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무봉 영남 알프스의 억새바람(가지산 -영취산종주)

 

"자기, 아직 멀었어요 ?.."
"어ㅡ엉... 저기."
화장기 없는 얼굴에 땀으로 범벅이 된 곁이 조그만 소리로 묻는다.
필경은 최종 목적지인 영취산을 묻는줄 번연히 알고 어물거리며 심불산 쪽을 턱짓 하지만 눈앞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간월산 된비알이 우뚝 솟아 있을 뿐 아직은 어림 없었다.
배내봉을 떠난지 두어각이 됐을 무렵이였다.


곁의 지리산 종주 마지막 점검으로 승새 고운 억새가 한창인 가지,영취산 종주길을 떠난다.
가지 영취 종주는 거리는 그리 길지 않으나 상운, 가지, 능동, 배내, 간월, 심불, 영취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봉들과 이봉에서 저봉으로 떨어지는 고도차가 대부분 200-300 미터에 달해 엔간한 체력적인
준비가 없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인 제법 콧등이 거센 구간이다.
물론 많은 탈출로가 사통팔달로 이어져 조난당할 염려가 크진 않으나 결코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여차저차로 조건이 입에 딱 맞으니 어찌 유람을 자청치 않을수 있겠는가...
삼경에 일어나 밥지어 먹고 추레한 로시난테 깨워 처가인 언양으로 신바람을 일으키며 내닫는다.
언양 공영 무료 주차장에 로시난테를 던져두고 택시로 운문령을 오른다 .
똥 훔친 개 사라지듯 휑하니 떠나는 택시를 잠깐  일별하고는 바람 가득한 임도를 따라  장도의 첫발을
내딛는다.


운문령에서 가지산 오르는 길은  임도와 자주 수인사를 나누는 능선을 따라 귀바위를 거쳐 상운산  찍고
왼편으로 휘어져 가지산으로 가는 길과 상운산을 거치지 않는  임도를 따라 편히 오르는 고속도 두갈래로
나뉜다.   특히 상운산 능선을 타는 길은 운해님이 오셨을때는 각별 유의해야 하는 길로 그 유명한 산거북님
도 그만 직진을 해 쌍두봉 갈림길 까지 가는 어이없는 우를 범할 정도로 악명이 자자하다.
며칠전 산기에서도 서울분들이  똑 같은 실수를 범했고 객 역시 한참을 갔다가 허벌나게 되돌아 온 경험이
있다.    현명한 님들의 조감 있을 지어다.


어제 내린비로 수목이 암내 풍기는 과부 사추리 만큼이나 흥건해 능선길을 버리고 임도를 타고 가지산으로
향한다.    계속 내린비로 대기가 깨끗해져 조망의 시계가 믿을 수 없을만치 확연해 영취산이 바로 눈 앞에
있는것처럼 가까이 보인다.
귀바위 어름에서 곁에게 영취산을 향해 힘차게 뻗는 능선을 가리키며 중언부언 아는체를 하나 쇠귀에 경 읽기
인지 엉뚱하게 새로산 등산화의 맵시를 견주느라 여념이 없다.   젠장할 ...


상운산 삼거리에 닿을즈음 티끌하나 묻지않은 정갈한 해가 땀을 똑똑 흘리며 솟아 오른다.
바람살이 제법 차가운지 반팔티를 입은 팔이 저려와 연신 쓰다듬으며 걸으니 어제의 염천이 오늘의 가을인줄
이제야 실감이 난다.
쌀바위에 이러 잠깐 한숨 돌리고 본격적인 가지 등로로 추어 오른다.
주지 하다시피 가지, 영취 구간은 동쪽은 거친 암벽이요 반대편은 허벅진 육산의 형태인지라 어디에서든 동쪽
으로만 나서면 기막힌 조망이 항시 열려있다.


