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마트(:












전자바지 (2004.5.6 신불산 등산 후기)



 


그 동안 등산을 서너 번 했고 등산 후기 쓸 자료도 많이 모아 두었지만, 마음만 간절할 뿐 몸이 게을러서 지금 적고 있는 신불산 등산 후기만 겨우 골격을 잡고 이렇게 적어 나갈 뿐 다른 것은 초안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미루어 놓은 등산 후기를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만사가 귀찮은지 모르겠다. 이제 정신을 좀 차려서 베짱이와 같은 게으름에서 깨어나야지. 게으름은 삶에 있어서 최대의 적이다.



오늘 오르려는 신불산(神佛山)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남알프스에서 가지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에 이름이 올라 있었는데, 높이를 다시 측정한 결과 1,204m가 아니라 1,159.3m라는 결론이 나는 바람에 가지산(1,240m), 사자봉(1,189.2m), 운문산(1,188m)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 되고 말았다.


신불산은 간월산장과 가천마을에서는 많이 올랐지만 그 반대편인 배내골 방향에서는 단 한번도 오른 적이 없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울산 12경의 하나인 파래소폭포를 꼭 한번 보고 싶었지만 여태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이 그 기회라 생각하고 등산 코스를 그 쪽으로 잡은 것이다. 배내골 방향은 초행길이다.



 


울산 무거동 아람마트에서 9시 15분에 차에 시동을 걸었다. 따라 나온 사람은 변함없이 나와 같이 근무하는 권 씨 혼자뿐이었다. 오늘도 내 차를 몰고 간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항상 내 차만 몰고 가는 것이 적잖은 불만이지만 권 씨의 차는 버스보다 조금 작은 9인승 스타렉스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9시 55분에, 석남사를 지나 석남터널 못 미친 지점에 있는 갈림길에서 배내골로 진입했다. 이 갈림길에서 오른쪽 오르막으로 올라가면 석남터널을 지나 밀양으로 간다.



[석남터널 못 미친 지점에서 배내골로 들어가는 갈림길]



배내고개를 넘어 내리막으로 한참을 내려가니 도로 포장 공사를 한다고 길이 엉망이었다. 쉼 없이 땅을 파헤치는 포크레인과, 그 흙을 실어 나르는 육중한 덤프트럭이 일으키는 흙먼지로 인해 검정색 차가 금새 회색으로 변해 버릴 정도였다.


가파른 내리막을 거의 다 내려간 지점에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얼마 가지 않자 도로 왼쪽에 길천초등학교 이천분교가 보였다. 차 안에 부착되어 있는 전자시계가 10시 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천분교가 있는 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규모가 제법 큰 편이었다. 이천분교를 왼쪽으로 내려다보면서 오른쪽발에 힘을 가했다. 행여나 나아지려나 했지만 길은 갈수록 점점 더 험해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포장이 되어 있는 길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었으며, 흙탕물이 고인 곳이 수시로 나타나 차 밑바닥은 온통 흙투성이로 변해 버렸다.



길 왼쪽에 토번가든이 보이면 속도를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토번가든과 붙어 있는 종점상회를 지나자마자 좌회전하여 계곡을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다. 종점상회 맞은편에는 ‘←천지, ←금문가든’이라고 써놓은 작은 표지판도 서너 개 붙어 있다. 이곳 갈림길은 배내골 입구에서부터 9.2km 거리이고, 배내재 정상에서는 7km, 길천초등학교 이천분교에서는 2.2km 지점이다.



[청수골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종점상회 갈림길]


종점상회에서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들어서면 곧 계곡을 가로지르는, 난간도 없는 시멘트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넘어서면 3층짜리 커다란 건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건물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길이 왼쪽으로 한참이나 꺾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휘어져 올라가도록 나 있다.



[등산 초입인 청수골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으로 휘어진 길로 잠시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직진하여 오르막으로 올라야 한다. 왼쪽 다리를 건너가면 천지가든으로 가기 때문이다. 물론 천지가든 안으로 들어가서 주차를 해도 된다. 천지가든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이 엄청나게 넓다.



[왼쪽 다리를 건너면 천지가든임]


천지가든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직진하여 올라가면 곧 왼쪽에 ‘선리산장’이라고 써진 노란 입간판이 보인다. 이 계곡 주변에는 민가는 없고 대부분 산장이 자리잡고 있다.



[선리산장]


선리산장 앞길을 따라가면 곧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을 거치면 ‘청수골산장’이 눈앞에 보인다.


