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박지산 1박 2일 산행기



제 1일; 7월 14일 토요일

전날 밤에 새벽까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떠들다가 화들짝 놀라서 집으로 향했다.
몇 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 7시에 자명종이 울려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몸에서는 술 냄새가 나서 급히 샤워를 하고 대충 짐을 챙겨서 7호선 사가정역으로 나갔다. 딸에게 메모지를 써놓고...

“ 오늘 일찍 강원도 산에 간다.
살둔산장 친구 만나러 간다. 아빠가 08: 10“

내가 직접 차를 몰고 동행하는 동료 4명을 태우고 가는 것이다.
‘박지산---1박2일. 숙소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수항리 황토방 펜션,
 033-333-9232.’
메모지를 들고 출발했다. 9시에 잠실역에서 합류하기로 해서 부지런히 차를 몰았지만 20분이나 지체되었다.... 봉고차로 가는 다른 일행 8명을 만난 후 우리 차는 중간에 경유할 데가 있어서 각자 출발하기로 했다.

              여름휴가 행렬로 붐비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토요일이라 벌써 고속도로는 차가 막혔다.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서서 11시 30분에 여주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아침 겸 간식을 하고 출발했다. 교통량이 많아 여기서부터 서행이다. 4차선이 2차선으로 변경되어 병목현상이 생긴 것이다. 과연  오늘 중으로 강원도 홍천군 내면 귀곡산장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저녁까지 평창 숙소로 갈 수 있을 까 걱정된다. 시간은 지체되고 거북이걸음으로 줄서서 달린다. 오랜만의 외출, 외박이라 흥분도 되지만 오늘 일정이 깨끗하게 마무리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려된다.

날씨는 쾌청해서 여름 휴가 떠나기 안성맞춤이다. 길가에 푸르른 나무 숲이 싱그럽다. 길가에 심어놓은 루드베키아 꽃이 샛노랗다 못해 눈이 부시다. 파란 하늘 아래 싱싱 달리는 기분은  서울의 복잡한 도심을 떠나 모처럼 한적한 기분이다. 일행은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도 목적지에 간다는 기분에 들떠 있었다. 살둔산장에 대한 유래 이야기를 들려주며 오늘은 평창의 김선생을 만나 데리고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하루에 200km이상을 달려야 하는 강행군이 예상된다. 12시 30분경 두 번째 소사휴게소에 잠시 들러 김선생과 전화 연락을 취했다.  면온 인터체인지로 나오면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다. 1시가 지나서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서 김선생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하고 상의했더니 먼저 이효석 생가와 문학관을 구경하자고 한다.
쾌히 승낙하고 차를 몰아서 30여분 만에 이효석 생가에 도착했다. 배는 고픈데도 일행은 메밀꽃 밭에 들어가 사진 박고 노느라고 힘든 줄도 모른다.  딸 같은 나이의 처녀 3명이 갔으니까...그럴 수 밖에 없다. 시간을 많이 지체하고 문학관에 들러서 구경을 하고 면온 읍내로 내려가서 유명한 막국수로 식사를 했다.

