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백석산 눈꽃과 공포의 잠두산 내리막길

 

 


 

                           백석산 정상 가는 길의 눈꽃

 

 


  백석산과 잠두산

 

  백두대간의 주맥인 오대산(1,563m)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계방산(1,577m)에서 남으로 내려와 백적산(1,142m)을 일구고 그 아래에 힘껏 솟구쳐 일군 봉우리가 잠두산(1,243m)입니다. 잠두산 바로 남쪽에 백석산(1,365m)이 이웃해 있고 그 주변에는 오대산·계방산·가리왕산·청옥산·남병산 등 평창군 일대의 고봉들이 운집해 있습니다(자료 : 산림청).


  백석산과 잠두산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대화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며, 특히 백석산은 이들 산줄기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들 산에는 5월이면 산나물이 지천으로 자라기 때문에 사람들로 넘쳐나며,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고 골이 깊어 장쾌한 조망을 보면서 눈꽃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산입니다.   

 

 


  던지골∼백석산 줄기인 마랑치

 

  2006년 2월 5일 일요일 새벽,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서니 바깥의 공기가 매우 싸늘합니다. 예로부터 소한과 대한이 모두 지나고 나면 얼어죽을 생물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건만 이번 주 중반부터 몰아친 동장군은 봄소식을 알린다는 입춘(立春)마저 하루 지난 이날 아침까지 서울의 최저기온이 섭씨 영하 10도를 밑도는 등 혹한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날씨 속에서도 지명도가 비교적 낮은 강원도 평창 소재 백적산·잠두산·백석산을 종주한다는 산악회의 산행계획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는 것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45명의 등산객을 태운 관광버스(M산악회 주관)가 영동고속도로 장평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31번 국도를 타고 남하하다가 대화(大和)에 이르러 좌회전하여 산행들머리인 평창군 대화면 대화리 던지골에 도착합니다(10:00). 
 

               산행들머리의 펜션과 송어횟집


 


  이러한 산골오지에도 계곡의 언덕에는 아름다운 펜션이 조성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주중에 내린 눈으로 등산로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으나 보행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계곡 위에는 가야할 능선의 마루금이 맑은 하늘아래 선명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한동안 부드럽게 이어지던 등산로는 계곡을 건너 왼쪽 사면으로 연결되더니 오르막을 지그재그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갑니다.


 

                     가야할 능선의 마루금


 


  이날 낮부터 강추위가 풀린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대로 기온이 점점 상승하는지 이마와 등줄기에는 땀이 흥건히 고여 윗도리를  벗어 배낭에 매답니다. 지능선에 오른 후에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해발이 1,300미터가 넘어서인지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던지골을 비롯한 대화면의 모습이 조망되는 지점을 통과하자 드디어 주능선인 마랑치입니다(11:50).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50분이 지났습니다. 산악회 P회장은 눈이 없는 상태에서 주능선까지 약 1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였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날아다니는 준족의 경우이고 보통사람들은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서쪽으로 바라본 산줄기

 

 


  마랑치∼백석산

 

  마랑치에서 왼쪽으로 돌아 북쪽을 향해 걸어갑니다. 잎이 많은 나무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지만 대부분 나무의 눈꽃은 거의 다 지고 말아 오늘도 제대로 된 설화와 상고대는 보지 못할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는 실망합니다.


 

             나무에 남아 있는 눈

 


 

                     능선에서 바라본 동남쪽 조망


  그런데 한 구비를 돌아 왼쪽의 능선으로 오르자 그곳에는 환상적인 눈꽃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을 받아 눈꽃의 잔털은 녹아서 사라지고 없지만 황홀했던 눈꽃의 잔해는 속세의 인간들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하도록 만듭니다.  


 


 


 

                      눈꽃(1)

 


 

                       눈꽃 사이로 보이는 동쪽 조망


 

                        눈꽃(2)


 

                       눈꽃(3)


 


  대지에는 거의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 사방으로 널려있고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꽃 터널이 한 동안 이어지니 오늘 심설 산행을 와서 본전은 건졌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곳을 벗어나자 하산 시까지 이와 같은 아름다운 눈꽃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마랑치에서 백석산까지의 구간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사목 뒤로 보이는 대화면과 금당산 및 거문산 

 

 


  백석산 정상의 조망

 

  눈꽃에 흠뻑 취해 비몽사몽간에 발걸음을 옮기니 넓은 헬기장으로 되어 있는 백석산(白石山, 1,365m)입니다(12:27). 사방팔방으로 트이는 조망이 매우 시원스럽습니다. 특히 강추위로 대기중의 먼지가 깨끗하게 제거되었고 가스도 발생하지 않아 첩첩한 산그리메가 그대로 시야에 들어옵니다.


