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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남쪽 약 3㎞ 지점에 있는 두 암봉으로 된 산.

 

1979.10.16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마이산은 백두대간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위치하여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산태극·수태극의 중심지로 국가지정 명승 제12호(2003.10.31)로 지정된 세계적 명산이다.

산 전체가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암마이봉(686m)과 숫마이봉(680m)이 자연이 만든 걸작품으로 우뚝 서 있으며, 봉우리에 움푹 파여진 타포니 현상과 음양오행의 신비를 간직한 천지탑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시대별로 신라때는 서다산, 고려때는 용출산, 조선초기에는 속금산, 조선 태종때부터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또한,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전까지 담수호였으나 대홍수시 모래, 자갈 등이 물의 압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수성암으로 약 7천만년전 지각 변동으로 융기되어 지금의 마이산이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민물고기 화석이 간혹 발견되는 자연이 만든 최대의 걸작품이다

  

높이는 서봉(암마이산) 685m, 동봉(수마이산) 678m이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으며, 동봉과 서봉의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질은 백악기의 역암(礫岩)이다.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 수계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가 발원한다.


신라 때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龍出山)이라 불렸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동봉과 서봉 사이에 448개의 층계가 있고, 동봉 중턱의 화암굴에서는 약수가 솟는다.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인 탓에 나무는 그리 많지 않으나 군데군데 관목과 침엽수·활엽수가 자란다. 4월에는 공원 입구에서 3㎞에 걸쳐 벚꽃이 만발해 진안군에서 주최하는 벚꽃축제가 열린다. 동봉은 오를 수 없다.


또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화재로는 마이산탑(전북기념물 35), 마이산줄사철나무군락지(천연기념물 380)를 비롯하여 은수사(銀水寺)·금당사(金塘寺) 등의 고찰이 있다. 금당사에는 괘불탱(掛佛幀:보물 1266), 목불좌상(전북유형문화재 18), 석탑(전북문화재자료 122) 등의 문화재가 있다. 1979년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그후 2003년 10월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 12호로 지정되었다.

  

○ 마이산의 전설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한쌍의 두 신선이 자식을 낳고 살아 가던중 마침내 승천할 때가 이르러 남신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승천하는 장면을 보면 부정을 타서 안되니 한방중에 떠나자고" 말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기는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하였다.그래서 새벽에 떠나게 되었는데 때마침 일찍 물길러온 동네 아낙이 승천하려는 장면을 보고

  

"어머나 산이 하늘로 올라가네" 하고 소리치자 승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 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가 이 꼴이 되었구나" 하고 여신으로부터 두 자식을 빼앗아 그 자리에서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앉았다고 구전으로 이어온 전설이긴 하지만 진안읍에서 마이산을 보면 아빠봉은 새끼봉이 둘 붙어있고 서쪽 엄마봉은 죄스러움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 신비스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마이산산행지도 

  

 산행일시 : 2009년 5 월 20 일 (수요일) 날씨 : 후덥지근한 날            

산  행 지 : 마이산( 전북 진안 진안읍에  위치)

 산행코스 : 들머리(인공수정소인근) =  합미산성 = 광대봉 = 고금당삼거리 = 비룡대(나봉

                   암) = 삿갓봉 = 탑재 = 탑영재 = 금당사 = 도립공원매표소 = 남부주차장

 교통수단 : 전세버스

 산행인원 : 29명 산내음 회원

산행시간 : 6시간 사진촬영 널널 산행

  

세상이 정말 하루가 다르게 몰라보게 편한 세상으로 바뀌었다. 13년전 내가 처음 마이산행을 하기 위하여 출발하였을때는 새벽 6시 부평에서 출발하여 전북 진안에 도착하니 11시반이 거의 다 되어 늦은 시간 산행을 시작하다 보니 겨우 숫 마이산만 올랐다가 하산하여 돌아오기도 눈코뜰 사이없이 바쁜 일정으로 다녀왔는데 그래서 늘 그때 보았던 어렴풋이 꿈결처럼 보았던 마이산 생각이 늘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다 그때 그시절에는 디카가 아닌 필카 시절이다 보니 막상 마이산을 다녀 왔어도 사진 한 장 변변히 남은것이 없어 섭섭해 하며