              유명한 흥정계곡의 아름다운 동화의 집

벌써 3시다. 김선생은 이왕 강원도에 왔으니  자기 집으로 가서 한번 위치를 확인하고 가는게 어쩌냐는 것이다. 다들 좋다고 해서 차를 반대방향으로 몰아 들어간 흥정계곡은 읍내에서도 멀리 떨어진 유명한 유원지였다. 계곡이 온통 피서인파로 북적이는 허브농장을 지나  깊숙이 들어가니 펜션이 많이 들어서 있다.
청정한 1급수 물이 흐르는 오지로 비가 간밤에 많이 와서 물소리가 요란하다. 작은 문패에 고운집이라고 쓴 하얀 펜션은 은퇴하기 4년 전부터 지은 집이란다. 영화에 나오는 언덕위의 하얀 집이였다. 2층 건물에 성모상이 서있는 잔디밭--마당, 그리고 뒤편에 새로 지었다는 카페에서 우리는 시뻘건 수박 대접을 받고 일어섰다. 구경을 하러 들어가 보니 트윈 침대에 냉장고, TV, 전화, 옷장, 화장실을  갖춘 현대식 방이 8개나 되었다.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일행은 두차에 나눠 타고 오늘의 목적지인 내린천 살둔산장 친구의 집으로 향한다. 이 친구는 나와 40년 지기다. 20대 젊어서 만났으니까 오래 사귄 호산(이상주)은 J일보에 근무할 때 내가 장가가던 날 자청해서 사회를 봐준 고마운 친구였다.
사람의 일생이 맘과 같지 않다고 했나??? 어찌어찌 살다가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며 서울 흥사단의 회장까지 지내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2년간 병실에서 누워 있다가 기사회생한 후 세상과 담을 쌓고 내린천 상류에 둥지를 튼 것이다. 그것도 벌써 15년이 지난 이야기다. 참으로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다시 반추하게 한다....
김선생하고는 대학시절에 만나서 서울의 정릉에 도산학교에서 야학을 가르치면서 우정을 나눈 사이인데 만나지 못한지 4반세기 세월을 넘어 만나게 해주는 날이다.
우리는 저녁이 다 되어서  1000m  운두령을 넘고 창촌을 지나서 상남 방향으로 1시간을 가서 생둔마을에 도착했다.

              30년 만에 만나는 극적인 해후의 흐느낌

오후 6시다.  먼저 살둔산장에 들러서 짐을 풀고 부리나케 귀곡산장으로 향했다. 여기는 아무나 못 찾는 곳이다. 대충 이야기를 듣고 개조심이라고 쓴 오두막집(?)을 찾았다.
작은 삽살개가 멍--멍 짖어댄다. 여기다 싶어 차를 세우고 작은 계단을 올라가보니 아무도 안 보였다.  집 주변을 돌면서 인기척을 내니 컨테이너에서 친구 소리가 들렸다. 30년전 오랜 친구가 계단에서 마주쳤다. 동창생인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보며 핸드폰으로 사진기를 눌렀다. 한참을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다. 눈물겨운 장면이다.

마음을 잠시 진정을 시키고 안으로 들어가 작은 밥상을 놓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삼십년 만에 만나 할 이야기가 한 두가지 이겠는가 싶다. 오늘은 아무래도 여기서 자야 할 것 같다. 호산은 산사나무 열매와 다래로 만든 술병을 갖고 나와서 돌린다. 안주라고는 김치쪼가리에 산나물이 전부였다....한 동안 말이 없었다....침묵이 흐른다.
1시간 여 동안 긴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술잔이 오갔다....나는 지금 우리를 기다리는 일행이 있으니까 살둔산장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술병만 들고 호산의 소유였던 산장으로 향했다.
어둑한 길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여기는 차 한.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숲길이다.
5분 만에 도착한 산장에는 언제 장만했는지 구수한 된장국에다가 푸짐한 채소와 반찬으로 진수성찬을 마련했다. 오늘 낮에 김선생에게 진 빚을 갚으려는 듯 푸짐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게눈 감추 듯 먹어치운다.
배는 부른데 밤이 되니까 갑자기 춥다. 내린천의 맑은 물소리는 더 커지고 으스스하다. 사정없이 모기가 물고 해서 방안으로 자리를 옮겨 해묵은 삶의 편린들을 기억해내며 밤새 이야기꽃이 핀다. 나는 내일 일찍 박지산에 등산 가야 한다고 누웠다. 그러나 잠이 안와서 일어나서 떠들다가 또 눕고 하면서 비몽사몽간에 새벽을 맞았다.



