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저문 가을날,낯선 山寺에서의 하룻밤
글쓴이    빈자리    글쓴날짜  2004.11.09  (211.204.29.71)
ㅇㅇ에게

사찰순례를 겸한 산행이라며 동행의향을 묻는 그에게 한치 망설임없이 OK하고 손꼽아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작년 여름 송광사만 돌아보고 조계산과 선암사를 보지못해 아쉬웠었는데...
그곳이 어디든 모든 이들이 여행을 꿈꾸는 이 계절에 가보고 싶었던 곳, 더구나 산사에서 하룻밤 묵는다니 내 어찌 설레지 않았겠니? 불자도 아닌것이 절을 왜 늘 기웃거리게 되는지.......

그러나 출발일이 한번 연기되고 연기된 그 날이 하필 큰아이의 휴가와 겹쳐지길래 아직은 인연이 아니구나라며 포기했었는데 두어번 다시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수있어 좋았지
물론 그야 산이 목적이지만 난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보잔 마음이었고...^^

길로 나서니 가을은 이미 깊더라
그러나 막 가을걷이를 끝낸 빈 들녘은 스산함보다는 아직은 온기를 담고 있었고,
이 가을은 온 산들을 마지막 열정으로 태우고 있었어

목적지인 전남 승주 선암사를 찾아들땐 이미 사위는 칠흑같은 어둠에 갇혀 내딛는 발걸음을 조신케했지만, 가슴깊이 스미는 청아한 밤공기와 손을 내밀면 잡힐듯한 무수한 별을 보며 그곳에 있음이 정말 행복했었지

내가 일행들과 하룻밤 묵었던 방은 심검당(心劍堂)이었는데 대웅전 좌측에 있었어
마음속에 보검을 품은 듯 내 안의 모든 욕(慾)을 잘라내며 자신을 정화시킨다는 뜻이라는데(설명을 들었는데도 이 아둔한 학생 가물가물하구나^^)암튼 난 그 방에서 달라붙는 추위조차도 잘라내지 못해 결국엔 윈드스토퍼를 꺼내입고서야 눈을 붙였었지(남자방은 찜질방수준이었다는데..^^)

추위때문에 잠을 설치며 세시에 눈이 떠질까를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어
정확히 그 시간에 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외며 경내 구석구석을 다니시드라
설핏 잠결에 방송이 나오는건줄 알았지뭐니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말이다
부지런히 정돈을 하고 스님들이 예불을 모시는 대웅전 건너편 만세루에서 몇번 절을 하고나와 범종타종,목어와 법고를 치는 모습을 지켜봤었다
무겁고 깊은 떨림은 세상의 어둠을 거둬내는듯 하고 스님들의 염불소리는 어줍잖은 나같은 속물에게까지 옷깃을 여미고 두손을 모으게 하더구나

공양이 끝나고 잠깐 설겆이를 도운 후엔 경내를 안내해주시는 스님의 설명을 들었는데 어찌나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을 하시는지 일행들은 간간히 폭소를 터트렸었지
제주도를 빼곤 내가 알아듣지못할 방언은 거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전라도말도 못알아 듣겠더구나^^
이 말씀만은 기억나네
우리들은 전생엔 이보다는 나은 존재들이었다고,현생을 갈고 닦아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후생은 이보다 못할꺼라는 그 말씀..난 무서웠거든(보통의 모든이들의 경우라네)
그럼 내가 살아내는 이 시간은 멍멍이가 되려는 시간이냐? 꿀꿀이가 되가는 과정이냐?
쌓은 덕도 없고 업만 보태가며 살고 있는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반드시..아휴~ 생각만으로도 무섭지?
하지만 사람으로 살고있는 현생이 부처의 경지에 들 수 있는 최고의 기회란 말씀도 하셨지 자신을 갈고 닦을수 있으니 말이야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란 말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말이다
주변 누구든 소중치 않은 이는 하나도 없는것같아
내가 억겁을 다시 산들 우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일정에는 주지스님이 법문을 들려주실거였는데 출타중이시라 영광스럽게도 태고종종정이신 혜초스님이 법문을 들려주셨단다 속가의 연세로 이미 고희를 넘기신분인데 가까이 뵐 수 있었던 그 분의 눈을 아마 난 잊을수 없을거야 칠순 노인의 눈이 그렇게 깊기도 하더구나
더구나 친히 각황전을 안내해 설명까지 주시니 몸둘바를 몰랐었어
산행시 수많은 산사를 지나쳤건만 선암사는 내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겠지
바쁜 일정을 따라 다니느라 느긋하게 구석구석 찬찬히 돌아보지못해 돌아와선 내내 아쉬웠었어 인터넷을 살피니 얼마나 놓친게 많았는지 알게 되었거든
관광객이 넘쳐나던 송광사를 포기하고 선암사에 좀 더 머물렀다면 좋았을것을....두고온 조계산도 언제나 가보게될지 요원해졌고...

그러나 ㅇㅇ 아
저문 가을날, 낯선 산사에서의 그 짧은 하룻밤으로도 오래 오래 기억될 좋은 시간이 되었단다 나는 올 가을을 그 곳에 묻어 두고 온 것 같아
언제나 이 해 가을은 그곳부터 떠올리게 될테니말야

 

스님께 경내를 안내받으며....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의 가을1

선암사의 가을2

 

태고종 종정님을 모시고...

 

 

선암사의 가을

 

송광사의 만추1

송광사의 만추2

 

송광사의 만추3

 

송광사의 만추4

 

송광사의 만추5

 

송광사의 만추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