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22일 월요일 오후 10:20:47


춘천분지 산행 - 그 시작과 마무리

춘천은 사방이 산으로 뺑 둘러싸인 분지이다.  동으로 대룡산에서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금병산, 봉화-검봉산이 있고 강을 건너서 삼악산에서 시작해서 석파령, 계관산. 북배산, 가덕산. 삿갓봉 으로 서면을 휘돌아 춘천댐에서 머물던 산들은 다시 오봉산. 마적산을 지나 소양댐을 건너서는 구봉산과 명봉을 거쳐 다시 대룡산으로 되돌아 온다.

춘천에 태어나서 동서남북으로 늘 우리의 눈을 막아서던 그래서 때론 답답함으로 또 어느때는 아늑함으로 다가 서던 그산들, 강건너 서면쪽에 산들은 그 이름을 안지도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가까이 가본적도 없이 그져 석양이 멋드러지게 드리우던 강건너 이름없는 그 많은 산들 중 하나였었었다.

주위 산들을 하나하나 오르면서도 오늘에서야 서면쪽 산을 일주하여 마무리 하게 되었으며, 또 이걸 시작으로 다시한번 검봉에서 오봉까지 휘돌아 보는 새로운 시작을 하고싶다.  


힘들 다는 애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초행길이고 해서 먼저 들머리 삿갓봉을 답사했었고, 저번주는 삼악산을 넘어 석파령에서 덕두원으로 내려와서 날머리 답사도 했었다. 이젠 몸통만 남았다. 대룡산 보다 어찌 보면 더 길고 지루한 산길이 될것 같았다. 집에서 동으로 눈을 돌려 대룡산을 쳐다보고 서쪽으로 북배산을 바라보면 더 멀리 있음에도 능선은 더 길어 보인다. 아내에게 이번주엔 북배산이라고 애기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일찍 집을 나서자고 했다. 해서 미리 배낭을 꾸리고 차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여섯시에는 집을 나서기로 한다.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여섯시는 벌써 넘었다. 부지런을 떨어서 06:30 집을 나서, 택시를 타고 남부시장으로 가서 춘천댐행 버스를 기다린다.  


07:40 시내 버스

거의 텅빈 버스 그나마 강건너서는 우리 부부뿐이다. 댐에서 내리니 08:10. 계획했던 시간표 하고는 벌써 시간 반 정도 늦어지고 있다. 춘천댐 매운탕 골짜기를 지난다. 가끔 개들만이 지나는 우릴 보고 요란하다. 혹 입산통제하러 나올까 싶어 조용조용 살짜기 골목을 통과, 은혜기도원을 지나고 첫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100여 미터를 올라 시야가 가려진 곳에서 첫 휴식겸 장비를 고쳐맨다. 


08:40 삿갓봉을 향해서

모든 길은 처음은 신선하지만 느낌은 멀다. 두번째 길은 익숙해져 가깝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첫 등산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삿갓봉에 오른다. 산불방지 감시카메라가 빙빙 돌아간다. 혹시나 해서 정상 바로 밑을 비껴서 통과해서 조금 아래쪽에서 쉬면서 노정을 헤아려 본다.  


10:20 가덕산을 비껴 놓치다.

삿갓봉에서 부터는 임도가 시원하다. 잠시 내려서니 수렵장 철망이 너머져 있고 철문은 닫혀있다. 그 옆을 지나 대로를 따라 온것이 잘못이다. 철망을 따라 산을 타고 계속갔었어야만 가덕산을 갈수 있을것을 길따라 가면서 길머리를 찾는데 실패했다. 끝이 없을 듯한 임도를 트래킹 하는셈 치고는 그냥 걷는다 . 우선은 내리막이고 시원하게 뚫린 차도를 따라가니 힘이 안들어 좋다. 길가에 두름이 많다. 이상하게도 길가 나무들 밑등이 벗겨져 있고 길바닥에 토끼똥 같은게 지천으로 깔려있다. 웬일일까 싶었는데 잠시후 보니 염소 네마리가 범인이다. 어찌나 재빠른지 모퉁이 하나를 돌아서니 시야에서 사라져 도망가고 없다. 퇴골 내리막 삼거리를 지나 내쳐 진행한다. 길이 좀 나빠지다 싶더니만 끝이다. 2003년 임도 공사끝.

