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신지요?...

 

덕유산....

 

몇년전 지리산 종주를 하고나서, 비오는 날씨에 천왕봉을 밟지 못하고 백무동으로 낼릴때 종주를 같이했던 길벗으로부터 덕유산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찾았던 산...

그 정상에서 바라본 덕유능선이 너무도 아름답고 포근해서 언젠가는 이 능선을 밟아보리라 마음먹었던것을 이제서야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오전 7시

 

구천동식당에서 점심도시락을 싸서 배낭에 넣고 출발...

어제부터 간간히 내리던 비가 개이지 않고 계속 그대로다.... 자욱한 아침 안개를 뚫고 오르는 산길에는 아무도 없다...

 

이런 날 홀로 산을 오르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눈앞에서 계속 성가시게 하는 날파리들이 너무싫어서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짜증이 이는건 어쩔수 없고... 날씨를 좀더 꼼꼼하게 따지지 않고 온 자책도 생기게 될 즈음.... 한시간 반의 평지길을 걷고나니 백련사가 나타난다....

 

오전 8시 30분

 

백련사는 그 이름이 특이해서 첫산행때도 인상깊었었는데. 거기에다가 절이 들어선 위치가 풍수지리엔 문외한인 나그네가 보기에도 참 명당자리란 생각이 드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백련사에서 잠시 쉬면서 다시 정비를 한다... 쉼없이 흐르는 땀을 막기위해 두건을 쓰고 허리백이 걸리적 거리던걸 배낭에 엮어 맨다..... 안경도 벗어 넣고  물한모금마시니 짜증은 사라지고 몸에 생기가 도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고도차 때문인지  날파리도 달라붙지 않고..... 안개에 쌓인 백련사가 아름답게 보이고, 어딘가 가시는지 절을 나서는 스님도 정겹게 느껴진다....

 

" 일체유심조" 라고 했던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인것을 날씨가 안좋다... 날파리가 달려든다... 홀로걷는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는 생각들이 산행초반 나그네를 힘들게 했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백련사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확실한 급경사다.... 절은 산을 드는 관문인것처럼 대부분의 절들이 평지길과 경사길을 가르는 경계에 들어서있는듯 하다.... 마치 산에 들려면 절에서 산신께 고하고 마음을 깨끗히하여 오르라는 듯이.....

나그네도 합장하고 무사한 산행을 빌어본다....

 

짙은 안개로만 시야를 가리던 날씨는 이내 고도가 높아지면서 빗방울로 바뀐다.... 후두득 후두득 나뭇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오히려 정겹다.... 몇년전 이길을 오를때는 지리종주의 후유증으로 다리상태가 안 좋아 고생을 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숨을 헐덕이며 향적봉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오전 10시

 

몇년전 오른 향적봉에는 나그네의 힘든 산행과는 관계없이 리조트에서 리프트를 타고 오른 관광객들로 힘이 빠졌던 기억이 있는데..... 물론 그들이 오른 산과 나그네가 오른 산을 다른산일 것이다... 그래도 힘이 빠지는건 어쩔수 없었지만.....

그런데 오늘은 그나마도 없다.....

 

아무도 없는 심하게 바람불고 비내리는 덕유정상  향적봉......

거기 홀로 서서.... 보이지 않는 사방을 둘러본다.....

잠시 바람을 피할 곳도 없는 탁트인 정상 .... 날씨가 좋을때는 그것이 좋아서 행복했던 그 정상.... 아쉬움이 든다... 하루종일 걸을 그 능선길도 마찬가지겠지..... 힘이 좀 빠진다.....

 

정상의 비바람을 피해 향적봉대피소에 들어서니.... 반갑게도 두분의 산객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흠뻑젖은 몸에 한기가 들어 몸이 떨리고 있었는데... 사람의 훈기가 좋다.... 반갑게 인사하고 같이 식사를 한다....

 

한명은 대전에서 한명은 서울에서 왔는데... 무주 오는 차에서 만났단다... 덕유산 종주를 목적으로 어제밤 비를 맞으며 올라 향적봉대피소에서 잤는데... 날씨가 안 좋은 관계로 종주를 포기하고 느즈막히 아침을 먹는단다.... 산장지기 말로는 종주하는데 10시간이 걸린다고 자신들은 능선을 조금따라 걷다가 내린단다... 나그네도 불안해 진다...

 

오전 11시

 

그래도 계획했던길... 몇년을 벼르던 길이 아니던가... 다행히 능선길에는 삿갓골재대피소가 또 있다니... 가다가 못가면 거기서 쉬면 되리라.... 생각하고 길을 나선다....

