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치악산 종주기

-희망의  불빛을 향하여!-


 

1. 산행일 : 2004. 7. 11 - 7. 12 (흐린후 비)

2. 동행인 : 성 철 중(56), 김영식(45), 장기송(56)

3. 등산코스 : 가리파재-시명봉-남대봉-향로봉-비로봉-천지봉-진달래능선-수래너미재-매화산-전재


 

4. 구간별 소요시간 : 총15시간30분

   ♢가리파재(치악산 휴게소) 출발 : 06:00

   ♢자비사 : 06:10

   ♢망경사 : 06:20

   ♢송전탑 : 06:44

   ♢1088m봉 : 07:50

   ♢시명봉(1187m) : 08:30

   ♢영원사,상원사 갈림길: 09:10

   ♢남대봉(1181.5m) :09:30(아침식사후 10:00출발)

   ♢향로봉(1042.9m) : 11:20

   ♢곧은치(860m) : 11:40

   ♢비로봉, 입석사 갈림길 : 13:25

   ♢샘터 : 14:00 (점심식사후 14:50출발)

   ♢비로봉(1288m) : 15:10

   ♢배너미재 : 16:20

   ♢천지봉(1086.5m) 부근에서 길을 잃음 : 18:00

   ♢폐민가 발견 : 21:30


 

5. 산행후기

국립공원 치악산에 대한 정통종주 산행을 하기위하여 원주시 신림면 가리파재에서 횡성군 안흥면 전재 까지 지도상으로 13시간(약 25Km)이상 소요되는 가장 긴 코스를 선택하였다.


 

새벽5시30분 우리 아파트 앞에서 김 영식(백두대간)과 장 기송(심마니)을 만나 승용차로 신림면 가리파재에 있는 치악 휴게소 주차장에 5시50분에 도착

하여 승용차는 집사람 편에 돌려보내고 6시 정각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입산금지 표지판을 지나면서 처음부터 등산로가 확실하지 않다.

가리파재에서 남대봉구간은 비 지정 등산로이자 초행길이라 희미한 등산로를 찾아 조심하며 진행한다. 산비탈을 우회하면서 논둑길을 건너고 왼쪽에 자비사를 지나고,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측 언덕에 있는 만경사 입구에 이른다.

만경사를 지나면서 우측에 입산금지 표지판 (위반시 과태료 50만원부과) 이 서있지만 그대로 지나친다.

등산로가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본격적으로 가파른 산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올라서니 새벽안개와 서늘한 바람에 날씨도 적당히 흐리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산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송전탑을 지나 다시 작은 암봉 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구간을 우회하면서 오르면 1088m봉이 나온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본격적으로 시명봉을 향한 가파른 산행이 이어지는데 오늘의 고단한 산행을 예고하는 듯 하다.

깔닥 구간을 지나면서 윗 성남 절골 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면서 곧바로 시명봉 이다.

시명봉의 좁은 바위에서 주변을 조망하니, 좌측 아래쪽으로 영원사. 그 위쪽으로 영원산성, 우측으로 상원사, 맞은편에 남대봉이 아담하게 보인다.


 

힘들게 오른 시명봉 에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설치한 표지판은 없고,

충북산악회에서 제작 설치한 <시명봉, 해발 1187m> 표지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오니 능선길이 이어지며 몇해전 남대봉 에서 영원사로 내려갈 때 와본 4거리 지점이다. 이정표와 표지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구간부터 관리공단에서 정식등산로로 관리하는 것 같다.

등산복과 등산장비를 잘 갖춘 아름다운 중년부부가 안내표지판을 보면서 영원사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를 물어본다.


 

이지점부터는 여러번 등산경험이 있어서 마음 편하게 조금 진행하니 남대봉에 도착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일행 중 장기송이 오른쪽 무릅 위 대퇴부에 경련이 온다는 것이다. 미리 준비한 에어파스와 맨소래담 을 바르고 마사지를 한  다음 휴식을 하면서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10시에 남대봉을 출발하여 향로봉을 향한다. 곧바로 나타나는 개미목은 산행의 오르내림이 심하다.  개미목을 지나면서 치악산 종주산행의 백미인   참나무 활엽수림 능선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엉겅퀴, 깽깽이풀, 원추리, 하늘말나리. 동자꽃등 야생화의 색깔이 너무도 선명하다.