  

늘 마음속에 마이산행을 염두에 두고 동경하여 오던차 "우리산내음" 원정 산행이 매월 한달에 한번씩 진행 되어 집행부에 "마이산"행을 건의를 한지가 아마 일년여는 되었는데도 일정을 잡지 못하는것을 보면 아무래도 하루 일정으로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포기 하고 있었는데 뜻 하지 않게 5월 원정 산행으로 마이산행 스켓쥴이 들어 있지만 막상 산행에 동참하려 하니 첩첩 산중 쌓인 업무 관계로 산행하고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늦어  웬만하여서 먼거리 원정 산행을 떠나기 쉽지 않지만 일단은 얼마나 기다렸던 마이산인데 열일 제처두고 시간을 내어 마이산행 버스에 막차를 탄다.

  

그런데 이렇게 원정산행을 떠나는날은 전날 새벽 2시 퇴근하여 두어 시간 토끼잠을 자고 5시반 기상 하루종일 내 빈자리 맡아줄 아내에게 업무 인계를 해주기 위하여 첫 새벽 사무실에나와 대충 정리를 하고 부평역에서 7시경 전철을 타고 사당역에 도착하니 일행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8시 15분전에 도착을 하여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 일행을 싫은 차는 8시 조금 넘은 시간 출발하여 진안으로 달려 가는데 오랫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대화로 시간가는줄 모르지만 나는 아쉽지만 부족한 잠을 달리는 버스에서 토끼잠으로 채우기 위하여 이어폰을 끼고 잠을 청해 보는데

  

"라디오에서 모 의학박사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성인 기준 하루 평균 7시간 정도는 잠을 자 주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을 하며 늘 부족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여러측면에서 항상 건강에 상당한 위험을 앉고 살고 있는것이라 발표를 하며 충분한 수면을 취 할것을 권장을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 나는 하루 평균 4시간 정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하며 20여년을 살고 있는데 그럼 난 하는 생각을 하니 한켠 마음속으로 내가 평생 젊은이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며 이제는 나도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다 어느결에 스르르르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눈을 떠보니 창가에 앉은 일행들이 너도 나도 차창밖으로 보이는 마이산을 바라보며 환호를 하고 있다. 그런데 웃기는것은 방금전 좌측 차창밖으로 보이던 마이산이 커브길 하나를 휘돌고 나니 이번엔 금새 또 우측 차창밖으로 신비로운 마이산이 조망이 된다. 그러다 보니 마치 내가 무슨 도깨비라도 홀린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산행 시작도  하기전 부터 나의 머리를 빙빙돌게 한다. 그렇게 비몽사몽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우리 일행을 싫은 차는 어느사이 이날 산행의 들머리 구간인 인공수정소 인근에 위치한 합미산성 입구에 도착 하여 곧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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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입구 묘소를 애돌아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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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5개월여 제대로 산행을 못하는 사이 실록의 5월이 싱그러운 녹색 세상으로 바뀌어 온천지 사방이 온통 내가 많은색중에거 가장 좋아 선호하는 녹색의 세상이 되어있다. 들머리 입구를 들어서 하이얀 찔래꽃이 곱게 피어 마치 나에게 인사라도 하듯 방끗 미소를 짓고 있어 반가움에 접사 한컷 찍으려 폼 잡고있는사이 일행들은 벌써 10리는 앞서간듯 꼬리를 감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호흡 조정 실패로 애써 시간투자하여 찍은 찔래꽃은 아깝지만 휴지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마이산은 아무리 멀 발치로 보아도 온통 이상하게 솟은 암벽 덩어리로만 보이는데 의외로 등산로는 온통 육산코스로 이어지고 있으며 저푸른 초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다 들머리 초입부터 일행들은 줄행랑 산행을 하지요 코스는 왜 그렇게 처음부터 고추세운듯 빡시게 올려 치고 있는지 마치 그 옛날 농사일 할때 힘들어 할때 거칠게 숨을 몰아쉬듯 씩씩 거리는 소리가 숨 소리가 저절로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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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봉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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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 일행들이 잠시 가던길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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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미산성 흔적  

