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언제 생각해도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매력을 지닌 산이다.
그 크고 웅장하며 깊은 속내를 알 수 없을듯한 모습으로 자리하여 수 많은 역사의 뒤안길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는 그런 산. 그래서 우리는 그 속으로 속으로 안겨 들고 싶어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지리산 당일 종주를 여름훈련의 하나로 기획하고 실행한 우리팀은 서울 양재천을 매일 같이 달리는 '양재천 마라톤클럽'(www.yangjechon.com)의 달림이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full course 정도에 만족하지 못하는 ultra marathon에 참여하여 100km, 200km 이상을 달리는 지존의 경지에 이른 분들도 있고, 철인3종경기(Triathlon)에서 체력과 정신력을 테스트 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내가 아무리 산에는 좀 다녔다고 하나 마라톤 클럽에 이제 겨우 입회 두달밖에 안된 병아리 달림이가 이런 산행에 따라 나선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나도 한번 달려보고 싶다.

지리산 종주기야 수도 없이 많은 분들의 글들이 올라 있고, 그 중에서도 창원에 계시는 자칭 '산짐승'님이란 분은 성삼재<->천왕봉 종주를 왕복으로 하는 분으로 알고 있으니 나의 (스스로 자랑스런) 무박 당일 종주기쯤이야 그저 수 많은 종주기중의 하나로 대포 한잔의 안주거리밖에 안될지 모를 일이지만 행여나 비슷한 종주를 준비하는 분이 계시다면 도움이 될까 하여 올려 본다.

막바지 장마철이나 이미 계획된 일이라 호우주의보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추진되어 예정보다 소요시각이 좀 더 걸렸고, 어려운 점이 있긴 했지만 강인하게 단련된 정신력과 체력으로 아무 사고없이 목표시간내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을 참갖 모두와 함께 다행으로 생각한다.

7월 16일(금) 늦은 11:30 버스로 양재역 출발
7월 17일(토) 이른 04:10 성삼재 주차장 도착, 04:36 입산
산행코스 : 성삼재 - 천왕봉 - 중산리 소요시간 : 총 14시간 32분

(04:10)성삼재(04:36) - (05:30)노고단(05:50) - 임걸령(06:50) - 화개재(07:45) - 토끼봉(08:10) - (09:15)연하천(09:35) - 형제봉(10:15) - 벽소령(10:50) - 샘터(11:40) - 칠선봉(12:50) - (13:20)세석평전(14:10) - 장터목(15:00 - (16:00)천왕봉(16:30) - 중산리(17:08)

산행인원 : 20명(19명은 정규 마라톤 멤버, 1명은 게스트)
준 비 물 : 각자 개인 보호장구, 음식물(내달리려면 취사할 시간이 없으므로 간편 행동식인 주먹밥, 미숫가루, 쵸코렛, 사탕, 빵 등)외 물 등 준비

전국이 막바지 장마철의 불안정한 대기속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산행 짐을 꾸린다. 이것저것 있으면 짐, 없으면 고생인데 어~ 판쵸가 어디갔지? 다시 한번 짐밖에 안될 것들도 고민 끝에 배낭에 집어 넣는다.

밤 11:30 서울을 떠난다. 수면제 소주 한잔으로 잠을 청해 보지만 몸만 뒤척일뿐.

서울 출발 1시간도 안되어 폭우가 퍼붓는다. 또 잠시 가다가 비가 멎기를 반복한다.
잠시 비몸사몽 헤메이는중, 어느새 지리산 이정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삼재에 다가가며 짙은 밤안개, 가스가 꽉 차고 주변은 강풍에 나무들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성삼재에 도착하니 밖은 차가운 바람이 운무를 세차게 흩뿌리며 이리저리 불어댄다. 옷을 챙겨 입고 헤드랜턴을 장착, 하나둘 노고단을 향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04:36 입산.