제2일; 7월 15일 일요일

             

          새벽부터 강원도 산길을 달리는 산 꾼의 허황된 꿈

밤새 제대로 자지 못해서 얼굴이 말이 아닌데도 6시에 일어나 평창의 황토방 펜션으로 향한다.  신나게 어제 왔던 1000m 운두령 고개를 넘고 진부에서 좌회전해서 읍내로 들어갔다. 이제 조금 정신이 들었다. 집에서 대충 약도를 본 대로 차를 몰아 8시경에 황토방 숙소에 도착했다. 수항계곡 주변에는  펜션이 많아서 거기가 거기 같았다. 그러나 두 어 번 묻고 물어서 일행이 묵은 강변의 숙소를 찾아갔다.

이제 막 출발하려고 등산복을 입고 체조를 하는 중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기체조다. 모두 30여명...반가운 통일산악회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로 6대에 분승해서 정선으로 넘어가는 00고개로 향했다. 그런데 작년 홍수 피해로 마구 파괴된 계곡과 흙길이 엉망이고 복구공사를 벌여 차량이 통과하기 힘든 길이었다. 앞에서 덤프 차나 불도저가 오면 섰다가 다시 가야 했다.  어젯밤에 비가 와서 질퍽질퍽하고 미끄러워서 바퀴가 빙빙 돌았다.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패인 황톳길과 진흙길을 1시간 올라가 00고갯마루에 닿았다.  이곳에 산다는 분이 등산로가 작년 수해로 없어졌다며 두리번거린다. 어이쿠---이게 왠 날벼락인가???

서울에서 여기까지 천리 길을 달려왔는데,,,등산로가 없다니--- 오늘 산행은 고장 난 차 두 대가 뒤에 쳐지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오바이트한 봉고차를 돌보다가 뒤에 쳐져서 맨 마지막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불도저 운전사에게 물으니까 바로 밑에 새로 난 길이 있단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차를 세우고 자세히 보니 콘크리트길로 포장한 도로가 나 있었다.
출입금지 표시가 돼 있었다. 현장 감독자에게 등산하러 왔다고 하니 차를 여기다 두고 가라고 한다.

시간은 벌써 9시반이 넘어갔다. 산행지도도 안 갖고 와서 미심쩍기도 했지만 임도가 잘 나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부지런히 걸어서 무거운 다리를 흔들며 오름길로 오른다. 한 바퀴 고갯길을 도는데 차 소리가 났다. 반가운 소리다.
이런 데서 차를 만나면 먼저 차를 세워서 길을 묻고 같은 방향이면 승차를 요구해서 가면 아주 편하다. 손을 흔드니 그냥 지나치려던 차가 서서히 멈춘다. 기사님께 산에 가는데 좀 태워달라고 했다. 지금 바쁘다고 손을 내젓는다. 나는 순간 기지를 발휘해 앞문을 열고 사정을 했다. 서울에서 왔는데 산길을 모르니 아는데 까지만 가르쳐달라고 하니 겨우 승낙한다. 30분을 걸어 가야할 거리를 10분 만에 임도 삼거리까지 태워다주며 여기서 오른편 길로 가라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리니 해는 벌써 중천에 뜨고 햇볕은 사정없이 내리쬔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임도에서 헤매다

길옆에는 전나무 통나무가 집채만큼 쌓여있고, 그 옆에는 <97 국유임도> 라고 새긴 돌 표지석이 보였다.
경고문에는
‘ 이 지역은 국유림 보호를 위하여 시설한 임도로써 관계자외 출입을 금지하며...임도 시설을 훼손하거나 입산통제구역에 무단출입하는 자는 관계법령에 따라 처벌...‘
한다는 평창 국유림관리소장과 평창 경찰서장의 표지판이 서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구불구불한 임도를 걸었다. 급경사를 깎아서 만든 탓에 한편은 까까 절벽이고 아래편은 산사태가 나서 뚝 끊어져 경사면을 사방공사를 해서 복구한 곳이 많다. 잔디를 돌 위에 덮어 씌워 겨우 살아난 곳이 보인다. 사방공사 현장체험을 하는 날이다. 100년은 더 된 소나무와 전나무 육송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이 울울창창하다. 길바닥의 돌은 구들 장 모양 갈라진 붉은 색 현무암이다. 1시간을 부지런히 가도 거기가 거기다.  여기는 핸드폰도 안 터진다. 가져온 물도 다 떨어지고 점심 준비도 못한 처지다. 어디서 물이라도 구하면 몰라도 목이 마르면 다시 하산할  수 밖에 없다.

