 같네요 버스에서 하차를 하자마자 일행들은 모두 아이젠을 묶고 장비를 점검을 하고 하는데

 

으이그 이 산행 초보자 아내는 아이젠도 내가 채워줘야 하고 정말 초장부터 완존히 대왕마마 노릇을 하려 하면서 군소리 안하고 깔딱고개 구간 들머리를 들어서는 산님들속에서 몇 발자국을 오르더니 벌써 얼굴이 찌그러 지면서 차라리 차안에 있겠다고 엄살을 떨고 있네요 그런데 다행이도 늘 나를 보듬어 주는 여러 산님들께서 걱정 하시지 말라고 하면서 부축을 하니 어영부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완전히 느림보 거북이가 되어 가기싫은 산행길을 가고 있으니 으이그 속 썪어 정말 못 봐 주겠더라구요

 

평소 나홀로 같았으면 이렇게 아름다운 설원속 산행길에 앞서거니 뒤서거닐 하면서 을매나 멋진 풍경을 디카에 담았을것인데...아내가 우스게 말로 웬수가되어 인질이 되고 말았지요 그러니 맨뒤에서 느림보 산거북일 델구 산행을 하니 을매나 속이 타겠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내가 옆에 있으면아내가  더 엄살을 떠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래 어차피 가야할 길인데 아내에겐 야속 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이겨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는 의미에서

 

아예 내가 아내의 곁에서 탈출을 하여 저 만큼 맨 꼴에서 사진을 찍으며 일봉 이봉 삼봉 사봉을 오르고 있으니 까까비탈 암릉길도 나 대신 착한님과 일행들의 도움으로 아내가 나름대로 잘도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다소 안심은 되지요 그런데 나중에 곁에서 보니 사실은 웬만한 암릉구간은 일행들이 그러지 말라고 하여도 거의 무릅으로 기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큰일이다 후유증이 있을텐데 생각을 하며 염려를 하지요

 

 

오봉 가는길

 

 

두둥실 달이 떠 오르는 듯한 제 1봉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 있지요

 

 

노송은 말이없다 그러나 눈꽃은 노송에서 살아있는

 소나무에도 아름다운 동화처럼 피어 있었어요

 

 

풍경

 

 

장거리 이동을 하다보니 산행 시작을 12시에 했는데 산행 시작후 50분도 채 안되었는데 선두로 오른 일행들이 점심식사 자리를 준비하고 후미인 우리가 오기를 기다려 식사를 시작 하지요 많은 산님들이 모이다 보니 제각각 지참하고 온 도시락이 웬만한 부패 차림표 보다도 다양하게 다양한 맛을 추구하며 화기애애하게 점심을 먹지요 물론 가볍게 여러 산님들이 가져오신 주류도 곁들여서 말이지요 그런데 산도 정말 잘 타지만 어쩜 그리도 식사도 빨리들 하시는지 모처럼 동참한 아내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어요 마치 번개불에 콩을 볶아 먹는다는 소리가 실감날 정도지요

 

 

가볍게 식사를 끝내고 일행들이 모여 기념 사진을 찍어 두지요

 

 

오봉으로  가는길

 

 

1997년도 처음 산행길 입문하던 해 여름에 이곳 오봉엘 왔었는데 그땐 정말 초자 산꾼이라 언제 이렇게 아름다움을 겸비한 산이라는것을 보고 느낄새도 없이 오직 그냥 안내 산악회원들이 걸어가 등산화 뒷꿈치만 열심히 바라 보고 뒤 따라가는 산행을 했었는데 이제는 어느덧 경륜도 조금 붙고 또한 디카를 들고 산행을 하다보니 세상이 하나 둘씩 어느 위치에 있는것이 보이고 이제는 산행길에 아름다운 멋을 보는 눈을 익히게 되었지요 한 마디로 장족의 발전을 했지요

 

 

풍경

 

 

조오심 조오심 미끄러운 벼랑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일행들이 잘들도 가고 있지요

 

 

하지만 난 늘 불안초조한 마음으로 아내를 부축을 하며 가야 하다보니 이거이 산행을 하는

것인지 뭔지 정말 재미 하나도 없구 빨리 하산을 안전하게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 뿐이지요

 

 

설원속으로 빠저드는 일행들의 모습

 

 

누군가 말했어요 닥터 지바고 촬영 현지 영화속으로 들어가는것 같다고 ...

