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호에 떨어진 매화.. 백두대간 21구간 (차갓재-황장산-저수령) 


 

                                                                               2008.   5.   4. (일) 흐림 
 

                                                                                 꼭지(아내)와 둘이서 
 

                                                                     일출 05:30 / 일몰 19:15 / 음력 3.29


 



 ▲황장산 묏바위등에서..


 


 


 

▣ 구간별 산행기록


 

05:55 안생달마을

06:25 차갓재

06:48 작은차갓재

08:08 황장산

08:47 황장재

10:00 폐백이재

11:00 벌재

11:40-12:00 중식(822봉)

13:40-13:50 문복대

14:35 저수령


 


 

총 산행시간 : 8시간40분 (15.14km) / 누적거리 : 419.41km


 

▣ 대간종주 거리 : 14.14km / 누적거리 383.41km (포항셀파 기준)

                              안생달마을→1.00←차갓재→2.60←황장산→0.92←황장재→4.56←벌재→6.06←저수령

                  

▣ 접근거리 : 1km (안생달 마을⇒차갓재)

▣ 식수위치 : 벌재(감시초소 옆)

▣ 위험구간 : 황장산 로프구간 주의

▣ 교    통 : 자가운전 서대구I.C-예천I.C-928번(예천방향)-28번(영주방향)-927번(단양방향)-저수령

                차량운행거리 142km / 1시간50분소요

▣ 저수령⇒안생달 마을 / 동로택시 35,000원 (017-522-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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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팔경과 백두대간


 

오늘 진행하는 차갓재-저수령 구간은 접근거리까지 합치면 15km정도

대간행보 중에서는 비교적 짧은 거리다. 산행시간은 7~8시간이면 충분할 텐데 그 다음은 무엇을 한다?

남들은 봄이라 마누라 꽃구경도 시켜주고 여기저기 좋은데 데리고 다닌다던데

자기는 맨 날 마누라 걷기 훈련만 시킨다고 투덜대는 꼭지..


 

어차피 단양 땅을 지나는 길이라 인심 한 번 팍팍 쓰기로 한다.

산행 후 단양팔경도 둘러보고 예전에 구담봉, 옥순봉 산행 때 갔었던 장회나루에 가서

퇴계 이황과 두향이가 즐겼을 뱃놀이까지 하기로 거창하게 계획을 세운다.


 

안생달마을에 차를 주차해두는 것 보다 날머리인 저수령에 세워두고 택시로 이동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6시쯤에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3시에 집을 나선다.

오늘은 도시락대신 김밥 세 줄을 사고 중앙고속도로를 달린다. 지도를 보니 저수령은 중부내륙보다는

중앙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거리도 짧고 시간이 적게 걸릴 것 같다.

예천I.C에 내려서 927번 지방도를 타고 저수령 고갯마루를 오르니 자동차도 힘에 겨운지 낑낑거리며 겨우 오른다.


 

이 고개는 옛날 도로가 나기 전에 경사가 너무 급하여 저절로 머리가 숙여 진다하여

저수령이라 이름 지었다 하니 자동차가 낑낑거리며 힘들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해발 850m인 저수령의 넓은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휴게소는 문이 굳게 잠겨있고

앞마당을 지키고 있는 주유소의 주유기만이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오늘 날 우리의 팍팍한 경제 위기를 짐작해 볼만하다.


 

휴게소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10분여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날은 훤히 밝아오고

예약한 동로택시가 올라오는데 예천방향이 아닌 단양방향에서 올라온다.

기사님 얘기로는 동로에서 예천보다 단양으로 오는 것이 길도 좋고 거리가 더 가깝다고 한다. 

택시는 단양팔경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도락산을 돌고 돌아 벌재를 넘어

지난번 하산했던 안생달마을에 우리를 내려준다.


 



                                                                     ▲아기의 엉덩이를 닮은 애기똥풀


 



                                                     ▲차갓재의 장승과 또 하나의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석 


 



                                                                   ▲황장산을 오르며 바라본 안생달마을


 



                                                                                   ▲황장산 가는 길


 



                                                                                          ▲도락산 방향

 


 

등로 초입에는 월악산국립공원 출입금지를 알리는 공원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그 산길을 걷는 자체로 출입금지구역에 들어왔다며 우리는 늘 죄인취급을 받는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신고를 받아서 출입증이나 허가증을 교부할 수는 없는지..

