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의 사리를 뛰어넘은 소년의 한줄기 눈물-

 

백두대간 신선봉 마산 종주기(11월 6~7일 무박산행)

 

오늘은 늘보산악회 백두대간 1차 종주대가 미시령에서
1년 6개월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40회에 이르는 지리산천왕봉에서 설악산 마산을 끝으로 오르며
아쉬운 남한구간을 마무리 하는 날이다.

 

나로서는 죽령(소백산)으로부터 시작되어 남다른 사연으로
늘보에서 마무리를 하게 됐다.
여기서도 징검다리로 몇 구간을 빠뜨렸으나 오늘은 김홍구 부자가
대간을 마무리하는 날이라 깊은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특별히 1시간 전에 종로5가 방산시장에서 오랜 헤어짐 끝에 다시 만나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또한 부자종주 완성의 마지막 구간을 걷는 것을 동시에
축하하는 축하주를 마시기 위해 일찍 만났다.

 

걸쭉한 막걸리를 벌써 시켜놓고 나를 기다리는 김홍구의 표정은
밝고 자신에 차 있었다. 종근이도 건강하고 밝아보였다.
막걸리를 두 세잔씩 헤치 우는데 대장님과 종주대원들을 계속만나
잔을 나눈다. 모두 다른 때와 다르게 들떠있고 흥분된 분위기다.

 

10시 10분이 되어 설악산 미시령으로 출발한다.
클린턴 휴게소에서 소형전구 4개(2400원)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샀으나 사용하지는 않았다.

 

2시 20분 미시령에 도착 배낭을 버스짐칸에서 꺼내고 랜턴 꺼내고
윈드자켓을  입고 5-10분 주춤 하는 사이 선두는 빠져나가고
열 댓 명이 출입금지 표시기를 지나려는데 설악산 국립공원관리공단직원이
우리의 앞을 막고 다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종근이 부자는 먼저가고 재우를 가리키며 이렇게 어린소년이 서울에서
여기까지 대간을 마무리 하려고 왔는데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하소연해도  절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통과를 요구하는 하소연과 공단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사이 2명이
그냥 통과해 들어간다.
재우와 나도 바로 뒤따라 출입금지 표시판을 넘었다.

이익수 대장께서 뒤에 남아서 잘 처리하겠지..

나중에 알고 보니 대장님도 한참 실랑이 끝에 그냥 진입했다고 한다.
혹시 벌금을 내거나 다른 불이익을 받을지 걱정이다.

 

하여튼 2시 30분을 넘어서 대간 길로 들어선다.

나뭇잎을 모두 털어낸 마른가지 사이를 한가위 송편 같은 달빛이
뿌옇게 하얀빛을 솟아낸다.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별을 머금은 나무들은 엷은 반짝임을 튕겨낸다.

그 사이로 일곱 개의 북두칠성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그 위로 가장
강력한 별 하나가 어둠을 자신의 몸속으로 막아내는 듯 밝게 반짝인다.

 

저 별은 오늘 백두대간 완주를 마치는 종근이의 별 일 것이다.

조금 써늘하지만 바람도 거의 없고 맑은 날씨는 종주자들 에게도
편안한 벗이리라.

랜턴 불빛은 달빛과 어우러져 우리의 갈 길을 환하게 열고 있다.

30분쯤 오르막을 오른다. 등로는 너무 뚜렷해서 과연 출입금지 구간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얼마 후 등로와 직각방향을 이루는 임도인 듯한 넓은 도로가 좌우를 관통하고
3-4인용 텐트를 충분히 설치할 수 있는 넓은 공터를 만난다.

 

잠시  심호흡 후 물을 마실까 하다 그만두고 조금 급한 경사를 오른다.
대간의 방향이 북동쪽으로 자리를 바꾸는 듯한 느낌이며 약간의 바위 길에
주의를 하는 사이 속초의 불빛이 하늘의 별빛아래 자신을 경계 지우고 있다.

 

속초는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 웰빙 도시 1위로 선정됐다.
어둠 속에서 도시의 경계를 멀리 밀어내고 수평선의 불빛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펼쳐져있다. 오징어잡이  배들이라 생각된다.

종근 부자와 다시 만나면서 새벽졸음을 이런저런 잡담으로 이겨내며
완만한 오르막과 조금경사진 마루금을 천천히 오르는 사이 본격적인
너덜지대(내키만한 크기로 된 바윗길)를 만난다.

조심조심 100m터 가까이 지나고 다시 돌길을 만나고 나서
우측으로 전망이 좋을 듯싶은  곳이 어둠 속에서 직선의 시선 속에
한, 두개의   자동차 불빛이 산 아래쪽의 도로임을 보여준다.
아마도 신선봉가기 전 상봉일것이다.
 
지금도 캄캄한 밤이라 삼각점을 맞는 감회도
전망도 얻을 수 없다. 분홍색 향기를 품어내는 귤을 입속에 넣고 수분을 되씹으며 야간산행의 아쉬움을 달랜다.