근데 그말이 정말 거짓말 같지 않고 환상의 세계를 걷고 있는 기분 느낌였어요

 

 

이곳 오봉산 산행길은 어느 방향에서던지 들머리 구간만 제대로 들어서면 중도에

길을 잃거나 헤메는 일은 절대로 없을것 같이 외길 산행로 이어 지고 있었어요

 

 

닥터 지바고 속으로 가는 사람들 ...

 

 

윙윙 부는 바람소리 효과만 있다면 정말 더 지바고 속으로 빠저드는 기분됬을꺼야요

 

 

절경

 

 

이거이 바로 동양화속에서 보아오던 설경 그 자체 같았어요

 

 

아! 그런데 이눔의 노릇을 어케 해야 하나요 점심 식사를 한후 그런데로 산행을 지속하던 아내가 쇠줄을 느린 험난한 암벽구간을 간신히 간신히 몇 구간을 오르내린것이 문제가 되었는지  과거에 무릎의 종지굽이 깨어지는 사고로 수술을 한 부분이 아퍼서 더 이상 산행을 못하겠다고 주저 앉고 마네요 이런땐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더라구요

 

그런데 다행이도 최윤영님께서 걱정하시지 말라고 아내를 안정을 시키며 무전으로 선두그룹에 혹시 무릎 보호대를 가지고 온 사람이 있으면 등로 놔두고 가라고 하며 늘 당신께서 지참하여 가지고 다니시는 아스피린을 한알 아내에게 주시어 아내가 다소 기력을 되찿아 산행은 지속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느려터진 산거북이가 점점 더 느리게 가고 있지요

 

 

오봉산 설경속으로 ...

 

 

 

 

 

 

 

 

저 아래 구불구불 S자로 이어지는 도로가 인상적으로 보이지요

 

 

하지만 홈통바위(일명 해산바위위) 구간앞에서 선두로 가던 산님들이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험준한 등로를 바라보고서 아내가 아예 자즈러지려 하는 모습을 보이니 정말 사면초가 막막하기 짝이 없는데 그런데 이때도 수십년간 산행길 노하우를 가지고 계신 연산동님과 착한님의 도움으로 아내도 무산히 해산을 하게 되지요 그러니 6학년 3반의 나이가 되어 또 늦둥이 하나를 낳아 싱글벙글 기분이 그런대로 좋은 날이었지요 ㅋㅋㅋ

 

 

일행들중 특히 여성 산님들이 해산굴을 통과하려 기어 들어가면 하나같이 모두다 아~~~ 아~~~ 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들이 영낙없는 해산할때 지르는 소리를 방불케 리헐하게 지르고 있네요 그래서 내가 위에서 우스게 소리로 그려 그려 첨에 다 그렁겨 조금만 더 조금만더 힘을써 이럴때 정신 잊어 버리믄 클난다고 하면서 마지막 조끔만 더 쪼끔만더 힘을 내라고 격려를 혔더니 ㅋㅋㅋ 청파님 너무 웃겨서 해산을 못하겠다구 웃기지 좀 말라구 제지를 하네요 ㅎㅎㅎ 다 자기들 위해서 한 소린데두...ㅋㅋㅋ

 

 

아예 기겁을 하고 겁먹고 있는 아내에게 걱정 하들 마러 당신 보다도 더 뚱땡이 만우 아우도 다 이 해산굴을 통과를 했다고 하니 아내도 만우 아운 만만하게 봤는지 울쌍을 하며 기어 들어가 그여코 해산을 하고 말지요 근디 누굴 닮았느냐구요 ㅋㅋㅋ 만운 하나도 안 닮구 영락없는 연산동 최윤영님을 닮았어요 아마 손을 붙들고 부축을 하며 산행을 하다 보니 그랬나봐요 거참 난 하나두 안 닮았더라구요 ㅋㅋㅋ 그러니 이 아이를 어케하나요 하는 수 없이 천륜을 저버리고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아이를 다시 오봉산에 해산굴에 슬며시 밀어넣어 놓아두고 왔지요 ㅋㅋㅋ 잔인무도한 사람이라구요? ㅋㅋㅋ 그렇지만 불씨의 소지가 될 아이를 델구 올 순 더더욱 없었어요 ㅋㅋㅋ