감기 기운으로 머리가 깨사질겄 같다는(곁의 표현을 빌리면) 곁을 염려해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천천히 오른다.
어느덧 울창한 여름의 냄새에서 단풍내음 솔솔한 아취로 바뀐 산길은 그럴수 없이 상큼하고 아삭하다.
정상엔 깃폭이 찢어질듯 펄럭이는 태극기가 당당하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의 조망은 수백리를 이어진다.
곧바로 석남재로 떨어져 간다.
내려서는 능선이 곰발바닥 처럼 거칠어 은근히 곁의무릎이 걱정 되는데 의외로 별탈없이 잘 따라온다.


가지산에서 석남터널 거쳐 능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처음 아래로 허겁스레 내려서다가 아쉬운듯  전위봉을
빚어 근사한 조망처를 마련해 주고는 약간 왼편으로 기울어져 석남재로 내려 앉았다가 오른편으로 비스듬히
고개를 틀면서 평평하게 능동산으로 달음질친다.
능동산에서 한갈래는 얼음골을 품고 사자평을 아우른 천황산으로 이어지고 왼편 능선은 배냇골에서 중화들고
영취산으로 창룡을 타고 달아 오른다.


전위봉을 지나 밧줄을 잡고 씨름을 하는데 저어기 한켠에 고소한 내음새와 함께 싯누런 황금떵이 시선을 확
잡아끈다.
지난 팔공산 종주때도 초입에서 황금떵 만나 무사종주의 기쁨을 안았는데 이번에도 이런 행운이 올줄이야..
곁에게 발아래 보화를 밟지 말라고 당부를 하며 흐뭇한 맘으로 길을 잡아채니 편편한 능선 등날에 대피소  겸한
매점이 소나무 사이로 운치있게 서 있다.
작년  6월 종주때엔 강원도에 약초캐러 간대며 쥔장이 없었는데 올해는 볼려나 싶어 문을 두드리니 쥔은 어디가고
코펠만 덩그렇게 매점을 지키고 있다.


쌀바위가 잘 뵈는 탁자에 앉아 빵과 고구마를 꺼내어 얼요기를 한다.
집에서 가져운 커피를 꺼내 분위기를 내니 천하명산 절경에 어울려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 된다.
자연 친화적(?)인 감성을 가진 곁은 풍경이 너무 예쁘다며 자리를 뜰 생각을 않는다,   갈길이 멀다는 것을
떠먹이듯이 이르고서야 겨우 자리를 수습한다.
처처히 나타나는 조망대를 구경하며 아름다운 능선길을 따라 헤엄치듯 걷는다.


수풀 사이로 나풀나풀 떠가는 곁의 모자를 바라보니 망망한 수해에 빨간 사과 한알이 이리저리 떠다니듯 경쾌해
금방이래도 오봉산 타령 한자락이 구성지게 터져 나올듯 흥청 스럽다.
훌훌벗고 여어잇 소리치며 달려가고픈 운치있는 능선길이 분재 소나무에 이르자 곁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사만 연발한다.
'어쩜 이리도 잘 생겼을까 ..'
또 걸음을 못떼는 곁은 기여이 사진 몇장을 받고서야 아쉬운듯 돌아선다.


능동산 오름길이 제법 제법 땀풐을 요구하지만 곁은 별로 지친 기색도 없이 쉬엄쉬엄 잘 따라온다.
작년까지 능선 어깨 마루에 헬리포트로 빠지는 사면길이 뚜렸했었는데 오늘은 억새가 우거져 종적이 묘연하다.
배냇골로 내려서는 길엔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올라온다.
전부 가슴에 패찰을 훈장처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산악회 일원인 모양이다.

 

한참을 길 비켜 주기가 무료해
"아니 이 산악회는 여성 회원을 미인으로만 뽑습니까 ?  진짜 이쁘네예.." 하니
넉살 좋은 오십객이
"아, 진짜 이쁜 회원은 안오고 여긴 평범한 사람인디 .."  하며 익살을 떤다.
능동산 거쳐 사자평으로 간다는 그들은 아마 부산 라이프 산악회로 기억된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 조심 내려서니
배내골이다 .  대강 반은 온겄이다. (엄밀히 말해 배내봉이 시간상으로 절반구간)
도로옆 큰 안내판 밑에 앉아 먹다남은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린다


잠시 쉬는 사이 연세가 좀 있으신 아줌마분들이 우르르 배내봉으로 몰려간다.
평상복에 신발도 케주얼화로 중무장 한걸로 보아 산악회는 아니고 관변이나 이익 단체에서 위촉받아 왔나부다.
개구리 탐하는 살모사 마냥 슬금슬금 뒤를 따르니 아무래도 길이 좀 이상하다.
왼편 사면을 타고 끝도 없이 가는게 마음에 걸려 일행분들 중에 목소리 제일 크신 분게 여쭈어보니 급경사를 피해
배내봉으로 오르는 우회로라네 .


