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04. 9. 12
목적산 : 가야산(1430m)
위 치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수륜면, 경북 성주군 가천면
코 스 : 백운대-백운사지-서성재-칠불봉-가야산-마애불상-해인사(4시간 30분)
인 원 : 16 명
어떻게 : 부산 구구산악회 따라서



해인사 대적광전 앞에서 본 절집풍경





가야산 등산지도(클릭하면 큰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개요

인도의 부다가야 근처에 있는 ‘가야시르사산’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가야산!
범어 가야는 소라는 뜻으로 정상의 바위가 소머리를 닮았다 해서 우두산, 상두산으로 불리었다는 설을 불가에서는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해인(海印)이란 큰 바다에 물결 한점 없는 잔잔하고 고요한 상태, 그 바다가 모든 사물을 비추어 근심 걱정도 없고 더 바랄 것도 없는 아주 평온한 상태를 일컬어 해인이라 한다고 일타스님은 설법했다. 그래서 해인사란 이름은 해인삼매(海印三昧), 곧 깨달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인 것이다.

무엇보다 가야산 해인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팔만대장경의 보전처다. 그래서 불보(佛寶)사찰인 양산통도사, 승보(僧寶)사찰인 순천송광사와 더불어 법보(法寶)사찰로서 이른바 삼보사찰중의 하나다.

가야산은 예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손꼽히는 탐승지이자 또한 구도처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 자신의 좌상을 직접 조성한 신라의 희랑조사. 해인사에서 설법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한 사명대사 등이 구도처 해인사의 이름을 빛냈으며 현대에 들어 성철종정이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며 한국 제일의 승가람으로 떠올랐다.

가야산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서 ‘산형은 천하으뜸, 지덕은 해동제일’ ‘부드럽게 시작해서 거칠게 마무리하는 산세’ ‘상왕봉을 향해 모든 산봉이 읊조리는 형국’ ‘대덕과 거유를 함께 키원낸 큰 산’ ‘환희심으로 인도하는 춘계화, 하녹음, 추상풍, 동설송’ 등으로 표현한다.

또한 가야산 하면 고운 최치원 선생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흠을 찾기가 오히려 더 까다롭다는 명산의 진가를 이미 1,100여 년 전에 알아보고 아예 식솔과 함께 찾아든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신라말의 대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다. 그가 이름지은 가야산 13경과 더불어 지명에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치인리가 바로 그곳으로, 원래는 치원리였다가 치인리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산행기 참고

국제신문 ‘근교산&그너머’(2004. 1. 8)

길문주님의 ‘가야산 산행’(2004. 4. 17)

김성기님의 ‘해인사를 품에 안은 가야산’(2004. 3. 2)

산행자료 참고 : ‘월간 山’(2000. 10월호, 2001. 3월호)



산행기

산악회에 미리 산행예약을 해놓고 아침 일찍 조방앞에 나가보니 너무나 썰렁합니다. 추석앞이라 성묘 등으로 등산객도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합해서 16명밖에 안되니 괜스레 산악회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08시, 조방앞을 출발한 차는 부마고속도로와 구마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미끄러져 나갑니다. 약간의 정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10시 35분경에 백운대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10시 45분, 백운대매표소



오늘은 산행 인파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계곡을 따라 백운1, 2, 3교를 건너 오르는 길은 바람 한점 없습니다.


백운교를 건너



통나무 계단도 오르고



11시 51분, 서성재에 있는 이정표



수많은 철계단도 오르고



오르는 길이 돌길 아니면 나무계단이고 아니면 철계단들입니다. 힘들여 올라가니 처음으로 하늘이 열리고 올라온 방향 조망이 가능합니다.


