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한담 58

시작이 반이더라!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어떤 일을 하던지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일단 시작만하면 절반은 이룬 것과 같다는 뜻으로 시작 그 자체를 대단히 중요시하는 말이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출발을 서두르는 산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상예보가 들어맞을는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날씨다. 하루쯤 푹 쉬고 싶지만 자꾸만 불어나는 올챙이 뱃살을 바라보니 더 이상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겠다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가까운 곳이라도 얼른 다녀오자, 겨울비가 얼마나 내리겠느냐. 시작이 반이라는 맘으로 출발을 서둘러 금성산성 주차장에 도착하니 을씨년스런 날씨 탓인지 자동차가 눈에 띄지 않는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서면 산꾼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느긋하게 올라갔다 내려오겠다는 심정으로 신작로 같은 임도를 느릿느릿 걷는다. 오랜만에 호젓함을 맘껏 누려보고 싶어 임도 중간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남문을 거쳐 충용문 누각에 올라서니 사진을 찍는 분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건너편 산봉우리가 안개바다에 떠있는 섬 같은 풍경을 찍기 위해서 이른 시간부터 타이밍을 맞추려고 기다렸는데 안개가 너무 자욱해 맘에든 작품을 찍지 못했다고 한다. 변화무쌍한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보국사지를 거쳐 북문에 올라서니 운해가 짙게 밀려와 갈수록 가시거리가 좁혀진다. 동문을 향하는 성곽길은 외길이기에 평소 같으면 누군가와 만날 텐데, 아무도 만날 수 없어 저절로 발길이 빨라진다. 운대봉에 올라서니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온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려면 이 산에 나 혼자 뿐이겠는가. 안개에 휩싸여 바라보는 것조차 궁색스러워 곧바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동문으로 내려가다가 드디어 산꾼들과 조우한다. 궂은 날씨에 젊은이들이 한데 어울려 산행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동문에서 남문으로 가는 산길은 언제 걸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몇 해 전에 뜻하지 않는 시련에 부딪쳤을 때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그러나 이젠 아프고 쓰라렸던 지난 일들이 빛바랜 추억으로 다가선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홀로 걷고 싶은 길이지만 언제나 마음뿐 오늘도 어김없이 산우들과 마주친다.
  

 가랑비에 옷을 적신다더니 남문에 다다르니 웃옷에서 빗물이 흘러내린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일찍 출발했음에도 예측이 빗나갔다. 촉촉해진 산길을 기분 좋게 걸어 주차장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다. 뱃살을 줄이려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는 고행산행을 무사히 마무리 짓고 나니 발걸음이 가뿐해진다. 그래 뭐든지 시작이 반이 아니던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