언제나 그렇듯이 남을 자 남고 떠날자 떠나는 산중의 만남인지라, 어느산 어느자락에서 또 만날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아쉬운 이별을 한다....부디 좋은 산행들 하시길...

 

비바람 맞으며 홀로 나서니 스산한 외로움이 밀려온다.... 길이란 늘 그런걸... 같이 가도 홀로이고 홀로가도 홀로인길..

덕유능선은 지리산과 가까워서 그런지 지리능선과 비슷하다.... 그리 험하거나 힘든길은 아닌듯하다....

중봉을 지나 동엽령에 도착하니.... 일단의 산객들이 향적봉을 향해 가고 있다...몇마디 주고받고 다시 이별....

 

12시 30분...

 

시야는 막히고 날씨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만 자기 모습을 보여주려는지 덕유능선은 처음오는 나그네에게는 좀처럼 자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산이든 사람이든 친해지는데는 시간이 걸리는법... 조용히 동엽령을 떠난다...

 

오후 2시

 

무룡산에 도착하니 역시 사람은 없다.... 하얀 대리석에 새겨진 이름이 선명한 것으로 보아 세워진지 얼마 안되는 듯한 무룡산 비석앞에서 드는 바람과 나는 바람을 느끼며 바람과 하나되어본다....

 

오후 3시

 

삿갓골재대피소에 도착한다.... 지어진지 얼마 안되는지 건물은 깨끗하고 시설은 현대식이다.

많은 산장을 보았지만 이처럼 현대식으로 지어진 대피소는 처음이다.. 너무 깨끗해서 다 젖은 몸으로 들어서기 미안할 정도라.... 건물뒤쪽 취사장에 들어 비바람을 피해본다... 취사장은 식당처럼 생겼고 의자들도 식당의자가 놓여 있는게 영 산분위기가 나지 않지만... 추위에 한기를 느끼는 나그네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장소다... 비비람을 피할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잠시 쉬며 쵸콜릿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일어서려는데... 오른쪽 무릎뒤가 좀 땡긴다.....

이상하다... 들어설때 까지는 괜찮았는데...급작스런 환경변화에 근육이 놀랐나...

몇년전 지리산 종주때 인대가 늘어나서 한동안 고생을 했던 나그네로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수 없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것인지 알기 때문에.....잠시 그냥 여기서 내릴까 하는 유혹을 느끼다가..... 그래도 계획한 길인데 얼마 남지도 않았고해서.... 조심하며 길을 나선다....

 

오후 4시

 

삿갓골재 대피소에서 한참 오름길로 오르니 삿갓봉이 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오른쪽 무릎인대가 점점 아파온다.... 비바람은 더욱 거세 지는데...홀로 선 삿갓봉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외로움이 밀려온다.....또 내리고 싶어진다.....조금만 더 가자.... 비바람을 뚫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길은 명확한데..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않는가.....

 

 

삿갓봉에서 내려 재에 도착하니.... 남덕유산까지 1.4km.... 이제 거의 다 왔구나...... 그러나... 어느 산이든 그렇지 않은가... 다 왔다 싶으면 그 마지막이 많이 힘들지 않던가.... 남덕유산을 오르는 길은 지친 몸으로 느끼기에 귀떼기청봉을 오르는 것 만큼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픈다리는 더 아파지고.... 몸은 무겁기 그지 없다.....

 

아무도 없는 남덕유산을 홀로 비바람 맞으며 오르는 한사람이 보인다.... 그는 무엇을 위해 이길을 오르고 있는것일까..... 온길도 갈길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야한다... 왔듯이.. 그렇게...

 

" 지금 여기서 이순간을 살아라" 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그는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것이다.... 인생의 의미도 해야될일도.... 존재의 의미도.... 무거운 몸과 마음과 아픈 다리도.... 외로움도 비바람도.... 모두 벗어 던진다.... 그리고 "오직 모를뿐 오직 행할뿐"  그렇게 오직 이 산을 오를 뿐이다.... 그것이 지금 그가 할 최선이리라.......

 

그렇게 모든걸 벗어 버리니... 몸도 마음도 좀 가벼워진다.... 그리고는 남덕유산 정상.....

 

 

오후 5시30....

 

산행 시작한지 10시간 30분 만에 남덕유산 정상에 선다..... 여기서 향적봉을 바라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향적봉 정상에서 남덕유산을 바라볼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산은 말이 없고 바람소리와 빗소리만이 나그네를 감싸는 그 정상에서 나그네도 아무말이 없다..... 그저 바라볼뿐.... 그저 숨을 쉴뿐.......