 

5사가 넘어가며 먼저 출발한 후미 대장님과 2-3인을 신선봉 갈림길에서 만난다.
신선봉 에는 7명이 올라갔다고 한다. 지금 신선봉 으로 올라가야 마땅하나 어둠 속에서 속초의 불빛만 반짝일 것 이다. 정상 까지 가는데도 십 여분을 걸어야한다, 잠시 갈등 끝에 대간 마루금으로 향한다. 편평하고 곧게 뻗은 마루금이다. 가벼운 산책하는 느낌으로 걸으면서 시계를 다시 본다.

 

오늘은 시계를 자주 보게 되는데 아마도 야간산행시간이 길어서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일까?

 

6시가 가까워지면서  나도 졸리고 종근이 재우가 졸린다고 잤으면 좋겠다고 한다. 내가 졸린데 어린 소년들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이 새벽녘에 매트리스를 깔고 눕는 순간 추워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
졸음과의 전쟁을 이겨가면서 급경사를 내려간다.

 

6시 30분이 가까워지면서 능선의 형상이 나타나고 어둠과 빛의 애매한 공간을 매우면서 대간 길의 뼈대가 머릿속에 채워진다.

 

대간령이다.
어둠이 서서히 걷어지면서 새볔의 한기는 가볍게 흐르는 저린 땀을 삼켜낸다. 살갗의 가벼운 떨림에 윈드 자켓의 옷고름을 땡기고 모자를 더 깊이 눌러서 머리의 열기를 지켜낸다.

 

저 멀리 능선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고 분주히 좌우로 움직임이 들어온다. 새볔의 추위를 떨 구기 위함일 것이다.

 

일출을 보기위해 조금 빠르게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려는데 재우는 15미터쯤 가다가 쉬고 다시 가다가 쉰다. 졸려서 그럴 것이다. 한번 야단치고 또 달래고 하니 총총걸음으로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지금 까지 걸어온 마루금 저편 능선의 언저리에서 주황색 불꽃이 서서히 산 능선을 물들인다.
급경사 오르막이다. 빨리 걷지 못하고 열심히 걸으면서 일행과 합류한다. 다시 밝아졌고 또 한번 일상의 반복을 확인한다. 일상의 법칙대로 해는 떴으나 오늘의 일출은 다른 날의 일출과 사뭇 다르다. 뭉클한 산하의 울부짖음에  심장의 고동소리는 가엾다.

 

붉은빛 저편에 속초를 멀리 떠난 작은 마을들의  흩어진 민가들이 나타난다.

 

종근이 아빠는 카메라로 오늘의 즐거움을 열심히 담아내고 있다. 저 한편에서는 대장님을 비롯한 8-9인이 라면을 끓이면서 식사를 준비한다. 우리도 이 일행과 약간 떨어져 평지에 매트리스를 깔고 식사를 한다. 준비한 포도주로 김홍구에게 축하주를 건 낸다.

미역국도 끓이고 대장님 팀에서 준 라면은 금방 동이 나고 대장, 총무, 후미대장 젊은 친구에게 포도주 한잔씩을 각각 권하고 조금씩 준비한 다양한 음식으로 대간 길을 같이 걸어온 기쁨을 배가 시킨다.

 

7시50분이 넘어서 마산을 향한다. 

약간의 너덜을 만나나 졸음도 가셨고 허기도 없으니 자신 있게 지난다.

큰 전목들의 숲 지대를 통과한다. 큰 나무들 사이로 길은 뚜렷하고 바위길도 사라져서 인적이 없는 대간 길은 또 한번의 깊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청산에 홀로 가는 나그네” 표시기가 나무에 걸려있다. 노란바탕에 파란색글씨다.
김홍구와 나는 잠시 주춤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멈추어 선다.
“햐아” 하는 탄성소리가 홍구씨의 입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른다.
종근이와 재우도 같이 멈추어 서서 표시기의 숨은 뜻을 음미하는듯하다.

 

세상살이의 험난함을 한줌의 언어 속에 묻어버린 고도의 수사학이다. 과연 그러한 것 이다.

이 풍진 세상 오욕칠정의 업보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무기력함이 함축된 뜻이다.
만나고 본적도 없이 홀로 대간 길을 걸어간 산 꾼에게 삶의 철학적 공통분모를 느낀다.

 

8시 20분 마산을 오른다. 이 곳에서는 향로봉이 보이고 그 뒤로 금강산이 아득히 멀리 물러서 있어서 형체는 흐릿하다.
남북의 형제들이 분단을 맞은 이래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상호의 존재를 흐릿한 기억의 뒤편으로 밀어 냈을 것이다. 이어져야만할 대간 길 금강산의 능선은 머릿속에 작은 기억으로 남으리라. 향로봉을 오르는 군사도로가 눈에 선하고 산하의 밑은 우리나라 최고의 설질을 자랑하는  알프스 스키장이다.

 

지금은 유럽의 작은 농장위에 펼쳐지는 풍경처럼 스키장의 콘도는 유난히 푸른 하늘 밑에 서로 어깨동무 하듯이 다정한 모습으로 도열해있다

 

이곳에서 이전 덕유에서  대간 길을 같이 걸었던 조형과 아름다운 이별사진을 남긴다.