  북쪽으로는 황병산과 노인봉, 북동쪽으로는 발왕산과 대관령 그리고 동쪽으로는 노추산이 멀리 보이고, 남쪽으로는 중왕산(1,376m)과 가리왕산(1,561m)이 가까이에서 손짓하고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백덕산과 사자산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금당산과 거문산 뒤로 휘닉스파크 스키장너머 태기산이 선명하며, 북서쪽으로는 오대산의 거대한 산줄기가 가물거리고 있습니다.  


 

            백덕산과 사자산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치악산


 

           중앙 뒷편 휘닉스파크 스키장 오른쪽에 보이는 태기산


 

               북서쪽의 오대산 능선


 

               북쪽의 백두대간 능선


 



 



 

             남쪽의 중왕산과 가리왕산(왼쪽 뒤) 


 


  그러나 정상에는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이정표 또는 정상표석이 없습니다. 정상이 헬기장이라 표석을 세우기에 부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한쪽 귀퉁이에 충분히 설치할 수 있을 텐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힘들게 오른 산에 표석이 없으면 매우 섭섭합니다. 관할 행정당국이나 지역산악회에서 등산애호가를 위해 수고를 좀 해 주면 좋겠습니다. 다행이 대구에 있는 한 산악회에서 A4용지에 정상을 표시하고 코팅을 하여 나무에 매달아 놓은 것이 있어 사람들은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못내 아쉽습니다. 


 

             백석산 이정표(바람에 휘날려 균형을 잃었음)

 

 


  백석산∼잠두산

 

  백석산에서 잠두산으로 가는 등산로는 별로 특징이 없는 밋밋한 길입니다. 백석산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곧 이어 부드러운 등산로로 변하는데 해발이 1,000m가 넘어서인지 눈은 많이 쌓여있지만 이미 러셀이 다 되어 있어서 발걸음을 옮기기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들을 자주 만나 홀로 걸어도 외롭지 않아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서쪽의 조망이 트이는 곳을 지나자 산죽밭을 통과합니다.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산죽밭 사이로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어 흰 길 대신 푸른 길을 걸어가노라니 기분이 새로운데 이러한 기분전환도 잠시 곧이어 잠두산(蠶頭山 1,243m)에 도착합니다(13:48).  


 

                        눈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서쪽 조망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쪽 조망


 

                       산죽지대


 


  잠두산 정상의 모습

 

  잠두산은 산의 형상이 누에벌레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는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정상에는 북쪽만이 조망되는데 발왕산, 황병산, 소백산 줄기 등이 잘 보입니다.


  이곳에도 역시 대구의 한 산악회에서 아크릴로 산 이름을 표시한 안내문을 걸어둔 것이 고작입니다.


 

                        잠두산 이정표


 

              잠두산에서 바라본 대관령 능선

 

 


  잠두산∼모릿재

 

  잠두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인데 아무런 보조시설이 없이 순전히 주변의 잡목과 스틱 및 아이젠을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내려갑니다. 어떤 곳은 발을 교차하기도 어려워 다리가 덜덜 떨립니다.   


  이렇게 힘든 공포의 길임에도 스틱과 아이젠도 없이 다람쥐처럼 잘 내려가는 등산객도 눈에 가끔 띄어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또 한 사람은 내리막에서는 무조건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꼭 눈썰매를 타듯이 눈 위를 미끄러져 눈 깜짝할 사이에 저만치 멀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지나간 뒤에는 그나마 발을 디딜 수 있는 흔적이 모두 지워져 버려 뒤를 따라 내려가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입니다.  

 


 

                       눈길

 

 


  급경사 내리막이 여러 차례 반복되더니 드디어 모릿재입니다(15:06). 당초 산악회에서는 모릿재의 북쪽에 위치한 백적산(1,142m)까지 종주산행을 계획하였지만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선두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모두 왼쪽의 차도로 하산토록 조치합니다. 평창군에서 설치해 놓은 "평창의 명산 백적산"이라는 이정표가 자꾸만 유혹하지만 실력이 부족하니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언제 다시 이 산을 답사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후일을 기약합니다.

 

 

               모릿재의 백적산 이정표


 

            모릿재 아래의 펜션


 

             모릿재 터널(자동차 통행이 거의 없음)


  모릿재 터널 앞의 도로로 하산해(15:15)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선두그룹이 하산할 때를 기다립니다. 오늘 산행에 5시간 15분이 소요되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백적산까지 종주를 마치고 모릿재로 되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15명입니다. 이들의 강인한 체력을 부러워하면서 버스가 출발할 때를 조용히 기다리며 백석산 남쪽 능선에서 보았던 그림 같은 눈꽃을 다시금 머리에 떠올려 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