청수골산장에 도착한 시간은10시 25분이었다. 울산에서 이곳까지1시간이면 충분히 도착을 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1시간 10분이나 소요되었다. 물론 오다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주변을 구경한다고 속도를 좀 늦추기는 했지만 그래도 꽤 먼 거리다.


청수골 산장에 아무런 볼일도 없으면서 산장 안으로 들어가 주차를 하자니 마음이 좀 찜찜했지만 염치불구하고 마당에 차를 대었다. 그런데 주인의 인심이 좋아서 그런지 주차하는 것을 보고도 차를 빼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인심은 산골로 들어갈수록 넉넉해지고, 대도시로 나올수록 그와는 반대로 매정하고 야박해진다. 대체 왜 그럴까?


산장으로 들어서기 전에 산장 앞으로 난 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신불산 폭포 자연휴양림 방문자 안내소 표 사는 곳’이 나오는데 그 길은 하산 시에 자세히 설명이 나오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청수골산장]


10분간 휴식을 한 후 10시 35분에 산장 건물 중간의 느티나무 옆으로 난 길로 올랐다. 청수골산장은 건물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어져 있고 중간에는 적당한 크기의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느티나무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느티나무 앞을 지나치려는데 흰색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허연 이빨을 드러내면서 마구 짖어댔다. 주인이 옆에서 보고 있었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날씨도 더운데 놈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나도 모른다. 참고로 내 등산배낭에는 항상 잘 드는 칼이 하나 들어 있고 나는 아무 고기나 잘 먹는다.



[청수골산장 안 - 흰색 강아지를 피해 멀리 떨어져 있는 권 씨]



청수골산장에서 200미터 정도 걸어가자 갈림길이었다. 우리는 가지고 온 등산 안내문에 적힌 대로 리본이 많이 붙어 있고 ’좌청수.신불산’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왼쪽 오르막으로 올라섰다. 여기에서 직진하면 청수우골인데 그 길로 가면 영축산 남쪽에 있는 시살등과 연결된다. 그 길로 가 본 적은 없지만 지도에 그렇게 나와 있다. 그리고 갈림길 입구에 커다란 등산 안내판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까막눈이 아닌 다음에야 길을 잘못 들어설 염려는 없다.



[청수좌골과 청수우골 갈림길 – 청수우골 쪽을 바라보고 있는 권 씨]


왼쪽 오르막으로 오르자 곧 오른쪽 계곡에서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물소리만으로도 더위가 싹 가실 정도였다.


경사가 아주 완만한 길을 잠시 걸어가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오른쪽길은 계곡으로 내려가므로 리본이 붙어 있는 큰길로 직진하면 된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10시 50분이었다.


갈림길에서 6분을 올라가자 너덜겅이 앞에 나타났다. 너덜겅 입구 왼쪽을 잘 살펴보면 ‘119 조난 위치 번호 청수산장 양산시 4-나 정상 2.5km’라고 쓰여진 반원형으로 된 표지판이 하나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너덜겅 끝부분의 응달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권 씨가 배낭을 열어 물부터 찾길래 내가 입을 열었다.


"물 마이 가 왔나?"


"세 통 가 왔지요."


"아끼 무래이."


저 위에서부터 저 아래까지 1자로 길게 뻗어 있는 너덜겅에서 사탕 하나와 물 한 모금씩 마시고는 10분간 휴식을 한 후 11시 정각에 다시 배낭을 어깨에 메고 일어났다.



[너덜겅]



길 오른쪽에 500년 이상은 됨직한 거대한 소나무 1그루와, 태풍에 의해 밑동이 부러져 옆으로 길게 누워 있는 300년 정도 되는 소나무를 만난 시간은 11시 17분이었다. 이 산에는 소나무가 별로 없지만 간간이 보이는 소나무는 모두 키와 몸통이 큰 아름드리 고목들이었다.


10분 정도 올라가자 길 왼쪽에 있는 소나무 밑동 부분에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샘터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샘터 옆에는 밑 부분을 잘라서 컵 대용으로 만들어 놓은 PET병이 하나 걸려 있었다. 나는 행여 벌레 알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샘물 마시기를 망설였지만, 먹성이 좋고 뭐든지 소화해 내는 권 씨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두 잔이나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트림까지 해 댔다.


"어~크억! 물맛 좋다!"


그곳에서 5분간을 쉰 후 다시 길을 재촉하여 12분 정도 오르자 잔디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풀로 이루어진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시계를 보니 11시 47분이었다. 길 오른쪽에서는 여전히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잔디보다 키는 크지만 훨씬 더 보드라운 이름 모를 풀밭]



작년에 휩쓸고 간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소나무가 넘어져 등산로를 가로막은 지점에 다다른 시간은 12시 정각이었다. 하늘이 보이는 정도와 나무의 크기 등을 보았을 때 능선에 거의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5분을 올라가니 앞이 훤하게 트여 있는 능선 정상이었다. 정면 저 멀리로 신불재와 우리가 올라야 할 신불산이 보였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오르막은 많이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어서 유치원생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충분히 올라올 수 있을 정도였다.