운무가 자욱한 새벽이지만 희끄무레하게 길바닥을 볼 수 있어 랜턴을 켜지 않고 조심스레 나아간다. 30여분만에 노고단 산장에 도착.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컵라면과 냉동건조 누룽지그릇이 뜨거운 물 받기에 줄을 선다. 번개처럼 해치우고 이제 주능선으로 올라 선다. 05:50





산행 직전의 Carbo-Loading. 기운 차리자!!!



이제는 어스럼 여명을 이용하여 주 능선을 내 달린다. 사방 주위는 짙은 운무에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아마도 제헌절 연휴이자 휴가철도 시작이 되어 그런지 주 능선에는 전국의 내노라 하는 산꾼들로 줄을 이었다. 방학을 맞아 온 학생들, 백두대간을 하는 전문 산꾼들에서 부터 우리들 같은 체력훈련을 위한 팀들 까지... 그러다보니 이렇게 줄 서서 가다간 쉬엄쉬엄 힘은 안들어 좋겠지만 어둡기 전에 중산리 하산이 어려워질거 같아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리저리 양해를 구하고 뛰어 올라가지만 막무가내로 우리 사정만 생각하고 뛰쳐 나가기가 미안하기도 하다. 산에서는 누구나 똑 같은 생황일텐데...

주변 상황을 전혀 모르고 걷기만 계속하다 중간중간 이정표만이 현재의 내 위치를 알려줄뿐이다. 임걸령을 2:20만(이하 성삼재 출발 후 소요시각임)인 06:50 패스, 화개재를 3시간만인 07:46 패스, 토끼봉을 3:25만인 08:10 패스, 연하천을 40만인 09:15 도착.

배가 고파 잠시 간식을 하고 가기로 한다. 아직 비는 오락가락, 산꾼들은 허기를 면하기 위해 북적인다. 나도 빗물에 젖어 가는 주먹밥 하나를 꿀닥,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스니커즈 하나에 사탕 몇개를 시원한 샘터 물과 함께 먹고 쉴 새 없이 걸음을 재촉한다. 다시 6:40만에 형제봉 패스, 6시간 정도 지나 벽소령 부근에서 잠시 하늘이 열린다. 지리 10경의 하나가 벽소명월(碧宵明月)이건만 하늘이라도 좀 봤으면 좋겠다. 한쪽 산허리가 그 무성한 여름산의 자태를 슬쩍 비추고는 또 다시 덮혔다 열렸다를 반복한다. 그래도 어쩌면 천왕봉쯤에선 그 웅장한 자태를 볼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긴다. 7:00만인 11:40에 샘터에서 약수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8:14만인 12:50에 칠선봉 패스. 길고 험한 길을 돌고 돌아 8:44만인 13:20에 세석대피소에 이른다.

불과 얼마전의 세석은 척쭉과 야생화로 뒤덮혔었을텐데... 나를 반기는건 짙은 운무, 그러나 반가운 점심과 휴식이 있다. 선두그룹은 나보다 1시간여전에 왔다나. 나는 그리 힘들게 열심히 왔건만... 속속 도착하는 나머지 회원들과 함께 그나마 궁색하긴 하지만 점심상을 차린다. 그래도 마련해 온 진수성찬 찬밥에 찬 찬이지만 꿀맛이다. 뜨거운 커피 한잔이 그나마 화려한 정찬 뒤의 디저트 만큼이나 역할을 한다.





이런 밥맛 물맛 어디 있나요?







점심식사후 기념 촬영, 충전이 되었습니까?



먹고 쉬고나니 다시 기운이 느껴지는 다리를 앞세워 14:10 장터목을 향해 진군. 이제부터는 천왕봉 쪽에서 정상 후 내려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모두들 목표 달성 후의 만족감이 선연하다. 15:00에 장터목을 통과, 이제 해발표고차로 약 300M, 1시간여를 열심히 걸으면 드디어 목표인 천왕봉에 도달하게 된다. 가파른 길을 기력을 다해 기어 오른다. 주변의 즐비한 고사목을 일일이 아는척 하기도 바쁘다. 통천문에 이르기 직전 고산의 힘겨운 환경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를 지키고 있는 야생화 군락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런 야생화들을 무심히 지나치기가 아쉽다.



