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04년 8월 8일
목적산 : 지리산 영신봉(1651.9m), 칠선봉(1576m), 덕평봉(1521.9m)
산행코스 : 거림 → 세석산장 → 영신봉 →1556봉 →칠선봉 →덕평봉 →벽소령 →의신마을(8시간 30분 소요)
일행 : 새한솔 산악회 회원 30명
찾아가는길 : 부산 교대앞(07:00) →남해고속도로(진주) →대전. 통영고속도로(단성) →20번국도(시천면) →예치터널 지나 거림(10:15)



오늘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두류산, 방장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지리산을 찾아 나섰다.
지리산은 산 자체가 너무나 크고 방대하여 전체를 볼 수 없어 주능의 가운데 부분에 있는 - 종주하지 않고는 맛볼 수 없는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을 찾아 올랐다.


먼저 지리산을 간단히 소개하면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구월산(이상 4개산은 북한지역에 소재)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웅장한 산이고

"특이하게 슬기롭고 지혜로운 산"을 뜻하며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서 놀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 등산 애호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부터 칭송이 대단하며 많은 탐방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산이다.



어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귀뚜라미가 운다는 입추지만 내일이 말복인지라 매우 덥고 산행하기에는 힘이든 날씨였다.


10:20 산행의 들머리인 윗거림마을에서 공터로 올라서 매표소를 지나면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주위는 피서객차량 주차공간이 없었다.

 우측으로 길상암쪽으로 들어가는 도장골이 오라고 손짓한다.

 길상암 넓은 마당에서는 도장골로 못가게 지키고 있다.

조용하고 개방되지 않은 도장골로 들어서면 쌍폭포(일명 밀금폭포)가 있고

제1, 제2의 용소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구경할 수 있고

때묻지 않은 상태로 아름다움을 장식하고 있는 와룡폭포도 구경할 수 있을 것인데

길상암 스님들이 막고 있으니 도리없이 좌측거림골로 따라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거림은 이름 그대로 거목들이 가득찼을 이일대의 임상은 지금은 볼품없이 변해 있다.
거림골 계곡을 좌측으로 하고 우측으로 편안한 길을 따라 오르니 따가운 햇볕은 숲속 오솔길이라 그리고 경사도 밋밋한 편이고

산죽이 길가에서 같이하고 있어 지리산을 오르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


11:20 허리께 차는 산죽밭을 지나다가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남부능선 중간의 한벗샘(일명 박단샘)으로 오르는 희미한 길이 계곡 건너편에 보인다.

계속해서 산죽숲을 따라 더 오르니

11:30 첫번째 다리인 천팔교에 도착했다.

 계곡변에 휴식을 취하기 적당한 공간에서 휴식을 했다.

 울퉁불퉁한 돌발길을 거슬러 오르니 거림골의 중간지점쯤 되는 해발 1050m갈림길인 북해도 다리에

 11:45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1050m갈림길에는 촛대봉에서 흘러내려오는 작은 계류도 있고 좌측(서쪽) 계류를 따라 음양수샘 밑으로 등반로가 나있다.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편하던 길이 이어졌는데 급경사가 이어진다.

한동안 전개되는 경사길을 오를때 많은 땀이 흘러내린다.

가파른 고개길을 오르는데 주위는 산죽이 항상 같이 하고 있어 더위를 감소시키고 있었다.

평편한 능선길이 전개되는데 좌측으로 남부능선이 빤히 보이고 거림골 상류도 내려다 보이는 경관 좋은길이 열린다.
경사가 한풀 꺽인 길을 얼마간 오르니 길가에 샘이 하나 있어 다시 목을 적신다.


산죽과 구상나무가 울창한 길을 따라 오르니 13:20 드디어 세석산장이 나타난다.

 좌측으로는 대성골로 하산하는 길이 나타난다. 조금 더 올라 세석산장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동쪽(오른쪽)으로 여인이 촛불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의 촛대봉이 우뚝 버티고 있다. 그앞으로 철쭉나무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촛대봉정상은 운해가 덮혀있다.


14:00 영신봉에 도착했다. 주위는 산오리풀 꽃밭 천국이다.

영신봉은 그 유명한 대성골의 발원지이며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다.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은 경남지방을 남동쪽으로 흘러내리며 마산 무학산을 거쳐

 김해 신어산에 이르러 낙동강으로 사라지는 226Km의 낙남정맥의 웅장한 산세가 지리산을 받쳐주고 있다.


영신봉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은 너무나 멋지다.

오른쪽(동쪽)으로 천황봉, 중봉, 하봉의 모습이 왼쪽은 촛대봉과 남쪽은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의 길이

산넘어 산으로 나타나고 있어 지리산의 웅장함을 알 수 있었다.


대성골은 전체 거리가 12Km나 되며 오를때 4시간 30분, 하산시 3시간이 소요된다.

 한때 무당골로 불릴만큼 무속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던 곳이다.

요즘도 발원지인 영신봉 부근의 음양수 일원은 물론이고 계곡의 용왕소 주변에는 촛불제단, 돌탑, 울긋불긋한 천조각, 움막터가 많은 곳이다.
덕평골, 큰세개골, 작은세개골, 수곡골 등의 풍부한 물이 모여들어 수량이 넉넉한 대성골은 와폭과 수림이 울창하여 6.25때 빨치산들이 최후까지 존재했던 곳이다.
영신봉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않는 대성골 상류에 있는 음양수샘이 있는데 오늘은 코스가 달라 볼수는 없지만 참고로 알아보자
'아득한 옛날 지리산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호야라는 남자와 연진이라는 여자로 이들이 처음 들어와 산 곳은 대성계곡이었다.

