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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북악산 정상 공터에 자리한 정상석, 북한산 능선(보현봉-족두리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왕산 자락길()악산<종일 비()예보에도 틈새 4시간을 애용했다>
2190023079호          2023-08-22()

자리한 곳  서울 서대문종로, 성북,
지나온 길  경복궁역-황학정-인왕산-창의문-백악산-청운대-숙정문-말바위-와룡공원-혜화문-한성대입구(삼선교)역
거리및시간: 3시간07(12:28~15:35)        ※ 도상거리    :  약 8.5km   <보행수(步行數)    :  17,295>
함께한 이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종일 흐리고 산발적 소나기 <해 뜸 05:46    해 짐 19:16   /   최저 25,   최고 29>

종일 흐리고 비 예보에 풀죽다, 정오부터 16시까지 갬 예보에 배낭 꾸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루종일 비가 오겠고 곳에 따라서는 많은 비가 예상된다는 기상정보를 접하고도 무시하고 내키는대로 행할 수는 없는 일이라 참고하지 않을 수 없기에 오늘 일정이나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는데 하늘에는 비구름이 가득해 어두컴컴한 분위기라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긍정의 에너지가 빠져나가 버린다.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게으른 동작으로 빗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식탁에 앉아 조반을 대충 챙겨먹고 구석에 밀쳐둔 책을 끌어당겨 얼마의 시간을 읽었는데 갑자기 집중력이 떨어지고 따분해져 고개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그사이 비가 그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날씨누리 사이트에 접속 시간대별 동내예보를 확인해보니 정오부터 4시까지는 우산표시 대신에 구름 많다는 예보에 조금은 들뜬 마음에 무작정 식수와 카메라 우중산행에 대비해서 튼튼한 장우산을 골라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서며 달력을 들려다보니 오늘이 음력으로 행운의 숫자인 7자가 겹치는 77칠석)명절이다.(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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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바라본 서울 경찰청,  둘레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산-
칠석(七夕)   은하수 동쪽에 있는 견우와 서쪽에 있는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오작교(烏鵲橋)에서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라고 전하며 민간에서는 칠석명절 음식으로 밀국수밀전병호박부침백설기 등을 만들어 먹었다처녀들은 견우와 직녀 두 별을 보고 절하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기원하고많은 사람이 이날 밤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삼아 시를 짓기도 했던 날짜는 음력 7월 7일이다.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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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인왕산 숲길 지도와 친환경으로 정비된 숲길 풍경-
인왕산(仁王山)   : 서울시를 분지로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중 하나이다조선이 건국되고 도성(都城)을 세울 때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던 조선조의 명산이다산의 높이 338.2m이며 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인왕사(仁王寺)라는 불교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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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변경된 한양도성 개.폐 안내문, 1741년 세워진 창의문 풍경-
창의문(彰義門)   :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小門중의 하나로 서북쪽에 있는 문이다양주군과 의주군으로 향하던 관문으로근처 계곡의 이름을 따서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북소문(北小門)이라는 속칭이 있으나이는 근대에 와서야 불린 이름이다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현재의 문은 1741년에 세운 것으로,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2015년 12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되었다왕들이 경복궁에 들어갈 때 쓰는 문이다어느 한 승려가 선조에게 이 문을 열고 사람들이 마구 왕래하면 이 나라가 망한다고 하자 창의문을 폐쇄해버렸다그러나 이후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문을 여는 게 아니라 아예 박살내고 도성에 들어왔고 이를 빌미로 후에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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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안내소에 걸린 북악산 탐방안내도,  발칸포가 설치됐었던 백악산 정상-
북악산(北岳山)   : 서울 경복궁(景福宮북쪽 높이 342m 산이다.
고려 숙종 때 북악산 아래는 남쪽의 수도인 남경(南京)의 궁궐이 있었던 자리였으며 당시에는 북악산을 면악이라 기록하여 전한다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북악산을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불렀는데 백악산신(白岳山神)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게 된 이름이다이후 도성(都城)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에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북악산(北岳山)이라고 불렀다그리고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산을 남산(南山)이라고 불렀다북악산의 높이는 342m이며 남쪽으로 완만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모양은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아난 형상으로 주변의 산에 비해 도드라져 보인다고려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의 신망이 두터웠던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왕가의 기운을 받은 명산으로 칭송되었으며 그 아래 조선왕조의 궁궐을 세우고 도읍으로 정하게 되었다조선왕조가 세워지자 산정부에는 백악산신을 모시는 신사가 만들어졌다. 1394(태조 4)에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축성하였으며 대한민국에 들어서 대통령의 집무실인 경무대(景武臺)도 이곳에 위치했다현재도 대통령의 집무실인 청와대(靑瓦臺)가 북악산 아래 위치하고 있다기반암은 화강암으로인왕산(仁王山낙산(駱山남산(南山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이들 산지 능선을 연결한 옛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에는 서울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일명 紫霞門)이 남아 있으며 부암동 뒤쪽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계곡이 있다북악산은 예전부터 소나무가 울창한 경승지를 이루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을 찾아 탁족회(濯足會)를 자주 열었던 곳이다하지만 이후 소나무가 벌채로 사라지고 현재는 참나무 류가 많다북악산 산정을 내려와 남쪽 기슭에 청와대가 있다창의문에서부터 정릉(貞陵입구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가 북악산 주봉 북쪽 사면을 끼고 돌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달리고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三淸)공원이 있다.             -두산백과-