통천문을 지나 마지막 발길을 재촉하여 출발 11:24만인 오후 4시에야 드디어 민족의 명산 '천왕봉'에 안긴다.

세찬 비바람, 민족의 수 많은 사연을 묵묵히 들으며 변치 않는 모습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맞이해 주는 품 넉넉한 모습. '천왕봉' 표지석을 말없이 껴 안아 본다.





정상에서 감격의 기념 촬영(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잠시 세찬 바람속에서 정상주 한잔을 하고, 힘겨운 산행에 대한 감회를 나누며 오후 4:20경 하산을 재촉한다.

원래 정상에 이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처음 출발점에 무사 귀환 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목표 달성 후의 만족감에 자칫 전체 여정에 큰 흠이 될 수 있는 사고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깍아지른 너덜지대가 이어지며 중산리 까지의 하산길이 3시간은 좋게 걸어야 할 것이다. 하산길은 목표 완료 후의 느슨함과 피로로 인한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어 잠시의 방심으로도 큰 사고를 부를 수 있어 항상 조심하고 발걸음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full course를 넉넉히 달릴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된 양재천 달림이들은 굳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finish line 까지 내달리 수 있으리라.

하산 1시간 정도 후 부터는 세찬 비가 계속 된다. 비에 젖으며 걷는 3시간은 왜 그리도 지루한지... 그러나 지레 달려 갈 수는 없는 일. 한걸음 한걸음... 중산리 계곡의 힘찬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이제 다리를 쉬게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여기서 특별한 양재천 달림이 몇 분을 소개코자 한다. ultra는 기본인 분들이다.

'양재천 마라톤클럽'을 이끌어 가시는 조현세 회장님(히말라야 원정 경험)




이번 종주에서 처음에만 얼굴을 봤을뿐 하산해서야 겨우 본 ultra marathon man 채희성님. 이번 종주를 9:30만에 완주함. 이미 제주 200km 국제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경력이 있음.





부부 ultra marathon을 하시는 김기남, 김정옥님 부부. 김정옥님은 우리나라 100km ultra 기록 보유, 국제대회 다수 입상.


그 외 소개드릴 분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일일이 소개되리지 못해 아쉬울뿐이다.


이번의 유례가 없을 정도의 목적적 산행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며 우리 양재천 달림이들에게 있어서는 기록 달성뿐만이 아닌 결속력과 정신력을 다지는데 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 간 기획하고 준비에 수고해주신 분들, 그리고 함께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나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언제나 즐겁고 건강한 달림이들이 되시기 기원하오며,
양재! 양재! 양재천~ 화이팅~~~!


2004년 7월 18일 일요일 오후에 양재동에서

양재천 마라톤클럽 둘러보기

(아름다운 강산 - 이선희)




▣ 똘배(山梨) - 불순한 일기에 수고 많으셨네요. 저도 하프두번 뛰어본 왕초보 달리미입니다. 자기 한계를 시험하는 분들이 멋져 보입니다. 박정배님의 건투를 빌며 기우이겠지만 산에서도 다른 산님들에게 혹여 뛰시면서 불쾌한 일이 없도록 하시겠지요? ^^ 부럽네요.. 잘보았습니다.
▣ 산장지기 - 양마의 즐달을 기원합니다. 체력훈련차 지리산 종주를 하신것 같은데 다음 번에 시간을 여유있게 잡아 지리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통천문 가기전에 야생화를 언급하셨지만 연하천과 벽소령 사이에 있는 형제봉 바위밑에 굴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북한산 숨은벽에 있는 호랑이굴과 유사한 굴 이지요. 다음 번엔 지리산의 숨은 볼거리들을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양마의 발전을 기원 합니다.
▣ 아무래도 - 마라톤을 위해 지리산이 이용 당해"
▣ 아무래도 - 마라톤을 위해 지리산이 이용 당했다는 느낌이 들어 씁쓸하군요. 지리산을 위해 마라톤을 했다는 말은 성립이 안돼겠지요..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