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가 덕유산 종주 기록을 갱신해? 말도 안돼는 소리!"

  

자초지종은 차후 밝히기로하고, 산을 대하는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음에도 우리부부를 무사히 완주시켜준 덕유산의 너그러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덕유산 신령님! 안녕하시지요? 무사히 도착 했습니다. 종아리가 말을 듣지 않는 것 빼고는 우리부부 모두 무탈하옵니다."

서두를 뺀김에 감사 인사 한마디 더하고 시작해야겠다.
 
삼공매표소에서부터 향적봉 남덕유산을 거쳐 영각사를 향한 하산길에 이르도록 봉우리 봉우리마다 편대비행으로 우리 부부를 맞이해준 고추잠자리떼와, 굽이마다 고비마다 한발먼저 앞서가며 길 안내를 해준 동자꽃 금강초롱 물봉선 산오이풀들, 오십중반을 넘긴 중늙은이들이 산중고혼이 되지 않도록 능선마다 도열하여 사열해준 山竹과 국수풀 싸리나무 수국넝쿨에게도 감사한다. 햇빛에 그을려 아린 팔다리를 맵게 찌르는 아픔은 더러 있었지만, 어쩌랴 그들도 그들만의 방법으로 우리 부부의 산행을 지켜 주었음에  틀림이 없었으니.

  

1.

  

휴가받은걸 알아차린 아내는 내게 묻지도 않고 여행계획을 짜고 있다. 슬쩍 넘겨보니 바다쪽이다. 다 늙어 허접한 몸매 자랑할 일도 없으려니와 땡볕 모래사장에 시달릴 것은 뻔한 이치이고 게다가 젊디 젊은 아가씨들이 각선미 자랑하며 눈앞을 어지럽히기라도 한다면 내 정신건강에도 안 좋을 일이어서 아내가 끄적거리는 잡기장을 한쪽으로 치우며 넌지시 제안했다.

  

"여보, 이번 휴가는 산으로 하세. 무주구천동이라고 들어봤는가? 계곡이 참 절경이라더만."

아내는 자신을 청춘으로 아는지 주름져 풍상이 서린 눈매를 아직도 고운줄 알고 위아래로 흘터내리더니

  

"그깟놈의 계곡 물놀이야 해수욕 갔다가 오는 길에 들려오면 될거아니요."

  

잔말말고 굳이나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투로 잡기장을 다시 끌어당긴다.

  

"아, 글쎄 그게 아니고 계곡 물도 시원하고, 거기서 조금 올라가면 향적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라더만. 물놀이도 하고 등산도하고 양수겹장아니어? 거기다가 산꼭대기 대피소에서 하루밤 자고, 그러고도 부족하면 해수욕장으로 떠나도 괞찮지 않어?"

  

아내는 대꾸없이 손가락으로 휴가 날짜를 계산해보더니 순순히 응한다. 별일이다 싶었다.
순전히 바다로 가기 싫어 '한국의 산하' 홈에서 읽어본 이수영님과 풍악님등 몇분의 덕유산 종주기가 생각나서 같다붙인 제안이었는데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구천동계곡을 간다면 황적봉을 올라야 제맛일텐데, 산이라고는 젊었을적 서울근교 산을 놀이삼아 몇 번 다녀 본게 고작이고 최근에는 아차산이나 검단산 정도가 전부인데 체력이 따라 줄런지가 은근히 걱정이되었다.

  

하지만 구천동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황적봉에서 하루밤 자고 오수자골로 내려오면 1박2일의 여름휴가를 마치는 셈이니 아내에게도 체면이서고, 내게는 무려 닷새동안의 여유시간이 생기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간단한 준비물을 챙겼다. 특별한 준비는 하지 않고 혹시 비가 올런지도 모르겠고하여 옷 두어가지 챙기고, 두끼 정도 먹을 김밥하고 냉장고 뒤져서 먹다남은 오이 네개 과자 몇봉지 배낭에 우겨넣었다. 그것만해도 약수터용 배낭 두 개가 꽉찼다. 부족한 것은 현지에서 조달 할 생각이었다.

  


2.