합미산성에서 광대봉을 가기 위하여서는 산성에서

아주 급하게 왼쪽으로 70도 정도 꺾어 진행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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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곳에서 달려간 우리들에게 행운이라도 있는지 다행이 날씨가 꾸물꾸물

하지만 그러나 조망은 그런대로 완만하다.얼마나 다행이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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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후덥지근 하지요 일행들은 벌써 달려 갔지요 바쁘다 바뻐

  

광대봉 방향 함미사넝2.3키로 고금당2.6킬로 이정표가 설치 되어있는데 광대봉 오르는 방향에 녹쓴 철조망이 쳐있는데 이곳 지역 입산 통제를 한다는것인지 아니면 위험 구간이 되어 통제를 자제 한다는것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런데 의외로 철조망은 사람들이 밟고 통과를 하여 이미 무용지물이 된지 오랜 상태로 볼성 사납게 망가져 있는 상태이다. 이곳 등산로에 왜 무엇 때문에 철조망을 쳐 등로 진입을 못하게 한것인지 이곳 마이산을 관할하는 지자체의 의도가 모호하다.

  

만약 등산로 폐쇄라면 경고판이라던가 그에 상응하는 시설물을 만들어 통행 금지를 시키던지 아니면 위험 구간이어서 철조망을 친것이라면 주의 계시판으로 대체하여 통행 여부를 스스로 판단 결정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개인 사도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통과한곳이라 철조망을 넘어 진행을 하니 암릉으로 이어지는 구간에는 핸드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턴데 볼상 사납게 철조망을 쳐놓고 있다니...쯔쯔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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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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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꼬리 편지의 행운을 ....

  

그 옛날 나 어린 시절엔 나의 손바닥에 그림으로 있는 물체를 꽤꼬리 편지라 불렀어요 그런데 이 꽤꼬리 편지는 사실은 활엽수 나무 해충이 잎에다 노오란 알을 낳아 차곡차곡 접고 또 접고 돌돌 말아 놓으면 나무 잎새가 활착을하지 못하고 꼭지가 물어 땅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그때 그시절 우리들은 이 벌레가 종족 번식을 위하여 나무잎새에 알을 낳아 떨어트린것을 "꽤꼬리 편지"라고 부르며 그 잎새를 갈피갈피 순서따라 열어 보면 그 속에 대 여섯개의 노오란 알이 들어 있었는데 이 알의 숫자를 보고 당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그해의 풍년과 흉작을 가늠하던 전래 이야기가가 담긴있는 "꽤꼬리 편지"를 마이산 산행길에 운좋게 수십년만에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네요 아마 이날 산행길에 꽤꼬리에게 편지를 받아본 사람은 유일무일하게 나 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나무들에게는 해충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마이산 산행길에 꽤꼬리가 보내준 편지이니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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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릉지대 일줄 알았던 이곳 마이산 코스는 의외로 육산길 코스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간간히 곳곳에 마치 레미콘 트럭에서 남은 레미콘을 중간중간 사람들 보이지 않는곳에 부려놓은듯 그래서 그 시멘트 레미콘이 굳어 버린듯한 모양과 아주 흡사한 재질의 암석 덩어리들이 곳곳에 만나며 이어지는 활엽수 녹음길로 이어지고 있다.그런데 이곳 마이산 암질이 하도 이상하여 귀가후 마이산 암질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여 보니 다음과 같다.
 