[능선에서 신불산 쪽을 바라본 전경]


능선길을 따라 곧장 앞으로 직진하여100미터 정도 가면 ‘T’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매우 넓고 확연한 길을 따라 오른쪽 오르막으로 몇 분간 오르면 돌무더기가 쌓아져 있는 성터가 보이는데 그 성터 왼쪽 아래 계곡에는 물이 흐르는 샘터가 있다. 물이 부족한 사람은 여기서 물을 보충하고 가면 된다. 성터를 지나면서 시계를 보니 12시 15분이었다.



[신불평원 입구 성터]


돌무더기 성터를 넘어서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신불평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대자연의 놀라움 앞에 권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벌린 채 ‘아~!’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지금은 억새가 모두 썩어서 볼품 없지만 가을에 하얀 억새꽃이 만발했을 때 오면 정말 보기 좋다.”


“아~!”


“억새꽃이 지고 억새 몸통이 온통 황금빛으로 변했을 때는 더 멋지다.”


“아~!”


"입 좀 다물어라."


"아~!"


이곳 신불평원에는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지만 어디로 가든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만 올라서면 된다. 다만 늪지대처럼 길이 질퍽하여 발이 빠지는 곳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발이 빠져 고생할 수도 있다. 등산객 여덟 명이 영축산 방향에서 내려와 신불산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신불평원]



능선에 올라서서 신불산 방향인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능선길을 따라 걷다가 첫번째 만난 봉우리 정상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배낭을 열어 녹심 최태식님의 단골 메뉴였던, 냉동실에 꽁꽁 얼려둔 펭귄표 황도 하나를 꺼내자 권 씨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얼른 달려들었다. 며칠 동안 얼려 놓았기 때문에 거의 녹지 않은 얼음 상태 그대로여서 꼬챙이로 찍어 한입 베어 먹자 뒷골이 다 찡하게 아파왔다.


"물 끼 이거 뿌이가?"


유달리 먹성이 좋은 권 씨가 순식간에 황도를 반 통이나 먹고도 배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배에 걸배이 들앉았나?"


"와이고, 산에 물라꼬 오는데 이거 뿌이머 우야노? 다음에 올 때는 배낭에 까득 넣어 와야지."


흐르는 땀을 식히면서 5분간 휴식을 한 후 일어섰다. 신불산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점점 더 세차게 불어왔다. 턱끈이 달린 모자를 쓴 권 씨는 편안한 자세로 걸었지만 턱끈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는 나는 한 손으로 모자를 꾹 누르면서 걸었다.



[신불재 앞 봉우리에서 바라본 신불산 정상]



신불재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12시 57분이었다. 바람은 점점 더 심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여기서 오른쪽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약수터가 나오고 약수터를 지나 계속 내려가면 가천마을이 나온다. 그리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신불산 자연휴양림 입구 쪽으로 연결되는데, 그 길 또한 올라올 때 본 청수우골처럼 가 본 적은 없지만 지도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적는다. 지도에 거짓말로 표시야 해 놓았겠나. 신불재에는 ‘영취산 2.4km, 신불산 0.65km, 가천마을 4.15km’라고 표기를 해 놓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페인트가 거의 다 벗겨져서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곳 신불재에서부터 신불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지금까지 올라온 길과는 달리 매우 가파른 경사로 되어 있어서 땀을 좀 흘려야 한다.


신불산 정상 부근에 거의 다다른 지점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허리를 숙여 열심히 뭔가를 캐고 있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몇 명 보였다. 약초를 캐나 하고 다가가 봤더니 약초가 아니라 원추리를 칼로 잘라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다. 이곳 능선에는 원추리가 많이 자생을 하고 있다. 이 원추리는 보드라울 때 뜯어서 무쳐 먹으면 아주 맛난 나물이 된다. 그러나 너 나 할 것 없이 원추리를 잘라가 버려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여기가 어디라고. 원추리꽃은 얼마 지나지 않으면 능선을 온통 노란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일 텐데 단지 자신의 입맛을 돋구기 위한 목적으로 마구잡이로 잘라 가서는 안 되지. 그러나 나는 그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아무런 충고의 말도 하지 못했다. 요즘 세상은 참으로 희한하여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아차하는 순간에 저승객이 되고 만다. 공중전화를 오래 한다고 칼을 휘두르지 않나, 애인에게 차였다고 길 가는 죄 없는 아주머니를 찌르질 않나, 해수욕장에서 단지 쳐다봤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어 서로 죽이는 세상이니 잘못된 것을 보더라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원추리 캐지 말라고 말했다가 원추리 캐는 아저씨의 칼에 무차별로 난자당하면 우리 가족은 누가 돌볼 것이며, 죽은 나는 너무나 억울하여 저승으로도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원혼이 되고 말 텐데 그 원통함은 또 어느 누가 달래 준단 말인가? 정의도 목숨이 살아 있고 볼 일이지 자신이 죽은 다음에야 정의가 무슨 필요란 말인가. 결국 죽는 놈만 손해다. 죽는 놈만 손해.