  

이왕가는김에 나도 다른 분들처럼 멋진 등산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메모지를 챙겨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남부터미날 발 8월 4일 8시 30분 차를 타고 구천동계곡에 도착하니 11시30분쯤되었다. 서울에서 반은 삶아진 몸뚱아리여서 구천동계곡의 물을 보니 시든 호박잎이 되살아나듯 우리 부부는 기운이 돋기 시작했다.

  

근처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식사를하고 나오니 하늘은 맑은데 빗방울이 후두둑 지다가 이내 그친다. 산행중에 혹시 몰라 식당주인에게 우의 살곳을 물으니 식사손님을 위해서 준비해 둔게 있다면서 비닐 우의를 내준다. 한 장에 천원이란다.
아내는 지나가는 비인데 무슨 우비를 사느냐고 말린다. 산 날씨는 알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두장을 사서 배냥속에 넣었다.

  

"사람많은 이곳에서 얼쩡거릴 것이 아니라 어서 표끊고 안으로 들어가 상류에서 발 담그세. 어쩐가?"
"그럽시다"

아내는 군말이 없다.

12시30분.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덕유산국립공원 탐방로 현황"이라는 쪽지한장 얻어서 쉬엄쉬엄 상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조용하고 쾌적한 곳에서 탁족이라도 할 요량으로.....


느적느적 계곡 물 구경을하며 걷다보니 백련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20분이다.

탐방로현황표에 의하면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의 거리가 2.5km로 되어있고 등반시간은 1시간 15분으로 되어있다. 늦어도 6시면 정상에 도착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백련사 경내 구경까지 마치고 0.5ml 피티병에 약수 두병을 채워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가 오후 4시44분.


비가 올려는지 앞산을 구름이 맹렬한 기세로 휘감았지만, 축축한 물기가 시원한 바람에 섞여 기분이 상쾌해져 비걱정은 하지 않기로했다.

백련사 뒷길을 나서자마자 나무계단이 나온다.
산은 산이었다.
우리는 끝도 없는 나무계단과 싸우기 시작했다.
아내가 힘겨워하는 것 같아 배낭을 건내받아 겹쳐매고 힘들지 말라고 농을 걸었다.
혹시라도 돌아 가자고 하면 나의 휴가계획은 도로아미타불이 되겠기에 말이다.


"운동장에 나가서 새벽운동 한 덕 많이 보는구만. 그렇제?"


역시 말이 없고 땀만 비오듯 쏟고있다. 내심 무슨 계산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경치를 구경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오로지 앞으로 전진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시간을 보니 한시간은 족히 온 것 같다. 밑에서 사람소리가 난다. 반가웠다. 쉬기도 할겸 나무밑에서서 기다렸다.       
젊은이가 인사를 한다. 한시간여를 등반했으니 시간으로 보아 이젠 거의 다 왔겠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죠?"


젊은이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주위를 한번 살펴보더니


"이곳이면..... 5분지1쯤? 그보다는 조금 더 되겠습니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실 계획이신가요?"


적이 걱정되는 투로 묻는다.


"아니오, 대피소에서 쉴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긴해도 속도를 조금더 내십시오. 워낙 날씨가 않좋아서요"


젊은이는 정상에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올 계획으로 오른다는 말을 남기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5분의 1이라니..... 눈앞이 깜깜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다시 배낭을 건네고 식당에서 사온 천원짜리 비닐우의를 꺼내 걸쳤다. 우의는 머리와 배낭을 겨우 덮고는 앞가슴은 비를 맞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는 듯 단추를 끼울 수 없도록 작았다.

원 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아내는 계곡에서 해찰한 경우는 까마득히 접어두고, 하필이면 이런 날 날잡아서 사람 고생시키느냐며 투정이 계곡을 채울만큼 해대고, 그런 아내를 위안하느라 나는, '비온뒤에 땅이 굳고, 궂으날이 있으면 좋은 날 있듯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가 생각해봐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산 만큼 씌월거려가며 헉헉 거친 숨을 쉬며 오르고 또 올랐다.
아내의 투정도 언젠가부터 잠잠해졌다.