어쨌거나 돌아서기는 너무 늦었고 낯선길도 구경 할겸  내처 걷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구비를 돌자 키가 함흥 장승 만큼이나 쭉뻗은 단풍나무가 열을 지어있고 그사이로 난 오솔길은
그림엽서의 풍경화 처럼 아름답다.
만산홍엽이 어우러지는 날이면 금어치의 경중을 논하기가 지난이리라 .
사면을 타던길은 능선 삼거리와 만나고 오른쪽으로 급각히 휘어져 배내봉으로 오른다.


배내봉에서 간월산 오르는 길은 유유자적 꿈틀대던 능선이 용틀임 하며 간월산으로 솟구치고  폭이 좁은 정상을
떠나 억새가 펼쳐지는 간월재로 내려서고 또다시 호흡을 크게 들이키며 심불산으로 우뚝 올라선다.
종주중 최난코스임은 불문가지로 애써 물어 답할겄이 없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유람객들은 간월재까지 승용차로 편히 와서는 심불이나 간월산을 한번 오르는 것으로 마감 하는
사람이 많아 간월재엔 늘 북적 거리며 문전성시를 이룬다.


배내봉을 떠나면서부터 곁의 걸음이 조금씩 뒤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침에 감기 기운이 역력했었는데 기운이 달리나 보다. 
1미터 이상 떨어지면 같이 살마음이 없는 걸로 간주하고 무조건 이혼 하겠다며 격려성 협박을 남발하니  곁의 입술에
정구죽천의 실소가 설핏떠올랐다 스러진다.
간월산 비탈진 오름길을 너덜너덜한 서방놈의 발끝만 쫓아 오르던 곁이 기여이 나무등걸을 붙잡고 가슴 통증을 호소한다.


지리산 서북능 종주때 덴깐이 있는지라 불불이 물꺼내어 마시게 하고 진정을 시키네 어쩌네 분주를 떨지만 수각이
황란하여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더라.
다행히 조금 쉬고 난 곁이 제 먼저 괜찮다며 길을 재촉한다.
힘들게 올라선 간월재 정상엔 많은 사람들이 정상비와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 통에  멀찍이 떨어진 한터에서 곁의
사진을 넣어준다.
능선을 조금 따르면 등로 바로 옆에 그늘이 좋은 소나무 한그루가 있어 무친김에 제사 지내고 내친김에 서방질 한다고
아예 주주물러 앉아 도시락을 편다.


왕성한 술질을 자랑하는 객의 푼수끼에 지나는 사람마다 맛있겠다며 한마디씩 덕담을 찬으로 던져주고간다.
식후 걸으면서 쉬자는 어불성설의 논리를 유식한척 내뱉으며 곁을 이끌어 간월재로 한다리로 쏟아져간다.
한참인 억새밭 사이로 걷는 묘미가 보통이 아닌데 간월재 한가운데 자리 잡았던 포장마차는 등억리 임도쪽으로 옮겼고
그자리엔 포크레인이 무슨 공사인지 온통 쑥대밭으로 헤집어 놓고 있다.
물맛이 좋았던 간월샘은 중병을 앓아 링거 신세를 지고 있어 안타깝다. (링거줄만한 가느단 호스로 찔찔거림)


심불산 급한 비알을 느릿느릿 오른다.
다행히 곁의 컨디션이 회복되어 한번 쉬지 않고서도 끝까지 잘 따라온다.
오름짓이 끝나는 어름에 놓인 벤치를 지날 즈음 울산 119라고 씌인 구조헬기가 심불정상으로 천천히 날아간다.
내려서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심불 공룡릉에서 여성 산꾼이 실신을 했대네.
정상에서 머뭇 거리던 헬기는 여의치가 않던지  심불재로 자릴 옮겨 내려 앉앗고 헬기 한번 타보지 못한 산꾼들이 빙
둘러서 구경에 제법 물이 올랐다.