'어제 오후 1시 경 영남알프스에 위치한 신불산 정상에서 원추리를 캐고 있던 50대의 남자가 40대 등산객인 김 씨로부터 캐지 말라는 충고를 받자 이에 격분하여 원추리를 캐고 있던 칼로 김 씨를 수십 차례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 현장에 있던 김 씨의 동료인 권 씨의 말에 따르면‥‥‥.'


이런 기사가 난다고 해서 누가 나를 측은하게 생각해 주겠는가? 자연을 보호하다 의롭게 죽었으므로 국가에서 거액이라도 배상을 해 줄 것 같은가? 그도 아니면 국립묘지에 안장을 해 주거나 국가유공자로라도 인정을 해 줄까? 어림 반푼 없는 소리다. 그러므로 괜히 정의감을 내세우다가는 아까운 목숨만 잃고 남들에게 바보라는 소리나 들으며, 몇 푼 안 되는 목숨값만 가족에게 남긴 채-운이 나쁘면 한푼도 못 받는 경우도 있음- 이승을 떠도는 귀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충고의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꾸욱 참고 원추리 몇 포기를 포기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신불산 정상에 다다른 시간은 13시 15분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영축산이 저 멀리로 보였고 오른쪽 아래로는 우리가 올라왔던 청수좌골 골짜기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싶었지만 권 씨가 배고파 죽겠다면서 사진이고 뭐고 얼른 밥부터 먹자고 졸라댔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와서 점심을 먹을 적당한 장소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신불산 정상]



[신불산 정상에서 바라본 영축산]



간월재로 가는 능선길을 따라 1분쯤 걷다가 왼쪽 아래를 보니 적당한 크기로 되어 있는 바위가 보이길래 그곳으로 내려가 도시락을 펼쳤다. 오늘도 반찬은 김치와 멸치볶음이다. 촌에 별 반찬 있나. 그러나 산에서 먹는 밥은 김치 하나만 있어도 꿀맛이다.


점심을 먹고 일어나니 13시 40분이었다. 하산길은 올라온 길로 곧장 직진하여 능선을 따라 약간 경사진 내리막으로 내려서면 된다. 중간에 작은 갈림길이 나와도 확연한 능선길을 따라 그대로 직진하자.


정상에서 7분을 걸어가면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 나온다. 그 갈림길 중간에는 흰색으로 칠해진 벤치가 버티고 있는데 벤치 오른쪽으로 난 내리막을 선택해야 한다. 왼쪽으로 가면 어디로 통하는지 가 보지 않아서 나는 모른다. 시간은 13시 47분이었다.



[능선 갈림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넘어서면 곧 내리막이 시작되는데 헬리포트와 돌무더기가 자리잡고 있다. 돌무더기 옆에는 아까 본 것과 똑같이 생긴 흰색 벤치가 하나 있는데 많이 파손되어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곳을 지나면 저 멀리 아래로 간월산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능선에서 바라본 간월산과 임도]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다 Y자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 내리막길을 선택해야 한다. 오른쪽 내리막은 신불산 험로인데 그 길을 따라가면 간월재는 보지 못하고 홍류폭포를 지나 간월산장 쪽으로 내려가 버린다. 시간은 13시 55분이었다.



[신불산 험로 갈림길]


그곳부터는 경사가 좀더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데다가 작년에 휩쓸고 지나간 태풍의 영향으로 길이 많이 패여 있어서 갈수록 점점 더 험해지기 시작했다.


“바지 같은 거 입으면 자동으로 걸어가는 그런 거 없나. 아이고 힘들다.”


한숨을 내쉬면서 권 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동바지, 월레스와 그로밋에 나오는 전자바지 같은 거 말이제?”


내가 맞장구치자 권 씨가 대꾸했다.


“버튼만 누르면서 구경만 하면 되잖아.”