  

다시 위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초등학생 둘과 그 부모 일행이다. 꼴이 가관이었다. 쓰레기봉투를 까 뒤집어 머리만 덮어썼다. 스스로 생각해도 웃으운 모양이라고 생각했던지 묻지도 않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어쩌다 쓰레기봉투 뒤집어쓰는 신세가 되었네요."
하고 허허 웃는다.
"이젠 반쯤 올라왔지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오, 조금 더 가야 반쯤 되겠습니다"

  

낙심 천만이다.

또 얼마를 걸었을까?
날은 점점 더 어두어지고 빗발은 등산로를 타고 내리면서 등산화속을 한강물처럼 채웠다. 힘든 걸음을 철벅철벅 옮기는데 위쪽에서 사람소리가 난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일갈!


"얼마남았냐고 묻지말고, 인사만해!"


나는 산을 내려오는 일행을 향해 아내의 명령에 따라 힘차게 인사만했다.


"수고하십니다"


그런데 뜻밖의 인사가 돌아온다.


"대단들 하십니다. 그 연세에...."

  

이제 겨우 오십중반에 "그 연세"소리를 들어야하나?
발걸음이 더 폭폭하기만하다.

"대단하시다"는 말은 내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않았다. 이시간을 걷고도 여지껏 반을 올라왔을까 말까하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는 위로해야겠기에


"허허, 우리보고 대단하다고 않는가?. 내가 생각해도 장하시!"


볼맨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장하기도 하것소!"

  

오르느라 끙끙대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아니면 산을 오르는 고통스런 재미에 취했는지 아내의 목소리가 사분사분해질 무렵, 처음 만났던 젊은이가 향적봉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이고 이제오세요? 이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정상에 오르지 마시고 대피소에서 쉬시고 산은 내일 오르세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젊은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쳤다.

  

정상과 대피소 갈림길 이정표가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생각해봐도 대견해 아내를 돌아보며


"우리 참 대단하제?"


미소지으니


"다 내 덕인줄 아시우. 잔 소리 더 할려다가 참은 내 덕 말이오!"


퉁명스럽기가 쇠말뚝같은 아내가 미소로 화답한다.
키 넘는 덩쿨 숲을 헤치고 나가니 운무가 해일처럼 막 휩쓸고 지나며 향적봉 휴게소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운무속에 고사목처럼 서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다.

  

"늦었습니다. 어서오세요"


산장지기님하고 또 한분의 손님이시다.
어둠에 조금 눈이 익자 동자꽃 물봉선 수어리 꽃이 우리를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후 7시30분!
1시간20분짜리 길을 무려 3시간을 걸었으니 남은 우리 부부의 산행이 어찌 될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독자 제현들은 짐작이 가시리라 믿는다.

  

산행기의 제목을 궁금하게 해드렸으니 이제는 미리 말씀을 올려야겠다.
우리 부부는 오수자골로 하산하려던 원래의 계획을 변경하여 백련사에서 영각사로 내려오는 종주길을 2박3일에 걸쳐 완주했다.
여러님들의 종주기를 보았지만 덕유산 종주를 2박3일에 걸쳐 한 사람은 우리 뿐인 듯하여 "기록갱신"이라는 말같잖은 제목을 붙이게되었음을 밝힌다.


3.

  

우리 부부의 거북이 산행은 둘쨌날 삿갓재대피소에 이르도록 계속 되는데 불행히도 또 한번의 비 세례를 받고, 중간중간 기록해 두었던 메모용지가 비에 홀딱 젖어 떡 밥이 된 관계로 산행 시간과 지명들을 확실하게 기록하지 못해 대강의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된다.
혹시 제 종주기에 착오가 있더라도 선배제현 여러분께서는 너그럽게 헤아려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산장에는 이미 잠이든 몇 분의 산행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한 가족이 머물고 있었다.
집에서 가져온 김밥은 다음날의 여정을 위해서 아껴두고 컵라면 한 개씩으로 때우고, 정상은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우선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갠다면 일출을 보리라는 기대와함께......