다정다감한 그들은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씨족사회의 엄한 규율과 인습의 굴레를 벗어나 지리산 대성계곡에서 보금자리를 열었다.

그들은 산채나 산과를 따서 배부르게 먹고 한쌍의 원앙새와 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안타까운 일은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한 것이다.

 어느날 남편이 산과를 따기 위해 산골 깊이 들어가고 없는 사이에 근처에 살고 있던 검정 곰이 연진여인을 찾아와 위로하며 말했다.
"이곳에서 멀지않은 세석평원에는 소원대로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다.

" 이말을 들은 연진여인은 너무 기뻐서 남편과 상의할 사이도 없이 혼자 단숨에 음양수 샘터로 달려가 기적의 물을 실컷 마셨다.

그런데 평소 곰과 사이가 좋지못한 호랑이가 곰과 연진여인이 주고받던 이야기를 엿듣고 이를 그대로 지리산 신령께 고해바쳤다.

 산신령은 대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이 되게 했다.

 또 음양수 샘물을 훔쳐 마신 연진여인에게는 무거운 벌을 내려 잔돌평전의 돌밭에서 평생토록 혼자서 외로이 철쭉을 가꾸게 하였다.

그날부터 연진여인은 뜻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세석평원에서 날이면 날마다 손발이 닳도록 꽃밭을 가꾸어

철쭉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꽃이 피고 졌다.

 연진여인은 슬픔에 젖어 눈물과 닳아터진 다섯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꽃밭에 뿌리며 애처롭게 언제까지나 꽃밭을 가꾸었다.

 세석 철쭉은 연진여인의 애처로운 모습을 닮아 그처럼 청초하고 아름답다.

 또 연진여인의 슬픈 넋이 꽃잎마다 서려있어 애련하게 해마다 피고지고는 한다.

연진여인은 밤마다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황봉 산신령을 향하여 죄를 빌다 그대로 돌이 되었으며,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바로 가련한 연진여인의 굳어진 모습 그것이라고 한다.

 음양수샘과 세석고원의 철쭉, 그리고 촛대봉의 앉은 바위에 이르는 전설이 이처럼 한 이야기 속에 포함돼 있다.

지금도 많은사람들이 음양수 물을 마시는것은 자식 욕심이 있어서라고 한다

 


영신봉에서 1556봉을 거쳐 칠선봉을 거쳐 덕평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은 그 빼어난 경관 못지 않게 아기자기한 등산로를

빚어내 뭇사람들을 유혹하기 충분했다.

칠성봉을 비롯한 전망바위에서 뒤돌아본 영선봉 뒤어 촛대봉의 위험도 대단했다

15시 20분 선비샘에 도착 했다
선비샘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등산로는 제대로 없지만 오르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곳이 덕평봉이다.
15:30 덕평봉에 도착했다.

 덕평봉에서 다시 선비샘으로내려왔다

이선비샘에는 한노인의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옛날 삼덕평(이곳은 선비샘 아래 넓다란 수초가 있는 부분을 일컫는 것으로 추정됨)에 사는 한 노인이 사후에라도

선비대접 받기를 바라던 긑에 그 자식에게 유언을 한다.

이 노인은 자식에게 이곳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면 결과적으로 샘터의 물을 뜨려는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하기 때문에 죽어서라도

사람들로부터 절을 받는 선비가 되고픈 마음이었던 것이다.'

선비가 되고 싶었던 가난하고 천대받았던 한 노인의 애틋한 심정은

그 옛날 우리네 하층계급 민중의 애환을 잘 묘사해주고 있는 부분이다.
선비샘의 전설이 깃든 무덤과 무릎을 굻고 물을 떠야 하는 샘터의 모습은 이제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 일대는 야영장으로 변모했고 샘터는 콘크리트와 파이프로 만들어져 서서도 충분히 물을 받아 먹을 수 있게 변해 있다.


16:10 벽소령산장에 도착했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종주 등반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고도가 가장 낮은 산령으로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룩한 고개로서

그 주위에 높고 푸른 산능들이 겹겹이 쌓여 유적한 산령을 이루고 있다.

 벽소려엥서 아래를 바라보면 마치 자신이 신선이 된양 착각을 하게 한다.

산이 낮고 구름이 주위를 뒤덮고 있어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벽소령에서 가장 뛰어난 볼거리라면 밤 하늘의 다링 아닌가 쉽게 생각이 된다.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다.
16:15 벽소령산장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남쪽인 의신마을로 하산을 시작했다.

 길가에는 계속해 산죽이 같이하고 주능선을 달려올때와 같이 하산길도 시원했다.

 이젠 땀도 나지 않는다.
벽소령에서 샘터를 지나 하산하는 길은 돌밭길이라 걸음 걷기가 매우 힘든다.

이런길을 40분쯤 걸어오니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없는 군사도로가 나온다.

편안한 길이라 산행이 매우 좋았다.

 날씨가 덥지도 않고 주위는 계속해 산죽이 같이하고 먼지도 나지 않는다.
17:10 산복도로길도 끝이나고 삼정마을로 하산하는 가파른 내려말을 내리니 산정마을이다.

 산정마을에는 개승마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꽃의 색상이 예쁘지 않아서 였는지 산행에 지쳐 있어서 인지 산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삼정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2.9Km를 내려서 의신마을에서 산행을 마쳤는데

오늘은 8시간 30분동안 산죽과 같이한

더위는 이기기 위한 좋은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