“그거 괜찮네. 그러면 산이 암만 높아도 할아버지나 아기나 모두 다 올라올 수도 있고.”


“그렇지요.”


“근데 그거 입고 오다가 산 중간에서 고장나면 우야노?”


“‥‥‥!”


“전자바지 값이 꽤나 비쌀 텐데 그냥 내버리지도 못하고, 첩첩산중이라 수리공이 있을 리 만무하니 고칠 수도 없고 말이야. 결국은 그 무거운 거 짊어지고 낑낑대며 내려가야 할 텐데 그거 사람이 할 짓이겠나?”


“‥‥‥!”


언젠가는 있을 법한 미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내려오니 힘든 것을 조금은 잊을 수가 있었다.


간월재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14시 3분이었다. 간월재에는 ‘신불산 공비 토벌 격전지 안내"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표지판이 서 있었고 그 앞에는 헬리포트가 자리잡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사진 몇 장을 찍고는 헬리포트 끝 부분에서 왼쪽으로 난 작은 등산로로 들어섰다. 등산로 입구는 잘 보이지 않지만 몇 발자국 들어서면 길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정히 길 찾기가 어려우면 아래 사진에서 먼 곳에 있는 화살표인 콘크리트 포장을 한 임도를 따라가면 된다.



[간월재]


헬리포트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얼마간 내려가면 콘크리트 포장이 된 임도로 내려서게 되는데 위의 사진에서 먼 곳에 있는 화살표를 해 둔 바로 그 길이다.



[임도]


임도에 내려서서 내리막인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얼마 걷지 않으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포장이 되어 있는 오른쪽 내리막길을 그대로 따라 내려가면 된다. 물론 나비 표시를 해 둔 비포장 임도를 따라가도 나중에 야영지에서 만날 수는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갈 길은 오른쪽 내리막길이다. 갈림길 모퉁이에는 ‘죽림굴 1.1km’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공사를 하는 각목에 가려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14시 14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임도 갈림길-남의 차 안을 기웃거리는 권 씨]


콘크리트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왼쪽에서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왼쪽 계곡에 비해 물줄기는 작지만 오른쪽에서도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이 많이 보였다. 5분쯤 내려가자 검은색 에쿠스 한 대가 임도를 따라 올라왔다. 에쿠스 바퀴가 일으킨 먼지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위쪽에서 코란도 한 대가 조심스레 내려오는 것이었다. 다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죽림굴’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 도착한 시간은 14시 28분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클로버 표시를 해 둔 곳으로 돌계단을 밟고30미터 정도 올라가면 죽림굴이 나온다.



[오른쪽에 클로버 마크를 붙여둔 곳으로 오르면 죽림굴임]


천주교 성지인 죽림굴이 어떤 곳인지 설명을 해 놓은 비석이 죽림굴로 올라가는 왼쪽에 세워져 있었다. 비석에 쓰여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겨 본다.



천주교 성지


죽림굴(대재공소)


이곳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산 2번지로 옛날에는 굴 주변에 산죽이 많아 ‘죽림굴’이라 불리웠으며 이 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1815~1860)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대재공소(1840~1868)였다. 당시 산 아래에는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움막을 짓고 살면서 토기와 목기를 만들고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였다. 공소회장인 이양등 배드로는 꿀장사를 하면서 바깥정세를 살피고 포졸들이 재 넘어 간월골에 나타나면 모든 신자가 이 굴 안에 숨은 채 곡식을 구유에 넣어 물로 불여 생식을 하면서 은신하였다고 전한다.


1840년부터 1860년 사이에는 간월과 대재공소가 공존하였으며 샤스땅 정신부, 다블뤼 안신부, 최양업신부 등이 사목을 담당하였다. 특히 최신부는 경신박해(1860) 때 여기에서 넉 달간 피신하면서 미사성제를 집전하였으며 1860년 9월 3일자의 마지막 서한도 여기에서 썼다. 또한 이 지방의 첫 동정녀인 김아가다가 자진 체포되고 방면되는 여독 중에서도 최신부를 돕다가 임종한 곳이기도 하다. 경신박해 때 언양지방에서만 20여 명이 체포되었으며 병인박해의 여파로 1868년에는 교우들이 대거 채포되면서 100여 명을 웃도는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다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로써 대재공소는 설립 28년만에 폐쇄되고 말았다. 이 공소를 거친 순교자는 그 행적이 전하는 이만 해도 오상선, 김사집, 오야고보, 신이냐시오, 허인백, 김종륜, 이양등, 차장득, 이월주, 옥소사, 김영재, 윤봉문 등이며 증거자는 김교희, 김상은, 김무제, 김보윤, 남의선, 박상일 등으로서 가문별로는 경주김씨, 의령남씨, 경주이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해주오씨, 경주최씨, 청송심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렇듯 죽림굴은 많은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의 은신처였으며 국내 유일의 석굴공소이기도 했다.