환경감시원 역할을 하는 대간꾼을 위해서는 어떤 개선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계곡 따라 직진하면 작은차갓재로 오르는 길이다.

차갓재는 좌측으로 계류를 건너 널따란 밭이 있는 산길로 든다.

리본이 보이지 않아 지난번에 내려왔던 희미한 길을 따르니 애기똥풀이 노란 엉덩이를 촐랑거리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넨다. 엉덩이 한번 간질이 주고 쉬엄쉬엄 오른다.

낙엽송이 우거진 등로 좌우에는 딸기덩굴이 빽빽하고 여기저기 곱게 핀 산딸기 꽃이 벌들을 유혹한다.


 

키 큰 두 목장승이 지키고 있는 차갓재에는 또 하나의 ‘백두대간중간지점’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고 20여분 지나 작은차갓재 헬기장에 도착하니 한 젊은이가 비박장비를 챙기고 있다.

대구에서 온 젊은이로 지리산 정령치에서 부터 18일째 백두대간 연속종주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이 젊은 친구와 저수령까지 동행을 하게 되는데 내일 죽령까지 끝낸 후

집에 가서 몇 가지 더 준비하여 다시 죽령으로 올라가 5월 말일까지 종주를 마친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젊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어떤 분은 그러한 행동이 미친 짓이라고까지 한다.

하긴 미쳐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인생에서 우리는 어떤일에 얼마만큼 미치면서 살아갈까?

어느 한 일에 미친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 열정.. 어쩌면 그것이

자신을 승화시키는 진정한 삶의 의미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네 삶의 변화처럼 계절도 빠르게 변하는 것 같다.

초목은 지난번보다 더욱 푸르르고 봄인가 했는데 벌써 여름이다.

주 능선의 진달래는 대부분 땅에 떨어졌지만 연분홍의 철쭉이 활짝 피어서 꽃길을 열어주고

성질급한 뱀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스르륵~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앞으로는 뱀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좌측의 대미산과 지그재그로 이어져온 대간 마루금


 



                                                                              ▲황장산 암릉길을 오르며.. 




                                                                       ▲앞의 투구봉과 멀리 수리봉 라인


 



                                                                                      ▲도락산 방향

 


 

우거진 숲길을 20여분 오르니 암반구간이 나타나면서 서서히 전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직벽의 로프구간이 앞을 가로막는다.

약 15m정도 되어 보이는데 오르기가 쉽게 보였으나 꼭지는 끙끙대며 올라가지를 못한다.

대야산을 다녀온 후로는 로프만보면 겁이 나서 기운이 빠져버린다나 어쩐다나..

로프에 매달려 몇 번 발버둥을 치다가 겨우 올라선다.


 

암반너머로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대미산에서 지그재그로 이어져온 대간능선이 황홀하기만 하다.

계속되는 암반길사이로 소나무와 진달래가 바위틈을 비집고 화사한 자태를 뽐낸다.

역시 봄의 아름다움은 볼록볼록 돋아나는 초목의 새순과 화사한 꽃에 있지만

그것이 자연과 서로 어울려 있을 때가 더욱 아름다운 것 같다.


 



                                                                ▲이제 까다로운 로프구간도 끝이 나고..


 



                                                                        ▲조망이 멋진 황장산 가는 길..


 



                                                                              ▲황장목과 진달래


 



                                                                                             ▲황장산


 



                                                                                       ▲단양의 명산 도락산

 


 

 

충주호에 떨어진 매화 (퇴계 이황선생과 두향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북쪽으로는 도락산이 옹골차게 솟아올라 있다.

도락산을 끼고 양쪽으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가면 단양8경중

상선암,중선암,하선암,사인암 등 무려 4개의 명소가 자리하고 있다.

퇴계 이황(1501-1570)이 단양팔경을 명명할 때

행정구역이 다른 옥순봉이 단양팔경에 포함된 데는 그 당시 관기였던 두향의 힘이 컸는지라

퇴계 이황선생과 두향의 아름다운 사량얘기를 꼭지에게 들려주며 황장산을 오른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단양의 경치 좋은 여덟 곳

즉, 도담삼봉,석문,상선암,중선암,하선암,사인암,구담봉,옥순봉을 단양팔경으로 명명하려고

사또 회의(?)를 주제하고 있는데 두향이 듣고 보니 그 중에 옥순봉은 단양땅이 아니라 청풍 땅이 아닌가.

