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06년 9월 20일 수요일

장소: 회룡역-범골능선-사패능선-사패산정상-포대능선-도봉주능선-우이암-도봉매표소


 

전날 밤 내내 바이러스에 시달리다, 일에 시달리다 날밤을 샜다. 하지만 꼭두새벽부터 정성껏 김밥을 싸고 닭을 삶아서 찢어서 샐러드를 만들고 요란을 떨었던 것은, 나름대로 오늘 산행이 내게는 의미가 컸던 까닭이다.

 

태어나서 처음 산악회라는 곳에 들어와 건방지게 호젓함, 평일, 이런거 다 따져서 처음 신청한 산행이 사패도봉산 평일 번개산행이었다. 4개월 전, 5월 11일 목요일.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이 다 예상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제법...많이...힘이 들었더랬다. 이번에는 같은 코스긴 하나 그때 함께 했던 세 분들 중 한 분이 치신 번개산행에 신청자도 달랑 나 하나다. 같은 날 뒷산에서는 전어구이 야간산행 번개가 있다고 하여 귀가 또 솔깃 하였으나, 올 가을엔 여기저기 전어 유행이 불은 덕분에 전어구이, 전어회도 골고루 다 맛을 보기도 했고, 그 정도 유혹에는 끄떡도 없을 만큼 꼭 놓치고 싶지 않은 산행이기도 했다.


 

지난 4개월은 모처럼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산에 오르고, 음식을 먹고, 생각하고, 말을 하고, 술을 마시고, 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들이 순간순간 내게 생소해보이는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늘 사람들을 접하는 일을 하다 혼자 하는 일로 직업을 바꾸고, 한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했는지 사람들 사이에서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산에서 보고 싶었다. 지금도 그 때처럼 꼭같이 힘이 들까. 그때 그 길을 오를 당시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하나의 기억은 아직도 나를 찌를 힘이 남아 있을까. 세상에 막 다시 나왔던 내 눈에 펼쳐졌던 눈부신 그린 카펫에는 벌써 붉은 색 무늬가 아로새겨지고 있을까. 그리고 이제 내겐 또 어떤 모습으로 또 하나의 추억이 남게 될까.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이번 번개장이자 유일한 산벗으로 하루를 함께 했던 친구는 그때 함께 했던 세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그날 산행 이후로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했던 친구다. 사패 도봉산은 그 친구네 집 뒷산이라 평일에는 혼자서 늘 다니다가 심심해서 번개를 함 쳐 봤는데, 평소 인기관리를 워낙에 제대로 했던 탓에 참석자가 달랑 나 하나가 된거다. 아마 속으로는 무지하게 고맙게 생각했겠지만 겉으로 별로 내색은 않는다.

열시 땡 치기 일보 적전에 회룡역에서 만나 꼬박 하루를 함께 하며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둘이서 하는 산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유람산행도 아닌데 이렇듯 수다스럽게 가기도 힘이 들 것인데,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우리의 대화는 장르를 넘나든다. 산의 힘, 나이의 힘이다. 서른을 훌쩍 넘겨도 한참 넘긴 나이에 아직도 세상을 세상이라, 인간을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어 하는 진지함이 많이 낯설어 보이지는 않았다. 수업 땡땡이치고 학교 앞 주점에서 젓가락 치켜들며 흥분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가끔 들 만한 화제들이다. 하긴 뭐 마감을 코앞에 두고 땡땡이를 치는거니 별 다를 것도 없지.


 

워낙에 이번에는 잠을 못자 체력한계가 올지도 모른다는 정신무장이 잘 돼 있어 집에 와 뻗을 때까지 얼마나 힘이 드는 줄도 몰랐다. 우이암에서 처음 작정했던 우이매표소 대신 도봉매표소로 내려온 것은 순전히 술과 이야기에 묻혀 점심시간, 쉬는 시간이 길어진 탓이고 해가 짧아진 탓이다. 근교 산행이라도 6시간 소요 예상이면 언제 출발하든 내게는 헤드렌턴이 필수다. 명당 자리에서 술 한잔, 이야기 한 가락 풀어지기 시작하면 하산 길 날 저무는거야 따논 당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는 만약에, 정말 만약에 기운이 쬐~~~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과천까지 직행해 뒷산 전어로 입가심을 하리라는 속내도 있었다. 물론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었지. 기운이 남다니...ㅋ

 

목표거리 지향적 산행을 하는 나와 달리 마감시간 지향적 산행을 하는 번개장님 덕분에 헤드렌턴 쓸 필요없이 어둡기 전 내려왔다. 배가 너무 고프다. 처음에는 두부집들만 보이더니 좀 지나니 온통 전어집들 투성이다(과연 요즘 이혼률이 높긴 높은 모양이다. 집나간 며느리들이 너무 많아졌다). 헌데 느닷없이 삼겹살 생각이 난다. 며철전 체육관 관장이 바뀐 후부터 저녁나절 주린 배를 움켜쥐며 체육관을 나설 때마다 1층에서 피워대던 삼겹살 냄새 때문에 도야지한테 상사병이 걸렸었나보다. 

 

그런데 정작 파는 집이 없다. 이런 술집 투성이 골목에 대한민국 대표음식 삼겹살을 파는 집이 없다니. 아무리 산밑이지만 믿기 힘든 일이다. 됐다고 다른 걸 먹자고 해도 자꾸만 먹고 싶은걸 먹으라고 부추키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큰 길까지 다 와가서 마침내 한 집 발견했다. 고기집은 아니고 이것저것 파는 안주 중에 삼겹살이 겨우 끼어 있는 걸 눈이 빨개진 내가 귀신처럼 발견한거다. 후다다닥 들어가서 짐 풀고 앉아서 주문을 하니, 삼겹살이 없고 목살 뿐이란다!! 목살 아니라 목살 할아버지라도 이제 더 갈 곳이 없다. 대신 많이 달라고 했더니 둘이 다 먹지도 못할 만큼 푸짐하게 많이 주셨고, 떠껀한 해장국 뚝배기까지 두 사발 공짜로 주셨다. 너무나 맛있게 잘 먹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7천원짜리 고기를 6천원에 계산해 주시는 센스까지 발휘해 주셨다고 한다...아줌마 최~~고!

 

 

한 시간 넘게 전철을 타고, 사당역서 집으로 향하는 끝내기 등산을 하고, 배낭과 옷과 양말에서 빠져나와 샤워를 하고, 배터리 다 돼서 전화기 꺼지면 꼭 한꺼번에 들어와 있는 문자들 답해주고, 머리를 말리며 이제 잠이 오는지 안오는지도 모르는 공황상태에서 블로그를 한번 둘러보고, 비칠비칠 침대로 가 그대로 쓰러졌다. 푹~~~자고 나서 일어나보니 한참 오후다. 열서너 시간쯤 잤나보다...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좋다.

 

지난 번보다 훨씬 덜 힘들었으니 4개월 동안 체력은 많이 좋아졌다. 그때 그곳에서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하나의 추억은? 이제는 나를 찌르기보다 미소짓게 했다. 발아래 펼쳐지던 눈부신 그린 카펫은 언뜻 보면 여전히 눈부신 그린 카펫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붉은 기운이 불끈불끈 막 올라오고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올 때는 완전히 또 다른 모습이겠지. 같은 산, 같은 발자욱 속에서도 그렇게 시간은 가고, 나뭇잎은 물들고, 그 자리에 또 새로운 추억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