무모한 산행---이렇게 생각하니 머리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하고 흐른다. 마구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이 원망스럽다. 날씨는 화창해서 사방이 잘 조망된다. 가끔 쉬어서 그늘에 앉아 먹을 것을 찾아봐도 아무 것도 없다.... 다시 일어나서 걷고 또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고 항상 제자리에 온 느낌이다. 일사병이나 열사병에 걸 린 듯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뛰며 현기증까지 날 것 같다. 엇비슷한 산판 도로에서 어쩌다가 페트 물병을 발견하면 반갑다.
가까이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 샘물을 발견했다. 깨끗한 옥수가 산에서 계곡을 타고 흘러내린다. 손으로 받아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점점 출발한 지점에서 멀어지기만 한다.

돌아서서 내려가기도 만만치 않은 이 길은 4년 전 중국 윈난성에 배낭여행가서 호도협의 밴드길 트레킹코스를 걸어간 생각이 난다. 어쩌면 그 무시무시한 협곡과 흡사하다. 이틀 동안 쉬지 않고 걸어간 3000m 고지의 자갈길과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모른다. 두 번째 샘을 발견했다. 이 정도면 물은 확보할 수 있다고 다시 용기를 내본다. 시간은 2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길에는 잡초가 갑자기 어디서 뱀이 나올지, 아니면 들짐승이 나올지 몰라 되도록이면 가운데 길로 걸어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갈 것이냐 아니냐 갈림길에서 발견한 후미진 등산로


지쳐서 그냥 돌아설까 할 즈음 후미진 곳에서 산악회의 리본을 발견했다.
약간 물이 흐르는 도랑을 건너 후미진 곳 나무에 걸린 빨간 표지기가 흔들흔들 한다. 여기가 분명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다. 나는 여기서 시계를 보고 오늘 정상 정복을 꼭 할 것인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하산시간을 계산해서 늦어도 5시 까지는 차가 주차한 00언덕까지 내려서야 한다.... 30여분을 이 문제로 지체했다. 오지 강원도 초등산행의 모험을 감행할 것이냐 아니냐다. 정각 12시 반이다. 정상까지 2시간 걸린다고 치면 내려가는데 3시간 잡고 간신히 해지기 전에 하산 완료할 것 같다.

도랑을 건너 등산로에 접근해서 진입을 시도해 보았다. 키 작은 나무와 덩굴이 엉켜서 하늘이 안 보이는 숲길이다. 한발 디딜 틈도 없이 홍수피해가 심했다. 작년 여름 이후로 누가 오른 흔적이 없는 것 같다. 허리를 구부리고 간신히 컴컴한 잡목 숲으로 기어들어가야 한다. 혹시 다른 팀이 반대편으로 올라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장인선 대장님. 먼저 미안하고 여기서 12시 반에 정상 도전함.
차로 내려갈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양래 드림.”

작은 쪽지를 써서 큰 돌에 올려놓고 출발했다.
10분 오르고 쉬고 미끌미끌한 험로를 한발 짚고 다시 밀고 하면서 조금씩 오른다. 히말라야 등반도 이보다 더 어려우랴!!싶었다. 오늘 따라 힘이 빠져서 도저히 발이 안 떨어진다. 땀을 억수같이 흘린 나는 기진맥진했다. 20여분이 지나니 이제야 해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친다. 터널 굴속을 지나온 느낌...파란 하늘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살아 있는가???--- 일부러 살을 꼬집어보지만 별로 감각이 없는 듯하다. 안경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눈앞이 안 보인다. 1시간 만에 관목 숲 터널을 뚫고 나오니 저 멀리 안부가 보였다.... 길이고 뭐고 잘 분간이 안 된다.
100년은 더 된 참나무 몇 그루가 고사목에 큰 구멍이 뚫려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나 있다.여기서 어느 쪽이냐??? 그게 문제다. 자세히 풀섶을  보니 왼편으로 길 같은 게 보였다. 이제 능선에 붙었으니 머지않아 정상이 나온다. 사방에 고사목들이 홍수와 바람에 쓰러져서 뒹군다. 시꺼먼 참나무에 검은 운지버섯이 피어 다닥다닥 붙어 자란다.