첫 전망대에서 바라본 성주방향



가야할 칠불봉을 바라보며



칠불봉을 지척에 두고



드디어 칠불봉 정상에 도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느라 정상석 촬영이 쉽지 않습니다. 겨우 한 컷을 찍고 밀려납니다. 그런데 지난 99년 국립지리원이 측량한 결과 가야산 정상이 합천군에 속하는 해발 1,430m의 상왕봉보다 200m 떨어진 성주군 가천면에 위치한 칠불봉이 3m 더 높은 것으로 확인돼 성주군이 이를 알리기 위해 칠불봉 정상에 표지석을 설치하면서 이 지역의 연고권 분쟁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합천군은 '가야산 정상이 상왕봉이라는 것은 국립지리원 등에서 공식자료로 활용하고 있고 봉우리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정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가야산 면적에서 성주가 차지하는 면적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야산국립공원 전체를 본다면 합천 쪽이 휠씬 넓고 팔만대장경판전과 해인사가 합천에 있어 해인사하면 가야산'이라는 인식을 무시할 수 없다'며 성주군의 주장을 일축했다고 합니다.
성주군은 '그러나 항공실측 결과 상황봉보다 칠불봉이 3m 더 높다는 답변과 가야산 전체면적 60만㎢ 중 절반이 넘는 37만㎢가 성주군에 속해 있어 '성주 가야산'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들 지역의 연고권 주장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고 합니다.


12시 37분, 칠불봉 정상석



상왕봉을 향하여(우측이 상왕봉)



상왕봉의 정상석에는 우두봉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200m거리를 두고 있는 두 봉우리는 내년에 국립지리원에서 실측을 한다고 하니 때를 맞춰서 그러한 연고권 분쟁도 해결 되었으면 합니다.


12시 49분, 정상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정상석(우두봉이라 새겨져 있슴)



상왕봉 정상에서 바라본 칠불봉



정상에서 바라본 매화산 방향



성주 방향



하산하며 뒤돌아본 상왕봉



기암



기암을 지나 내려오니 해인사 석조여래입상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옵니다. 큰 바위를 돌아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안내문과 함께 석불입상이 외롭게 서 있습니다. 목 부분이 잘렸고 발과 대좌도 없어진 것을 복원한 것 같습니다.


13시 25분, 석조여래입상



다시 하산길로 접어드니 얼마전에 왔을 때와 달리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돌계단과 통나무계단으로 흙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잘 정비해 놓았는데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으로서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풍부한 수량의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오니 마애불 가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계단을 오르니 곧이어 마애불이 반깁니다. 보물 제222호인 이 마애석불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마치 물위에 떠가는 배의 형태라고 하는 해인사에 선장 역활을 한다고 합니다.


13시 50분, 마애불상



비온 후라 수량이 풍부한 계곡



쉬엄쉬엄 내려오니 해인사에 도착합니다.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신라 애장왕3년(802년)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연유되어 법보종찰로서 유명합니다. 고려 태조는 이 절에 머물렀던 희랑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고 전지 500결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또 한 해인사의 대적광전은 여섯 번 불타고 일곱 번째 지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건너편 매화산 제1봉의 화강암 바위가 발산하는 시기(광채)와 맞부딪쳐 화재가 일어나므로 이를 막는데는 소금이 제일이라 하여 해마다 5월 단오절이면 수많은 사부대중이 남산 제1봉에서 소금을 묻는 풍습이 전해내려 온다고 합니다.


14시 32분, 해인사 대적광전



범종루와 구광루



경내 게시판과 대적광전 옆 모습



1995년 12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은 장경판전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세조 3년(1457) 어명으로 판전 40여 칸을 중창하였고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30칸의 대장경 경각을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팔만대장경



부처님께 합장하고



일주문 옆에 있는 1200년 된 고사목



14시 51분, 일주문과 팔만대장경 세계문화유산 기념비



소중한 가르침, 무소유의 청빈한 삶, 장좌불와의 올 곧은 수행정신으로 유명하신 성철 큰스님의 부도탑입니다.


성철스님 사리탑



15시 05분, 해인사 성보박물관 전경



성보박물관을 지나 계곡에서 땀을 씻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오늘의 산행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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