그녀가 출생한 곳이 바로 옥순봉근처라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나으리! 옥순봉은 단양땅이 아니고 청풍땅이옵니다.” 하고 아뢰자

퇴계 이황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고 있는데 두향이 청풍군수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타협해보기를 권한다. 당시의 청풍군수는 후일에 영의정이 된 아계 이산해의 아버지 이지번이였다.

퇴계는 두향의 말에 따라 청풍군수를 찾아가 상의한 결과 쾌히 허락하여 옥순봉이

청풍군 관할에서 단양군 관할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 길로 퇴계는 옥순봉아래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란 네 글자를 써 붙이며 이곳을

단양의 관문이며 군경계로 정하자 단양의 석공들이 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깊게 새겨서

그 암각문이 지금까지 전해온다고 하니 어쩌면 두향의 기지로

단양팔경의 명명이 완성을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퇴계는 두향을 만난 40대 후반부터

그녀를 통하여 매화를 끔찍하게 아끼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고

매화에 대한 시를 118편이나 그것도 자필로 써 ‘퇴계매화시첩’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천 원짜리 신권 앞면에는 퇴계의 초상과 함께 매화 꽃 20여송이가 피어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매화꽃을 손에 쥐고 생활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한 사람이

퇴계에게 분매 한 그루를 선사한 관기(官妓) 두향(杜香)이라고 말한다면 믿을 것인가.

절개 곧은 한 여인의 사랑이 4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꽃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기 두향(杜香)은 누구인가.

어떠한 기생이었기에 성품이 대쪽같다 못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뻣뻣한 선비였던 퇴계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때는 조선조 중종, 단양 관아에 관기 두향이 있었다.

몸매가 아름다웠고 특히 거문고를 잘 탔으며 시문에도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난과 분매(盆梅)에 솜씨가 있었다.


 

이름은 두향이요 성은 安씨라고 전해온다.

출생지는 단양군 단성면 ‘두항’마을인데 마을이름을 따서 두향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다섯 살 되면서 아비를 읽고, 열 살 되던 해에 어미마저 사별하자 그녀의 빼어난 미모를

아까워한 퇴기(退妓)에 의하여 길러지면서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두향의 나이 아리따운 18세

그녀는 따뜻한 청마루에 앉아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분매를 손질하고 있었다.

이 분매는 어미가 죽기 전에 물려준 것이었다.

바로 그때 단양의 군수로서 퇴계 이황이 부임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두향은 관기인지라 모셔야 할 신임군수 퇴계 이황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었다.

탐관오리는 아닌지..

일찍이 퇴계는 조정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뜰에 핀 매화를 보고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은 적이 있었다.


 

뜰 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옥당에 홀로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이 시는 단양군수로 부임하기 6년전인 1548년에 지었는데 118편의 매화 시 중에서 첫 작품이기도 하다.

두향은 이 시를 살펴보고는 매화를 두고 읊은 시이기는 하나 나라의 어지러움을 개탄하는

우국지정이 어린 시임을 느껴 당장 그 자리에 앉아서 시를 다 외웠다고 할 정도이니

퇴계 이황의 인품에 대해서는 이미 다 파악했을 것이다.


 

퇴계는 48세 되던 무신 년 정월에 단양군수로 부임하였고

두향은 관기로서 신임군수 퇴계 이황을 가까이 모시게 되었는데, 때 마침

어미로부터 물려받은 분매가 곱고 화사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신임군수 퇴계 또한 매화를 좋아하는 줄 아는지라 퇴계의 처소에 옮겨놓게 되었다.


 

정월의 이른 봄이라 매화는 곱게 피어 은은한 향기를 뿜고 있었다.

처소에 든 퇴계는 환하게 피어난 매화를 보고 반기는 듯 하였으나, 그가 누구인가.

대쪽같은 선비가 아니던가.

비록 매화분이라 할지라도 재물에 해당되는바 어찌 받을 것인가.

이내 아전을 시켜 가져온 사람에게 돌려 줄 것을 명하였다.

두향이 얼른 나아가 매화분에 관한 자초지종을 아뢰고, 6년전 퇴계가 지은 매화시를 읊으면서


 

“매화는 고상하고 아담하여 속기가 없나이다.

