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8. 18일

                      *소재지  :경북 포항

                      *산높이  :내연산710m/향로봉930m

                      *산행코스:하옥리계곡도로변-하옥교-향로봉-내연산-은폭

                                -관음폭-보현암-상생폭-보경사-주차장

                      *산행시간:12시-18시9분(6시간9분)

                      *동행    :송백산악회 

  

                                 

 

  경북포항의 내연산(內延山)이 저의 눈을 끄는 것은 바로 산 이름입니다.

고유명사로 쓰인 내연(內延)이란 단어가 사전에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친구들이 지어준 저의 별명 시인마뇽이 원시인 크로마뇽의 축어이듯이 제게는 자꾸 내연(內延) 또한 내포(內包)와 외연(外延)을 합친 줄임말처럼 생각됐습니다. 명산이란 무릇 산이 내포(內包)하는 계곡, 폭포, 암봉, 가람 등이 볼만해야 하고 주봉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의 외연(外延)이 장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어느 산이 내포하는 계곡이 볼만하고 주봉의 외연인 산줄기가 웅장하다면 이들만으로도 명산으로 대접 받을 기본적인 요건은 갖춘 것입니다. 여기에 이 산이 위치한 지리적 여건이 어떠하냐와 이 산을 상징하는 전설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느냐가 추가적인 요건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요건들을 모두 갖춘 산들은 흔치않기에 이른바 명산100산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내연산에서 빼어난 것은 무엇보다도 이산이 내포하는 수려한 계곡입니다.

삿갓봉 바로 아래에서 시작된 깊은 계곡이 은태골, 시명골, 잘피골, 복호골, 거무날골, 초막골과 밀반골 등 여러 지류의 계곡물을 차례로 받아 시명폭, 복호2폭, 복호1폭, 은폭, 연산폭, 관음폭, 무풍폭, 잠룡폭, 삼보폭, 보현폭, 상생폭등 12개의 폭포를 만든 다음 보경사에서 그리 멀지 않는 동해로 흐르는 청하골과 이 계곡에 면해 곧추 선 절벽 등 암봉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절경을 보고자 먼 길 마다않고 전국 각지에서 내달려온 사람들로 모처럼 계곡 안이 시끌벅적했습니다. 내연산의 주봉인 삼지봉만으로 저 많은 폭포들을 다 만들 수 없기에 외연을 확대하여 계곡 북동쪽의 문수산에서 시계반대 방향으로 주봉인 삼지봉과 상봉인 향로봉을 일군 다음 매봉과 삿갓봉, 그리고 유척봉의 천령산을 차례로 일으켜 세워 청하골에 물을 댄 것입니다. 이렇듯 내연산의 요체는 깊은 계곡과 이 계곡을 둘러 싼 산줄기에 있기에 아무래도 계곡의 아름다움에 비해 산세의 웅장함은 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이 산의 외연을 그리 멀지 않은 서쪽의 통점재까지 확대한다면 남북으로 시원스레 내닫는 낙동정맥의 산줄기 덕분에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아침 6시 반에 사당을 출발한 버스는 치악휴게소에서 한 번 쉰 후 내연산을 향해 죽어라고 달렸습니다.

전에 없이 힘들어하는 버스가 안동을 지나 더위를 먹었던지 속도가 급격히 떨어져 기사분이 차를 세우고 손을 보노라 10분 남짓 늦어졌습니다. 낙동정맥 상의 통점재(?)에 올라 왼쪽 비포장도로로 들어서 하옥교 방향으로 얼마고 내려가다 커브 길에서 저희들을 내려놓았습니다.


 

  12시 정각 버스에서 하차해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와 붙어 있는 하옥교로 내려가는 비포장도로는 하옥리 계곡을 찾는 승용차들로 먼지가 풀풀 나 20분 동안의 보행이 짜증스러웠습니다. 다리 양편의 협곡이 만든 계곡이 절경인 하옥교를 건너 조금 후 좁은 임도만한 오른 쪽 숲속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번 내연산 산행은 산악회의 안내대로 온전히 따르지 않고 저 나름대로 코스를 일부 조정해 운행했습니다. 향로봉을 올랐다가 시명리로 내려가는 A코스나, 향로봉을 오르지 않고 능선삼거리에서 바로 삼지봉으로 직진하는 B코스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향로봉을 들렀다가 0.7Km를 되돌아와 능선 삼거리에서 동쪽에 자리한 삼지봉을 오르는 A, B 두 코스를 혼합해 잡은 것은 해발 930m의 향로봉은 이 산의 상봉이고 그보다 고도가 220m 낮은 삼지봉은 주봉이어서 명산탐방기를 써내려가는 저로서는 어느 한 봉우리인들 아니 오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옥교에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처음 십 수분 동안 바람 한 점 없는 불볕더위에 된비알의 오름길을 오르느라 숨이 막히는 듯 했습니다. 오름 길에 참나무 등 활엽수들이 햇빛을 가려주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구릉에 올라선 다음 한동안 거의 평지 길과 같은 완만한 오름길을 걷다가 다시 경사진 길을 걸어 오르다 산행시작 1시간 만인 13시 정각에 산 중턱에서 짐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습니다.