  

마이산을 남쪽에서 보게 되면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군데군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무언가 파먹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인 많은 작은 굴들을 볼수 있은데 이는 타포니 지형이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마이산 타포니 지형은 풍화작용이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 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마이산의 타포니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특수한 기후조건 즉 신생대 제 4기의 빙하기와 뒤에 온 한냉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마이산은 역암이 되기도 하고 수성암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여기서 수성암이란 사암이나 이암같이 퇴적물이 물 속에서 운반되어 물 밑에 퇴적되어 만들어진 암석이나 석회암이나 처트같이 물 속에 녹아 있던 물질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암석이라고 한다.또한 역암이란  운반작용을 통해 퇴적된 암석 중에 크기 2mm 이상인 입자가 많은 암석을 말하는데 즉 수성암은 큰 틀이고 그 틀안에 포함되어 있는 암석 중의 하나가 바로 역암이라 한다.함수로 말하면, 수성암안에는 사암이나 이암, 석회암과 역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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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암릉 지대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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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싱그러운 풍경속에 울긋불긋 사람들 행렬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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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609m 광대봉이 보인다.

  

야! 멀리 광대봉이 보인다. 그런데 일행들중에서 여기서 저기서 배곱으다는 소리가 원성처럼 터져 나온다 그도 그럴것이 새벽 6섯시 경에 아침 한 술 뜨고 그 먼길을 달려와 은근히 빡시게 힘든 마이산 산행을 하며 12시 20분이 지나고 있는데 왜 배곱으다는 소리가 안나오겠는가 그러나 선두 일행은 뒤에서 이렇게 궁시렁 거리는 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내쳐 약진 앞으로 약진 앞으로를 하는걸로 보아 모르긴 해도 광대봉을 넘어선 후 점심 식사를 하게될것 같은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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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암릉 구간과 육산길로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고도가 상당히 되는 지대에 무명인의 묘 2기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등산로가 되어 분묘가 완전히 뭉글어진 상태로 흉물스런 모습이다. 이 높은 지대에 묘소를 ?다면 모르긴 해도 왕년에 한 가닥지 했던분 묘 같은데 ...세상에 허구 많은 땅덩어리에 그 힘들게 이곳이 명당 자리가 되어 모셨을텐데... 어쩌다 이 명당자리가 산악인들의 등산로가 되어 지나다니는 사람들 마다 '이렇게 묘 관리 하지 않을 바에야 왜 뭣하로 힘들게 어려운 고생하며 높은데다 모셔놓고 관리도 안하고 있다고 모두들 한 마디씩 하며 지나고 있다. 부탁 드립니다. 묘소관리 성의를 보이시던지 아니면 화장 모시어 살아있는 사람들 손길 닫는곳에 납골묘라도 모셔 조상님들 모시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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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갈까 저리갈까 우리들은 줄기차게 탑사 방향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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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팝나무라고 하는데 이곳 마이산 산행길에는 곳곳에

이 산조팝나무가 산재하며 꽃이 만개한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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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봉 암릉구간을 오르고 있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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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봉 정상에서 필자도 한컷 그림을 남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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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오른 광대봉을 이번에는 다시 고가사다리 구간으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을 조심조심 내려서야 합니다. 그런데 이곳 구간은 마이산 암릉 재질이 굵고 작은 자갈로 형성이 되어 슬쩍만 닿아도 아주 작은 돌이 굴러 상당히 조심을 하며 내려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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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망무제로 한눈에 바라보이는 마이산 (암마이,숫마이봉)

  

일행들이 그 카파른 계단을 내려가다 멀리 보이는 풍광을 바라보며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합니다. 이렇게