  

얼마를 잤을까? 창이 환해서 문을 열고 나가니 달이 중천에 밝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30분. 음력 열여드레 하현달이 청청한 하늘에 구름을 밀어내며 산장을 밝히고 있다. 손에 잡힐 듯 북두칠성이 산장앞 샘터의 표주박처럼 떠 있다.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언제 비를 뿌렸으며 언제 운무가 발등을 덮었냐는 듯이 시침을 뚝 딴체 밤은 깊어가고, 그 달빛을 시샘하듯 북극성에서 두팔 반쯤 아래에 구름의 씨앗이 용트림을 시작하고 있다.

  

이튿날 아침.
날은 맑았으나 늦잠으로 인해 해돋이를 보지 못하고 말았다.
피곤했는지 늦게 일어난 아내와 함께 향적봉 정상에 올라 도면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저기쯤이 대둔산 저기쯤은 계룡산 아내와 나는 서로 짐작으로 짚어가며 향적봉의 아침을 감상했다.
산정은 계곡마다 산 그림자로 더욱더 짙은 청록이되었고, 계곡의 서기는 피어오르는 구름을 타고 우리 부부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 이런 절경을 읆을 수 없는 글의 짧음이여! 애통 그 자체로다.

  

글이 짧던 길던 이만한 절경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으랴.
목석은 저리가라 하리만큼 무덤덤한 아내가 향적봉 정상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이제 출발합시다. 삿갓봉으로!"


엉뚱스런 제안에


"해수욕장은 어떻허고?"


"말이 많소!"


두눈을 말똥히 뜨고 있는 나를 놔두고 아내는 휴게소로 내려간다.

다시 컵라면과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8월5일 9시30분.
젊은 연인들이 길을 나선다. 길을 물으니 영각사라고한다. 시간은 8시간을 잡고 있었다. 우리도 뒤를 따라 나서며 10시간을 계획했다. 벅차게 잡았음이 확실하지만 이제부터는 내리막 길일테니 노력하면 주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종주를 마치고 생각해보니 참으로 황당한 초보자들의 산행 계획이었다.


어쨌던 길을 떠났다.

중봉에 이르렀다. 아내가 쉬잔다.
내친김에 배낭도 줄일겸 김밥을 꺼내서 먹고 있는데 한쌍의 부부가 인사를 건내면서 서둘러 오수자골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다. 배낭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자며 아내는 오이를 한 개 꺼내서 깎는다. 이왕 삿갓봉 방향으로 여정을 잡았으니 거리로 보아 마음이 바쁜데 아내는 이 무슨 능청인가? 어서 가자고 채근을 했더니또 한번 일갈한다.


"이보시오!"
"??"
"당신 걷기 대회 출전했소?"
"??"
"이 좋은 산천, 천천히 감상하면서 걸어야지 무슨 급한 볼일 있다고 뜀박질을 한단 말이오."
"영각사까지 갈려면 시간이....."
"오늘 못가면 낼 가면 될것아니오."


허긴 내가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허긴 그렇지만...."


얼버무리는 중인데 오수자골로 내려가던 조금전의 부부가 되돌아 올라오고 있었다. 바삐 걷는 통에 영각사 가는 길을 착각한 모양이다.
걸음이 바람처럼 빠르다. 얼핏보아 산행에는 선수들임이 틀림없었다.

  

아내가 앞장을 선다. 걸음이 세월아 네월아이다.
덕유평전에 피어난 꽃 잔치에 정신이 팔려 좀체로 길을 줄이지 못한다.


"워메, 원추리! 나리도 피었네! 비비추도....."
비비추는 아내의 인터넷 아이디라서 더욱더 반가운지 그 앞에서 감탄 연발이다.
밀려오는 구름에 양말을 벗고 바람을 쏘이는가하면 적막한 산야를 향해 "야호"소리도 질러본다.
그래, 각박하게 살아온 삶. 오늘만이라도 마음대로 두어보자.

아내가 그렇게 소녀가 되어가는 모습을 나는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간단하게 쓰려던 글이 쓰다보니 내 흥에겨워 길어졌다. 재미도 없는 글, 길어지면 읽는 사람도 지루할 것 같아 오늘은 여기서 맺고 다음편에는 주로 산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써볼 계획인데 잘될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꽃 이름들은 이수영님이 쓴 종주기를 읽어보면서 참고해 주면 좋겠다.
주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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