             
           드디어 대망의 1391m 박지산 정상석에 오르다


배가 고프다 못해 이제는 귀가 멍멍하고 현기증까지 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란 있을 수 없다. 무조건 앞으로 전진이다. 물어볼 사람도 없으려니와 정상까지 혼자 가는 것이다. 능선은 비가 온 후라서 질퍽거리고 나뭇잎은 미끄럽고 속도가 붙지 않는다.
두 발자국 가다가 쉬고 나무에 기대서 쉬고 하면서 무릎을 손으로 짚어가며 질질거리며 오른다. 조금만 경사가 져도 올라가기가 천근만근인지 모른다. 마음은 가고 있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자주 눈을 비비며 땀을 닦으며 1시간은 더 올라간 것 같다. 이 놈의 박지산---박쥐산--박쥐산(?)--- 정상은 나오질 않고 점점 시간은 흘러갔다...
이제는 겁이 슬쩍 나기 시작했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애꿎은 시계만 자꾸 쳐다보며 찡그려 보지만,어찌 할 수 없이 정상을 밟는 길 밖에 없다. 사방은 나무 숲 터널이고 조망이 안 되니 답답하다. 기진맥진 쓰러질 즈음에 가서야 약간 훤한 하늘이 보였다. 여기보다 더 높은 곳이 없다는 신호다.
아---드디어 정상이구나!!! 눈물이 왈칵 솟았다. 피눈물과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되는 순간 눈 앞에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눈을 부릅뜨고 진짜 정상인가 확인 하는 순간 모든 피로가 순간에 사라지는 듯하다... 이런 게 히말라야 등반자가 맛보는 호연지기--무아의 경지....리라.
한편으로는 스스로 측은지심이 들기도 헀다. 철퍼덕 하고 정상석에 배낭을 내려놓고 나니 왠지 허전하기도 했다. 이곳까지 오려고 진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한심스럽기도 하다. 산판 길에서 주운 지팡이가 없었다면 아마도 못 올라왔을 것 같다. 이 지팡이는 꼭 가지고 내려가서 기념으로 남기고 싶다. 단단한 재질에 손잡이까지 달린 근사한 스틱 감이 아닌가!!!!

 숨을 몰아 쉰 후  눈물의 박지산(해발: 1931m,1999.11.1 진부면장) 세 글자와 뒤편으로 높이 쌓아올린 돌탑을 배경으로 사진으로 박아댔다. 이젠 하산할 시간이라고 돌아서려는 순간 어디서 인기척소리가 들려왔다. 귀신도 아니고... 아니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배낭은 놔둔 채로 급히 아래쪽 안내표지판을 돌아 소리 나는 방향으로 내려가 보니 숲 속에 젊은 등산객 4명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저-- 좋은 자리에서 쉬시는군요...”
“-----”
“ 저는 서울에서 왔는데,,,어디서 올라오셨어요???”
“ 우리는 저 밑에--어디 더라???”
“ 그래요...올라 오는데 힘 많이 들었지요??? 미끄럽기도 하고,
  얼마나,,,몇 시간이나 걸려요???“
“ 글쎄요. 암 3시간 걸렸나...”

시계를 쳐다보면서 대답이 시원치 않다. 그들은 강릉에서 이곳 박지산 계곡에 고기 잡으러 자주 오며 오늘은 물이 온통 흙탕물이라서 올라온 것이라고 한다. 수항계곡에서 올라온 듯하다.