 

 

하두 오랫동안 우리들이 해산을 하는동안 이미 선발대 산님들은 688봉에 올라 촛대바위 암릉

구간으로 하산을 위하여 마지막 봉우리에서 우리 후미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 일행(아내 나 최윤영님)은 산행대장 조대장에게 무전으로 부득이 우리들은 적멸보궁 구간으로 하산을 하기로 하고 착한님만 일행들의 뒤를 따르라고 헤어저 적멸보궁 코스로 하산을 하지만 이곳 이탈구간도 생각처럼 만만하지는 않았어요 직벽으로 이어진 암벽구간에 완전히 눈이 빙벽을 이루어 패잔병 같은 아내를 델구 통과하여야 하는데 이미 쇠사슬에 매달리며 힘이 빠진 아내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서 매달려  더이상 못하겠다고 애원을 하는데... 

 

정말 아내가 매달려 애를 태우는 모습은 못보겠더라구요 그런데도 끝까지 시종일관 침착하게 아내를 안심을 시키며 한발 두발 아내의 발을 붙들고 암벽에 안전하게 디딜곳을 살펴주는 최윤영님의 보호 덕택에 정말 자칫 사경을 헤메게될 위험한 구간을 무사히 내려와 너덜구난으로 이어지는 눈덮힌 하산로를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지요

 

이날 아내를 동반하고 나선 모처럼 나선 산행길인데 이렇게 뜻밖에 난관 코스를 만나 고생을 하다보니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쓰시며 늘 잉꼬부부 산님이 되어 산행을 하시는 통영이 이수영아우님이나 정중채 부부홈님들이 존경스럽게 생각이 들며 그분들께 한 수 배워서 아내와 동행 산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요

 

사실 아내와 단 둘이 산행을 하다 위험한 코스를 만나거나 부상을 당하여 어려움에 처했을 경우는 알고 보면 사람은 두 사람이지만 부부는 사실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여서 더욱 위험한 경우를 만나게 되는것이나 마찬 가지이지요 그런데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잉꼬부부 산님들의 산행길 이야기가 나로서 정말 존경스럽고 생소하고 또한 내가 배워야 할 덕목이라는것을 큰 체험을 하지요

 

 

 

 

적멸보궁으로 하산하는 구간 또한 결코 만만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리탑 안내판이 있는곳에 이르니 지금까지 하산을 하던 등로가 사라지고 몇길 낭떨어지 빙벽구간을 만나게 되지요 내가 잠시 선두에서 등로 확인을 하는 사이 최윤영님께서 아내를 델구 등로를 이탈하여 길을 찿아 가고 있는 모습이지요 야밤도주 하듯이 산행도주를 하네요 ㅋㅋㅋ

 

 

산자락에 적멸보궁 건물이 추녀가 맞닿아 있었어요

만약 홍수라도 나면 위태로울 정도 였어요

 

 

적멸보궁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정골과 불사리를 직접 봉안한 곳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으로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강원 인제의 봉정암, 영월의 법흥사, 정선의 정암사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오대산의 적멸보궁이 있다. 이 가운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시대에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곳이다.(우리나라에는 모두 5곳의 적멸보궁이 존재)있다고 함

 

 

청평사 적멸보궁

 

 

안된다고 안된다고 하여도 부득부득 최윤영님께서 생환기념 산행이라고

한장 기념으로 박아두라 하며 적멸보궁을 배경으로 찍어 주셨지요

 

 

하늘엔 먹구름이 흘러가고

 

 

청평사 해탈문

 

≪불교≫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어가는 경지를 문에 비유한 말.