좋은산이 우리나라에도 있다구 그러면서 정말 여기는 중국의 황산 못지 않다고 하며 탄성을 하며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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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하게 멀리 보이는 농촌 풍경이 향수를 그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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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짙은 등로를 비껴서 일행들이 잠시 '마이산도 식후경' 점심식사를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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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산행초에도 말했듯이 이곳 마이산은 마치 무슨 신출귀몰 축지법이라도 쓰는것처럼 정면으로 보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보였다 왼쪽으로 보였다 신비스런 산행이 이날 13킬로 구간에 이어지며 그 모습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다.그러다 보니 일행들 너도나도 이 아름다운 조망의 마이산 배경으로 증명 사진을 남기느라 29명 산행 인원중 근 20여명에 이르는 디카맨들이 서로 번쩍이며 취재 경쟁이 벌어지느라 이곳 구간에선 다소 지체를 보이며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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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 뒤로는 급경사 낭떨어지 구간이다 보니 비좁은 장소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증명

사진을 찍으며 간다.그런데 정작 배경인 마이산은 박무현상으로 그림이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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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정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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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탑사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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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년전에 이곳에 묘를 세우고 묘비명을"居士開城王公應燁(子坐)之墓"라 새겼는데 아들의 묘라는것인지

거사님 묘라는것인지 이해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채 십년도 안된 묘가 봉분이 뭉게져 내리고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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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저 아래에 탑사 방면 북부주차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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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우리들이 오르게될 비룡대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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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주 멀리 고금당 사찰이 보입니다.줌으로 당겨 보았어요
 

 

멀리 건너다 보이는 암자에는 지붕이 온통 금색으로 색칠을 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하여 아쉽다.자연속에 함께하는 암자라면 가급적이면 사찰이나 암자 고유의 기와 지붕이면 더 좋았을텐데, 어쩜 세상이 변하다 보니 이렇게 산골짝이에 있는 종교 시설들 마져도 부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기와를 금도색을 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고금당 나옹암(古金塘 懶翁庵)
 이곳은 고려말의 고승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수도처로 전해오는 자연암굴로 "나옹암
 (懶翁庵)"이라하며, 원래 금당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라 일명 "고금당((古金塘)"
 이라고도 한다.
 나옹(1320~1376)은 법호(法號)로 법명(法名)은 혜근(惠勤)이며 속성(俗姓)은 아씨(牙氏)다.
 20세에 출가하여 양주 회암사에서 득도하였고 그뒤 중국으로 건너가 인도승 지공화상으로
 부터 법을 받아 1358년 귀국하여 고려불교 중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1371년에는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었고 보우(普愚), 무학(無學) 등 높은 제자를 배출
 하였으며, "토굴가(土窟歌)" 등 많은 시와 가사를 남기고 여주 신록사에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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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대와 탑사를 버리고 하산할 사람들은 남부주차장 방향으로 탈출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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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왔다 내려왔다 말이 13킬로 구간이지 서울에서 원정산행으로 산행을 마치고 귀가 하기에는 조금은 무리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늘 단련된 회원들이 되어 일체 군소리 없이 물흐르듯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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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게 비룡대 사진 한컷 찍으려 하니 일행들이 좀체로 자리를 비워주질 않아 못찍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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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대 (나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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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대를 나봉암이라 부르는가 보다 비룡대 원추기둥 옆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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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더 가까이 보이는 마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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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건너편으로 삿강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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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거대 잠수함이 마이산을 싣고 이동을 하고 있는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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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가 뭔가 잘못된듯 누군가 지우고 탑사라고 매직으로 글씨를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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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지나온 비룡대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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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봉 가는길에 만난 부드러운 육산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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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뒤로 마이산 암봉이 보이는 전망처에서 이날 산행에 함께한 일행들이 단체 증명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나는 늘 일행들 사진만 찍었지 단체 사진에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혹시 주위에 누구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면 사진 구도와 수직 수평 조준을 엉망진창으로 박아 사진이 영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부탁을 안하고 있다. 세상이 물질 만능 시대로 변화하다 보니 이제는 너도 나도 산행길 또는 일상 생활에 디카가 생활 필수품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그런데 이 디카라고 해서 그져 보이는 사물을 꾹꾹 눌러 사진을 찍는다고 모두가 다 아름다운 사진이라 할 수 없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최소한 상식적으로 참고해야 할 부분은 풍경 사진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특히 인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경우는 사진 구도와 수직 수평에 절대적으로 신경을 써 촬영을 해야 할것이다. 이렇게 약간의 사진 찍는 요령만 익혀 사진을 찍는 습관을 해두면 평소 아무렇치도 않게 찍은 사진이 훗날 아름다운 작품 사진으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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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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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쉼터를 지나 이제부터 우리들은 탑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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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보이는 저수지를 "탑영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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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서 2014년까지 천황문 암마이봉 구간 천황문