 

오후 6시

 

남덕유산은 남고 나그네는 떠난다.....

내리는 길은 3.4km의 영각사길...... 날이 어두워 오지만 길이 짧으니 금방 내릴수 있을거란 나그네의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간다....

 

내림길이 만만찮다..... 정상에서 내리는 것이니 급경사길일거란 예상은 했지만... 심하다.... 비바람에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한데다.... 지친몸에 다리부상까지.... 내리는 속도가 늦어진다..

 

심한 경사의  철계단을 몇이나 통과했을까.... 월악산 계단은 양반이다.... 대둔산에 이런 철계단이 있었던가..... 두려움까지 밀려온다.. 난간을 잡은 손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이럴줄 알았으면... 정상에서 잠시만 머물다 내려올걸하는 후회도 든다.....

 

그러나 정상에 있던 나그네는 과거의 존재..... 지금 이순간 급경사를 내리는 나그네만 있을뿐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시간인 현재를 얼마나 많이 망쳤던가.....

 

후회도 두려움도 필요없다......오직 모를뿐 오직 행할뿐.... 그저 지금 이순간 열심히 길을 갈뿐............ 다행히... 급하고 위험한 코스를 벗어날때까지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30여분걸었을까... 이제 주위가 안보인다.... 길은 좀 편해졌지만..... 완전히 어두워졌다.... 잠시 쉬면서... 렌턴을 꺼내고.... 물한모금 마신다...... 바람소리는 잦아들고.... 계곡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고요...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져 전혀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완전한 고요 완전한 어둠.... 이런 어둠속에 갇혔던 적이 있었는가... 달빛도 별빛도 없다.... 나그네는 눈을 감을필요도 없이 완전한 정적속으로 빠져든다..... 푸근하다.... 신과 대면하는 완전한 정적이 이런것일까.....

 

그렇게 두려움을 버리고 어둠을 즐기니 마음이 편해진다.... 조급함을 버리고 천천히 내린다. 영각사 매표소를 통과하니

 

오후 7시30분

 

그런데 이상하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상가들이 있고... 차들이 다닐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어둠뿐이다.... 건물은 하나도 없고... 비포장 도로가 이어진다....

 

이런 적이 몇번있다.... 주 등산로가 아닌경우 교통편도 안좋고 민가도 없는 황량함이 있어서 지친 몸을 더욱 지치게 했던 코스들이 있지만... 하루종일 비바람을 맞고 약 25km의 산행후 내린 어두워진 길에서 만나는 황량함은 처음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멀리 불빛이 보이고 포장된 도로가 나온다... 그러나 달랑 불빛하나... 전원주택인지.... 농장인지.... 그저 창고인지 알수 없다.....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저 이 산자락을 벗어나면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없다.... 불빛하나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국립공원 등산코스인데 이렇게 황당할 수가..... 그렇게 한참을 걸어 간신히 발견한 민가에서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이미 차는 끊겼고.... 면소재지 까지는 걷기에 너무 멀단다.... 택시를 부르거나 나가는 차를 얻어 타는 방법 밖에 없단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주머니를 만날수 있어서..... 너무도 고맙다.... 사람이 이렇게 반갑기는 참 오래간 만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 존재의 의미는 사람과 일에 정성을 다하는것에 있다"고... 그 말이 오늘따라 절실하게 느껴진다....

 

다행히 나가는 차가 한대 있어서 히치를 한다... 고맙게 세워주신다...이곳 분들은 아니고 여행객들인것 같은데.... 아까 들어가면서 나그네를 봤단다.... 어두운 도로를 홀로 걷는것이 간첩이 아닌가 의심을 했다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도착한 곳은 함양군 서상면소재지......

 

차를 타고 가는 길이 제법 멀게 느껴지는데... 이길을 걸어야 했다면 밤을 새워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태워주신 분들이 한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나그네는 이런 보시를 누군가에게 했던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맙습니다.... 부디 복 많이 받으시길......

 

몇년을 벼르다 온 덕유산 종주길... 가는 날이 장날이다는 말처럼... 안 좋은 날씨에 고생을 했지만.....덕유산과 그만큼 친해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큰 빚을 하나 청산한 느낌이다....

 

12시간  약 25km의 산행... 그것이 나그네에게 준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대한 두려움을 버린다면 인생의 무거운 짐이 좀 가벼워 질수 있지 않을까..... 길은 명확하게 나있는데.. 그 무거움으로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헤메었던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길을 묵묵히 가는것만이 나그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완전히 어둠에 덮힌 덕유산..... 내일이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겠지.......

덕유산이여....향적봉이여.....남덕유산이여.... 잘 있으시요...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