 

문(門)은 안과 밖을 나눈다.안과 밖이 단지 기능적인 의미로만 갈라질때 그 문을 통해 '세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사의 해탈문은 문안과 문밖이 전혀 다른 세계다. 속세의 모든것을 버리고 해탈의 경지인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것은 공간에 쓰여진 경전이다. 월출산 남쪽 자락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 다리가 막 무거워 질 즈음에 영암 도갑사의 해탈문이 나타난다. 맞배지붕의 간결함이 단정하고 소박한 인상을 풍긴다.첫인상이 깔끔해 다소 엄격해 보이기도 한다. 속세의 티끌을 다 털고 들어서야 할것같은 긴장감을 준다

 

 

청평사 부도전

 

 

드디어 험하고 미끄럽고 어느 한구간 한 발자욱 결코 방심하고 디딜 수 없는 고행의 오봉산 산행길 그런데 멀리 청파사 기와 지붕이 보이니 이제는 무사히 하산을 했다는 아니 살았다는 안도감에 저 만치 뒤에서 뒤뚱 거리며 오는 아내를 나 몰라라 두고 일단은 선두로 내려와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산님들께 죄송하여 서둘러 뛰어 다니며 청평사 경내 사진을 몇컷 디카에 담아 보지요

 

 

청평사 대웅전과 경운루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의 오봉산에 있는 절.
청평사계곡은 오봉산(779m)의 젖줄이자 관광의 알맹이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특히 청평사 는 청초하고 아늑한 강원도 춘천시의 대표적인 절이며, 계곡의 가운데 쯤에 있는 구성폭포 는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맑디 맑은 계곡물이 항상 흘러내려 계곡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 선사 승현이 창건하여 백암선원이라 했으나 그 뒤 폐사되었다가 1068년 이의가 중건, 보현원이라 했으며 나중에 이자현이 문수원이라 개칭하였다 1550년에는 승려 보우가 문수원을 개수 확장하여 절 이름을 청평사라 개칭했다.
[개요]

삼성각의 삼신, 강원 춘천시 청평사
중창기(重創記)에 의하면 이 절은 973년(광종 24)에 세워진 백암선원(白巖禪院)을 1068년(문종 22) 이의(李 )가 중건해 보현암(普賢庵)이라 했으며, 1089년 이자현(李資玄)에 의해 절이 크게 중창되었고, 현재의 절 이름은 1550년 보우(普雨)가 극락전과 그밖의 모든 요사채를 새로 지은 뒤에 고쳐 부른 것이라고 한다. 본당인 능인전(能仁殿)은 1851년(철종 2)에 소실되었으며, 6·25전쟁 때 여러 당우가 소실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극락보전(極樂寶殿)·회전문(廻轉門:보물 제164호)·소승방(小僧房) 등이 남아 있다.

[청평사회전문]

청평사회전문(조선 중기), 보물 제164호,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조선 중기에 세워진 절의 문. 보물 제164호. 큼직하고 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아 문과 좌우 행각(行閣)을 지었는데 현재는 행각의 주춧돌과 문만 남아 있다. 문의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1칸이며 단층맞배지붕 건물이다. 6·25전쟁 때 소실된 극락전 앞에 세워진 중문(中門)으로 중앙은 통로이고, 좌우에는 협칸[夾間]을 만들어 천왕상(天王像)을 안치할 수 있도록 했다. 공포는 출목(出目)이 없이 주두(柱頭) 위에 직접 두공(頭工)이 주심도리를 받고 있으며, 구조는 주심포(柱心包)에서 익공계(翼工系)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연등천장의 가구는 대들보와 복잡한 파련대공(波蓮臺工)뿐이며 부연(附椽)은 달려 있지 않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현재 문짝도 없이 문만 남아 있다.

 

 

 

그리고 청평사 부속 건물들(극락보전 나한문)

 

 

누굴 닮았나요?

 

 

구성폭포

 

청평사에는 공주와 상사뱀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 당나라의 평양공주라는 공주가 있었는데 어떤 젊은이가 공주를 사모하다 죽임을 당했다 한다.