15년전 이 구간을 지날 때 는 좌측 아래쪽으로 원주시내가 선명히 보였는데, 지금은 나무들도 크고, 날씨도 흐려서 원주시내는 볼 수 없지만, 산림욕과 함께 등산하기에는 그만이다.


 

치악평전 을 지나고 편하게 향로봉에 이르니 반대방향 으로 구간 종주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마도 지도와 무전기를 착용한 리더가 있는 것으로 보아 타 지역 산악회에서 단체산행을 하는 모양이다.


 

향로봉을 지나 조금 진행하면 원주시가지 전망대와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서  국형사 로 갈라지는 3거리 지점이다.

다른 등산객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생각 없이 내리막 급경사길 을 10분정도 갔을까? 아뿔사! 주변을 살펴보니 종주능선길이 아니고 국형사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었다.


 

오던 길을 반대로 헉헉대며 올라와서 먼저 간 일행을 따라잡기 까지는    곧은치를 지나고 헬기장을 지나 원통재 밑에서 40분여 만에 만날 수 있었다.

조금더 진행하다가 원통재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있는데, 직장 후배인 김경원 과 이철 이 우리와 반대쪽으로 산행도중에 만났다.

등산로에서 직장 동료를 만나니 특별한 반가움에다가,  헐레벌떡 따라오느라 목이 마르던 차에 이철 이 건네주는 캔 맥주 한 컵이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원통재를 지나 입석사 에서 올라오는 갈림길까지 능선길 은 높낮이가 비교적 완만하고 걷기에 편하다. 입석사 갈림길에서 행동식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음 비로봉 남쪽아래 지점에 있는 샘터에 도착하니 오후 2시.

계획보다는 1시간정도 늦은 시간이다.

오늘의 종주 산행길 에는 물이 비교적 없어서 물도 보충하고, 점심식사도 이곳에서 하기로 하였다. 치악산 비로봉정상 바로아래 커다란 바위 밑 에서  흐르는 샘물은 예전에 비하여 아주 깨끗해지고, 수량도 풍부하고, 물맛도 좋은 것 같다.


 

점심 식사 후 장기송이 무릅과 발이 아픈 듯 등산화를 벗고 발을 찬물에  씻고 출발하니 오후 2시 50분. 계획된 시간보다 자꾸만 늦어지는 것을    느끼지만 먼저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시 후 비로봉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관리요원 복장을 한 사람에게 천지봉 으로 가는 등산길을 물으니 그곳은 비 지정 등산로라며 시큰둥 하다.


 

비로봉 정상에서 급경사 사면으로 한참을 내려오니 능선길이 이어지고 좌측으로 세렴폭포 가는 길 이 나온다.

계속 직진하여 배너미재를 향하는 길은 가끔 표지기가 걸려 있을 뿐 이정표나 안내 표지판이 전혀 없어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일행 중 김 영식이 백두대간 종주 때 사용하던 나침판으로 천지봉 가는 방향을 정하여 지도위에 놓고 가늠해 보지만 현 위치가 정확치 않아 방향만 잡아서 앞으로 나갈 뿐이다.


 

드디어 천지봉 이라 생각되는 삼거리 지점에 도착하니 여러 개의 표지기가 걸려있다. 진달래 능선길 을 지나 수래너미재 방향을 우측으로 선택하여   능선길 을 계속 내려왔다.

능선길 은 맞는데, 진달래 나무는 없고 키가 큰 철쭉 나무가 많은걸 로 보아 5월경에는 철쭉꽃이 장관을 이룰듯하다. 표지기는 가끔 보이는데 등산길은 점점 흐릿해지고 드디어 등산길이 없어진다. 등산길을 잘못 선택한 듯 하다.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다시 오던 길을 돌아서 등산길을 찾아서 올라온다.

갈림길에서 왼쪽방향으로 확신하며 계속 능선길로 진행한다. 다시 등산길이 없어지며 조난사고임을 직감한다. 이때가 오후 6시.

오전 6시에 등산을 시작하여 12시간이 지나 체력은 소진되고 다리는 천근 만근이다. 

나는 천지봉 쪽으로 다시 올라가서 세렴폭포 쪽으로 탈출하자고 제안해 보지만 산행 경험이 많은 장 기송(심마니)과 백두대간을 3년여에 걸쳐 종주한  김 영식은 체력도 많이 소진되고 시간도 너무 많이 소요되므로 길이 없더라도 수레너미재 방향으로 진행하자고 한다.