이들의 신앙과 고통을 기리면서 이곳이 영남의 신앙유적지로 길이 보전되기를 기도 드리자. 이 동굴은 ‘언양선교 200년사 편찬위원회’의 노력으로 1986년 11월 9일 발견되었다.


천주교 부산교구



[죽림굴 계단 입구에 세워져 있는 죽림굴 안내비]


죽림굴에 도착하여 안쪽을 들여다보면 굴 같지 않게 매우 작아보인다. 그러나 허리를 숙여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안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고 그곳으로 들어서면 한100명 정도는 거뜬히 들어갈 정도의 넓은 공간이 나온다. 바깥에서 보면 안에 그런 넓은 동굴이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죽림굴]



죽림굴을 구경하고 돌아 나와 다시 임도에 도착하니 14시 35분이었다. 임도를 따라 걷는 것이 조금 따분하고 짜증스럽지만 달리 길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죽림굴 입구에서 임도를 타고 7분쯤 내려가면 왼쪽을 잘 살펴보면서 걸어야 한다. 왜냐하면 리본이 붙어 있는 왼쪽 내리막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길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부분의 왼쪽에 리본이 여러 개 붙어 있는 갈림길이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으므로 잘 살펴야 한다. 물론 임도를 계속 타고 가도 나중에 ‘신불산 휴양림 신불산 폭포 방문자 안내소 표 사는 곳’에서 서로 만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즉 이 왼쪽 내리막길은 임도를 가로지르는 지름길인 것이다.



[임도 지름길]


왼쪽 내리막으로 내려서면 앞 계곡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조금 내려가면 길이 오른쪽으로 꺾이고 곧 너덜겅이 나타난다.



[너덜겅]


너덜겅을 지나면 곧 갈림길이 나오는데 어디로 가도 30미터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되므로 아무 곳으로 들어서도 관계가 없다. 갈림길이 다시 합류되는 지점을 지나서 나타나는 작은 계곡을 건너면 산책로와 비슷한 길이 한참 이어지는데 길 왼쪽 아래로 계곡물이 흘러간다.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데 갑자기 생각하지도 않은 통나무집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웬 통나무집인가 했더니 ’신불산 휴양림 신불산 폭포 방문자 안내소 표 사는 곳’ 건물이었다. 통나무집 옆을 통과하여 마당으로 나오면 앞에 임도가 보이는데, 오른쪽 오르막은 아까 지름길로 오지 않고 임도를 계속 타고 오는 길이므로 왼쪽 내리막길로 직진하면 된다.



[신불산 휴양림 신불산 폭포 방문자 안내소 표 사는 곳]



[신불산 휴양림 신불산 폭포 방문자 안내소 표 사는 곳 앞 임도]



길 오른쪽에는 짙은 고동색으로 칠해진 자연휴양림 숙소인 ‘숲속의 집’이 드문드문 5개나 자리잡고 있었다. 한여름에 이곳에 방을 얻어서 피서를 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꽤 비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 저런 호화스러운 숙소를 꿈꿀 수 있나. 그저 텐트 하나 둘둘 말아서 가지고 가면 만사 OK지.



[숲속의 집]


숲속의 집 다섯 채를 지나면 곧 넓은 광장과도 같은 커다란 야영지에 도착을 하게 된다. 시간은 14시 57분이었다. 그곳에는 화장실과 취사장 그리고 음수대와 넓은 야영지, 상세하게 그려진 대형 등산 안내도까지 구비가 되어 있어서 마치 군대 막사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갈림길인데 나비 표시를 해 둔 길을 따라 계곡을 넘어 임도를 타고 오르면 간월재에서 임도로 내려온 첫 번째 갈림길에서 나비 표시를 해 둔 직진하는 임도와 만나게 된다. 즉 간월재 아래 임도 갈림길에서 나비 표시를 해 둔 임도를 타고 내려오면 바로 이곳으로 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야영지 이곳 저곳을 두루두루 구경한 후 15시 5분에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야영지]



[야영지에 세워져 있는 자연휴양림 안내도]



[야영지에 세워져 있는 등산 안내도]



이 야영지에는 갈림길이 많이 있지만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직진하는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된다. 가다 보면 길 옆에 설치해 둔 통나무의자도 간간이 보인다.