갑자기 막막해진다. 아내하고 의논하고는 길없는 산 능선을 향해 오르기로 한다. 앞뒤를 재보고는 왼쪽산에 붙어 오른다. 희미한 등로가 간간히 이어진다. 힘들게 능선에 오르고 보니 말로만 듣던 방화선 능선이다. 고속도록 같기도 하고. 빡빡머리 깍고 학교다니던 시절에 이발소 첫 바리깡을 들이대고 한 줄 밀어낸 모습과 흡사하다. 북쪽을 보니 가덕산이 손에 잡힐듯 하고 남서 방향으로는 북배산이 보인다. 멀리 한무리 사람들이 가덕에서 내려온다. 퇴골고개를 너머 북배산을 향해 오른다. 힘들어도 희망이 저기 보이니 오를 만하다. 


13:30 북배산 출발

계획서 보다 두 시간이 늦다. 등산이 끝날때까지 이 두시간을 계속된다. 컵라면에 밥말아서는 맛있는 식사를 한다. 양주도 딱 한모금 하고, 커피를 마시고는 , 혹시나 해서 살짝 감춰 가지고온 한 개피 담배로 깔끔한 마무리까지 하고는 출발.(이날 피치못하게 하루종일 금연했다.). 계관산이 멀리 보인다. 산에서는 가까운곳은 제 색갈이 나온다. 지금 쯤은 갈색톤, 하지만 먼산은 청색끼를 머금은 회색의 농담으로 원근을 알려준다. 계관산이 계속해서 청색톤이다.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 지쳐갈 무렵 갑자기 산이 갈색끼로 다가선다. 유일하게 따라오던 6분 등산팀은 홍적고개에서 몽덕-가덕-북배-계관에서 학산한단다. 우린 삼악산을 너머 등선폭포로 간다니 젊은이 좋다고, 보기 좋다고 하며 허허롭게 웃는다. 내 나이도 오십이면 적은 나이는 아니언만 어찌해서 가는 곳마다 아직은 애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시원섭섭 묘한 기분이다. 머리 염색을 확 때려치우고 백발선생으로 바꿀까? 암튼 계과산 정상에서 찰깍하고는 좀 내려와 배낭을 벗고 쉰다. 계속되는 정상길에 샘 한군데가 없다. 가져온 물은 2리터 생수 한통뿐이다. 아내가 아침에 챙긴다고 한 물통 두 개를 빠트렸다. 목마름을 참고 표시 내지 않는다. 아내도 아껴먹는듯 하다. 


15:20 계관산 출발

여기서 삼악산은 딴 동네 같이 아주 멀리 보인다. 걱정하는 아내보그는 석파령에 가서 결정하자고 한다. 덕두원이던 명월리던 삼악산을 넘던 그때 가보자고 한다. 내심은 삼악산을 넘고 싶지만 아내가 많이 힘들어한다. 계속되는 봉우리들이 나도 지치게 만든다. 이제나 저제나 오르면 또 내리고 또 오르고 또 내리고 끝날것 같지 않다. 언제 끝날런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이 있으면 참을  수 있지만, 마음이 절망이면 모는게 끝장난다. 아내가 그러하다. 다리가 풀리고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댄다. 내심 큰일이다 싶다. 이 산중에 해는 뉘엿거리고 탈진이라도 한다면 어찌할꼬... 쉬엄쉬엄 진행한다. 그래도 길은 끝이 없다. 어디 이정표도 하나 없으니 힘은 더든다. 지리산 산행때 보다도 더 힘이 든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게다. 제일로 힘들고 맥빠지는 구간을 겨우 지나쳐 석파령에 닿으니 아내가 다시 힘이 솟는듯 하다.  막판 1미터를 남기곤 너머진다. 무슨 일이던지 시작과 끝을 조심해야 되는데 다행이 부상은 없다.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는 배낭을 벗고 휴식하면서 갈길을 결정한다. 