 

조금씩 흣날리던 빗방울이 점점커지고 제법 계곡물소리도 크게 들린다.

날이 어두워 각자 가지고온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길을 찾아보지만 찾을 수가 없고 깊은 숲속에서 나뭇가지에 걸려 앞으로 전진 할 수도 없다.

능선과 산비탈을 오르내리기를 여러번. 비에 젖은 몸은 탈진되고 다리는   움직이지 못하고 숨이 턱턱 막힌다.


 

물과 초콜렛으로 허기를 달래보나 심리적 공황상태를 벗어날 길이 없다.

휴대폰은 물론 터지지 않고 가족들의 걱정과 내일아침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계곡 아래쪽에서 한 시간여를 헤매고 있을 때 멀리서 작은 희망의 불빛이 보인다.  살았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시지는 않는구나!


 

작은 불빛을 향하여 계속 진행하지만 나뭇가지에 걸리고 발이 빠지고 진척이 잘 안된다. 30여분쯤 내려왔을까? 넓은 묵밭이 보이고 묵밭을 지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일자형 폐가(빈집)가 보인다. 빈방에는 사용하던 비료포대 몇 개와 두루마리 휴지가 걸려 있는 등 사람이 사용하던 흔적이 보인다.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가로등인 듯 한 불빛도 가까워진 것 같다. 


 

여기서 또 의견이 엇갈린다. 나는 계속 진행하여 민가에서 숙박을 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원주에서 콜택시라도 부르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더 이상 탈진하여 진행 할 수도 없고 비도 피할 수 있으니 여기서 저녁을 먹고 쉬었다가 내일 새벽 날이 새면 길도 찾을 수 있을 테니 쉬고 가자는 것이다.

나또한 지치고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어 빈집에서 하룻밤을 쉬기로 했다.


 

마루위에서 비에 젖은 옷을 벗고 배낭에서 남은 비상식량을 모두 꺼내 라면을 끓여먹고, 떡. 과자 등 비상식량을 모두 먹고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각자 가족들에게 핸드폰으로 안심을 시키고 평생 못 잊을 추억이라며 화기애애한 술잔을 기울인다.


 

 강원도 산간지역에 호우경보라도 내린 듯 주룩 주룩 내리는 빗소리는 점점 커지고 날씨는 추운데 불을 피워서 몸을 덥힐만한 나무 조각 하나 없다.


 

두 사람은 나름대로 비상상황에 대비한 듯 속옷과 양말을 갈아입고 우비로 몸을 감싸는데 나는 비에 젖은 칠부 등산바지에 티셔츠와 여름용 윈드 자켓이 전부다. 양말만 벗어서 물을 짜내고 옷은 입은 채로 체온으로 말려야   하다니!


 

새벽 4시까지 6시간정도를 추위와 싸우면서 버텨야 하는데 체온은 점점 떨어지고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벗은 발은 비닐봉지로 감싸고 두루마리 휴지와 비상용 압박붕대로  드러난 종아리를 감고 누워서 잠을 청하니 자리도 불편하고 추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새벽 한시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랜턴을 켜고, 주변을 살펴보니 꽤 넓은 농사용 폐비닐이 있는 게 아닌가!  그 비닐을 이불삼아  세명이 함께 덥고 깔고 하니 어느 정도 체온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한결      낮지만 세찬 빗소리에 잠은 오지 않는다.

가족이 있는 따뜻한 잠자리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우리는 평소에 그런 고마움을 잊고 산다.  매사에 ..........


 

새벽4시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날이 훤해 지기를 기다렸다가 4시50분에   비를 맞으며, 길을 찾아서 민가를 향하여,  따뜻한 우리의 가족이 있는 곳을 향하여!  우리의 희망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6. 반성할 점

 ♢체력에 비하여 너무 무리한 산행계획이었고, 정보가 부족했다.

   -매화산은 치악산 종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이 있음.

 ♢거리 예측 등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은 절대금물


 


 

7. 잘된 결정과  실패한 경험

   한 성공한 기업가가 성공요인에 대한 질문에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잘된 결정 때문에” 였다.

  “어떻게 잘된 결정을 내렸는가?” 라고 묻자 “경험을 통해서”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경험은 어떻게 얻었는가? ” 라고 묻자 “실패한 경험을 통해     서” 라고 대답했다.


 


 


 

                                    2004.  7.  14     성    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