추운 때에 더욱 아름다우며, 호젓한 향기가 뛰어나고

격조가 높으며, 운치가 남다르며, 뼈대는 말랐지만 정신이 맑고

찬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리면서도 곧은 마음을 잃지 않는 것으로 아옵니다.

그러하오니 이 매화꽃처럼 단양 고을을 잘 다스려 주시옵소서.” 하고 다소곳이 아뢴다.


 

퇴계가 두향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니 그 마음이 기특한지라

백성으로부터 받은 재물이긴 하나 나무 한 그루 가져온 것을 차마 물리칠 수가 없어

처소에 두어 날마다 바라보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었다.


 

이때  퇴계는 첫 부인과 재취부인마저 사별하고 아들마저 하나 잃은지라 슬프고 외로운 때였다.

자연히 두향을 가까이 두어 시화와 음률을 논하고 단양의 아름다운 산수를 거닐며 인생의 깊은 고뇌와

쇠약해진 심신을 위로받으니 날이 지남에 따라 두 사람의 정분도 쌓여만 갔다.


 

하지만 군수로 부임한지 10개월 만에 그 곧은 성품으로 인하여

풍기군수로 옮겨가면서 단양을 떠나게 되니 두향과 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두향이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시 한수를 쓴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덧 술 다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단양팔경의 사인암


 



                                                                                          ▲상선암


 



                                                                                        ▲도담삼봉

 


 

그 후 두향은 10개월을 모셨지만 그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신임사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면천시켜 달라 청하니 그 갸륵한 마음에 사또가 허락하기에 이른다.

기적에서 면천된 두향은 퇴계와 자주 갔었던 강가 옆에 움막을 지어

오로지 퇴계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오매불망 퇴계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가끔은 인편을 보내 문안을 여쭙곤 하였는데 헤어진 지 어언 4년이 되는 봄날

퇴계는 인편에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두향에게 보내며 두향을 위로하기에 이른다.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비어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거문고 마주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


 



                                                                                 ▲장회나루 뱃놀이

 


 

그 후 20년이 흐른 1570년 어느 겨울날

퇴계는 방안의 매분을 가리키며 “매형(梅兄)에게 물 잘 주라.”라는 말을 남기고 임종한다.

이 소식을 들은 두향은 스스로 곡기를 끊고 지내다가 강나루에 몸을 던지며 유언하기를

이 몸 죽거든 님와 노닐던 강가 강선대 아래에 묻어 달라 하였다.


 

그녀의 무덤은 구담봉과 옥순봉을 끼고 펼쳐지는 충주호의 장회나루 건너 강선대 근처에 있으며,

1987년부터 매년 ‘단성향토문화연구회’에서 주관하는 두향제가 열린다고 한다.

신권 화폐에 피어난 매화꽃.. 아래의 시처럼 퇴계선생의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前身應是明月)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幾生修到梅花)

 


 


 

조망이 멋지고 아름다운 산길 (황장산~벌재)


 

08:08 황장산

두향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황장산이다.

황장산은 조선시대 질 좋은 소나무의 대명사인 황장목이 많이 자라고 있어 봉산으로 지정되었던 산이다.

춘양목이라 불리는 황장목은 나이테가 누렇게 황금빛을 띤다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나무의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없어 궁궐의 목재, 황실의 관이나 배를

만드는 데 주로 쓰였다고 하지만 소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아서 그 명성이 무색하기만 하다.


 



                                                                                    ▲단양방향 조망

 



 
 



                                                   ▲황장산을 내려서며.. 아래 가야할 대간마루금과 멀리 매봉


 



                                                                                      ▲예천방향


 

 

                                                                      ▲18일째  백두대간 연속종주중인 젊은이


 



                                                                                 ▲입석과 연두빛의 향연 

 


 

황장산을 조금 내려서니 두 갈래 갈림길이다.

표지리본이 양쪽으로 비슷하게 붙어있어서 어디로 가야할지 잠시 망설여진다.

지도를 보니 좌측방향이다. 30여분 고도가 계속 떨어지더니 황장재를 지나니 고도가 또 높아진다.

조망이 트이는 암릉과 바윗길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대간 길은 낙엽이 깔려있어 부드럽고

진달래와 철쭉, 더러는 야생화가 무리지어서 꽃길을 열어준다.