17:30 삼악산을 넘기로 결정

세상에 17:30에 삼악산을 등산하는 사람이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여기서 덕두원으로 가는 것도 쉽지 않다. 19:10 막차를 놓친다면 콜 택시 말고는 집에 갈 방법도 없다. 무엇보다 청운봉이 코앞에 보인다. 한시간 남짓 오르면 될듯하다. 아내가 산을 한번 쳐다보더니만 삼악산으로 가잔다. 봉우리 3개가 눈에 들어온다. 첫봉우리를 올라선다. 바로 일주일전 내려왔던 길이 선하다. 요번주에 가면 생강나무 꽃이 만발할줄 알았는데 여전히 몽우리만 노랗게 터질듯 부풀어 있다. 잠시 수평 이동후 또다시 두번째 가파른 봉우리를 올라선다. 이젠 거의 다온듯 하다. 내리막후 마지막 오르막은 희망이 힘이 된듯 어느새 정상이다. 제일 힘들줄 알았던게 제일로 수월하다. 사람의 몸과 맘은 희한해서 맘이 이렇게 몸을 쉽게한다. 아직 날은 그럭저럭 훤하다. 저아래 흥국사 모습이 내리 보인다. 성터를 지나 흥극사가 무지하게 반갑다. 참았던 목마름을 가득하니 두 대접의 물을 거푸 마신다. 아내도 마찬가지 두 대접 그득한 물이 뱃속이 스펀지인듯 어디론가 순식간에 빨려 사라지는 느낌이 실감된다. 전혀 출렁이지도 배부르지도 안핟. 물통에 그득하니 물을 채워가지고는 등선폭포 계곡으로 내려선다. 이젠 날은 어두어 길이 안보인다. 헤드랜턴을 각자 머리에 키고는 내려가기 시작한다. 돌길 40여분을 내려서는 길이 꽤나 길고 지루하다. 마지막 터널을 빠지듯한 'P에서는 세상이 휙달라지며 인간 속세가 화려하다. 깜깜한 밤길에서 계고 끄트머리에 불그레한 나트륨 가로등불에 늘어선 상가들의 실루엣이 색 바랜 흑백사진 갈색통으로 반짝인다.  물은 실컷 해결했으니 제일로 반가운게 담배다. 근데 이런 제길헐 모두 문닫고 사라지고는 담배를 살수도 없다. 기왕 참은것 또 참자. 오늘은 계속 참는게 일이다. 길을 건너 버스정류장 스틱을 정리하고 배낭을 정돈하는데 버스가 온다. 시외버스 터미날 하자해서 택시로 석사동 행, 집에 들리지 않고 이내 시민닭갈비로 아내를 들여 보내곤 난 배낭을 맨체로 슈퍼로 가서는 담배를 사서 꺼내물고 왔다. 담배맛이 뒥인다. 뭐든 참았다 하면 보통땐 풍부해서 몰랐던 맛들이 새삼스러운 법이다. 음식을 시켜놓고는 아내가 오늘은 맥주한병 마시겠다고 한다. 평소  술 안하던 사람이 워낙에 목마름이 심했던 듯, 내가 한잔을 거들긴 했지만 이내 다 마셔버린다. 나도 안주해서 술 한병울 후딱 마신다. 서로 참 장하다고 칭찬을 해준다. 근 열두시간 가까운 산행을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마쳤다는 뿌듯한 마음과 아직은 건강한 다리를 가졌다는 안심을 하면서, 이젠 무리한 산행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내심 다짐을 한다.

오늘 산행이  춘천분지산행의 그 시작과 마무리로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