15시 20분에 만난 갈림길에서 왼쪽 내리막으로 내려섰다. 오른쪽 오르막으로 오르면 전망대로 올라간다. 갈림길 입구에 ‘↑전망대 750m, ←파래소폭포 300m’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있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설 염려는 없다.



[전망대와 파래소폭포 갈림길]


길은 계속하여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나 있었다. 곧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는 곳이 있는데 길 좌우측에 벤치가 있고 벤치 앞에 보면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하나 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면 안 되고 오른쪽으로 난 좋은길로 가야 한다. 클로버 표시를 해 둔 왼쪽길로 내려가면 곧 길이 끊어질 뿐만 아니라 폭포 위 낭떠러지로 올라서므로 대단히 위험하다.



[파래소폭포 위 갈림길]



그러면 얼마 가지 않아 작은 돌이 깔려 있는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내리막길 중간에 보면 아래 사진처럼 갈림길이 아닌듯한 갈림길이 하나 나오는데 폭포소리가 들리는 왼쪽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된다.



[파래소폭포 입구 갈림길]


발을 옮겨 계곡으로 내려설수록 물소리는 점차 크고 시원하게 들리다가 이내 시원한 물줄기를 쉼 없이 내리꽂고 있는 파래소폭포에 도착을 하게 된다. 시간은 15시 27분이었다. 폭포의 물이 떨어져 생긴 소는 여태 본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깊었다. 과연 울산 12경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하나도 아깝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권 씨와 나의 입은 찢어지도록 벌어진 상태에서 다물어 질 줄 몰랐다. 완벽한 주위 경관, 폭포의 장엄함, 폭포 앞으로 펼쳐져 있는 계곡 등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다만 폭포 바로 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송충이의 폭격을 받아 잎이 모두 걸레로 변해 있었고 그 주범인 송충이들이 바위 위를 맘대로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이 옥의 티라면 티랄까. 폭포 앞 계곡 건너에는 표지판이 두 개나 서 있었다. 하나는 ‘알림. 이곳은 익사사고가 많은 곳이므로 수영을 절대 금합니다. 울산시장.’이라는 경고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폭포에 관한 내용을 적어 놓은 안내 표지판이었다. 안내 표지판에 적혀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파래소 폭포 안내


이 폭포는 물 떨어지는 높이 15m이고, 소(沼)의 둘레가 100m, 물 깊이 3m 가량 됩니다.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면 단비가 내려서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여 "바래소"라고 하다가 뒤에 파래소폭포로 이름이 붙여졌으며 지금도 소망을 비는 사람들의 래왕이 잦은 곳입니다. 안개처럼 퍼지는 물보라가 무지개가 되어 올라 장관을 이루는 때도 가끔 있으며, 폭포 중심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푸르다 못해 검푸른 빛으로 온몸에 냉기를 끼얹는 느낌을 받습니다.


산불조심



이 안내문의 문구는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나 유치원생이 작성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형편없는 글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조사가 생략된 부분이 많은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두음법칙을 무시한 "래왕"이나, 앞과 뒤의 말이 서로 맞지 않는 마지막 부분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정도다.



[울산 12경의 하나인 파래소폭포]



권 씨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른 신발을 벗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물이 너무나 차가워서 채 5초도 못 버티고 바위 위로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한 40~50회 정도 했지 아마.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탁족을 한 후 15시 47분에 하산을 위해 계곡을 건넜다. 계곡을 건너면 계곡물을 오른쪽으로 둔 계곡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멋 모르고 계곡을 건너서 산으로 올라가 버리면 해 지기 전에 집에 가기는 다 틀렸다. 그 길은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곧 오른쪽 계곡을 다시 건너면 ‘울산 12경 파래소폭포’라는 글자가 쓰인 대형 표지판이 보인다. 족히 6~7미터 높이는 됨직해 보였다. 이제부터는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가야 하는데 길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계곡 오른쪽으로 바싹 붙어서 가야 한다. 계곡을 지나면 넓은 등산로로 올라서는데 역시 계곡을 왼쪽으로 두고 길이 나 있다.


마치 산책로와도 같은 길을 걸어 한동안 내려오면 다시 계곡을 건너는, 난간도 없는 콘크리트 다리가 앞에 보인다. 다리를 건넌 후 시계를 보니 정확히16시였다. 계곡을 건너면 곧바로 작은 돌이 깔려 있는 매우 넓은길인데 오른쪽에 큰 바위가 하나 서 있다. 이제부터는 계곡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걷는다. 계곡을 건너 300미터 정도 내려오니 왼쪽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하나 보였고 등산로 입구에는 ’신불산 4.7km’ ‘←등산로 가천리’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이곳으로 오르면, 등산 시에 설명을 한 바로 그 신불재사거리에 도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버스가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을 따라 얼마간 내려오면 다시 계곡을 가로지르는, 난간도 없는 콘크리트 다리와 만난다. 다리를 건너면 ‘신불산 폭포 자연휴양림 방문자 안내소 표 사는 곳’의 대형 주차장에 닿는다. 표 사는 곳 건물을 지나치면서 시계를 들여다보니 16시 4분이었다.