 

  14시7분 해발930m의 향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산중턱에서 10분을  쉬었어도 찜통더위의 극성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완만한 경사 길을 20분을 올랐어도 향로봉/삼지봉 갈림길이 나타나지 않아 산악회에서 정해준 17시 반까지 주차장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단 한 번도 내림 길이 없는 지루한 오름길은 860봉에서 일단 끝났고 처음으로 십m 가량 내려섰다가 3개의 봉우리를 오른 쪽으로 우회해 13시 54분에 향로봉0.7Km 전방의 삼지봉행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직진해 향로봉으로 내달린 결과 17분 만에 헬기장이 들어선 시야가 탁 트이는 향로봉에 다다랐습니다. 안내판에는 이 봉우리가 내연산의 주봉으로 적혀 있었으나 국립지리원에서 펴낸 지형도에는 삼지봉을 내연산으로 표기하고 있어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지형도를 따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에서 향로봉을 상봉으로 적고 있습니다. 저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모자 두 분에 기념사진을 찍어드리고 0.7 Km를 되돌아가 능선 삼거리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15시30분 해발710m의 내연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동쪽으로 3.2Km 떨어진 이산의 주봉 삼지봉에 이르는 길은 오르내림이 별로 없는 완만한 길이어서 속도를 냈습니다. 향로봉을 다녀와 점심을 먹느라 B코스 맨 후미보다 10분 늦은 14시35분에 능선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꾸덕꾸덕해진 흙길을 걷는 동안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촉이 한결 부드러웠습니다. 밤나무등 능선을 지나 시명폭포로 내려서는 갈림길에서 삼지봉을 들러 온 부부 한 팀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향로봉에서 하산하겠다는 계획을 바꿔 바로 시명폭으로 하산한 이분들을 나중에 은폭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능선삼거리출발 반시간이 지나 도착한 안부에서 삼지봉까지 0.6Km가 짧은 1.2Km의 왼쪽 길을 택해 올랐습니다. 봉우리에서 묘지로 내려서 오른 쪽 길과 합류한 후 얼마간 더 걸어 적송이 보이는 곳을 지나 이 산의 주봉인 빈터의 삼지봉에 올랐는데 나무들로 시야가 막혀 향로봉보다 전망이 훨씬 못했습니다. 하옥교에서 내연산 주봉인 이곳까지 산길은 길도 넓고 안내판도 곳곳에 잘 세워져 있어 이 산이 도립공원의 산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내연산에서 직진하는 길은 문수봉을 들러 보경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로 판단되어 오른 쪽으로 꺾어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16시37분 은폭에 도착해 표지판을 보고나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10분 먼저 출발한 B팀의 후미를 삼지봉에서도 만나지 못해 오래 쉬지 못하고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정상에서 가파른 내림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와 바로 아래 물이 아주 조금 밖에 흐르지 않는 계곡을 따라 걷고자 오른 쪽으로 확 꺾어 은폭으로 향했습니다. 10분을 내려가 만난 석성(?)에서 왼쪽으로 들어선 길이 아래 계곡으로 이어지지 않고 산허리를 돌고 도는 길이어서 혹시나 이 길이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가해서 조금은 불안했습니다. 계곡에서 한참 위에 나있는 산허리 길을 20분 넘게 걸어 만난 커다란 바위에서 오른 쪽으로 난 비탈길을 내려가 커다란 청하골 계곡으로 내려서자 A코스와 합류했다 싶어 비로소 안심되었습니다. 시명폭, 복호1,2폭은 상류에 있어 보지 못했고 산허리 길을 한참 에돌다가 계곡으로 내려서 첫 번째 만난 폭포가 은폭으로 반가움이 앞서 찬찬히 뜯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계곡이 보기 드문 12폭의 계곡임을 자랑하기에 충분함을 느꼈습니다. 보경사를 4.2Km 남겨 놓은 은폭을 출발해 20분여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관음폭을 조금 못가 맨 후미로 쳐진 일행 한 분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초반에 향로봉을 오르는 중 사진을 찍느라 후미에 선 이분은 이미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 나선 터라 저와 똑 같이 초행인데도 폭포 이름과 특징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17시21분 상생폭포(또는 쌍생폭포) 앞에 다다라 잠시 머물러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하산 길에 두 번째 만난 폭포는 관음폭으로 두 개의 물줄기가 낙차 크게 떨어져 밑으로 넓은 소를 만들어 마지막 더위를 피해 이 계곡을 찾은 피서객들을 말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이 소에 면해 직립한 암벽은 여기 저기 움푹 파진 곳이 있어 벌써 몇 사람들은 그 속으로 들어가 열기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폭포와 소, 그리고 절애의 암벽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비경에 매료되어 이들과 하나가 되고자 풍덩 물속으로 들어가 폭포수를 맞는 피서객들이 이 계곡에 생기를 불러 넣어 활기가 가득 차 보였습니다. 