심불산 정상에서  곁에게 사진만 넣어주고 인파를 피해 심불재로 내려선다.
아직 공룡릉에서 사고자를 찾지 못했는지 헬기는 심불재에서 계속 통통 거리고 있는데 비행기래야 제주도 신혼여행
에서 잠깐 타본것이 전부인 두촌티와 빈티부부는 사고는 둘째치고 우선은 통통거리는 헬기가 단연 신기한지라
구경 욕심에 날듯이 쫓아간다.
초대형 선풍기의 시원한 바람을맞으며 희희낙낙 희짜를 뽑는데 여태 가만 있던 이눔이 갑자기 실성을 했나, 엔진
소리가 커지나 했더니 모래와 억새의 파편이 철대방죽으로 튀어 오른다.


급하게  "수구리.."   외치며 새매에 쫓긴 꿩새끼 마냥 억새에 몸을 숨기는데 아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닙디다.
그 징한 물건이 떠난 뒤에도 한참이나 있다 고개를 드니 경황에 얼혼이 빠져 등신이나 진배없게  되었더라 .
말문이 막혀 눈만 희번득 거리던 촌티가 입술을 실룩 거리며 겨우 한마디 내뱉는다.
"지랄.. 사람 구하러 왔나, 잡으러 왔나.."


심불재에서 영취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 화려한 억새평원을 가로질러 온후하게 정상으로 올라선다.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시살등으로 용의 초리를 번뜩여가고  차시간에 맞춰야 하는 산꾼들은 지산리  급경사
길이 안성 맞춤이다.   그러므로 시간적 여유와 차편이 허락 된다면  함박재와 백운암으로 떨어지는 길을 붙들고 가기를
권하고 싶다.   
함박재 까지의 기암절경이 대단하고 백운암의 물맛과 조망 또한 쉬이 잊혀지지 않을 만큼 근사하기 때문이다.


억새밭을 천천히 따르던 곁이 왼편 아래로 보이는 삼성 **을 보며  추억에 편린을 걷어 올린다.
결혼하기전  처녀적의 꿈이 고스란히 배여있는 그곳을 내려보는 곁의  얼굴을 대할 용기가 없어 객먼저 영취산으로 
달아난다.    쥐뿔도 없이 데려와 고생만  진탕 시켰으니....
정상엔 역시 사람들로 북적여  사진 한장으로 정상과의 짧은 독대를 마감하고 지산리로 발길을 돌린다.
천성산을 바라 조금만 나서면 전망바위 앞에서 길이 두갈래로 갈린다.


산사랑방 동준 형님이  자발없이 오른편 길로 들어서 대피소도 못보고 죽도록 고생했다는 바로 그 길이다.
초행자는 반드시 족적이 많은 왼편길로 들어서야 안전하다.   혹여 님들 실수 없으시길..
급경사를 굴러내린 길은 경사가 눅어지면서 목축일 샘터를 지나고 조금 더 내려서면 대피소 매점이 나선다.
이후 임도와 수없이 뽀뽀를 하며 사랑을 나누는 길은 물소리 청량한 삼거리에서 소나무 울창한 일급의
데이트 코스로 바뀌어 지산리로 이어진다.

 

오랜만에 곁의 손을 잡고 정다운 오솔길을 원없이 걸어 내려왔다.
지산리 주차장 역시 산꾼들로 시끌벅쩍 하고 곁의 목청에도 기운이 한껏 실려잇다.
"자기, 이제  진짜 다 온거예요..?"


                               2004년 9월 19일  끝.

 

#각 구간별 도달시간(휴식시간 포함)


*05시40분...운문령.
*07시20분...가지산.
*09시50분...배냇골.
*10시45분...배내봉.
*12시05분...간월산.
*13시30분...심불산.
*14시35분...영취산.
*16시00분...지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