 

그 젊은이는 죽은 뒤에 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몸을 휘감고 떨어지질 않았다. 공주는 이곳저곳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며 다니다가 이곳 청평사에까지 오게 됐는데, 그 뱀이 청평사에서 벼락을 맞아 죽으며 공주의 몸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공주는 청평사 아래 구성폭포 위에 삼층석탑을 세우고 돌아갔는데, 이 삼층석탑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이런 탑에 얽힌 전설로 이 삼층석탑을 흔히 공주탑이라고도 부른다.

 

 

청평교를 지나고 있어요

 

 

빙어 강원도의 명물이라는데 하지만 난 생물은 마음이 약해서 못먹지요

 

 

관광 안내도

 

 

우리산내음 명콤비가 되어 늘 산행길을 안전하게

리드하는 좌 조대흠대장님과 우 최윤영님의 모습

 

 

소양호 나룻터로 가는길

 

 

지나온길에 돌아본 오봉산

 

 

나룻배는 아니고 자그마한 동력선이 우리 일행과 몇분의 산님들을 태우고

오후 5시 30분 드디어 소양호 물살을 가르며 두둥실 떠 달려 가게 되지요

 

 

석양의 햇살이 쏟아지는 소양호

 

 

배위에서 일행들의 모습

 

 

하얀 포말을 뒤로 남기며 물살을 가르며 우리 일행을 싫고 달려가는 배위에서 찍은 소양호

 

 

10여분 정도를 달렸나 생각을 하는데 벌써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을 하네요

 

 

해저믄 소양강에 황혼이지면 하는 소양강 처녀 노래를 생각하며 하선을 하지요

 

 

 

 

 

 

위에서 본 선착장 모습

 

 

담수비

 

 

소양땜 기념탑

 

 

소양호의 명물 빙어 벽 조형물

 

예정 시간보다 거의 두시간이나 늦게 소양강땜 기념탑에 도착하여 이곳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우리 일행은 춘천 퇴계동의 닭갈비촌에 도착하여 모처럼 느긋하게 대식구가 모여 뒷풀이를 하는데 이 자리에 쥐약님이 오시고 춘천의 해오름산악회장님들께서 동석을 하여 주시니 한국의 산하에서 만난 인연들의 이야기가 형님 아우 우애좋은 문화로 발전 승화되어 아름답고 뜻 깊은 자리가 되지만 우리들은 다시 먼길을 달려 귀경을 해야 하겠기에

 

 

 

그 유명한 춘천의 명물 춘천 닭갈비

 

 

 

춘천 산님들게 아쉬움을 고하며 차에 오르니 어느새 춘천의 산님들께서 가면서 드시라고 한 상자를 올려 주시니 시상에 이렇게 나 고마울 수가 있나요 아쉽지만 감사를 드리며 다음에 다시 또 만나뵐것을 약속을 하며 우리들은 서울로 향하지요 서울에 도착을 하니 밤 10시 다시 또 전철을 갈아타고 부평 집에 도착을 하니 이미 11시 반이 지나고 있었어요 이때부터 다시 또 업무를 인계받아 새벽 2시반에 퇴근을 하고 있지요

 

늦게 퇴근한 나를 보고 아내가 하는 말 정말 당신 그동안 산에 다닌다구 구박 비슷하게 했는데 당신 대단하다구 칭찬인지 격려인지 말을 해주네요 아마도 자신을 집에 돌아오던 마다 그냥 넉 다운이 되어있다 보니 생각이 나는가 봅니다 하지만 어쩜니까 그거이 내 직업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직업을 등한시 하고 산에만 다닐 수는 없지요 그러다 보니 직업에 우선 충실해야하고 가정을 말 할것도 없구요 그리고 내 인생의 힘 산행을 하기 위하여선 오늘을 남들보다 좀더 부지런히 사는 수 밖에는요

 

지극히 개인적이며 아내의 이야기를 수록한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 주신 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겨울 산행의 진수도 이제 어느덧 끝물에 다달은 기분입니다 모두들 겨울 산행 늘 안전 유의 하시며 늘 즐거운 산행길 이어 가세요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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