[신불산 폭포 자연휴양림 방문자 안내소 표 사는 곳]



매표소를 거쳐 나와 다리를 건넌 후 오른쪽을 바라보면 금빛을 한 커다란 관세음보살상이 서 있는 ‘백련암’이 보인다.



[백련암]


매표소에서 10분 정도 내려오면 길 오른쪽에 ‘숲속의 하얀집’ 이라는 커다란 식당이 있고 그곳에서 3분 정도만 더 걸으면 청수골산장이다. 청수골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18분이었다.



[청수골산장]


요 근래 몇 번 오른 산과는 달리 오늘은 좀 많이 걸었기 때문에 권 씨의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리 안 아프나?”


“조금 아프네요. 전자바지 한번 개발해 봐야 되겠다.”


“그거 산 중턱에서 고장나면 오히려 더 고생한다니까.”


“고장 안 나는 걸로 만들어야지.”


“갑부 되겠네.”


“허허.”


언젠가는 그런 전자바지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에 몸을 실었다.


-끝-






■ 등산 시간 및 코스 안내


울산 무거동 아람마트(09:15)→언양에서 밀양으로 가는 24번 국도→석남사 지나서 배내골로 진입(09:55)→배내고개→길천초등학교 이천분교(10:08)→토번가든 지나자마자 좌회전하여 계곡 건넘→청수골산장(10:25)/휴식(10:35)→200미터 정도 간 갈림길에서 왼쪽 오르막길→갈림길에서 리본이 붙은 큰길로 직진(10:50)→너덜겅(10:56)/휴식(11:00)→길 오른쪽에 500년 이상 됨직한 거대한 소나무 (11:17)→소나무 밑동 부분 샘터(11:28)/휴식(11:33)→초원지대(11:47)→넘어진 소나무가 등산로를 가로막은 곳(12:00)→능선 정상(12:05)/휴식(12:08)→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섬→돌무더기가 쌓아져 있는 성터(12:15)→신불평원→능선에 올라서서 왼쪽으로 진입→휴식(12:45)→신불재 도착(12:57)→신불산 정상(13:15)/점심(13:40)→능선 갈림길에서 오른쪽 내리막길(13:47)→Y자 갈림길에서 왼쪽 내리막길(13:55)→간월재(14:03)/휴식(14:07)→헬리포트 끝 부분에서 왼쪽으로 난 작은 등산로→임도 내려서서 왼쪽길→갈림길에서 콘크리트포장이 된 오른쪽 내리막길(14:14)→‘죽림굴’ 표지석/죽림굴 구경(14:28~14:35)→갈림길에서 리본이 붙은 왼쪽 내리막(14:42)→너덜겅 가로지름(14:47)→작은 계곡 건넘→통나무집인 ’신불산 휴양림 신불산 폭포 방문자 안내소 표 사는 곳’→임도에서 직진→야영지 도착(14:57)/휴식(15:05)→계곡을 왼쪽으로 둔 길로 계속 직진→길 옆에 통나무의자(15:15)→갈림길에서 파래소폭포 방향인 왼쪽 내리막(15:20)→내리막 갈림길에서 왼쪽 내리막길(15:24)→파래소폭포(15:27)→계곡을 건너서 계곡물을 오른쪽으로 둔 계곡길을 따라 내려감(15:47)→오른쪽 계곡을 건너 ‘울산 12경 파래소폭포’ 표지판→계곡 지나 넓은 등산로→계곡 다리 건넘(16:00)→작은 다리 건넘→계곡 다리 건넘→‘신불산 폭포 자연휴양림 방문자 안내소 표 사는 곳’ 주차장(16:04)→숲속의 하얀집(16:15)→청수골산장(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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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철 홈페이지



▣ 정범모 - 신불산.. 참 재미있네요. 평원도 있고, 폭포도 있고, 휴양림에... 확트여진거 같으면서도 이거 저거 아기자기한게 많은 듯... 아님 김효철님께서 너무 재미있게 산행기를 쓰셔서 그런건가요??? 저는 영남지역 산은 거의 가보지를 못했는데 막 가고 싶어지네요. 재미있는 글 자주 올려주시고 즐거운 산행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