물탕골 구간은 등산로 폐쇠 안내판을 지나 하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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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재로 하산길에 밑에서 올려다본 마이산 암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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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마이봉 (탑재) 우측으로 나도 산이라 부르는 암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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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들은 "천하에 영산 마이산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란 

입석비가 세워진 석탑 입구에 도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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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마이산이라 한다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은 역시 마이산의 탑군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이산 탑군은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 35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마치 송곳처럼 정교하게 만든 탑들은 태산처럼 위엄을 느끼게 한다.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북으로 축조되어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저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저 있는것을 볼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등을 고려하여 축조한것으로 보인다..

  

  

1997년도에 처음 이곳 마이산에 왔었을때 이 신비의 석탑을 보고 그 경이로움에 얼마나 감탄을 했는데 그러나 당시는 디카가 없던 시절이고 필카로 사진을 찍어 보지만 지금 그 사진들 어디에 쳐 박혔는지 ?기도 쉽지 않아 그때 본 이곳 마이산 석탑을 다시 만나기 위하여 ?아 왔는데 역시 다시 보아도 석탑의 위대한 모습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감탄 또 감탄 감탄의 연속이다. 한켠 이 탑을 쌓았다는 李甲龍 도사님의 위대한 도전정신이 훗날 이렇게 두고 두고 길이 남는 유적으로 남게 될줄을 어떻게 생각이나 했겠는가?

  

석탑 들머리 입구에는 식수대가 있는데 운치를 돋우기 위하여 물레방아 시설까지 만들어 긴긴 마이산 종주 산행길에 나선 산객들에게 목마른 갈증을 해소케 하며 잠시 그 옛날 옛적 향수에 젖게 한다. 식수대에서 일단 먼저 무더운 날씨에 갈증을 해소키 위하여 물 한 바가지 마시고 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석탑경내 곳곳을 돌아 보는데 보이는 석탑 조형물 하나하나가 신비스럽고 이 석탑을 어떻게 이렇게 쌓아 올릴 수 있었을까 하는 이갑용 도사님의 위업에 새삼 머리를 숙이게 하며 석탑을 감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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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 임실에 살던 이갑용()이라는 사람이 25세 때인 1885년(고종 25)에 입산하여 이곳 은수사()에 머물면서 솔잎 등을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돌탑을 쌓기 시작하였고 10년 동안에 120여 개에 달하는 여러 형태의 탑을 쌓았다고 한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차곡차곡 그대로 쌓아올려 조성한 이 돌탑들은 높이 1m 쯤에서 15m 의 것까지로, 각양각색의 형태이다. 그는 낮에는 멀리서 돌을 날라다가 밤에 탑을 쌓았다고 전해지며 천지음양()의 이치와 8진도법()을 적용하여 돌 하나하나를 쌓아올림으로써 돌탑이 허물어지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피라미드형등 여러 모양의 탑 80여 개가 남아 있다.