사진 몇 커트를 찍고 나서 바로 자리를 뜨며 시간이 없어 오버브리지에 올라서 연산폭과 학소대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정말 아쉬웠습니다. 관음폭에서 보현암으로 옮기는 중 동행한 한 분이 사진을 찍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해 저도 사진은 찍어 따로 보관하고 있지만 산행기는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시인마뇽의 필명으로 매주 올리고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마침 제 글을 이미 읽은 분이어서 제 필명을 아시고 있어 다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 못 쓰는 글이나마 3년 넘게 쉬지 않고 산행기를 쓸 수 있었기에 이분에도 마음 속 깊이 감사의 말씀을 올렸습니다. 처마 밑에 장작을 쌓아 놓은 보현암을 들러 목을 축인 후 이름을 모르는 하얀 꽃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상생폭은 쌍생폭포로 불러도 좋을 만큼 연산폭포보다 훨씬 굵어 보이는 두 줄기의 폭포가 아래 소로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는데 두 개의 물줄기가 넓은 소를 공유하고 있어 상생의 현장을 보는 듯 했습니다. 시명폭에서 시작하여 숨 가쁘게 11폭을 거쳐 내려온 계곡 물이 마지막 관음폭에서 최고의 속도로 내리 떨어져 넓은 소에서 천천히 한 바퀴 휘돌며 숨을 고른 후 다시 동해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다른 일행들이 먼저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내달리는 저희들의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에 들어가 튜브를 타고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이 계곡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고 더위를 즐기고자 적극적으로 물속으로 뛰어든 것이기에 폭포 옆에 세워놓은 수영금지 안내판에 아랑곳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18시9분 보경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해 내연산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잠룡폭 등 몇 개의 폭포를 거르고 마지막으로 들른 상생폭을 떠나 하산하는 중 보경사에  조금 못 미쳐 길 오른 쪽으로 비켜선 문인 한흑구선생의 추모비를 들러보았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비문을 보고나서야 선생의 수필 “보리”를 중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났는데 이곳을 자주 들렀다는 선생께서 산행기를 남겼다면 옥고임에 틀림없을 텐 데하며 아쉬워했습니다. 천년을 훨씬 넘긴 고찰 보경사 안으로 들어서자 무지막지 했던 한 낮의 햇살이 많이 수그러들어 적송림을 뒤로 한 대웅전과 적광전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이제는 숨 좀 돌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1400여년 전인 신라 진평왕 때 지경법사가 진나라로부터 들여온 팔면보경(八面寶鏡)을 왜적을 막고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큰 못에 묻고 못을 메워 그 위에 금당을 세웠다는데 그 금당이 바로 보경사로 현존하는 것들 중 가장 오래된 5층 석탑을 사진 찍은 후 이 절에서 물러나왔습니다. 보경사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도 계곡물을 일부 돌려 콸콸 물이 흐르는 시멘트 도랑을 따라 나란히 나 있어 걸을 만 했습니다. 내연산의 비경은 계곡 속에 갇혀 있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청하골 계곡위의 하늘을 일부 덮은 검은 구름을 뚫고 내비치는 석양의 붉은 색광이 내연산이 보여준 또 하나 비경으로 비로자나불님이 법계를 비춘 지혜의 빛이 색을 갖고 있다면 어두운 구름을 뚫고 내비치는 저런 광명의 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경길에 차창 밖으로 내다본 장사해수욕장의 바다풍경도 매혹적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지나는 영덕 땅을 차에서 내려 밟아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어 달랬습니다.


 

  워낙 먼 곳이어서 가고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귀가는 늦었지만, 다음(Daum)에 “먼 곳에의 동경”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놓고 명산100산의 산행기를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가는 제게는 내연산이 내포하는 청하골도, 청하골을 둘러싼 외연의 산줄기도 모두가 팔면보경에 버금가는 보물이었습니다. 보물이 일반 물건과 다른 점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거나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청하골 만을 오르내리며 12폭을 완상하는 테마산행을 염두에 두는 것은 내연산 전체가 보물이어서 멀지 않은 시일 안에 “먼 곳에의 동경”욕구가 또다시 발동할 것 같아서입니다.