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단상 1> 가을타는 남자 -(순창 강천산)

 

 

 가을은 왜 잠자고 있는 남자의 감성을 건드리는가. 시월의 달력도 뜯길 시각을 기다리며 대롱대롱 벽에 매달려 있다. 시월 마지막 주말 1박2일 일정으로 집을 떠난다. 갓 시집온 새 색시도 김장 서른 번을 담그고 나면 어느덧 세월이 그녀에게 훈장을 얼굴에 달아 준다. 아내를 바라보니 아내도 지금 막 훈장을 받으려 하고 있다. 가을이 훈장을 얼굴의 주름살에다 달아 줄까, 머리카락에 매달아 줄까 고르고 있다.

 

 단풍하면 정읍 내장산 단풍이 전국에서 으뜸이리라. 작년 이맘 때 올라본 서래봉의 풍광이 겹쳐온다. 금년 2월인가, 눈 덮인 내장산 까치봉이 또 눈에 밟힌다. 그러나 이번엔 순창 강천산 단풍 유람으로 결정을 내리고 길을 떠난다. 편리함 때문에 20여 년 동안 자동차 여행만 고집했던 나는 꽉 막힐 일요일 상경 길을 생각하고 대중교통 이용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인터넷으로 하행 편은 우등고속으로, 귀경 길은 KTX 편으로 예매를 하고나니 벌써 고속버스 창가로 스치는 가을 풍경이, 강천사 여승의 독경소리가 그리고 애기 단풍이 나를 고향 길로 인도한다. 오후 4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우리 부부는 우등고속버스에 몸과 마음을 실었다. 그리고 젊은 날의 사랑까지 한 보따리 가슴에 품고.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차량 홍수로 벌써 길이 막힌다. 나처럼 단풍 관광에 나선 차량들일까? 판교 톨게이트를 어렵게 벗어나자 전용차선 길이 서서히 시속을 높이기 시작한다. 옆 차선들을 바라보니 도로가 주차장이다. 오랜만의 버스 여행에 만족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홀가분함을 맛본다. 정읍 터미널에 예정 도착시각 보다 10분 쯤 늦게 19:20분쯤 도착했다. 금년 2월 내장산 등반 후 맛 본 그 피리탕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반갑게 맞이하는 최원장 부부와 ‘두리식당’으로 간다. 그 때 그 맛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피리와 민물새우 그리고 시래기가 적당히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그 국물 맛에 반주로 들기에는 소주 한 병은 너무 적다.

 

 다시 우린 벽난로가 적당하게 분위기를 잡아주고 또 음악이 흐르는 룸싸롱으로 자리를 옮긴다. 밤이 새도록 얘기꽃을 피우다 집주인의 아코디언 연주에 박수를 보내며 와인 한잔의 향을 맡는다. 정읍에 올 때 마다 넉넉한 부인 마님의 미소와 음악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가진 주인장의 광기(?)로 나는 그만 추억을 안고 꿈나라를 나르는 편안한 한 마리 산새가 된다.

 

 새벽 6시 전주에서 이번 산행에 동반키로 한 후배 강선생 부부가 도착하여 정읍 삼백집에서 콩나물 해장국으로 간단한 요기를 마친다. 세 가족 일행은 쌍치를 돌아 순창 가는 국도 길을 달린다. 새벽길은 안개로 자욱하다. 가끔 흘러간 안개 저편 쌍치 가는 능선엔 수채화 물감을 찍어 만산홍엽(滿山紅葉)을 그려내려 하고 있다.

 

 강천사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를 맞는 아침산은 경건하다. 서둘러 온 탓인지 산행 인파가 한적해 빨간 단풍이 우릴 더 반갑게 맞이한다. 병풍바윌 지나 강천사 가는 길은 평지로 편안하다. 계곡엔 명경지수가 흐르고 가끔 고인 용소엔 낙엽이 첩첩이 떠 있다. 왜 벌써 낙엽 되어 다른 동무들보다 먼저 삶을 버리는가. 최원장 왈, “입관하는 순서엔 선후배가 따로 없어” 한마디 던지는 독백에 내 순서를 잠깐 생각해 본다.

 

 빨간 애기단풍이 탄성을 지르게 곱다. 강천사 절마당엔 내가 이제껏 보아온 대웅전중 그 크기가 제일 자그마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법당 부처님은 강천산을 머리에 인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세심대(洗心臺)를 기웃거려 보았으나 여승은 꼭꼭 숨어 마음을 씻고 있나보다. 세심대는 처마에 곳감을 주렁주렁 매단 채 나그네에게 정숙을 강요한다.

 

 현수교엔 이른 아침이라 길손이 한 사람도 없이 하늘 속에 홀로 정차중이다. 양 옆 구름다리 밧줄만이 단풍나무를 동여맨 채 고요하게 하늘에 떠 있다. 구장군 폭포엔 영락없는 깊은 여체의 음부만 살짝 보일 뿐 물이 말라 있다. 초록을 빨간 단풍으로 채색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 버렸나 지쳐있다.

 

  북바위 올라가는 계곡에서 먹자전을 연다. 강선생 부인은 정성들여 싸온 사과, 배, 떡 그리고 찰밥을 그리고 최원장은 쑥 떡, 홍시, 찰떡을 먹자전에 내놓는다. 내 가방엔 아내의 식성과 나의 게걸스런 식탐만 들어있어 나는 내 가방 열기가 좀 부끄럽다. 북바위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북바위는 금성산성을 거느리며 산성산(해발 603 m)을 올려다보고 서 있다. 산성에서 눈을 돌리니 북 쪽으로 담양호가 고요하게 물을 품고 앉아 있다. 저 멀리 산 계곡과 능선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색동옷을 입고 물을 감싸고 있다.

 

 또 자리를 잡고 배낭 무게를 줄인다. 이번엔 컵 라면 파티다. 산상에서 먹는 이 맛이란? “인생은 먹는 게 남는 거여.” 하~ 최원장도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읽었는지 그 말을 기억하며 명언을 남긴다.

 

 “Man is born to live not to prepare for the life......." (인생은 먹는 게 남는 거여...)

 

 갑자기 등산객이 많아졌다. 산 방(자리)을 뒷사람들에게 빼주고 송낙바위로 하산 길을 잡는다. 강천 제2호수까지 가는 길은 철제 계단 길과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다시 구장군 폭포 여체의 음부를 만난다. 아내 몰래 살짝 곁눈질하다 엉큼한 마음을 아내에게 들킨다. 9.2 킬로미터의 산행 길을 내려오니 늦깍기 산행인 들이 현수교에 구름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오전과 달리 주차장엔 차로 꽉 차 있고 도로가 4~5 킬로 까지도 관광버스와 자가용차들로 뒤엉켜 있다. 겨우 길을 빠져 나와 쌍치길 산허리를 돌아 정읍 사우나에서 피로를 씻는다. 또 생각나는 소주 한잔을· 피리탕에 곁들이니 술맛이 입안을 뱅뱅 돈다. 정읍발 20:43분 KTXX엔 최원장이 애지중지 길러온 10년 묵은 커다란 인삼주 한 병이 우리 부부와 서울로 동행하고자 무임승차를 한다. (2004.11.01)

 

<사진모음>

☞강천사 단풍
 


 


 


 


  

 


 

 

 

 

 

 

 

 

 

▼ 구장군 폭포 /  ?
 

 

★ 북바위
 

 

 

 


 

▲ 하산시의 현수교 / ▼ 입산시의 현수교
 

 

 ★ KTX에 무임승차한 인삼주 (작은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