  

네이버백과사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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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섬진강이 발원되었다는 용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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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제 가면 다시 이곳 석탑에  오기 쉽지 않을듯

하다. 그래서 필자도 한컷의 증명 사진을 남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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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가 아니면서도 성스러운 석탑의 위용앞에 절을

올리는 버그님께 만사형통의 운수대통길 열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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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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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자세히 보면 암벽에 붙어 자생하는 거대 능소화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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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조각되어 돌아가고 있는 물레방아

  

마음은 좀더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더 돌아보고 싶은데 벌써 일행들은 탑영재를 지나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으면서 빨리 오라는 신호가 온다 그러다 보니 나도 아쉬움을 남기고 서둘러 일행들을 따라 이곳 마이산 코스의 명소 탑영재 코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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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워 다시 돌아본 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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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영재 가는길에 만난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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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영재에 투영된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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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영재속에 멀리 고금당이 물속에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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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비친 암마이 숫마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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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사 

 

대한불교조계종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 814년(현덕왕 6) 중국 승려 혜감()이 창건하였다. 사찰의 위치는 마이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위치한다.

여러 차례 중수하였는데, 약 300여 년 전에 현재의
대웅전이 건립되었다. 대웅전은 금색으로 채색되어 있어 매우 화려하게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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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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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일주문

  

그런데 일주문 촬영을 하려다보니 바로 일주문 앞에 승용차를 세워 두었다. 그런데도 바로옆 관리소에서는 이 승용차를 그냥 방치 관목만 하고 있다. 대부분의 마이산을 ?는 내방객들이 이 일주문을 통과하여 진행하며 금당사를 돌아보는 얼굴인데 사진촬영을 막으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2.000원씩의 사찰 입장료를 받으면서 이를 방치하고 있는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느다. 차를 나오지 않게 사진을 찍다 보니 아랫도리 부분이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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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암마이 숫마이봉) 자태를 정면에서

  

마이산 일주문을 빠져나와 우리들은 고속도로를 진입하기전 서울에 도착 시간이 늦을것에 대비하여 가볍게 저녁겸 이 지방 별미를 맛보기 위하여 애저와 더덕구이 전문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바로 전방에 위치한 사양제 저수지에 올라 물속에 비췬 마이산 암바이봉 숫마이봉 두 봉우리를 나란히 정면에서 바라보며 저녁 노을에 비친 마이산 두 암봉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은후 오후 7시가 채 안되어 조금은 늦은 시각에 귀경을 서둘러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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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재에 투영(投影)된 마이산 전경

  

그러니까 이날 우리 일행들의 산행은 마이산을 저멀리 동쪽 13Km 지점에 두고 합미산성 입구에서 남동방향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길게 산행을 하다 보니 때로는 마이산이 우측에 보였다가 또 왼쪽으로 보이고 또 앞으로 보이는 마치 도깨비에 올린듯한 착시 현상을 실감하며 무려 20여명의 디카맨들이 마치 이국적 풍경으로 조망되는 아름다운 마이산 산행길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런대로 속전속결 산행을 이어 왔는데 산행을 모두 마치고 탑재에서 그리고 금당사에서 또 탑영재를 지나며 많은 인원들이 사진을 찍다 보니 정작 산행은 5시간에 채 안되게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느라 1시간을 허비 무려 6섯시간에 걸쳐 이날의 모든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하기사 산행 시간이 뭐이 그리 중요한가 모처럼 멀리 진안까지 달려가서 오랫동안 추억에 남을 산행을 하며 그 아름다운 풍경 모습을 오랫동안 사진으로 두고 볼 수 있는 사진촬영야말로 사실은 마이산을 가장 오래 추억으로 남길 자료이니 즐거운 산행하고 소중한 추억을 담았으니 일거양득이라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편안한 오랫만에 기분좋은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을 싫은 버스가 사당에 도착을 하니 이미 9시 반이 지나고 있다.나는 서둘러 차가 정차하자 마다 뛰어내려 사당역에서 전철을 갈아타며 귀가하고 보니 어느덧 밤 10반이 지나고 있다.이때부터 다른 사람들은 귀가하여 샤워하고 휴식을 취할 시간에 나는 다시 업무 인계를 받아 새벽 2시까지 서부전선 이상 없이 근무를 마치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싸이클을 달려 귀가를 하는 기분이 상쾌하기 이를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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