“ 미안하지만, 저 혼자서 와서...사진 좀 하나 찍어주시겠어요??”

하니까 그제서 한사람이 일어나서 가자고 한다...
다시 정상에 올라가 폼을 잡고 사진 찍는 방법과 셔터누르기를 가르쳐주었다.
가로로 한 컷, 세로로 한 컷, 그리고 뒤에 있는 돌탑을 배경으로 또 한 컷을 남겼다...
정말로 힘들었던 산행의 대미를 장식한다.

           숲속의  하산 길에서 마주친 검은 귀신의 출몰

나는 잠시 쉬어서 가자고  돌탑 옆에 기대어 옷을 벗고 배낭에서 먹다 남은  새우깡과 물로 허기를 달래고 한참을 쉬었다. 너무 오래 쉬면 하산시간도 늦어지고 힘도 빠진다고 생각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서서 둘러보니 북쪽으로 강릉방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저기가 발왕산이구나! 3년전 요산요수회에서 여름에 갔다가 비바람이 쳐서 중도에 포기한 산이다. 산 정상에 통신기지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갈미봉과 백석봉, 상원산과 가리왕산이 우뚝 서 있고, 서쪽으로 멀리 백적산이 내려다보였다.
저 아래는 정선 북평면이 아련히 보이고 수항리와 숙암리 계곡의 도로가 희미하게 보였다.

천근만근 몸이 다소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여전히 발가락과 다리는 감각이 없다.
30여분을 다리를 절고 비틀거리며 내려오다가 쉬고 쉬었다. 아까 올라온 안부삼거리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4시다. 이제는 눈은 10리는 들어간  것 같다. 다시 왼편으로 꺾어지며 급경사 길로 접어들어 내려가는데 뭔가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누군가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면 아니고,,, 사진으로 박은 그 고사목이 꼭 사람의 형상으로 보였다...

다시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쓴다. 다리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쥐가 나면 앞으로 1시간을 내려가야 산판 길이 나오는데---.
좌우를 보면서 길을 찾아 헤매는 형상이 됐다. 앞을 보니 시커먼 물체(?)가 보였다. 저게 뭘까???하는 순간 귀신 생각이 갑자기 든다. 그렇다. 이런 오지 숲속에서 귀신을 만난다더니....조금 더 내려가니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해서 지팡이로 두드려 보고 헛기침도 해보았다.
무슨 귀신이 있어??? 하고 다짐해 보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앉아 있지 않은가!!!

정말 오랜만에 멀리 강원도 오지로 원정 산행을 했다....아마도 4년만의 일이리라...
장마가 시작되는 한 여름 7월 중순에 찾아간 강원도는 역시 오지였다.
생전 처음으로 귀신을 만났다. 귀신하면 서울 도시생활에서는 생각도 못하는 일이다.
무슨 역귀신이 낀 게 분명하다. 몸서리가 쳐지고 허리가 허전하고 등에서 땀이 난다. 귀신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정신착란,,,아니면 환각상태일 것이다...
또 다시 헛기침을 하며 통과하고 나면 또 한 여자가 앉아서 지팡이까지 짚고 앉아 있었다.
주위를 살피며 다시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그대로 앉아있다.... 정신을 차리자고 입을 악물고 한발만 내딛는다.  살그머니 돌아다보니 산불이 나서 나무 그루터기가 시꺼멓게 탄 것이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박지산은 생전 처음 귀신을 만나는 산행이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산에 안 가기로 했다. 여름산행은 예측을 불허한다. 누구도 장담을 못하는 단독 산행은 해서는 안 된다.... 백두대간은 아무나 타나---를 수도 없이 외치며 임도를 돌고 돌아 저녁 6시에 하산 완료했다.

이곳은 일명 두타산,,, 두타봉이라고 불렀던 박지산이 박쥐산이 된 연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