 

그리고 8시30분이 넘어서 진부령으로 하산한다. 종근이 재우를 뒤로하고 먼저 하산한다.

아빠들이 빠진 대간 길을 서로의 헤어짐이 아쉬운 소년들의 언어가 낙엽이 섞이는 소리처럼 아득하다.
오래간만에 둘의 시간 속에 버려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없이 먼저 내려왔다.

 

5분후 종근아빠가 기다리고 있다 잠시 기다렸다가 아이들과 합류한다. 스키장리프트가 내려서는 지점에서 부자종주 플랭카드를 꺼내고 재우는 성의껏 촬영한다. 다시 오른쪽으로 작은 언덕을 넘어서는데 낙엽송과 가는 솔잎들이 떨어져있는 길은 푹신푹신하다.
이 언덕을 내려서면 대간 길 마지막 구간인 진부령이다. 푹신한 다리의 끝이 가슴속으로 통하며 마음은 한없이 따듯하고 아득하다.

 

이것이 산이고 대간길인가?
정녕 저리고도 시린 풍경의 추억인가?
산과사람 ,풍경과 사람 , 사람과 사람의 종적, 횡적 결합의  궁극의 현상인가?

 

10시40분 진부령 표시석을 만난다. 백두대간 완주 수료증이 전달되고 시래기국 식사를 한다.
종근이는 식사를 하는데 재우는 버스에서 되는데로 포즈를 취한 체 잠들어 버렸다.

프랭카드와 함께 멎진 기념촬영은 계속된다. 아쉬움과 감동속에 40대 여인은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다시우리를 실은 버스는 바닷가로 향한다. 1만원씩 각출하여 회 한사라 소주한병의 자금을 조달한다.

 

고성군이다. 북에서 제일 가까운 항구인 거진항이다.

 

갈매기는 한가로운 듯 바쁜 고기잡이 배위를 날고 멀리 작은 섬인 듯 먼곳도 급하지 않게 여유로운 날개짖이다. 늦가을 휴일 어촌과 한가로운 갈매기는 적당한 어울림이다.

 

싱싱한 회에 소주 여러잔을 목에 넘기는데 그만 종근이의 눈물을 보았다. 소년은 이내 소매깃으로 얼굴을 훔쳐낸다.

소년의 눈물은 이미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슬픔의 눈물로 보이지 않았다.
도상거리 700km 실거리1200km(어푸로치와 하행거리 포함)에 이르는 남한의 산하를 넘어온 기쁨은 주체할수 없이 눈물샘을 자극해 흘러 버렸을 것이다.

 

소년의 눈물은 더 이상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수없는 능선을 넘으며 뿌린 땀방울이 빚어낸 눈물 속의 눈물 이었으리라

 

소년은 한번의 봄과 두번의 여름 두번의 가을 한번의 겨울을 걸어왔다.

봄날 진달래의 향기에 취했으며 여름날 습기를 뿜어내는 활엽수의 비린내에 지쳤으며
겨울산 추위를 이기고 눈길을 헤치며 강해졌으리라.
다시 가을산 늦은 단풍을 보며 결실의 땅에 이른것이다. 최후의 토지에 내려설때 가을나무의 잎사귀는 빛을 버리고 있었다.

 

소년은 지리산에서 힘에겨워 울먹였으리라. 다시 덕유산에서 아름다운 가을산에
안도했으리라. 속리산을 오르며 추위에 떨었으며 소백산에서 친구를 보내고
새로운 친구를 만남에 다행스러웠으리라. 길고길었던 태백산 함백산의 여름능선은 장대비를
뿌리고 소년은 이에 당당히 저항 했으리라.

다시 대관령에서 잠시 숨을 고른 소년은 오대산에서 젖먹던 힘을 토해냈으리라
남설악 점봉산을 올라 일출과 함께한 설악대청봉은 아득한 꿈으로 새겨졌으리라.

 

그리고 황철봉과 신선봉을 넘어 진부령에 서서 그만울고 말았다.

 

소년의 눈물에 나도 그만 한줄기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세월은 달라도 소년의 눈물과 나의 눈물은 다르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산허리를 갈라온 세월의 질감은 다르지 않았다.

소년의 흐느낌은 깊었고 나의 눈물은 떨렸다. 떨림과 흐느낌의 세월을 함께 안았다.

 

서울에 와서 재우에게 물었다. 너는 울음이 나오지 않았느냐고? 울음이 나오려는데 참았다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사람은 울었으리라고!

 

현실과 과학의 현상학을 비웃은 소년의 기적은 고승의 사리를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가장 아름답고 질긴 생명의 힘을 목도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증거한 소년에 의해 무릎 꿇여졌다.

 

살아서 물결치는 대간의  마루금은 소년의 기갈에 물 한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물러설수 없는 전선의 배수진 처럼 주저 앉은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므로 소년은 가장 애처로운 팔과 다리를 저어 그 운명에 맞선다.

 

소년은 백전백승 할것이다.

                                                                                                                 2004년 11월 9일 1시 깊은 사색 속에 잠겨서... 
                                                                                                                                                                  신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