img.jpg-1.21사태(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시도)때 교전 중에 발생했던 총탄 흔적-
1.21사태   북한은 1968년 특수요원 31명을 침투시켜 청와대 기습을 시도했습니다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정부 요인을 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러나 우리 국군과 경찰은 합동작전을 펼쳐 즉시 이들을 소탕하였으며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었고 고교생 교련(한국전쟁의 학도병 징발을 모체로 1.21사태를 계기로 유사시 고등학생 병력 동원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사교육으로 69년 5대도시, 70년 전국으로 확대 실시)방위력 증강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편집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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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서울의 진산인 북한산 백운대를 본뜬 청운대, 조선시대엔 통행을 금했던 숙정문-
숙정문(肅靖門)   : 본래 북대문(北大門)이라고도 하였다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白岳山동쪽 고개에 위치하였다. 1395(태조 4)에 숙청문(肅淸門)이 건립되었으나 1413(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높은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길이 매우 험하고 성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동쪽으로 성북동 골짜기를 따라 내려와 동소문(東小門 혜화문밖 경원가도로 나오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한양에 출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소문을 통과했지 숙정문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한양출입에 훨씬 빠르고 편한 동소문을 주로 이용했다따라서 숙정문 폐쇄로 통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영구히 닫아 두었다다만 한재(旱災)가 심할 때에 이 문을 열고 남문인 숭례문(崇禮門南大門)을 닫는 풍속이 있었다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북은 음()이며 남은 양()이라고 한다한재 때 양을 억제하고 음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으로 1416(태종 16)에 처음 시작하였다숙청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俗說)도 전하고 있음은 음방(陰方여자의 방위)에 있는 까닭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1504(연산군 10)에 조금 동쪽으로 옮겨 세웠는데 이 때 석문(石門)만 세우고 문루(門樓)는 건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76년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시에서 백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할 때 태조 창건 당시의 제도에 의해 문루를 건축하고 肅靖門(숙정문)’이라는 편액을 걸었다어느 때부터 무슨 이유로 숙정문으로 개칭했는지 알 수 없으나 1523(중종 18) 중종실록의 기사 이후 역대 각 실록에 모두 숙정문이라 기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한편 1531(중종 26) 북정문(北靖門), 1587(선조 20) 숙정문(肅靜門)으로도 표기된 것을 볼 때,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숙정문(肅靖門)’으로 명명하지 않았나 추측된다다락 없는 암문(暗門)인 것이 특색이다항상 닫혀 있었기 때문에 흔히 숙정문 대신에 창의문을 북문이라고 하였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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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개방된 혜화문, 한성대역 5번 출구 성북동의 유래-
인왕산 둘레길과 백악산(白岳山)행을 가볍게 마감한다.
갑작스런 즉흥적인 행동으로 막상 집을 나섰으나 4시간이란 한정된 시간에 어디가 알맞을까를 고민하다 대통령집무실과 관저가 옮겨갔으니 어떻게 변했는지 뉸으로 직법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의 발동으로 백악산(白岳山)으로 낙점하고 응암역(6호선)에서 불광역으로 이동 지하철3호선으로 환승 경복궁역에서 하차, 창의문으로 직행하기 보다는 산행거리를 조금이라도 늘려보자는 생각에 사직단으로 방향을 잡고 서울교육청 어린이도서관황학정(조선시대 무인들의 궁술 수련장), 인왕산숲길수성동계곡인왕산둘레길청운동공원윤동주문학관창의문에서 북악산시작점 안내소를 출발돌고래쉼터백암쉼터백악마루()악산(발칸포가 설치됐다 다른 곳으로 옮겨진)장상 공터에 올라서니 예전과는 미세하게 달라진 변화지만 느낌이 판이해 싱거웠으나, 1.21사태 당시 교전흔적이 남아있는 교육용 소나무 앞에선 독재자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짐에서 벗어나려고 발걸음을 옮겨청운대한양도성 곡장에서 바라본 풍경과 숙정문 주변 멋진 소나무 숲을 감상하느라업그레이드된 기분이, 텅 비어있는  말바위안내소에 내려서는 아무도 없어서인지 스산한 풍경인데 하늘에서는 비를 부르는 천둥소리까지 요란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져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배낭에서 장우산을 분리해 지팡이 삼고 대비했는데, 비는 더 내리지 않아 편하게 와룡공원에 내려서 한양도성 따라 섬처럼 도로가운데 떠 있는 혜화문을 돌아보는데 비가 내리니 이쯤에서 산행을 접으라는 신호라고 플이하고 한성대(4호선)역에서 삼각지역으로 이동해 6호선으로 환승 응암역에서 하차하려 했지만, 하루목표 걸음(20,000)에 못미처 한정거장 지난 역촌역에서 내려 귀갓길 응암역을 지날 때까지 약하게 지나는 비가 고작이라 산행에 불편함이 없었는데, 자택 200m전방에서 강하게 쏟아져 비를 만나 우산을 받쳐 들고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른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2023-08-23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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