 

암릉의 선바위군을 지날 때는 소백산방향으로 조망이 트이지만 연무로 인하여 보이지는 않는다.

날씨가 좋으면 천문대와 연화봉에서 이어지는 소백의 장대한 능선이 보일 것 같다.

다만, 남쪽으로 오똑한 매봉과 부드러운 천주봉이 계속 시야에서 떠나지 않아서

눈길은 그쪽으로만 자주 간다. 몇 개의 이름 없는 봉우리를 오르고 내린다.


 

힘은 들지만 그때마다 바위지대가 많고 조망이 트여서 좋다.

특히 지난번구간에서는 보이지 않던 각시붓꽃이 군락을 지어 피어있어서 지루한 줄 모르고 진행한다.

족도리풀도 여전히 땅위에서 방긋방긋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들이 있어서 봄철의 대간 길은 더욱 아름답다.


 

비닐표지가 매달려 있는 폐백이재를 지나니 또 오름길이 시작된다.

929봉에서 대간은 능선 따라 직진하지 말고 우측 3시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리본이 많이 매달려 있지만 아무생각 없이 직진하면 엉뚱한 데로 빠지게 되니 조심할 지점이다.

녹음이 짙은 부드러운 산길을 30여분 내려서니 벌재가 시야에 들어온다.

 


 


 


 

                                                                                 

 



                                                                                     ▲매봉과 천주봉


 



                                                                                     ▲가야할 929봉


 



                                                                                       ▲동로방향


 



                                                               ▲군락을 지어 꽃길을 열어주는 각시붓꽃

 


 

위에서 내려다보니 감시초소 옆에 빨간 승용차가 한 대 주차되어있다.

공단 감시원이 지키고 있는 것 같아서 내려갈까 다시 올라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어디로 올라갑니까? 빨리 내려오세요.” 하는 호통이 떨어진다.

이런, 드디어 들키고 말았다.


 

오늘 잘못하다간 스티커 맛을 보겠다 싶어 “죄송합니다.”하고 용서를 구하니

키보다 큰 배낭을 짊어진 꽤째째한 젊은이와 가냘픈 꼭지를 보고는 예상외로 순순히 보내준다.

그 대신, 소중한 자연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니 산행을 할 때 휴지를 버리지 말고

자연을 아껴달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그건 산행 시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건너편 정자에서 잠시 휴식하고 작은 봉우리를 내려서니 묵은 길인 옛날 벌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30여분 가파른 경사를 또 오른다. 힘은 들지만 마음은 더 평화로워진다.

녹음이 우거진 사면으로 산나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띈다.

822봉에 올라 젊은 친구와 점심을 먹고 대간에 대한 얘기꽃을 피우며 잠시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벌재를 지나 문복대가는 길의 '큰애기나리' 군락지


 



                                                                                          ▲예천방향


 



                                                                                          ▲문복대


 



                                                                       ▲문복대에서 바라본 매봉방향


 



                                                                                  ▲저수령 가는 길


 



                                                                                          ▲저수령

 


 

13:40 문복대

벌재에서 조망이 없는 숲길을 2시간 가까이 걸어온 것 같다.

'문복대’라는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왜 이름이 문복대인지 모르지만 남쪽으로 조망이 약간 트인다.

문복대를 내려서니 여전히 낙엽이 보송보송하여 걷기가 좋은 시원한 숲길이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계속 오르고 내려야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구간이다.


 

14:35 문복대에서 1시간 정도 걸려 저수령에 도착하여

젊은 대간꾼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꼭지와 단양팔경 관광길에 나선다.

도락산 근처에 있는 사인암과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을 둘러보고 퇴계 이황과 두향이 즐겼던

뱃놀이를 연상하며 장회나루에 갔더니 그 넓은 주차장이 관광버스로 가득하다.


 

5시 10분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마지막 배편(17:40)이 매진되고 없다.

다음날 9시 30분에 출항한다고 하니 그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라

구담봉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대구로 향한다.


 



                                                                          ▲장회나루에서 바라본 구담봉


 



                                                                               ▲집으로 가는 길에..

 


 

                                              위의 퇴계 선생과 두향의 이야기는 ‘동방문화진흥회’ 간행 <동인>지

                                                2007년 7월호에 게재된 내용들을 참조하여 재편집하였습니다.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